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 데오스중고교 설립한 ‘밥퍼목사’ 강기호
대안학교 데오스중고교 설립한 ‘밥퍼목사’ 강기호
  • 김두호
  • 승인 2010.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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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교육의 목회자가 된 거문도의 고기잡이 소년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밥퍼목사’라면 서울 청량리 588번지에서 노숙자를 위한 밥퍼나눔운동을 시작한 다일복지재단 대표 최일도 목사를 떠올리지만 강기호 목사(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이매동 드림교회)도 최 목사와 밥퍼운동의 초기부터 뜻을 함께 세우고 실천해온 분이다.


강 목사는 2007년 교회 5층 건물 안에 기독교 대안학교 데오스중고등학교(교장 김태호)를 설립했다. 일반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대안학교로 옮긴 학생 50여명이 재학 중인 데오스중고교는 현재 공교육이 성취하지 못한 따뜻하고 특화된 학습프로그램으로 대안교육의 새장을 열어가고 있다. 또 기존의 대안학교에서도 진로를 찾지 못하는 학생들까지 포용하면서 또하나의 새로운 대안교육의 해법을 창출해 가고 있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최일도 목사가 기독교 교단의 ‘비전 메이커’로 일컫는 강기호 목사는 먼 남쪽 바다 외딴 섬 거문도 출신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5년간 어선을 타던 소년 어부는 목사의 꿈을 안고 뭍으로 나와 방송통신고등학교를 거쳐 장로회신학대를 졸업했다. 목회활동을 하면서 그는 나라와 사회가 발전하고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힘이 신앙과 교육에 있다는 신념으로 대안학교를 키워가고 있다.

더욱이 강기호 목사에게는 학교생활에서 성적 부진과 주의력 결핍, 집단 따돌림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자신의 아들까지도 대안학교를 통해 원하던 대학에 진학시킨 성공담이 따른다.



‘왕따’라는 말이 공교육 현장에서 문제점으로 등장한 지 오래된다. 대안학교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중도 포기하거나 탈락한 학생들에게도 필요하지만 특별한 취미와 재능을 가졌거나 특정분야의 조기교육에도 목적을 두고 운영되는 특성화학교로 알려지고 있다. 대안학교는 실제 어떤 유형이 있고 어떻게 운영되는가?

우리는 역사가 짧지만 영국 같은 나라는 1920년대부터 공교육제도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대안학교가 등장했다. 우리나라는 현재 인성예절이나 체험학습 등으로 특성화 된 지방의 중고교 학력과정 대안학교가 30여개교가 있고, 진학을 위해서는 별도의 학습지도를 해야 하는 도시형 대안학교가 300여 개교에 이른다. 서울의 경우 교육청에서 위탁형 대안교육을 받게 하는 곳이 있지만 도시형 대안학교는 대부분 교육기관과 연계하지 않고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운영으로 인성지도와 학습지도를 해 진로를 열어주고 있다.


데오스중고교는 어떤 특성의 대안학교인가?

도시형 대안학교다. 학교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을 길러내는 동시에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인재를 기르는 곳이다. 이러한 학교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우리 학교라 해서 예외는 아니다. 다만 몇 가지 점에서 보충적, 대안적 성격이 있다.


첫째, 사교육을 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공교육과 사교육이라는 두 마리 말이 이끄는 마차와 같다. 우리는 사교육 없는 학교를 지향하고 있다. 학교에 입학하는 모든 학생, 학부모는 사교육(예체능계 제외)을 시키지 않겠다는 데 서명해야 한다.


둘째, 주도적 학습을 지향한다.

또 일반학교교육은 교사가 주도하고 학생은 피동적으로 따라가는 데 우리 학교는 주도권을 학생들에게 준다. 학생 스스로가 공부하는 학교를 지향하고 있다. 선생님이나 학부모가 시키니까 마지못해 하는 공부가 아니라, 학습하는 즐거움을 회복하도록 돕고 있다.


셋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길러낸다.

특별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세상을 섬기는 사람을 길러내고자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여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고, 세상의 소망이 되는 사람이 되도록 지도하고 있다.

헬라어인 데오스(Theos)는 ‘하나님’, 혹은 ‘하나님의 소유된’이라는 뜻이다. 데오스중고교는 정규 수업을 위한 교과서와 신앙 및 인성교육을 위한 성경말씀을 함께 일깨워 가는 학교로 학생수가 50여명이지만 전문 지도교사 17명에 강사까지 24명에 이른다. 교사 한 분이 두 세 명 정도의 학생을 돌보게 된다. 사교육에도 눈을 돌리지 않도록 능률적이고 재미있게 공부하고 가족적으로 편안하게 학교생활을 하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주로 어떤 학생들이 재학 중인가?

학생들은 여러 동기로 대안학교에 온다. 학습장애, 친구관계의 어려움, 질병이나 학교 폭력이 계기가 되어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처음부터 기독교 대안학교의 설립취지에 동의해서 오는 학생들도 있는데 이런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왕따’ 얘기가 나왔지만 우리 집 둘째 아이도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해 대안학교를 다녔다. 학교 친구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한 사건도 겪었다. 학교 측에 문제점을 제기하자 담임교사는 가해자 측과 합의를 종용해왔다. 수사기관에서나 하는 해결방안이었다. 학교 폭력의 재발을 막기 위해 교육청으로 발길을 옮겼지만 그곳도 대안이 없었다. 교감과 담임교사가 과일바구니를 들고 찾아와 문제를 삼지 말아주기를 바라는 나약한 모습만을 보였다.


친구들에게 버림받은 학생에게는 학교가 지옥처럼 가기 싫은 곳이 되어 버리지만 학교는 그것을 알면서도 시원한 해법을 내놓지 못한다. 학생은 갈수록 성적이 떨어지고 심리적으로 패배감에 젖어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다. 우리 아이도 그런 이유에서 공교육을 떠나 대안학교에 오게 되었는데 독수리기독학교(대안학교)에서 중학과정을 마치고 우리 학교, 데오스중고교로 옮겨왔다. 중학교에 갈 때는 성적이 밑바닥이었고, 친구관계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대안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성적이 오르기 시작하더니 올해 대학에 합격했다. 올해 고3이 되는 학번인데 고교과정을 1년 단축해서 (나의 모교이기도 한) 장로회신학대학교에 입학했다. 목회자가 되기 원하는 본인의 희망에 따라 진학하게 된 것이다.

데오스중고교에는 우리 아이처럼 정규 학교생활에서 길을 잃은 학생도 있지만 일찍부터 대안학교의 취지에 공감한 학부모들의 권유로 입학한 학생도 여러 명 있다.


정규 학교생활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중도 포기하거나 탈락하는 학생층은 어느 정도로 추산되고 있는가? 또 중도에 그만 두는 대표적인 이유가 학교 폭력문제와 관련이 있는가?

교육계에 알려진 중도 포기 학생의 숫자는 연간 중고교만 약 7만여 명에 이른다. 그러나 학교생활에 낙오되는 대표적인 동기는 폭력만이 아니라, 전자오락 게임에 중독된 경우도 있고, 학습 장애나 질병 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

특히 전자오락의 경우는 청소년들의 18.3%정도가 게임 중독에 빠져 있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게임 중독은 성적과 성격, 정서에 영향을 미치게 한다. 학교생활도 제대로 하기 어렵게 만들 뿐 아니라, 가족관계에도 심각한 장애요소로 대두된다.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학교 교실을 좀더 들여다보면 중고교 교실의 수업시간은 학생들의 수면문제로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거기에는 사교육에 의한 폐해도 등장한다. 학원이나 개인과외를 받기 위해 방과 후 사교육에 치중하면서 수면시간이 줄어든다. 또 이미 선행하여 배운 내용이 학교교실에서 뒤늦게 반복되니까 학생들은 흥미를 잃고 엎드려 자는 경우가 많다.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공부는 학교보다 학원이 더 잘 가르친다고 믿는 학생이나 부모들 입장에서 보면 사교육만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학생들의 관심과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공교육이 살아나고, 교사의 권위도 회복될 수 있다. 학생들에게 공부하는 곳이 학원이고 친구들이나 만나는 곳이 학교라는 인식이라면 우리의 공교육은 근본부터 개혁을 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공교육과 사교육이 함께 이뤄지는, 다른 말로 하면 사교육 없는 학교를 원하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대안학교에 보내고 있다.



대안학교에서 공교육과 차별화 된 학습지도 방법이나 교과내용이 있다면 어떤 것들인가?

주도적 학습과 다양한 활동이 있다. 우리 학교에서는 모든 학생들이 학교에 오면 도서관을 먼저 들른다. 그곳에 자기 사물함이 있기도 하거니와 학교의 중심이 도서관이기 때문이다. 도서관에 드나들면서 수시로 공부를 하기도 하고, 방과 후가 되면 두 분의 교사가 지도하는 가운데 자기 주도적 학습을 시작한다. 자신이 정한 분량의 영어 단어를 외우고, 국어와 관련된 책을 읽고, 수학문제를 푼다. 잘 안 되는 것이 있으면 지도교사에게 찾아가서 묻는다. 교사는 학생의 질문에 답해주면서 학생 스스로 공부하게 한다.


학기구분도 좀 다르다. 우리는 1년에 4학기를 운영한다. 매 학기는 3개월 단위인데 한 학기가 끝나면 마지막 한 주는 캠프를 한다. 봄 학기에는 주로 국토종주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우리나라, 우리 땅을 사랑하는 훈련이다. 2학기가 끝나고 나면 여름방학이다. 여름방학에는 2주간의 특강이 있다. 3학기에는 과학캠프, 경제학교, 문화교실 같은 캠프를 역시 1주일 단위로 운영한다. 그리하여 공동체 의식을 심기도 하고, 공교육과는 차별화된 교육을 시행한다.


학기 중에도 공교육과는 다른 과목들이 있다. 예를 들면 매일 체육이 있다. 학교를 시작하면서 체육교사를 제일 먼저 뽑았다. 음악 시간은 좀 더 풍요롭다. 악기도 하나씩 배워야 하고, 춤도 배운다. 물론 미술시간도 있다.


대안학교도 정부가 정한 교육과정과 필수 교과목을 기초로 운영해야 한다. 하지만 학사일정이나 지도방법에는 차이가 있다. 우리는 2월에 새 학기를 시작해 1년 4학기 동안 중학과정은 학습태도와 필수교과목의 기초를 닦는데 치중하고, 고교과정은 입시를 준비하지만 사교육을 필요로 하지 않도록 앞서 밝혔듯이 도서실 활용 등 자기주도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 현장학습이나 체험교육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것은 학생 수가 많지 않은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점심과 저녁식사까지 함께 하며 학교생활을 따뜻한 공동체 공간으로 조성하고 있다. 이번 1학기가 끝나면 중학생은 설악산을 종주하게 되고, 고등학생은 캄보디아 씨엠립에 있는 다일공동체와 협력하여 수상가옥을 지어주는 ‘착한 여행’이 준비되어 있다.


대안학교에도 문제점은 없는가?

왜 없겠는가? 도시형 대안학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교육의 핵심은 교사에게 있다. 교사들의 몰입적 헌신은 대안학교뿐 아니라, 모든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로 남아있다. 또 재정적인 밑받침이 따라야 한다. 국가의 재정적인 지원 없이 학교를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부모들의 부담이 크다. 또 우리 드림교회가 많은 부분의 재정적 지원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학생들 한 명, 한 명이 이곳에서 자신의 인생을 얼마나 새롭게, 잘 세우느냐의 문제다. 꿈 꿀 수 없어 무너진 저들의 가슴에 푸른 꿈이 다시 돋아나는 것, 내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아이들이 길을 찾게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다. 이것은 아마 학교가 존재하는 한 계속될 고민이 아닐까 싶다.


설립자 자신의 자녀문제가 대안학교 설립의 동기로 발전한 것인가?

아니다. 나는 순천에서 기독교청년모임 간부로 활동할 무렵 5.18민주화운동의 참담한 사건을 접하며 교육을 생각했다. 어떤 사람으로 길러지느냐가 중요하다는 각성을 하게 되었다. 정치 권력을 가진 자가 자신의 힘을 사용하는 바른 방법을 배우지 못하는 한 역사의 미래는 어두울 것이라 생각했다. 힘을 섬기는 데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그 때 했다. 사랑하는 우리 조국의 미래는 특정 정치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교육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제대로 교육받은 사람들이 거대한 물결을 이루면 우리는 이 땅에 자랑스런 나라를 건설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래서 교육학을 공부했고, 목회 역시 교육적 목회를 꿈꾸고 있다. 대안학교는 내가 젊은 시절 꿈꾸었던 생각의 연장선에서 실천에 옮긴 것이다.


최일도 목사와 함께 ‘밥퍼나눔운동’을 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최일도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의 한 해 선배님이다. 그 분을 도와 밥퍼운동의 초기부터 참여해 친형제 같은 관계인데 지금도 다일복지재단 이사직을 맡고 있다. 20여년간 인연을 함께 하고 있다.


밥퍼운동을 하면서 가장 잊을 수 없는 감동은 1993년 경제인 단사천 회장 부인이신 김춘순권사가 나에게 1억5천만원이라는 거액의 기부금을 선뜻 전해주셔서 그 종자돈으로 땅을 샀는데 그 땅에 우리나라 최초의 무료병원(천사병원)을 청량리에 세울 수 있었다.



목사 분들은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한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성직자는 스스로 선택한 길인가?

나의 고향은 거문도가 됐지만 할아버지는 진주가 고향이셨다. 제빙기술을 가진 할아버지께서 거문도에 있는 제빙공장을 맡게 되면서 우리 가족은 거문도에서 살게 되었다. 어부였던 아버지는 내가 일곱 살 때 별세하셔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도 배를 탔다. 목사가 되고 싶은 꿈은 초등학교 4학년 때 갖게 되었다. 학교에서 장래희망이 무엇인지 써오라고 해서 어머니와 상의를 했는데 어머님은 선장이 되기를 바라셨다. 그것은 현실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배를 타게 되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내가 타고 있던 배가 고향인 거문도에 정박하게 되었다. 인사를 하려고 집에 갔더니 마침 시골교회를 맡고 계신 전도사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밤 그 전도사님이 내게 이런 말씀을 했다. “목사가 되고 싶다는 사람이 배만 타면 어떡하나, 꿈을 이루려면 모험을 해야 한다”면서 배타는 일을 그만두기를 권하셨다. 그 말씀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었던 나는 처지가 같았던 동네 친구 두 명과 함께 공부를 하기 위해 그해 말 섬을 떠났다. 나는 순천으로 나와 방송통신고교를 다닌 후 학력고사(지금의 수능)를 보고, 신학대학에 입학했다. 남들보다 5년 늦깎이로 공부를 한 셈이다.


섬에서 함께 떠난 친구 두 분은 지금?

각각 음식점 경영과 간판사업을 하고 있다. 우리 교회 간판도 그때 섬을 함께 떠났던 친구가 제작해준 것이다. 하하하.


꿈이 있어도 도전하기는 쉽지 않다. 실천력이 남다른 분으로 느껴진다.

모두 신앙의 힘이다. 빈손으로 집을 나왔으니 고생은 당연했다. 그런데 내가 경험한 신앙의 힘은 신비롭고 위대했다. 쌀이 떨어져 굶어야할 때가 수없이 반복됐지만 결코 굶지 않게 해주셨다. 이게 마지막 먹는 밥입니다 하고 기도하면 언제나 어디선가 구원의 손길이 왔다. 구약성서에 까마귀가 선지자 엘리아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 시대에도 까마귀가 살아 있다. 까마귀를 나는 이렇게 정의하곤 한다. ‘까맣게 모르고 지내던 귀인’ 그런 분들의 도움 덕분에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밥퍼나눔운동도 힘들게 사는 분들에게 먹을 것을 마련해주는 까마귀의 역할일 수 있다. 교회 밖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게 보인다.

꽃동네 오웅진 신부께서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라고 하신 말씀은 떠올릴 때마다 감동을 받는다. 사실 나는 대학시절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수입이 생기면 매월 일정 금액을 꽃동네에 보내면서 일생동안 이웃에게 베풀 수 있는 힘이 있기를 간절하게 염원했다. 받은 사랑은 일종의 빚인데 빚은 갚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민족에게도 갚고,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갚아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누군가를 미소 짓게 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좀 더 수월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면 나는 그 길을 가고 싶다.



대안학교 운영을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 계획인지, 미래 청사진을 밝혀 달라.

우선 처음 정신을 잘 지켜나가려고 생각하고 있다. 사교육 없이도 대학을 갈 수 있는 학교, 잠재된 가능성을 발견케 하는 학교를 만들고 싶다. 학교가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곳만 아니라, 현재의 삶을 행복하게 살게 하는 곳으로 만들려고 한다. 특별히 예수님처럼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 민족을 사랑하는 지도자들을 길러내고 싶다. 공부해서 그 혜택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사람들이 가득한 학교를 만들고 싶다. 이기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적인 기여자, 공헌자들이 많이 양산되는 학교가 되게 하고 싶다. 거기 학교의 운영, 미래의 청사진이 있다. 학교의 미래는 분명, 건물이나 학생의 수, 혹은 재정의 넉넉함에 있지 않을 것이다. 좋은 사람, 사랑의 사람, 한 알의 밀알이 되는 사람을 길러내는 학교를 만들어가고 싶다. 꿈 꿀 수 없어 무너진 가슴에 푸른 꿈이 다시 돋아나는 학교, 내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학생들에게 길을 찾아주는 학교, 능력 있는 학생들이 바르게 성장하여 진정한 섬김의 삶을 살게 하는 학교가 되게 하려고 한다. 푸르디푸른 의의 나무가 가득한 세상을 보게 되기를 소망한다.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97아시아태평양영화제 집행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대종상 및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역임.

김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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