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혜진, 여성의 온도를 쿨하게 바꾼 배우
심혜진, 여성의 온도를 쿨하게 바꾼 배우
  • 조현진
  • 승인 2008.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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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변함없이 콜라처럼 시원한 여자 / 조현진



[인터뷰365 조현진] <가평군>이라고 쓰여진 아치를 지나서도 한참을 더 달려야 했다. 다행이 일요일 오후였지만 도로는 막힘이 없었다. 지난해 5월 유력한 사업가인 한상구씨와 갑작스런 결혼 뉴스로, 그 다음엔 지금 찾아가고 있는 청평호반의 ‘으리으리한 집’으로 매스컴을 장식한 그녀. 심혜진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이차선 국도를 한참 달려 그녀의 집을 찾았다. 네비게이터의 도움이 없었다면 쉽게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인터넷에 화제가 되어 사진이 올라온 그 집을 발견했다. 사진으로 본 것 보다 훨씬 더 크고 멋진 집이었다. 그의 신랑인 사업가 한상구씨와도 인사를 나눴다.



결혼 축하한다는 인사를 이제 하는 건 너무 늦었겠지?(웃음)

그럼. 많이 늦었지(웃음)


30대 여성들이 당신 옷 입는 스타일에 늘 주목하는 이유를 알겠다. 예쁘다. 집에서도 늘 이렇게 입고 있는건가?

무슨 소리. 인터뷰 한다니까 예쁜 옷 입은거다. (웃음) 잘 어울리나? '오드리J'라는 브랜드다.


아! 당신이 만든 브랜드?

맞다. (웃음) 인터뷰 하면서 우리 옷 홍보도 하는 거지, 일석이조 아닌가? 광고먼저 하고 인터뷰 시작하자. 왜 TV드라마도 시작하기 전에 광고부터 하지 않나? 지난해 여름부터 ‘오드리J'라는 인터넷 의류 쇼핑몰을 시작했다. 심혜진이 좋아하는 옷, 심혜진이 입고 싶은 옷 판다. 30대 여성들을 위한 콜렉션 중심이다. 주소는 www.audrey-j.com 이다. 구경 많이 하고 많이 사라. 광고 끝. 인터뷰 시작.



그래. 이게 심혜진이다. 연기하는 모습을 보건, 사석에서 만나건 부담주지 않으면서도 자기 발언을 분명히 하는 사람. 그녀는 그렇게 자기 영역을 만들고 키우며 오랫동안 대중 속에서 살아왔다.


얼굴에 행복하다고 써 있다.

맞다. 정말 행복하다. 저 사람(남편)얼굴에도 그렇게 쓰여 있지 않나? 확실히 결혼하기 잘했다고 생각한다. 모든 여자들이 그렇겠지만 나에게 결혼 이란 건 ‘의지할 만한 큰 가슴을 가진 남자’를 만났을 때 가능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만난 거다. 처음 만나서 6개월쯤 사귀다보니 ‘아 이 사람에게는 내가 기대도 괜찮겠구나.’ 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연애를 오래했나?

그러게. 5년쯤 했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오래 연애하고 있는 줄 체감하지 못할 만큼 시간이 빨리 간 거다. 뭐 연애만 하는 게 아니라 계속 일도 하고 그랬으니까. 5년 딱 되었을 때 남편이 프로포즈를 하더라. 와이 낫(why not)! 그리고 ‘오월의 신부’가 된거지... 이 표현 좀 유치하다. 그치? (웃음)


뭐... 5월에 결혼했으니 ‘오월의 신부’가 아니라고 할 순 없는 거니까... 아직 신혼인데다 오래 사귀었으니 그다지 투닥거릴 일은 없겠다.

그렇진 않지. 우리도 남들과 똑같다. 단지 연애를 오래했으니까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긴 하지. 남편은 굉장히 섬세한 스타일이다. 어떨 땐 까다롭다는 느낌도 주지. 이 집의 인테리어, 익스테리어 모두 남편이 한거다. 난 정 반대다. 덜렁거리고, 실수도 많이하고... 그런걸 서로 고까운 눈으로 보기 시작하면 한이 없는데 우리는 그런 걸 보며 서로 재밌어 한다. 상호 보완해 줘야 하니까 부부가 된 거라고 믿고.


직접 보니 그런 것 같다. 그럼 여배우들의 흔한 레파토리인 ‘결혼하고 행복하니까 은퇴할래요.’ 같은 건 심혜진에겐 없는 거지?

물론이다. 요즘 결혼한다고 직장에 사표 내는 여자가 어딨나? (웃음) 물론 이젠 혼자가 아니라 가족이 생겼고 나는 여성이니까, 예전처럼 다른 건 팽개쳐두고 일에만 신경 쓰면 안되지만 내게 주어진 일들은 계속 해 나가야지. 얼마전에 <해피투게더>란 영화 촬영을 끝냈다. 남편은 이렇듯 내 일에 대해선 터치 안한다. 오히려 평생 사업을 한 사람이다 보니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벌어라.’ 라는 입장이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번 돈을 어떻게 써야하는 것이 지혜로운지 조언만 해 줄 뿐이다. 이 사람과 부부라는 것 덕분에 난 공짜로 우수한 재정 카운슬러가 생긴 셈이다.




이제 그녀의 근황에 대해선 대충 물어본 셈이다. 사실 오늘 인터뷰의 목적은 이런 것만이 아니다. 90년대를 대표하는 ‘여배우 심혜진’을 만나러 왔기 때문이다. 그녀의 영화, 그녀의 연기가 오늘 인터뷰의 주제다.


연기는 어떻게 시작한건가?

우연히 CF를 찍었다. 그게 TV에 나갔더니 충무로에 있는 <지미필름>의 제작부장이란 분이 늦은 밤에 전속계약서 들고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연기가 뭔줄도 모르고 <추억의 이름으로>라는 영화로 데뷔 한거다. 근데 너무 재미없었다. 사람 불러놓고 아무 말도 안 시키고 하루 종일 기다리게 하다가 한 두 컷트 찍고 집에 가라 그러고... 그렇게 <물의 나라>까지 그 회사 영화 두 작품을 했는데 너무 약이 올라서 절대로 다시는 연기 안한다고 다짐 했었다.


그런데?

나중에 <그대 안에 블루><시월애>만들었던 이현승 감독이 날 찾아왔다. 그때 박광수 감독의 조감독이었는데 <그들도 우리처럼>출연하라고 해서 영화 절대 안한다고 했더니...자기들은 촬영장에서 하루 종일 기다리게 안하겠다고 약속해서 또 하게 된거다. 그 작품을 하면서 굉장히 쇼크를 많이 받았다. 같이 공연한 문성근, 박중훈이라는 배우들에게도 그렇고, 정말 시커먼 강물이 흐르는 촬영지인 사북탄광촌을 보면서 아... 내가 이제껏 몰랐던 것을 영화를 하니까 알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 거다. 그러면서 영화를 진지하게 대하기 시작한 것 같다.


분명히 <그들도 우리처럼>은 아주 대단한 작품이었다. 박광수 연출의 최정점을 보여준 작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문성근, 박중훈의 연기도 대단했었지만 그 사이에 서있는 당신이 연기한 ‘영숙이’도 전혀 그들에게 밀리지 않았었다. 그 전까지 두작품과는 완전히 다른 ‘배우 심혜진’이 발견된 거지.

그렇게 평가해주니 고맙다. 그런데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문성근, 박중훈씨가 원체 강하니까 ‘그들에게 밀리면 끝장’이라는 심정으로 완전히 악에 받쳐서 했던 것 같다. 흥행은 크게 안됐지만 그 작품으로 ‘낭뜨영화제’,‘춘사영화제’,‘백상예술대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되게 신기했지. 아 내가 정말 배우가 된 거구나 싶었고.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심혜진이 90년대 여성을 대표하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김의석 감독의 <결혼이야기>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심혜진이라는 배우만이 아니라 한국영화의 스타일, 세대의 트랜드까지.

우선 심혜진이란 개인을 놓고 보자면 <그들도 우리처럼>에서 경험한 혹독함 덕분일 거다. 그때까지 만 해도 여배우는 절대로 시나리오나 짜인 콘티 밖으로 벗어날 수 없다는 어떤 공식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러니까 작가나 감독이 만들어 놓은 박스 안에서 그걸 최대한 팽창시켜 주기만을 원한 거다. 그 이상에 대한 기대도 없었고 그 박스 바깥으로 나가면 다 편집 되어서 잘려나갔다. 난 그런게 납득이 안됐다. 다행이 힘들었지만 김의석감독과는 그런 문제를 많이 이야기하면서 찍어나갈 수 있었다. 그게 <결혼이야기>다.


맞다. 그러고 보니 <결혼이야기>전에 어떤 영화의 여배우도 당신처럼 여유로워 보이는 캐릭터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결혼이야기>는 여성을 수동적인 자리에서 벗어나 남성과 대화하고 상의 할 만한 수준의 동등한 ‘주류세력’으로 키워준 거다. 그게 90년대의 한국사회의 트렌드가 되었던 거지. 그러다가 2000년대에 <엽기적인 그녀>가 나오면서 ‘여성상위’의 시대로 역전이 된 거고.


그 당신의 빛나는 업적(?) 덕분에 <세상 밖으로><은행나무침대><박봉곤 가출사건><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초록물고기>등 9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영화의 페르소나가 되는 거지.

개인적인 견해지만 난 딱 ‘중간’에 있다고 생각한다. 배우 오래했는데도 ‘너무 예쁘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별로 없다. 그리고 나한테 들어왔던 시나리오들 중에 캐릭터 소개란에 ‘절대미인’ 이라고 쓰여 졌던 건 한번도 없었다. (웃음) 이걸 긍정적으로 해석하자면 자연스럽다는 것이 되겠지. 그냥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여자, 일어날 법한 일을 하는 여자. 이런 내 앞에 영화의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세대의 감독들이 등장하다보니 나에게 기회가 왔던 거다. 나에게 줘어 짜는 걸 요구하지 않으니까 신나게 일했던거다.


그러고 보니 굵직한 감독의 데뷔작들에 많이 나왔다.

<결혼이야기>도 김의석 감독 데뷔작이었고, <은행나무침대>도 강제규 감독 데뷔작이었다. <세상 밖으로>의 여균동, <초록물고기>의 이창동감독까지. 남들은 나한테 감독복이 많은 배우라고 말하지만 웬걸. 그 분들 겉으로만 신인이었지 얼마나 집요들 한지... 쉬운 감독은 하나도 없었다. (웃음)



90년대 한국영화는 산업화에 성공했다. 그 성공의 핵심은 젊은 기획자들과 재능있는 감독의 출현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영화엔 언제나 심혜진이 있었다. 그것도 그녀말대로 요란스럽게 악 쓰고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감 있는 ‘당연한 주류’로써 그 복판에 서 있던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영화’만으로 보여진 정도가 아니다. 90년대의 여성들이 심혜진처럼 목소리를 내고, 심혜진처럼 옷을 입고, 심혜진처럼 ‘쿨’하게 변한 것이다. 이제부턴 심혜진이 바꿔놓은 그 여자들의 세계를 이야기를 해보자.



90년대 <결혼이야기>가 성공한 이후에 미시(Missy)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맞다. 나는 <결혼이야기>가 사회에 대단한 영향을 끼쳤다고 믿는다. 92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피카디리 극장에서 53만명이나 관객이 들었다. 당시로선 대단한 숫자였다. 영화에서 나는 성우라는 직업을 가진 여성 ‘최지혜’였다. 그전까진 영화속에서 여성 캐릭터가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평면적이었던 것에 비해 지혜는 아주 현실적이고 입체적으로 그려진 거다. 직업적으로, 여성적으로도. 그것에 여성관객들이 동감을 표시한 거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지혜의 행동은 좀 못 마땅하다. 이혼했다가 다시 전 남편에게 돌아가는 것으로 영화가 끝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금 세대들이 이 영화를 보면 지혜의 행동에 절대 동의 안 할 거다. 하지만 당시는 여자가 제 발로 집을 나가는 것도, 그리고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도 박수 받을 만큼의 당당한 행동이었다. 그 이후 ‘지혜’처럼 자신을 표현하는 여성들이 주류로 자리 한 거지. 그게 바로 당신이 말한 ‘미시’의 모습이다.


그리고 세상이 바뀌었지.(웃음)

당연히. 요즘 여성들에게 함부로 ‘아줌마’라는 표현 못 쓰지 않는가? 예전에는 결혼한 여성들과 처녀들과 딱 구분이 되었는데 이젠 어디 그런가? 여성들의 화장법, 옷 입는 방법, 말하는 방법까지 90년대에 모두 확 바뀐 거다. 여성이 바뀌니까 당연히 세상이 바뀌는 거지. 세상이 좀 경쾌해 진거라고 생각하지 않나?

세상이 경쾌해졌다고 말했지만, 사실 심혜진을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바로 이 ‘경쾌함’이다. 분명히 그녀에겐 이전의 여배우들이 가지지 못한 경쾌함과 청량음료 같은 상쾌함이 있었다. ‘콜라같은 여자, 심혜진’이라는 별명이 전성기의 그녀를 항상 따라다녔다. 심혜진은 동시대 여성들에 이 경쾌함을 전염시킨 것이다.그리고 심혜진의 ‘경쾌 바이러스’는 단순한 사건을 넘어 시대의 현상으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명품이야기를 하자. 30대 여성들은 당신을 ‘명품의 교과서’라고 말한다. 동의하나?

글쎄. 욕망 이란게 그런 거 아닐까? 모든 남성은 강해지고 싶어 하고, 모든 여성은 예뻐지고 싶어 한다. 이건 원시시대 때부터의 본능이지. 그런데 남성 중심적 사회에선 여성의 아름다움을 향한 욕망을 결혼 전 까지는 허락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여성에게 미의 추구보다는 남성과 자식에 대한 ‘도우미’를 요구해 온 것이다. 그리고 남성들은 더 이상 아내에게 집중하지 않고, 아줌마라는 호칭에다 결박시켜 논 뒤, 다른 여성들을 찾아온 것이 ‘남성 본능의 역사’다. 이게 옛날 이야긴가? 천만에. 불과 15년 전 까지만 해도 그랬다. <결혼이야기>라는 영화 한편이 여성을 바꾼 게 아니라, 이렇듯 남성 중심적 시스템에 반발하는 여성들이 각계각층에서 충분한 반격준비를 끝냈을 때 <결혼이야기>가 ‘버튼’이 되어 준거라는 것이다. 그 결과 여성은 남성보다 저급한 존재가 아니며, 여성 또한 남성들처럼 결혼 한 이후에도 자기애를 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낸 것이다. 당연히 결혼 한 여성들도 자기를 가꾸기 위해 좋은 것을 먹고, 운동을 하고 예쁜 옷 입어야 하는 거다. <결혼이야기> 때문에 내가 그런 여성 변화에 대한 ‘간판’이 되어버린 거지. 게다가 난 배우 아닌가? 대중 앞에 아무렇게나 하고 설 수 없으니까 가능한 아름답게, 가능한 좋은 것으로 나를 단장하고 나오다보니 내가 한국사회에 명품을 퍼트린 것처럼 보여 진 것이다.




여성운동가 같은 발언이다. 패미니스트인가?

페미니스트가 남성과 여성의 평등을 주장하는 것이라면 난 페미니스트가 맞다. 하지만 그 도를 넘어 여자가 남자를 누르는 모습에는 동의할 수 없다. 여자들이 남자를 지배하면 그에 따른 책임과 부담을 고스란히 받을 텐데 쓸데없이 왜 그런 만용을 부리는가? 나는 남성과 여성이 공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남성과 여성은 각자에게 주어진 힘을 나눠 쓰는 것이지 지배와 피지배로 구분하면 안되는 것이다.

요즘 호칭들 앞에 ‘국민’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게 유행이라지? 국민배우, 국민가수,국민골퍼, 국민 여동생까지. 그렇다면 심혜진은 당연히 ‘국민 미시’다. 결혼 전부터 이렇게 불려 졌으니 본인으로선 많이 억울하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를 통해 이 ‘미시’라는 단어는 실체를 가지게 된다. 그녀의 화법, 그녀의 화장, 그녀의 헤어스타일, 그녀의 의상이 모든 미시들의 표현이자, 꿈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남성들에게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는 현상이 된 것이고. 심혜진은 그렇게 결혼한 여성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심어줬다. 그리고 ‘늙지 않는 피터팬’ 처럼 또래 여성들을 리드했다. 그러다가 <안녕, 프란체스카>가 나왔다.

지금 젊은 세대들에게 심혜진이란 이름을 대면 <안녕, 프란체스카>부터 튀어 나온다. 지금 생각해도 참 재밌었다. 겉으로만 흡혈귀 들이지 친구네 집을 훔쳐보는 것만 같았다.

물론 내가 연기자로 오랫동안 밥을 먹고 살 수 있었던 건 나도 모르는 연기의 재능도 있었겠지만 이 일이 나한테 ‘익숙한 것’이 되었으니까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언젠가부터 ‘꼭 나는 좋은 작품 해야 해.’ ‘나는 누구보다도 연기를 잘 해야 해.’ 하는 그런 마음이 없어졌다. ‘좀 못해도 어쩌겠어?’ ‘다음엔 나아지겠지.’하고 그냥 넘어간다. 기자도 매일 특종을 쓸 수 없는 것처럼, 연기도 매일 하는 일인데 어떻게 늘 베스트가 나올 수 있겠는가? 그러다 보니 카메라 앞에서 내가 어떻게 변하냐 하면 오늘 자신의 베스트를 뿜고 있는 동료 배우를 찾아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 중심으로 연기를 하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안녕, 프란체스카>는 아주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심혜진이란 분명한 중심을 놔두고 각자의 역할 속에서 베스트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연기자들을 본다는 측면에서 재미있었다는 건가?

그렇다. 심혜진에겐 그런 것이 좋은 연기고 좋은 작품이다. 연합이 있고, 화음이 있지 않은가? 아니라고 말해도 사람은 누구나 자기 중심적인 거다. 나 말고도 모두가 그런 걸 뻔히 아는데 내 캐릭터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하모니를 깬다는 건 공멸할 수 밖에 없다는 거지.


‘모두의 주류화’를 희망하는 건가? 물론 90년대 여성을 말하던 당신의 시선과 일치한다고 생각하지만.

변화를 해야 한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변화되면 뭐가 어떻게 바뀐다하는 모델이 있어야 하는 거다. 그건 누군가에게 충분한 영향을 받아야 한다는 거지. 내가 늘 맨 앞자리에서 소리 내고 있다면 그 영향을 어떻게 받겠나? 그러니까 사실은 나를 위해서 하모니를 만들어야 하는 거고, 주변을 봐야 한다는 거다. 그럼 내 눈에는 저 사람이 이런 모습으로 비치는데, 그에게 나는 어떻게 보일까? 하는 생각이 따라오게 되어있다. 그때 내가 바뀌는 거다. 마흔을 넘으면서 ‘아! 이런게 지혜구나.’하는 걸 깨닫는 거다. 산다는 건 누군가 함께 할때 이지(easy)해 지는 거다.



심혜진은 2007년 대종상시상식에서 영화 <국경의 남쪽>으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다. 언제나 ‘주연상’ 만을 받아오던 그녀 연기 인생 최초의 ‘조연상’이었다. 그 일에 대해서 그녀는 그저 ‘상 받으니까 좋죠!’라고만 이야기 하며 웃는다. 그리고 이제 심혜진은 한 남성의 아내가 되었다. 스타 심혜진이라는 ‘주연배우’ 역할에서 어쩌면 한상구씨의 조력자로써 살아가야 하는 ‘조연 계약’을 인생과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심혜진은 조연이 아니다. 그녀가 조연이 되는 것을 그녀에게 영향받은 동시대의 여성들은 결코 원하지 않는다. 심혜진은 그 여성들의 초상(肖像)이다. 역할이 크건 작건 할 말 다 하며 자신의 중심을 지키는 모습이 바로 영원한 ‘미시들의 주연배우’ 심혜진의 얼굴이다. 그 기대 안에 머물며 심혜진은 오늘을 산다. 멋진 남성과 결혼을 하고, 요트가 있는 호반의 멋진 집을 공개하고, 옷을 만들어 팔고, 쉼 없이 영화와 방송을 하면서 ‘미시들의 욕망’을 실현하고, 대변한다. All for One. One for All. 모두를 위한 하나. 하나를 위한 모두. 결코 자신을 양보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을 살피고 아우르는 연기자. 이것이 바로 2008년 오늘의 심혜진이다. 이것이 바로 옛날보다 쿨해진 온도로 살아가는 여성들의 완전한 해방이자 남성과 함께 발견해야 할 ‘공존의 이데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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