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위한 잣대는 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연극 '준대로 받은대로'
'정의'를 위한 잣대는 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연극 '준대로 받은대로'
  • 주하영
  • 승인 2017.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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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준대로 받은대로'컨셉사진/사진=국립극단
'준대로 받은대로'콘셉트 사진/사진=국립극단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그리스 신화 속 정의의 여신 '디케'는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손에는 칼을 쥔 채 천으로 두 눈을 가리고 있다.

'율법'의 여신 테미스와 제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디케는 '질서'의 여신 에우노미아, '평화'의 여신 에이레네와 함께 인간의 삶을 관장하며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 한 손에 든 저울은 다툼의 무게를 공정하게 판단함을 의미하고, 다른 손에 든 칼은 질서를 어지럽힌 자에게 처벌을 내림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디케는 정의를 실현함에 있어 그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두 눈을 가리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나라 영국 런던의 중심부에는 '올드 베일리'라 불리는 재판소 건물이 위치해 있다. 그 꼭대기에는 금빛으로 빛나는 '정의의 여신상'이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하지만 2016년 런던 도서전에서 주목을 받았던 작가 다니엘 콜은 자신의 소설에서 정의의 여신을 "사법 현실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지붕 꼭대기에서 건물 아래로 몸을 던지려는 찰나에 있는 절망한 여인"으로 묘사함으로써, 정의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 법체계의 '허상'을 지적한다.

'준대로 받은대로'공연사진/사진=국립극단
'준대로 받은대로'공연사진/사진=국립극단

지난 8일 명동예술극장에서는 국립극단에 의해 새롭게 윤색을 거친 셰익스피어의 문제작 '준대로 받은대로'가 무대 위에 올랐다.

오경택 연출은 셰익스피어 원작의 제목 'Measure for Measure'를 '준대로 받은대로'로 번역한 것과 관련해 "작품의 의미에서 벗어나지는 않되, 관객에게 다가가기 쉬운 제목"으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극 전체의 주제를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작품 제목은 우리말로 그 의미를 정확하게 담아내기 어려운 탓에 여러 버전으로 번역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작품 속에서 빈센티오 공작이 자신의 권한을 대행하며 저지른 앤젤로의 부정한 행위를 벌하며, "죽음에는 죽음으로,...비슷한 행위는 비슷한 행위로, 지은 죄는 지은 대로 갚게 하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는 극 제목은 원래 성경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마태복음 7장 2절의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다"는 구절은 함부로 기준을 세우고 자신은 돌아보지 않은 채 '다른 사람의 티는 보면서 자신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위선, 섣부른 판단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준대로 받은대로'공연사진/사진=국립극단

공작은 14년 동안이나 법령을 제대로 적용하지 않아서 방탕해진 도시를 개혁한다는 명목으로 원칙주의자인 앤젤로에게 권한을 이행하고 수도사로 변장한 채 암행을 떠난다.

'법률을 곡식이나 쪼아 먹는 새들을 겁주는 허수아비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 앤젤로는 성매매와 혼전관계의 뿌리를 뽑기 위해 줄리엣을 임신시킨 클로디오를 사형에 처할 것을 명한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견습수녀 이사벨라는 오빠의 목숨을 구명하기 위해 앤젤로를 찾아가지만 오히려 순결하고 정숙한 이사벨라의 모습에 유혹을 느낀 그는 '성상납'을 요구한다. 모든 것을 폭로하겠다고 외치는 이사벨라를 비웃으며 앤젤로는 말한다.

"아직 한 번도 더럽혀진 일이 없는 내 이름과 엄격한 내 생활로 보아 그 말을 누가 믿겠소? 게다가 공작 대행으로서의 권한도 있으니 당신의 비난쯤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겠지! 도리어 당신이 중상모략을 한다고 비난을 받게 될 것이오!"

'준대로 받은대로'공연사진/사진=국립극단
'준대로 받은대로'공연사진/사진=국립극단

권력은 보통 '타인을 강제할 수 있는 제도화된 힘'을 의미한다. 권력을 쥔 자가 타자의 의지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결정을 관철하는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권력의 기능이란 것이다.

토마스 홉스는 '권력욕'을 인간이 지닌 보편적 취향으로 정의하면서, "죽기 전에는 그칠 줄 모르는 영구적으로 쉴 새 없이 발동하는 욕망"이라 말한다. 과연 자신의 이익과 욕망, 모든 것을 분리시킨 '공정한 권력'이란 가능한 것일까?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공작은 "위장에는 위장으로, 허위에는 허위로" 맞서기 위한 계략을 준비한다. 그는 지참금을 잃었다는 이유로 앤젤로에게 파혼당한 마리아나를 이사벨라로 변장시켜 동침하게 하지만, 앤젤로는 이사벨라와의 약속을 저버린 채 클로디오의 사형을 앞당긴다. 결국 공작은 클로디오 대신 열병에 걸려 죽은 죄수의 목을 보낼 것을 지시하고, 자신의 귀국을 환영하기 위해 도시 사람들 모두가 모인 광장에서 앤젤로의 허위와 위선을 밝히기 위한 재판을 시작한다.

'준대로 받은대로'공연사진/사진=국립극단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무대화할 때의 어려움은 무엇보다 수많은 갈래로 읽히는 셰익스피어의 텍스트에 있을 것이다. 닐 맥그리거는 작품 속에서 셰익스피어의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견해가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집어낼 수 없는 모호함이 어려움으로 느껴질지 모르지만 전 세계에 미친 영향과 그 효과를 생각해 본다면 현재의 우리가 "좀 더 대범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오경택 연출은 좌우의 균형을 맞추어 줄 수 없음을 의미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콘셉트를 적용시킨 이중으로 회전하는 무대를 통해 각자의 기준에 따라 달라지는 정의와 진실을 상징화한다.

공작은 "남의 죄를 벌할 때는 자신이 범한 죄의 무게보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 무게를 잴 수 있는 저울의 추가 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면 이미 '정의'는 결정되어 있는 셈이 된다.

'준대로 받은대로'공연사진/사진=국립극단

정의와 법, 권력과 위선, 용서와 자비와 같은 주제를 담고 있는 '준대로 받은대로'가 까다로운 '문제극'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겉보기엔 해피엔딩으로 보이는 '결혼'으로 마무리 되고 질서를 회복한 듯 보이는 결말이 사실상 관객들의 동의를 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순결의 가치를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이사벨라를 향한 공작의 갑작스럽고 일방적인 청혼과 그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이사벨라의 모습은 현대의 관객들에게는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된다. 이양되었던 권력이 다시 공작에게로 넘어오면서 그에 따르는 강제와 억압 역시 그대로 작용하며 또 다른 위선이 자리하게 되었음을 의미하게 되기 때문이다.

오경택 연출은 대항할 수 없는 권력의 요구에 직면한 이사벨라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표현하기라도 하듯 다른 모든 인물들이 자신들이 입은 옷을 벗어들고 퇴장하는 가운데 오롯이 혼자 수녀복을 입은 채 하늘을 향해 손을 뻗고 서있는 이사벨라의 뒷모습을 남김으로써 권력을 가진 자의 위선적 행위나 비행, 비열함과 무책임과 같은 주제들을 노출시킨다. 이사벨라의 선택은 오픈으로 남겨지지만 그녀의 황당함의 표정 속엔 실망감과 절망감, 허탈감의 복잡한 심경이 얽히며, 관객들에게 그 메시지를 전달한다.

극작가 에드워드 본드는 "정의를 권력에 종속시키는 일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게 되면, 권력은 역동적인 자세를 취하며 공격의 변증법을 따르기 때문에 사실상 그 어떤 것도 바뀌지 않은 상태가 되어 버린다"고 말한다.

공작의 청혼은 사실상 상대방의 의지를 꺾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의지를 무력화시킨다는 점에서 더 강력한 권력으로 작용한다. "내 것은 그대의 것이 되고, 그대의 것이 나의 것이 되는 것이요"라는 말로 복종해야 할 대상이 자신의 의지를 형성하는 것 자체를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고, 상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슬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결국 타인에게 '나'의 의지를 투영하고자 하는 권력의 문제는 모두 타인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태도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까?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나와 똑같은 의지를 가진 '인간'으로 대했다면 과연 그 사람의 '성'(性)이나 '의지'를 물건처럼 요구하며 거래하고 소비하고자 할 수 있었을까?

결국 권력으로 인한 모든 문제는 타인을 나와 같은 사람으로,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는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나를 위해 다른 사람을 평가 절하함은 나 또한 타인에 의해 평가 절하되어도 됨을 의미한다. 우리는 왜 행동하기에 앞서 그러한 지점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인간은 그토록 이기적이기만 한 동물인 것일까?

본드의 말처럼, "정의를 위한 투쟁은 정의가 무엇인지 밝히는 일의 투쟁"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무엇이 옳은 것인가의 잣대를 어떻게 세워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끊임없이 이어가야만 한다. 이미 모든 가치는 상대적으로 작용하고 있고 절대적 가치란 존재하기 힘든 세상이다. 이해의 눈으로 보면 이해가, 평가의 눈으로 보면 평가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 가운데 끝내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다면, 우리가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아가야 할 필요가 아닐까? 본드는 주장한다.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의 기준과 잣대를 제대로 세우지 못한다면 결국 영원히 불공정 속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올 한해를 마무리 짓는 12월, 현재 우리가 세운 잣대가 인간다운 가치를 반영하고 있는지, 정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셰익스피어의 문제극 '준대로 받은대로'을 통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봄이 어떨까. 12월 28일까지 명동예술극장.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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