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손예진 “여해적도 어렵지만 여배우로 사는 건 더 어렵다”
[인터뷰] 손예진 “여해적도 어렵지만 여배우로 사는 건 더 어렵다”
  • 김보희
  • 승인 2014.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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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예진은 '해적'에서 바다를 제압한 여두목 해적 여월 역을 맡았다.

【인터뷰365 김보희】 청순의 대명사로 불리던 배우 손예진(32)이 달라졌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툭 나올 것 같은 눈망울로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던 손예진이 강인한 여해적이 되어 거친 뱃사람들을 호령한다.
손예진은 지난 2001년 드라마 ‘맛있는 청혼’으로 데뷔해, 영화 ‘취화선’으로 충무로에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후 ‘연애소설’, ‘클래식’ ‘내 머릿속의 지우개’가 연속으로 히트를 치며 대중들에게 청순한 이미지로 강렬하게 각인됐으며, ‘외출’ ‘작업의 정석’ ‘아내가 결혼했다’ ‘무방비도시’ ‘타워’ ‘공범’ ‘해적’까지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냈다. 최근에는 MBC 예능 ‘무한도전-월드컵 응원단’까지 출연해 친근하면서도 털털한 이미지를 더했다.
그런 손예진이 이번 영화 ‘해적’에서는 바다를 제압하는 여해적이 됐다. 여해적이라는 한국에서는 전무후무한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밤낮으로 연구했다. 와이어도 타고 액션도 배워야 했다. 연기에 있어서는 늘 열정적인 손예진이기에 이번 역할 역시 즐거운 작업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손예진은 “즐거운 작업이었지만 힘들기도 했다”며 그간에 털어놓지 못했던, 마음에 담아둔 여배우로서의 속이야기를 꺼내놓았다.

‘공범’ 때 보다 살이 빠졌다. ‘해적’ 개봉을 앞두고 바쁜 일정 때문인가.
조금 빠졌다. ‘해적’ 언론시사회 이후 지금까지 딱 하루 쉬었다. 그것도 VIP 시사회 끝나고 오신 손님들이랑 한잔 하면서 이야기하고 숙취로 그 다음날 하루 쉬었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재밌다고 해주셔서 피곤한 것보다도 기분이 좋다.

‘해적’ 반응에서 가장 좋았던 것이 있다면,
아무것도 필요 없고, ‘너무 웃었어’ ‘재밌었어’ 이런 반응이면 최고인 것 같다. 나 역시 시나리오를 보면서 느낀 상황이 정말 웃겼다. 해적과 산적이 만나고 4조직의 갈등 등 이런 상황을 풀 수 있다는 자체가 우리 영화의 과제였는데, 잘 풀어졌다고 생각한다. ‘해적’으로 인해 앞으로 어드벤처 영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개봉을 앞두고 많이 떨릴 것 같다.
언론시사회 전에 가장 떨렸다. 부담감에 긴장하고 예민해져서 잠을 설치고 가위에 눌렸다. 시사회 전에도 가위에 눌렸는데, 이번에는 호랑이가 그렇게 나오더라. 호랑이는 태몽이라 던데... 강한 캐릭터를 연기하다보니 강한 무엇인가가 꿈에 보이는 것일 수도 있고, 길몽이라고 생각이 든다. 어머니가 중요한 일 있을 때마다 꿈을 꾸시는데 물속에서 엄청나게 큰 가오리와 예쁘게 생긴 거북이가 나왔다고 하셨다. 영화에 연결이 됐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여자 해적이라는 역할이 국내 영화에서는 없기에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
이야기 자체도 기발하고, 완전 새로운 캐릭터였다. 해적이라는 것 자체를 떠올려 보면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이 생각이 날 뿐. 또 우리나라에서는 해적이 없었기에 고민이 더 많았다. 그래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만들어갔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상황에 참여해 캐릭터를 만들어 간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한테는 해적인데 새로워 보여야 한다는 것이 중요했던 것 같다. 해적이라는 범주에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조선시대라는 차별화를 주기 위해 의상은 블라우스 느낌인데 단추 대신 끈이나 가죽으로 하고, 화장도 짙게. 여월이라는 인물은 말이 많은 인물이 아니라서 한 장면으로 모든 것이 파악돼야 했다. 그래서 외적인 것이 50% 넘게 중요했다.
여태까지 영화 속에서 나는 한 번도 눈빛을 쏴 본 적이 없었다. ‘무방비도시’ 때와 비슷할 수 있지만 그때는 팜므파탈이었고, 이번에는 굉장히 조용하면서 카리스마 있는 여두목 캐릭터라 쉽지가 않았다. 연기를 하며 내 안에 익숙한 여성성이 나올까봐, 들킬까봐 걱정이 많았다. 그래서 연기를 하며 눈에 더 힘을 주기도 하고. 강인함을 표현하기 위한 강박이 좀 있었다. 그러다보니 여월이 얼마나 속은 고독하고 외로웠을까 이해가 되더라.

코믹 장르여서 현장이 굉장히 재미있었을 것 같다.
산적 무리들은 그랬다. 해적 무리들은 즐거운 것보다도 힘들었다. 배가 설치된 곳이 높기도 하고 올라갈 때 시간이 걸리기에 오가지도 못하고 남들이 촬영할 때는 옆에서 기다리다가 같이 내려오고 그랬다. 또 겨울에 촬영을 해서 추위와의 싸움이었다. 처음 액션인데 추위까지 겹쳐서 쉽지가 않더라. 게다가 눈에 힘까지 주고 사극 톤에 신경 쓰려고 하니 현장에서 웃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걱정하고 고민해야할 부분이 많았다.

드라마 ‘상어’ 이후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춘 김남길과는 어땠나.
정말 다행이었다. ‘해적’에서 산적은 좌충우돌 코믹을 담담하고, 해적은 정의로운 모습으로 극의 중심을 이끌어가야 했다. 그래서 해적이 오버해서 웃기려고 하는 순간 깨진다는 생각에 접점을 찾기 힘들었다. 보통으로 연기하자니 단선적이고, 오버하면 안됐고. 그래도 김남길 씨와 ‘상어’를 같이 해서인지 둘이 티격태격 장면은 호흡이 잘 맞았다. 촬영할 때 이게 웃길까 걱정을 했는데. 결과론적으로는 김남길 씨와 두 번째라는 것이 다행이었다. 만약 호흡을 처음 맞추는 사람과 연기했다면 어색하게 나왔을 것도 같다.

여자 해적이라는 캐릭터를 위해 손예진은 의상과 메이크업 등 겉모습을 비롯해 눈빛까지 섬세하게 신경을 쓰며 연기했다.

작년 ‘공범’을 비롯해 ‘해적’에 이르기까지 역할이 많은 차이를 보인다.
안 해본 역할을 하게 된다. 멜로를 하면 그 다음에는 멜로를 안 하게 된다. 보는 사람도 지겹고 하는 사람도 지겹고. 그러다보니 장르적으로 다양한 도전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일단 시나리오가 재밌어야 하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
‘공범’ 같이 감정에 깊이 들어가는 영화를 하고 나면, 경쾌하고 즐거운 영화가 끌리는 부분도 있다. 그래서 ‘해적’에 출연하게 됐고. 조금씩 바뀌고 다시 돌아가게 되는 것 같다. ‘해적’ 다음 작품은 조금 더 감정적으로 깊이 들어가는 작품을 고르고 싶다. 많은 분들이 멜로는 안하냐고 하는데. 나도 멜로 하고 싶다. 그런데 재미있는 시나리오가 없어서 아쉽다.

근래 영화 추세를 보면 멜로, 그리고 여자들이 나오는 영화가 없다.
제작이 안 되니까 출연을 못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남자들은 고를 수도 있고. 다음 작품이 아닌 그 다음 작품까지 일정을 짜느라 바쁜데 여배우들은 그렇지 않다. 좋은 시나리오와 기획을 가진 여자 영화가 없는 게 사실이다. 고를게 없고, 그나마 좋은 시나리오 몇 개에 많은 여배우들이 달려들고 있는 게 현실이다. 또 한 장르의 영화가 잘 되면 그 영화와 비슷한 시나리오가 쏟아져 나온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다른 작품인데도 헷갈리는 경우도 있다. 여자 영화 등 작품들이 다양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야기를 돌려서, 손예진이 ‘무한도전’에 출연한다고 할 때 놀랐다.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나.
사람은 변하는 것 같다. 사람은 똑같지만 한해 한해 생각이 바뀌고 하루 하루도 바뀌는 것 같다. 난 걱정도 많고 생각이 많은 편이다. 어릴 때는 예민하고 완벽주의자적인 면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가지고 있지만 예전보다 조금씩 내려놓게 되는 것 같다. 자꾸 부딪히고 깨지면서 힘든 순간을 견디다 보니 스스로 더는 다치기 싫어서 합리화하는 부분도 있다. 인생이 짧기도 하고 이게 다가 아니다라는 생각에 주저하고 고민하고 이런 것들이 조금씩 없어졌던 것 같다.
‘무한도전’ 출연도 예전의 나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행보였다. 무서워서라도 못 나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배우로서 한국 축구를 같이 응원하는 것이 매력이 있었고, 또 현지에서 응원하는 것이 기회가 다시는 없을 것 같았다. 신선한 경험이었다.

기존에 생각한 손예진은 까다로울 것 같은데, 실제 손예진은 의외로 털털하다.
여배우들의 까다로운 면도 있고 새침한 부분은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여배우들 중에는 의외로 여장부가 많다. 영화 촬영장에 남자 스태프들이 많고 그들과 함께 작업하다보니 여배우들이 더 남자 같고 더 진취적이다.
음. 생각해보니 어릴 때 날 봤던 분들이 지금의 나를 본다면, 분명히 많이 달라졌다고 할 것 같다. 예전보다 털털해졌고 좀 편해졌구나 느끼실 것이다.

그럼 데뷔 때는 어땠나.
힘들었다. 사회생활도 처음이었고, 연기를 하고 싶어 대구에서 서울로 상경했는데 현장에서 내 마음대로 연기는 안 되고 떨리고. 모든 것에 심장이 콩닥콩닥 거렸다. 웃고 싶은데 안 웃겨지고. 감독님은 뭐라고 하고.. 모든 것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사람이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면 병이 온다고 하는데, 병이 느껴졌다.
특히 난 데뷔작을 주인공으로 했다. 지금은 MBC 박성수 감독님과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그때는 싫고 원망스럽고 무서웠다. 그 분이 데뷔를 시켜주신 분이기도 한데 뭘 믿고 데뷔를 시켜주셨는지 감사할 뿐이지만, 그때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취화선’이 첫 영화였는데 10회 촬영이었지만, 최민식 선배님도 계시고 임권택 감독님은 모니터도 아니고 카메라 옆에 계셨다. 카메라 감독님한테 야단맞고 그래서 더 얼었다. 안 그래도 어른들 사이에서 한복도 어색하고 머리도 무겁고 힘든데.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연기를 하니 더 힘들었다. 이후 ‘연애소설’ ‘클래식’은 내게 큰 역할을 했다. 특히 ‘클래식’은 1인2역에 타이틀롤을 하다 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큰 것을 소화해내야 했다. 거기에서 오는 부담감과 도 성격상 완벽하게 하려다 보니. 하루하루가 치열하고 현장 가기가 무서울 정도였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클래식’을 보면 아련하다. ‘클래식’을 촬영할 당시 감독님께 그런 적이 있다. “제가 조금만 더 나이가 들었으면 이 역할을 더 잘했을 텐데. 이 역할이 힘들다”라고. 그때 감독님께서 “네가 지금 이 나이니까 나오는 게 있어. 나이가 들면 이 역할을 못해”라고.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하지만 지금 어색 비슷한 풋풋함이 있더라. 지금은 느껴지고 알게 됐다.
다시 20대 초반으로 돌아가라고 하면 난 싫다. 이 모든 것을 깨닫고 돌아간다면 몰라도, 그 때 내가 좀 더 여유로울걸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은 좀 더 편해지고 내가 조금씩 나를 놓으며 배우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럼 잘 자랐다가 아니라 잘 버틴 것인가.
잘 버텼다...그럴 수 있다. 슬프긴 한데. 그때는 버텼다. ‘잘 이겨내야 해’라는 마음이었다.

어떤 것이 힘이 됐나.
데뷔를 하고 3년 동안 친구를 만나지 않았다. 유일한 친구가 고3때부터 만났던 지금의 대표님이었다.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와 새로운 환경에 혼자 견디고 적응하고, 마음에 상처도 많이 받은 것 같고, 속에 담아두고 이를 악물고 오로지 연기만 생각했다. 작품 끝나고 연달아 작품이 있었고, 드라마 ‘대망’과 영화 ‘클래식’을 같이 찍었다. 그러니까 초반에는 스케줄상으로도 3일 밤을 새도 그런가 보다하고 한 것이다. 그때는 정말 열심히 했다. 어떻게 보면 대견하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어떻게 푸나. 술로 푸는 편인가.
술을 마실 수 있다...라는 것은 스트레스를 덜 받을 때다.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누군가와 술자리를 한다는 것이 힘들지 않나. 또 우리 일 특성상 누구에게 털어놓기 힘든 직업이기에 술자리에서 누군가와 이야기한다는 게 쉽지 않다. 예를 들면 영화가 못나왔다면 그 스트레스를 누구에게 이야기하겠나. 정말 친한 동료에게라도 이야기하기 힘들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참 우리 일이 외로운 직업인 것 같다. 혼자 안고 가는 부분이 많다.

작업을 하다보면, 나 손예진에 대한 상실감이 클 것 같다.
상실감은 당연히 있다. 20대를 돌아보면 허무한 면도 있다. 너무 일에 빠져 나라는 사람의 개인 행복을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라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있고. 드라마 ‘상어’ 때 힘들었다. 배우로서 사람으로서 열정이 식는 경험을 했다. 한 번도 열정이 식은 적이 없었는데 겁이 나더라. 내가 어떤 것을 위해 달려왔지? 라는 생각. 그래서 쉬고 싶었다. 하지만 ‘해적’은 빨리 답을 해줘야 하는 상황이었고, 어찌보면 ‘해적’이 나한테는 또 다른 전환점이었다. 만약 ‘해적’을 안했다면 지금까지 쉬었을 것이고 그랬으면 더 슬럼프에 빠졌을 것이다. 다행히 시사회 후에 반응이 좋았지만, 만약 반응이 안 좋았다면 이중으로 고생을 했을 것이다. ‘해적’은 다음 작품을 고민하게 해준 선물 같은 작품이다.

본인이 생각할 때 손예진은 어떤 배우였으면 좋겠나.
매 캐릭터를 하면서 ‘믿고 볼 수 있는 배우’라는 말이 어렵게 느껴진다. 너무 욕심나는 말이기도 하고, 책임감이 무거우면서도 기분 좋은 말인 것 같다. 누군가 극장에서 돈을 주고 내 영화를 보러 믿고 와준다는 것 자체가 배우의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저 배우가 하면 재밌을 것 같다’라는 것이 가장 듣고 싶은 이야기다.

김보희 기자 interview36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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