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 킹’ 한지일의 크리스마스
‘에로 킹’ 한지일의 크리스마스
  • 김두호
  • 승인 2007.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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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 빌딩 날린 한지일의 인생유전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 사진 김우성] 대한민국이 파탄 났던 IMF(1997년) 10주년을 보내면서 근황이 궁금한 연예계 인물로 영화배우 한지일을 빼놓을 수 없다. 1990년대 에로비디오영화 전성기를 주도한 그는 ‘젖소부인 바람났네’ ‘정사수표’ 등의 대박 작품을 제작해 큰돈을 벌었다. 그러나 100억대 빌딩을 짓다가 IMF를 만나 재산과 행복했던 가정까지 모든 것을 잃었다.


방황의 발길은 베트남까지 이어져 한동안 하롱베이에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장사도 했지만 2년 반 만에 돌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이 없는 것은 그의 삶의 행간마다 쌓인 봉사활동이다. 돈이 떨어지면 점원으로 돈을 벌어 양로원을 찾거나 노인병원을 찾아 호스피스 활동을 하고 있다. 한창 배우로 바쁠 때도 연기활동에 대한 화제보다 선행에 대한 기사가 더 많았던 한지일의 별난 인생살이를 오랜만에 다시 들어본다.




베트남에서 한 때 성공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성공해서 돌아 온 건가, 실패한 건가?

빈손으로 갔으니 내 사업을 할 수 없었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의류나 토산품을 파는 업체의 얼굴마담 노릇을 했다. 한 몫을 하게 되자 물건을 산 사람들로부터 항의가 들어왔다. 영화배우를 한 사람이 외국에 나와 짝퉁장사나 하느냐고. 그곳의 물건들이 대개는 진품이 아니다. 그래서 주로 일본 관광객을 대상으로 실크넥타이나 여성용 언더웨어 악세사리를 파는 내 장사를 시작했지만 그것도 양심을 지키며 장사를 한다는 게 어려워 납품 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조금 될 것 같았는데 경쟁자들이 위협을 해왔다.


그럼 위협을 피해 귀국한 것인가?

현지 관광 여행업체와 상인들 세계에 얽힌 이해관계는 복잡하고 거품이 너무 많다. 판매액의 80%를 요구하는 현지 업체도 있다. 공항 납품과 관련해서 살인 위협까지 받고 회의를 느껴 일단 정리를 하고 귀국했지만 아직 미련은 있다. 난 사실 돈에 욕심이 없는 사람이다. 무슨 일이든 성공을 하고 싶은 욕망은 있으나 돈을 벌기 위해 기를 쓰며 일을 한 적은 없다.


1995년 무렵 비디오영화가 대박 시리즈로 이어지면서 준재벌 소리가 나왔다. 그 때 얼마나 벌었나? 그리고 왜 망했나?

1991년 한시네마타운을 만들어 3백여 편을 제작했다. 그 중 ‘젖소부인 바람났네’ ‘정사수표’ ‘욕탕속의 여자들’ ‘마가시’ 등은 10편이상의 시리즈로 만들어져 2백여 편이 히트했다. 대우그룹에서도 비디오영화 제작에 투자할 만큼 시장이 활기를 띄었다. 모은 돈으로 빌딩을 지었을 무렵에 IMF가 터졌다. 사채와 은행 금리가 눈덩이로 불어나고 분양과 임대도 되지 않아 순식간에 100억짜리 빌딩이 경매로 넘어가고 파산했다.



힘들었던 일들이 많았을 것 같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일이 있었다면?

그 사건 때문에 이혼 한 것은 아니지만 그 후 가족과도 헤어졌다. 아내에게도 시련이 왔고 나도 사생활문제로 아내에게 신뢰를 잃어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됐다.



한지일은 1971년 신필름이 제작한 ‘천동’의 신인배우로 발굴되어 당대의 홍콩스타 ‘이소룡의 한국판 미남배우’라는 기대 속에 예명을 한소룡으로 달고 출발했다. 1978년 이두용감독의 ‘경찰관’으로 대종상 신인상을 받았고 그 해 가장 선망의 직업여성인 KAL스튜어디스 조임희 씨와 결혼해 아들 형제를 낳기까지 그는 누구보다 행복한 영화배우였다. 그들 부부는 명절 때가 되면 위문품을 차에 가득 싣고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찾아다녔다.



‘젖소부인’과의 염문으로 화제에 올랐던 일이 기억난다. 지금은 누구와 살고 있는가?

독신이다. 다시 결혼할 생각이 없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큰아이가 영어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곧 함께 살자고 했다. 아들도 연기 지망생인데 최근에 함께 CF를 찍기도 했다.


‘영화배우 한지일’하면 수십 년 동안 양로원과 고아원 등 불우 이웃을 돕는 일로 꾸준히 뉴스가 됐던 걸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다. 그것이 한 때의 선행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점이 놀랍다. 봉사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는가?

배우가 되기 전부터 그것이 행복으로 느껴졌다. 결혼하고 아내와 생각이 같아 우린 여유만 생기면 불행한 어른들을 찾아 다녔다. 어머니가 미국에 살다 돌아가셨지만 어머니가 생각날 때 외로운 어른들을 찾아가면 어머니의 사랑과 체온을 느낀다. 베트남에서도 외로움이나 답답한 심경을 불우한 노인들을 찾아 위로하는 것으로 풀었다. 미국에 가도 마음이 양로원부터 찾는다. 돈이 없으면 일당 노동으로 달러를 벌어서 간다. 미국서는 몸으로 때우는 일을 하면 몇 천 달러는 쉽게 번다. 시카고에 사시는 이모님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 간 길에 양로병원에서 휠체어를 끌며 호스피스 활동을 했더니 현지 신문이 기사로 소개해 유명해졌다.



요즘 하고 있는 일은?

방향을 잡지 않고 산다. 60줄로 접어들어 일을 함부로 벌 일 처지도 아니고 연기활동을 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닌 것 같다. 얼마 전 여주에 있는 중복장애인 시설인 라파엘의 집을 다녀왔다. 앞을 못 보면서 간질병까지 앓는다든지 두 가지 이상의 중병으로 고생하는 분들의 요양시설인데 그곳에 가면 정말 밥숟갈을 스스로 사용할 수 있는 힘만 있어도 행복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건강한 것만으로 행복하다. 마음을 비우고 사니 걱정이 없고 고민도 없다.


그런 생각 속에 살다보면 세상이 모두 착한 것 밖에 눈에 뜨이지 않을 것 같다.

착하게 보이지 않는 사람도 많이 본다. 연예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 중에는 노모가 미국에서 아주 불행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시립 양로원에서 외롭게 생활해도 돌보지 않고 있다. 간혹 양로시설에서 만나는 분 중에는 재산이 많아 특수 휠체어에 명품 옷을 걸친 분도 있다. 그런데 누구도 찾아오지 않아 하늘에 떠가는 구름만 바라보며 사는 모습을 보면 인생에 돈이 뭔가 하는 생각을 많이 느끼게 된다. 나는 이대로 외로운 어른들 곁에서 행복을 찾고 나누며 살겠다. 그것이 나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나도 언젠가는 그 분들 사이로 갈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결코 남의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당신은 한때 고위 권력층 집안과 매우 가깝게 지낸다는 소문이 따랐다. 그들의 시대에 음양으로 혜택을 본 일은 없는가?

대학을 함께 다니고 친구로도 각별한 관계를 나누어 온 친구가 그 집안 아들이었다. 중매도 우리 가족이 섰을 만큼 양쪽 가족끼리 터놓고 살았다. 하지만 신분이 달라지면서 과거의 관계가 깨어졌다. 오히려 힘든 일만 겪었다. 표현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많지만 서운한 감정을 일찍 버렸다. 신세를 안지고 산 것이 지금 돌아보면 잘했다고 생각된다. 불행하게 사는 어른들에게 베풀 수 있는 정도의 재력과 건강만 있다면 다른 욕심은 없다.



오랜만에 만난 영화배우 한지일과의 인터뷰는 시종 봉사활동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그의 일과 보람, 살아가는 이유가 온통 소외된 이웃 쪽에 쏠려 있었다. 다사다난한 한해의 마지막에는 언제나 화해와 나눔의 명절 크리스마스가 있듯이, 누구보다 논란의 인생을 살아온 그의 겨울 또한 더 가지기 보다는 더 나누자고 말한다. 그 나눔을 들고 ‘왕년의 에로킹’ 한지일은 크리스마스로 걸어가고 있다.


[인터뷰이 나우] 최근 KBS-2TV <여유만만> 프로를 통해 미국에서 슈퍼마켓 점원으로 일하면서 고달프게 살아가는 영화배우 한지일의 근황이 국내에 소개되어 네이버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는 등 관심을 모았다.


그와 함께 한지일은 인터뷰365에 전화를 걸어와 최근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지금도 돈을 벌면 나보다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위문활동을 한다. 노동을 하지만 구차하게 살지는 않는다. 새로 연예인을 키우는 메니저먼트 사업을 시작했다. 과거 영화사를 운영해 많은 돈을 벌었지만 IMF 때 잃은 것은 사실이다. 그 후 베트남을 거쳐 과거 어머니와 이주해 함께 살던 미국으로 옮겨와 당당하게 살고 있다. 영화배우라는 직업인의 자긍심도 변함이 없다.”


한지일은 영화배우도 보통의 인간이라면서 생활환경이 변하고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면서 자신의 현재 처한 입장을 특별한 화제로 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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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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