[인터뷰365 홍경희] ‘제 입에 풀칠도 못한다’는 표현이 있다. 자신도 먹고 살기 바쁜데 하물며 남을 돕는다는 일은 어지간한 희생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으로부터 27년 전인 1981년, 셋방살이를 하면서도 40명의 신문 가판원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마련해줘 세상을 따뜻하게 했던 사람이 있었다. 주인공은 한 언론사의 영등포지국 가판총국을 운영하던 34세(현 62세)의 김태한 씨. 그는 열두 명 대식구의 살림을 꾸려가는 빠듯한 형편에도 남들보다 덜 쓰고 아껴가면서 남들을 도운 참 희생의 정신을 보여주었다.
“꼭 잘 살아야 남을 돕는 건 아니잖습니까?”
김 씨가 장학사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그 자신이 지난 16년간 겪어 온 쓰라린 고생 때문이었다. 초등학교(당시 초등학교) 4학년 때 가세가 기울면서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야 했던 그는 독서실에서 일하며 먹고 자는 생활을 이어갔다. 이후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로 그렇게 정신없이 살다보니 어느 덧 통장에 돈이 모였고 서울 오목교 인근에 집을 얻어 흩어졌던 가족들을 다시 불러 모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가족들 간에 의지하며 정직과 부지런을 최우선으로 살아왔던 그는 형편이 조금 나아지자 자신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어려운 이들을 돕겠다고 다짐한 그가 구체적 계획을 세우기 위해 각 가판원 자녀들 중 중고교에 재학 중인 학생 수를 파악해보니 무려 40명에 이르렀다. 그중 절반이 고등학생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중학생이었다. 김 씨는 이들을 4개 조로 나눠 1분기마다 10명 씩 장학금을 지급해 주기로 하고 1년에 1백60만원이라는,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액수를 책정했다. 자신이 있던 사무실 전세 값과 등록금이 같이 오르는 이중고 속에서도 어떻게든 장학금은 마련할 것이라던 김태한 씨. 진정한 행복과 돈의 가치에 대해 시사하는 바는 현 세태에도 크지 아니하다 할 수 없겠다. 이순을 넘긴 그의 소식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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