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미경이 '칸'으로 보낸 영화 <물레야 물레야>
원미경이 '칸'으로 보낸 영화 <물레야 물레야>
  • 김갑의
  • 승인 2008.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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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나리오 읽어보고, 내일부터 촬영이야. / 김갑의


[인터뷰365 김갑의] 우리 영화 사상 최초로 칸 영화제에 진출한 작품은 1984년 이두용 감독이 만든 <이조 여인 잔혹사, 물레야 물레야>였다. 이 영화는 대종상에서 6개 부분을 석권하고, 시카고 국제영화제에서 촬영상을 수상한데 이어, 한국영화사상 최초로 칸 영화제 경쟁부문인 ‘주목할 만한 시선(Un Certain Regard)' 에 선정되며 ’한국적 영상미‘와 한국영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린 신호탄과도 같은 영화였다.


하지만 <물레야 물레야>는 제작자체가 무산될 뻔 했던 영화였다. 5개월여에 걸친 기획 기간이 끝나고 1개월여에 걸친 촬영장소 헌팅이 끝났을 때 <물레야 물레야>에게 주어진 촬영기간은 불과 45일정도 뿐이었다. 그때는 6개월 단위인 상, 하반기로 나누어 의무편수를 제작하여야만 했고, 그렇게 해야만 외국영화 수입쿼터를 받을 수가 있었던 때다. 그러니 어떠한 일이 있어도 <물레야 물레야>는 45일 동안에 완성을 하고 개봉을 해야만 했었다. 마침내 남자 주연으로 신일룡과 여주인공으로 당시 최고의 인기스타였던 J양을 캐스팅 완료함으로 모든 촬영준비가 되어 바로 그 이틀 후를 크랭크인 날짜로 잡았다.



스탭들은 다음날 9시에 집합해 첫 촬영지인 강릉을 향해 출발했고 제작부장인 임종락씨는 출근하자마자 동교동 J양의 집으로 달려갔다. 최종적으로 촬영 스케줄을 협의하기 위해서였다. 아침 10시가 막 지났을까? 임 부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J양의 어머니가 의상 등 준비할 게 많아서 개런티를 1백만원 더 달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내일부터 촬영인데 그게 말이나 되는 얘기냐고 했더니 임부장은 자신의 힘으로는 설득이 안된다며 J양의 어머니를 바꿔주었다. 나는 J양의 어머니에게 지금 그런 얘기할 때가 아니라고 잘 설득을 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그 개런티로는 촬영에 임할 수가 없다는 것 뿐이었다.



머리가 아찔해 졌다. 임부장에게 마지막으로 우리 입장을 설명하고 그래도 안 되면 지급한 수표를 되돌려 받아 오라고 했다. 설마 돈 1백만원 때문에 계약까지 끝낸 영화출연을 포기하랴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그건 큰 오산이었다. 임부장이 벌레 씹은 표정으로 되돌아 왔고, 손에는 J양에게 지불한 출연료가 들려져 있었다. 그쪽에서는 내일 출발이고 촬영기간도 얼마 안남은 시한부 작품인데 너희가 설마 주연배우를 바꾸겠느냐 하는 배짱을 부린 모양이었다.



1백만원을 더 보태서 임부장을 다시 보내느냐, 아니면 선례를 만들지 않기 위해 급히 배우를 교체하느냐 하는 양자 중 택일을 필자는 해야만 했다. 1백만원을 더 주고 촬영에 들어가면 만사가 OK이지만, 배우를 교체하려면 감독의 승낙도 얻어야 하고 작품내용에 대한 검토, 의상제작 등 도저히 내일 출발은 불가능한 상태였다. 고심 끝에 배우교체 쪽으로 결단이 내려졌다. 급히 연락을 받은 이두용 감독이 달려왔고 어떤 배우로 교체하느냐 하는 의견교환, 촬영 스케줄의 변동 등에 대해 토의가 시작됐다. 의논 끝에 나온 결론은 출발이 지연되면 <물레야 물레야>는 45일 만에 촬영을 마칠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특히 이 작품은 동시녹음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여주인공의 펑크 때문에 크랭크인 날짜를 연기할 수도 없고 갑자기, 그것도 몇 시간 안에 핀치히터를 구해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회사 대표인 정소영감독은 기획자와 감독이 알아서 할 일이니 상반기 의무편수에 지장이 없도록 만 하라는 것이었다. 긴급회의 도중에 원미경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이두용 감독도 원미경이라면 괜찮다는 의견을 냈다. 낮 12시쯤이었는데 전화를 걸어보니 다행이 원미경은 집에 있었다. 내일부터 촬영 시작할 영화가 있는데 사정 얘기를 할 시간이 없으니 만사 제쳐 놓고 일단 사무실로 좀 와달라고 했다. 필자와 원미경과는 80년도에 대종상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최하원 감독의 <초대받은 사람들>에서 함께 일했고, 그때 여우주연상을 받지 못해 큰 아쉬움을 남긴바 있었다.




오후 1시가 막 넘었을 때 원미경이 왔다. 그리고는 사장실에 감금하다시피 해놓고 대본을 읽혔다. 한 시간도 안 걸려 대본을 독파하더니 “절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한다.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이거 받고 내일부터 촬영 시작해줘요.” J양에게 돌려받은 개런티를 그대로 원미경에게 주며 곧바로 의상을 맞추라고 했다. 원미경은 우리가 설쳐대는 꼴에 어이가 없었던지 피식 웃더니 “지금 막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내일부터 촬영을 시작하라니···,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었나보죠? 영화제 내보낼 거라면서요? 이래 가지고 영화제에 나가져요?”



말이야 옳은 얘기지, 누가 그걸 모르나? 하지만 속사정을 까놓고 얘기할 수도 없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하는 소리로 “어쩌다 그렇게 됐어. 차츰 알게 될 테니 제발 해 달라는 대로 좀 해줘요”였다.



눈치 빠르고 영리한 원미경이 우리 쪽 사정을 왜 모르겠는가, “알았어요. 하지만 나중에 저 때문에 작품 망쳤다는 말씀은 하지 마세요.” 그날로 의상이 준비되었고 다음날 아침 9시에 촬영버스는 강릉을 향해 힘찬 출발을 했다. 강릉에 도착한 그날은 여관을 잡고 짐을 푸느라고 촬영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자그마한 해프닝은 도착한 그날 밤에 생겼다.




개인 승용차로 강릉에 도착한 신일룡과 다른 배우들은 J양이 아닌 원미경이 대사를 익히기 위해 연습하는 광경을 보고 “아니 이거 어떻게 된 거야?”하며 놀란 토끼눈이 되어 벌어진 채 다물지 못했다. 그렇게 <물레야 물레야>의 촬영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해 대종상의 석권, 이듬해 시카고 영화제의 수상 그리고 최초의 칸 영화제 입성까지. 이런 진통 끝에 태어난 영화 <물레야 물레야>는 고맙게도 한국영화사에 우뚝한 작품이 되어주었다. 이두용 감독의 노고도 컸지만, 원미경의 노력은 눈물겨운 것이었다. 원미경의 파이팅, 정말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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