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질 ‘추노꾼’으로 10년 무명생활 떨쳐낸 배우 한정수
근육질 ‘추노꾼’으로 10년 무명생활 떨쳐낸 배우 한정수
  • 김선
  • 승인 2010.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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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가 내 목마른 연기 인생에 단비를 뿌렸다” / 김선



[인터뷰365 김선] 한정수(37)는 꿈이 많고 욕심이 많은 남자다. 미술대에 입학했다가 경제학과로, 다시 영화학과로 3번이나 전공을 바꾸고 대학을 옮겼다. 한때는 가수의 꿈도 가졌고 모델이 되어 무대에 서기도 했다. 음악, 그림, 운동도 해봤지만 성공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오랜 방황 끝에 20대 후반 들어서게 됐던 연기자의 길. 그러나 10년의 지루한 무명 생활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28세 늦깎이 신인연기자였던 한정수가 37세에 <추노>를 분기점으로 드라마의 주역 연기자로 거듭나기까지의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영화 <튜브>(2002) <얼굴 없는 미녀>(2004) <해바라기>(2006)를 비롯해 <한성별곡 正>(2007) <바람의 화원>(2008)등 다수의 사극에 출연했고, <왕과 나>(2007)에서는 조치겸의 충성심 깊은 호위내시 도금표로 얼굴을 알렸지만, 시청자들은 그를 오래 기억해주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KBS 2TV <추노>는 연기 인생에 단비를 뿌려준 작품이 됐다. 장혁, 김지석과 더불어 한정수는 ‘추노꾼 3인방’으로 인기를 모았다. 그 열기를 등에 업고 마침내 SBS 로맨틱 드라마 <검사 프린세스>에서 첫 주연을 맡았고 ‘스타’ 대열에 들어섰다.


인터뷰 내내 한정수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이제 기자들과 인터뷰를 한다는 것이 즐겁고 흥분되는 것처럼 보였다. 같은 소속사 연기자인 문근영이나 신세경과 친하게 지낸다는 말을 하며 웃기도 했다. 겉으로는 까칠하지만 속 깊은 남자인 드라마의 윤세준 캐릭터에 너무 깊이 빠져들어 그 부담감과 책임감으로 탈모 증상까지 생겼다며 행복한 푸념도 잊지 않았다.


 

<추노>의 최 장군으로 출연하다가 <검사 프린세스>에서 검사로 변신한 소감부터 듣고 싶다. 의상도 그렇고 시대적인 배경이 현대로 옮겨와 좀 얼떨떨하지 않은가?

연기자가 변신 속에서 살지만 역시 장기간 한 배역에 빠져 있다가 다른 배역의 인물로 갑자기 변신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8개월간 최 장군으로 무거운 옷을 걸치고 살다가 윤 검사가 된 것이다. 더구나 한 달 정도는 촬영이 겹쳤다. 옛날과 현대로 세상이 다른 양쪽의 촬영장을 오가면서 찍는데다, 인물의 캐릭터까지 다르니 너무 힘들었다. 자세나 눈빛, 손짓 하나하나가 모두 다르다. 최 장군이 정자세에 딱딱 떨어지는 말투였다면, 윤세준은 까칠하고 시니컬하지만 그 속에서도 마혜리(김소연)에 대한 애정도 묻어있어야 한다.


과거에는 인기 배우가 여러 편의 겹치기 출연이 많았지만 지금은 그런 경우가 드물다. 출연 중에 새로운 작품의 캐스팅에 응한 것은 자신감이 있어서 아니었나?

솔직히 출연하기 힘든 스케줄이었다. 무리해서라도 꼭 출연하고 싶었던 이유는 캐릭터에 대한 매력 때문이었다. 드라마 전체 스토리 자체도 너무 재미있었고, 특히 윤세준이란 캐릭터가 너무 멋있더라. 시니컬하고 말도 툭툭 내뱉지만, 항상 사고만치는 마혜리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속 깊은 남자의 모습이. 이 남자는 내가 지금껏 봤던 남자 캐릭터들 중 상위 랭킹 3위안에 손꼽힐 정도로 멋있었다. 대신 부담감이 컸다. 내가 망치면 어떡하나, 잘 표현해야 될 텐데 하고.


드라마가 아니라 실제 장군이나 검사 중 직업을 선택한다면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하하하. 장군이 검사보다 더 좋은 거 아닌가?




연기활동을 오래 해왔지만 주인공을 맡아 드라마의 주역으로 등장한 것은 처음인데 그 기분은 어떤 것인가?

너무 부담을 느껴 머리카락이 빠지는 원형 탈모증세가 생길 정도다. 내 노력과 고충을 눈치 챈 감독님이 너무 고민하지 말라고 위로 하셨다. 처음엔 촬영장에서 오로지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곁눈질도 못하고 다른 사람과 농담도 안했다.


터프한 추노꾼에서 로맨스의 주인공이 됐다. 극 속 마혜리(김소연)를 두고 서인우(박시후)와 삼각관계도 펼치지만 진정선(최송현)과 마혜리 등 후배 여검사들의 사랑을 받는 행복한 남자가 아닌가?

연기자는 일이 잘 되려면 드라마에서도 운이 좋은 배역을 만나야 한다. 운이 좋은 것 같다. 이런 역할을 맡게 된 게. 사실 많은 배역을 맡았지만 로맨스는 처음이다. 지금껏 거친 역할만 했던 탓에 처음에는 어색하고 적응하기 힘들었다.

감독님이 나를 캐스팅한 이유가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고 하시더라. 이번 드라마에서도 내 눈빛이 잘 표현 됐으면 좋겠다고 하셨고. 사실 처음에는 그 말의 의미를 몰랐는데 하면 할수록 로맨스 드라마에서 눈빛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남녀 사이에는 눈빛하나에도 수백 가지 의미가 담겨있지 않나. 애정 섞인 눈빛뿐 아니라 배고프니 밥 먹으러 가자는 눈빛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 디테일한 눈빛 연기가 힘들었다. 오지호 씨가 <추노>의 애정장면을 찍으면서 “결코 쉽지 않다. 형도 해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게 공감이 된다. 특히 눈이 커야 표정이 잘 전달된다는 말도. 하하하.


두 역할 모두 과묵한데다 남성미가 느껴지는 캐릭터다. 연이어 출연하는 작품인데다가, 역할까지 비슷해 차별화하는 게 과제였을 것 같다.

사실 그런 점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가장 걱정됐던 것은 시청자들이 <검사 프린세스> 속 윤세준 검사를 보면서 ‘최 장군이네’라고 생각할까봐서다. 어떻게 하면 최 장군으로 보이지 않을까 찍기 전후로 한 달을 내내 고민했다.


그렇다면 고민 해결이 된 건가.

어느 정도 해결책을 찾았다. 결론은 간단했다. 윤세준만 생각하기로. 머리 속에 최 장군과 윤세준을 연결 지어 생각하지 않는 거다. 최 장군이란 인물을 지우고 새로운 인물을 만들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


실제 모습도 과묵하고 남성다운 박력남인가?

집에서 원래 말이 별로 없는 편이다. 식구들도 그렇다. 어머니께서 “밥 먹어”라고 말씀하시면 나도 “알았어요”하는 정도다. 하루에 대화가 열 마디를 안 넘는다. 평소 대화는 많지 않지만 서로에 대한 애정은 장난 아니다. 아마도 어머니와 나, 그리고 여동생이 생각하는 서로에 대한 각별함은 다른 가족 3배 이상은 되는 것 같다. 심지어 내 여동생이 작년에 결혼을 했는데 안 갔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으니까. 하하하.


자신의 결혼 계획은 없나?

전혀 생각이 없다. 연기에 인생을 걸었고 목숨을 걸었기 때문에 생각도 못했다. 내가 아직 철이 없어서 그런가. 한 3~4년 후에는 모르겠다.


성장과정, 학창시절에는 어떤 아이였나.

어렸을 때부터 나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 대단했다. 어머니와 초등학교 때까지 등교를 같이 했을 정도니까. 어머니가 육성회장도 맡아 하셨다. 이런 걸 ‘치맛바람’이라고 하나. 하하하. 중학교 입학 전까지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도는 줄 알았다. 안하무인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아버지 영향으로 축구를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는 축구선수 고(故) 한창화씨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당시 대표팀 선수로 활약했으며, 1966년 제5회 방콕아시안게임 축구대표팀 감독과 1972년 실업축구연맹 사무국장을 역임한 바 있다.)

아마 그때부터 내 성격이 조금씩 외향적으로 변했던 것 같다. 운동을 하느라 반에서 공부는 잘하지 못했지만 (웃음) 생각해보면 별 탈 없이 학창시절을 보낸 것 같다. 20대가 넘어서야 인생의 ‘쓴맛’이란 걸 알게 됐으니.


축구는 왜 계속 하지 않았나.

중학교 2학년 때 축구가 하기 싫어 합숙소를 뛰쳐나왔다.


축구를 그만둔 일이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린 것은 아니었는가?

글쎄... 아버지도 내가 축구에 소질이 없는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라. 하하하.


아버지와는 친했나?

보수적이고 엄하셨다. 거의 말씀도 없으시고, 아들에게 언제나 위엄이 있고 무서운 존재였다. 예전에는 가까이 하기에 힘든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해 미워한 적도 있지만, 나이를 먹어갈수록 아버지를 닮아가는 것 같다. 피는 못 속이지 않나. 이제 곁에 계시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프다.



20대에 인생의 ‘쓴맛’ ‘단맛’을 고루 경험한 것으로 알고 있다.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걸 느낀 시기였다. 단맛보다 쓴맛이 많은 시기였다. 하하하. 28살이 되어서야 연기에 대한 길을 정하게 됐다. 그 전까지 방황의 시기였다. 대학교도 세 번이나 옮겼다.


대학교를 세 번이나 재입학했다니, 어떤 공부를 했는가?

시각디자인과에서 경제학과로, 다시 영화과로 바꿨다.


미술에도 취미나 소질이 있었나?

고 3때 입시에 미끄러진 후 재수해서 미대 시각디자인과를 전공했다. 재수를 할 당시 어머니께서 미술은 어떻겠냐고 권하셨다. 어렸을 때 그림으로 상을 받긴 했는데, 아마도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3개월 정도 잠깐 화실을 다녔는데 합격했다. 그런데 1년 정도 다니니 소질도 없고, 적성과도 안 맞더라. 다음해 다시 입시를 치러 경원대 경제학과에 입학해 학교를 다니기도 했다. 그러다 연기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20대 후반에 서울예대 영화과 시험을 다시 치룬 것이다.

데뷔가 늦은 편이다.

30살에 <튜브>(2002)로 데뷔했는데 사실 엄밀히 말하면 그 전이다. <튜브>는 촬영이 끝난뒤 2년이 넘게 개봉이 미뤄졌다. 일찍 개봉 됐더라면 연기 일을 더 많이 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개봉을 기다리며 연기 활동은 쉬게 됐다.


연기에 관심을 가진 것은 언제인가?

고교 때 함께 음악을 했던 친구가 극단에서 일을 한다길래 찾아갔다가 이런저런 잡일을 하게 됐다. 극단 포스터를 붙이다가 경찰서에도 끌려가고, 고생도 많았다. 그때가 아마 26~27살 때쯤이었나. 1년 정도 극단생활을 하는데, 매일 똑같은 공연을 보니까 대사를 모두 외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연기에 빠지게 됐다. 그 무렵 어느 순간 '이런 세계가 있었나'란 생각에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혼자 연기 관련 책도 사보고 연기를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결국 28살에 서울예대 영화과에 입학하게 됐고 학교를 다니면서 영화 <튜브>로 데뷔하게 됐다.

고교 때는 음악활동도 했다는데.

음악을 좋아해 고교 시절엔 록 밴드를 결성했었다. 경제학과를 다녔던 대학생 시절에도 밴드 활동을 했다. ‘나르시스’라고 내가 팀명도 지었다. 난 베이스 담당이었고. 언더그라운드 밴드 중 잘 나갔다. 공연을 목적으로 한 것보다는 자작곡을 만들어 음반을 내는 게 최종 목적이었다. 1년 정도 합숙도 했다. 기획사도 구하고 음반을 내려던 상황이었는데 멤버들 간에 트러블이 생겨 결국 해체됐다.


지금도 음악에 대한 꿈이 있나.

사실 난 음악에 소질이 없는 것 같다. 자질이 있었으면 계속 하고 싶었지만 재능이 없다는걸 알았기에 포기했다.


모델 활동도 했던 걸로 안다.

모델 활동도 잠깐 했다. 운동장에서 농구를 즐겨 했는데 의상학과 학생이 오더니 모델로 서달라고 부탁을 하더라. 워낙 요청이 강력해 결국 하겠다고 했는데, 모델을 양성하는 ‘모델라인’에서 4개월간 교육까지 받게 됐다. 얼떨결에 모델이 돼서 이후 패션쇼에 2~3번 출연했다. 그런데 모델일이 너무 수동적이었다. 기다리는 시간도 많고 정적이고. 내 적성과는 안 맞더라. 이후 연기를 준비하면서 운 좋게 광고모델로 많이 서게 됐는데, 그 이미지 때문에 모델로 오인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지난 무명시절을 생각하면 어떤 일들이 먼저 떠오르는가?

내 스스로 제목을 붙이면 ‘어둠의 세계’였던 시절이었다. 사실 떠올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우울 그 자체였다. 자심감도 많이 떨어지고. 매 순간마다 포기하려고도 했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그만 해야 되나 고민도 수 없이 했다.

한번 정도는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운이 없는 편이니 3번의 기회는 없더라도 한번은 꼭 오지 않을까 싶었다.


그 기회가 온 건가.

<추노>였다. 이게 나에게 온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곽정한 감독님 역시 나에게 “마지막 기회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씀하셨을 정도로. 그만큼 작품에 임할 때 부담이 컸다.


<추노>는 어떻게 합류하게 된 건가.

원래 내가 못할 가능성이 컸다. 워낙 인지도가 없는 상태라. 그 역에 욕심을 내는 배우들도 많았다. 촬영 일주일이 남지 않은 상태에서도 나의 출연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았다더라. 이번 출연은 드라마 <한성별곡 正>(2007)으로 인연을 맺었던 곽정환 감독의 믿음이 컸다. 마지막 총 리딩에서 최종결정 여부가 판가름이 나기 때문에 정말 죽을힘을 다했다. 리딩이 끝나고 감독님께서 “너무 잘했다”며 흡족해 하셨다.


<추노>에서 ‘짐승남’ ‘초콜릿 복근’으로 불리며 근육질의 몸매로 인기를 모았다. 운동은 자주 하는 편인가?

요즘 살이 좀 빠졌는데, 원래부터 근육질 몸매였다. 일부러 <추노>를 위해 몸을 만든 것은 아니었다. 10년간 무명생활을 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운동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운동을 했다. 운동이라도 안하면 내 존재감 자체가 없어지는 것 같았기 때문에. 내 자아를 상실하는 것 같았다. 뭔가 열심히 하나에 집중할 수 있는 게 필요했다.


긴 무명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연기를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연기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지금껏 음악, 미술, 운동 등 여러 분야를 시도했지만 싫증을 금방 느끼고 그만뒀다. 그런데 연기는 몇 년을 해도 싫증이 안 나더라. 사실 고민을 하기도 했다. 내가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결론은 연기였다.


요즘 어머니께서 좋아하시겠다.

좋아하시긴 하는데 별다른 내색은 안 하신다. 아까 말하지 않았나. 워낙 집안이 과묵하다고.

어머니께 죄송하다. 내가 방황했던 만큼 어머니도 힘드셨을 것이다. 다 큰 자식이 집에서 놀고 있었으니. 어머니께 큰 죄를 졌다. 앞으로 잘해드리고 싶다.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시청자들과 만나고 싶나.

그동안 건달, 조폭, 양아치, 테러리스트 같은 강하고 거친 역할을 주로 맡았다. 기회가 되면 유머러스하지만 부드러운 남자를 맡아보고 싶다. <내조의 여왕>에서 태봉이 같은 그런 역할?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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