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보다 의미있는 질문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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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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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동의 엄마세상 여자세상>을 시작하며

서인동 칼럼니스트가 연재할 ‘엄마세상 여자세상’은 청소년 교육현장에서 보고 느끼고 생각해야할 문제들을 학부모의 시각에서 다루게 될 ‘엄마세상’ 이야기와 여성의 생활방식이나 문화에 대한 패러다임이 급변하는 시대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여자세상’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인기 TV프로그램의 주력 스태프로 많은 업적을 남긴 서인동 작가는 참신한 아이디어와 깊이 있는 관찰력으로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발견한 여자들의 생활현장 이야기를 재미있는 칼럼으로 풀어나갈 것입니다. <편집자 주>

【인터뷰365 서인동】‘질문의 책을 기억하세요?’

한 페이지가 질문 한두 개로만 이루어진 제목과 꼭 같은 질문의 책.

누군지 참 쉽게 책 하나 만들었다며 폄하하면서도 은근 중독성이 있어 한때는 립스틱, 손거울과 함께 가방 속 필수품으로 여겨지기도 했던 자그마한 질문의 책.

친구나 지인과 함께 할 때 이 책을 펴놓고 질문에 대한 답변들을 하며 유쾌한 시간을 보냈고, 다소 불편한 사람을 만날 때에도 이 책은 분위기의 어색함을 없애는 데는 꽤나 괜찮은 소품이었을 정도로 오래전 나름 유행이었던 책이다. 그런 용도 외에는 문학이나 인문처럼 책으로써 가치가 있다거나, 처세술처럼 인생에 도움이 되는 지침서라고 생각한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약속을 잘 잊어버리는 엄마에게, 특히 아이와의 약속엔 더욱 더 그러한 엄마에게 일대 사건이 일어난다. 7세 아들이 피자 사준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며 상을 쓸어버린 것이다. 심한 꾸지람과 함께 10분반성에 반성문이라는 벌이 내려졌다.

반성시간이 끝나고 방에서 나온 아이가 불쑥 내미는 종이 묶음. ‘어? 반성문이 꽤 두툼한걸.’하는 생각으로 받아든 종이 묶음은 아이의 반성문이 아니었다. 굴러다니는 낱장 종이들을 모아 스테이플러로 허술하게 찍어 놓은 엉성한 몇장의 종이 묶음엔 한 장에 하나씩 질문이 있었다. 맞춤법도 크기도 굵기도 엉망인, 쓰다 말기도 한 글묶음이었다. ‘레고는 언제 사줘? 형은 안혼내? 게임한 거 아빠한테 일렀지?...’ 등 그 동안 지키지 않았던 약속들과 불만의 글들이 적혀 있었다. 반성이 아닌 반항의 글, 정확히 말하면 질문이었다.

어설프게 묶여있는 질문들을 보며, 문득 20여년 전 그때 그 질문의 책이 생각나는 것은 왜였을까? 그것도 아주 생생하게, 마치 엊그제 그 책을 보면서 낄낄거렸던 웃음소리가 공명되는 것처럼.

아이 질문지에 간단한 답을 몇자 적어주고, 까닭 모를 들뜬 마음에 눈에 보이는대로 아무 노트나 한 권 찾아 들었다. 몇 년이 지났건만 한 번 펼쳐보지도 않았던 새것이지만 새것이 아닌 2010년판 다이어리노트에 질문을 하나씩 적어내려 갔다. 페이지 하나에 질문 하나. 유쾌하고 상큼한 레몬향의 카타르시스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아마도 질문의 책 질문은 이런 유형들이었을 것이다.

‘일주일 후에 지구가 멸망한다면 나는 그 일주일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당신 친구들이 너무나 솔직하게 당신에 대해 말을 하겠다고 한다면 듣겠습니까?

당신이 지금 손뼉을 치면 누군가를 죽게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는 누구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지금 죽는다면 나를 위해 진심으로 울어줄 사람은 몇 명이고, 누구일까?’

그리고 내가 적어본 질문은 이런 것들이었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자신의 자랑 다섯 가지를 말해 보라. 그것이 자랑거리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스무살로 돌아가고 싶은가? 그렇다면 왜, 그렇지 않다면 또 왜?

내가 오랜시간을 두고 죽도록 미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있다면 누구이고 그 이유는?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계속 하는 것은?

내가 진실로 원하는데 못하고 있는 것이 있는가? 있다면 무엇이고 실행할 구체적인 계획은 있는가? 또 왜 아직까지 하지 못했는가?’

우리가 나 자신에 대한 질문을 놓은 시기는 언제였을까? 나 스스로와의 대화를 단절시킨 것이 언제였을까? 가물가물하고 기억에서도 한참 미끄러져 지나간다. 그렇다고 나에 대한 소홀함이 타인을 위한 배려로 돌아간 것도 아닐진대, 꽤 긴 시간 삶의 피곤함이란 변명을 내세운 만성적 게으름으로 생각하기를 접고 살았던 것이리라.

아이에겐 자기소개서를 쓰고, 독후감도 쓰고 사색으로 무장하라 닥달을 하는 엄마이면서도 정작 자신의 텅비어가는 내면의 소리엔 귀기울이지 않았던 엄마였음을 새삼 깨닫는다. 생각하기가 언제부터 아이들만의 전유물이었던가?

오래도록 놓고 있었던 나에 대한 집중적인 질문의 시간이 마냥 신이 났다. 약간 먼지 묻은 쓸쓸함과 후회가 슬쩍 지나침을 느끼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는 제2의 사색기를 맞이하는 대조적 감상의 일부일 뿐이다.

여자는, 엄마는, 나이가 들수록 질문도 많아지고, 요구도 많아지는 것 같다. 특히 남편에게, 또한 갈수록 아이에게. 그 질문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수용되는 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의도적인 비난의 질문은 아니었는지, 상처를 줄 요량으로 몰아붙이는 질문은 아니었는지, 질문이 고집스럽거나 천박하지는 않았는지 되짚어 보자.

타인에게는 최대한 아름답게 질문을 하는 것이 좋겠다. 오랜만에 꺼낸 보물상자에서 좋은 것만 집어내는 마음으로 관대하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질문을 던져보는 것은 어떨까?

아픈 질문은 가끔 자신에게 해 볼일이다. 나태하지는 않은지, 힘들지 않은데 힘든 척하는건 아닌지, 남을 괴롭히려는 의도는 없는지, 용기를 못내는 이유는 무엇인지.. 이제는 솔직한 답변을 해볼 시간이 된 것이다. 이렇듯 진행되는 질문과 답변, 의문과 사색 속에서 새로운 세상으로의 통로가 열리리라.

얄팍한 상술이라 여겼던 질문의 책 답변 공간이 충분한 사색의 답변을 넣기에는 그리 크지 않았다는 것을, 철학적 여백의 미까지 담는다면 오히려 너무도 좁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오늘은 쉬고 있는 아무 늙은 노트라도 꺼내 들고, 질문의 책 한권씩 만들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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