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숍 사장 된 최고의 좌완투수 ‘야생마’ 이상훈
뷰티숍 사장 된 최고의 좌완투수 ‘야생마’ 이상훈
  • 유성희
  • 승인 2009.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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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에서 선수생활을 끝내지 못한 것이 아쉬움”/ 유성희



[인터뷰365 유성희] 투수 이상훈이 갈기머리 휘날리며 마운드에 올라서면 홈팀 응원단에서는 함성이, 상대편 응원단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었다. 상대타자를 압도하는 이상훈의 강속구는 야구를 보는 재미이며 묘미였다. 야생마 이상훈. 아직도 그가 세운 선발 20승은 깨지지 않고 있다.


그는 데뷔 2년 차에 무려 18승을 올리며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시련도 일찍 찾아왔다. 무리한 투구로 인한 습관성 어깨탈구와 손가락 혈행장애로 이듬해부터 재활의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리고 1997년, 마무리 투수로 전환한 그는 이전의 명성을 뛰어넘는 활약으로 보란 듯이 복귀한다. 이상훈은 일본 프로야구와 미국 메이저리그를 모두 경험한 국내 최초의 선수이기도 하다. 이렇듯 그의 야구인생은 파란만장 스토리로 많은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은퇴 후 이상훈은 글러브가 아닌 기타를 들었다. 밴드 ‘왓(WHAT!)’으로 3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제2의 인생을 걸어온 그는 얼마 전 토털 뷰티숍 ‘클로저 47’을 오픈하며 사업가로서도 영역을 넓혔다. ‘클로저’는 마무리 투수, ‘47’은 선수시절 자신의 등번호다. 선수시절만큼이나 개성 넘치는 활동으로 이목을 집중시켜 온, 그의 인생2막을 들여다봤다.



의외의 사업이다.

뷰티숍을 열고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배울 점도 많고 재밌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은가. 야구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클로저 47’이라는 이름은 직접 지었나?

예전 마운드에서의 나를 상징한 측면도 있었지만, 우선 이 숍에 들어오면 헤어든 메이크업이든 마무리를 해서 나가게 되지 않나. 마지막 투구를 던지는 마무리 투수의 열정으로 외모를 가꾼다는 의미로 사용하게 됐다. 계속 듣다보니 잘 지었다는 생각도 들더라. 하하.


일부러 찾아오는 팬들도 많겠다. 현재까지 사업 성적은 어떤가.

물론 팬들도 있고 또 내가 누군지 전혀 모르는 분들도 있다. 뷰티숍이 나와는 별개의 일이었지만, 노력한 만큼 결과가 돌아오는 건 무엇이든 똑같다고 생각한다. 사업을 하다보면 이윤추구를 위해 부풀리는 경우도 있지 않나. 힘들더라도 거짓없이 순수하게 열심히 하는 게 첫째 목표다.


요즘 밴드 ‘왓(WHAT!)’ 음악활동은 어떤가?

공연은 주로 주말에 서울을 비롯한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라이브 클럽에서 하는데 현재 4집 음반작업 중이라 당분간 공연 스케줄은 없다. 앨범작업을 하는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다기보다 우리의 음악적 메시지가 전달이 다 됐다고 느꼈을 때 다음 앨범 준비에 들어간다.



기타는 언제 처음 치기 시작했나?

대학 3학년 때 야구부에서 나와 레스토랑 주방보조 일을 한 적이 있다. 그때 한 방에서 같이 지냈던 친구가 기타를 쳤다. 지금 생각해보면 훌륭한 연주는 아니었는데 마음 울적한 상태에서 연주를 들으니 ‘야.. 이건 뭔가’ 싶더라. 사람의 마음 한구석에는 자신을 지탱해주고 북돋아 줄 뭔가가 있어야 하지 않나. 당시의 내게 기타가 그랬다. 어떤 음악을 특별히 좋아했다기보다 그 친구의 기타연주 자체가 충격이었다. 그때 로망스를 연주했는데 지금 내가 하는 음악과 전혀 상반되는 클래식이잖나. 그 시절 친구의 기타는 무대 위 멋들어진 연주가 아닌, 어수룩한 방안 작은 불빛에 의존한 초라한 연주였지만 내 마음을 위로하는 그 이상의 무엇이었다.



이상훈의 고려대 재학 시절 별명은 ‘빠삐용’이었다. 4년의 재학시절 동안 야구부에서 도망친 것만 14차례나 됐기 때문이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마음 편히 운동을 할 수 없던 그는 건설현장 막노동, 레스토랑의 주방보조 일을 전전했다. 대학교 3학년 때 우연히 접했던 기타는 선수생활 내내 함께 하며 야구와 뚜렷한 경계 없이 익숙한 것이 되어버렸다. 신인시절 캠프에서는 장기자랑으로 기타를 튕겼고, 연습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와서는 선후배들과 자연스레 노래를 부르며 음악에 심취했다.



타고난 운동신경으로 어릴 적 모든 운동에 만능이었을 것 같다. 야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초등학교 때 축구부 골키퍼였다. 그런데 일요일마다 학교 운동장에서 리틀 야구팀이 운동을 했다. 그 팀과 자연스럽게 어울렸고, 때마침 축구부가 없어지면서 야구를 시작하게 됐다. 축구든 주먹야구든 일요일마다 운동장에 나타나 운동을 하는 꼬맹이었다.


이상훈 선수에 대해 돌연 은퇴해 안타깝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경험할거 다 해보고 내려 온 멋진 야구선수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본인의 선수생활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멋진 야구선수로 기억해준다면야 좋지 않겠나. 하하. 돌연 은퇴라고 많이들 말씀 하시지만 나로서는 깊이 생각한 후 결정한 일이었다. 열심히 하다 보니 일본과 미국을 가게 됐고, 야구선수로서 후회는 없다. 아쉬운 게 있다면 마지막을 LG에서 그만두지 못한 것이다.


운동선수들은 누구보다 자신의 몸에 대해서 잘 알지 않나? 은퇴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어떤 확신이 들었던 건가?

선수시절 내 개인적인 소박한 바람은 최고령 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최고령 선수가 되려면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도 생각해야 할 것이고 나의 입지나 보직이 타이틀적인 면에서 좁아지는 점도 감수해야 하지 않겠나. 이 모든 것을 수용할 만큼 야구를 좋아했다. 그랬기 때문에 그만둬야겠다는 판단을 빨리 했는지 모른다. 야구는 ‘멘탈게임’이기 때문에 내가 투수라면 타자를 상대할 때 마음가짐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만두기 전의 내가 그렇지 못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LG에서 SK로 트레이드 되는 과정이 정당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정신적인 충격이 너무도 컸고 마운드에 서면서 내가 진정 야구선수인지 자문하게 됐다. 딱 3일 고민했다. 결국 팬들 앞에서 경기할 자격이 없다고 판단을 했고,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배신하면 안 된다고 결론지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무엇이었나?

92년 연세대와의 정기전이다. 4학년 마지막 경기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돌아가신 최남수 감독님 밑에서 야구를 할 수 있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팀을 이탈하면서까지 말썽을 많이 피웠는데 나를 혼내고 다독이면서 어떻게든 잡아주려고 많은 도움을 주셨다. 프로야구에서 팀이 우승했거나, 일본에서 운동하던 시절 선동렬 선배 이종범 선수와 함께 주니치를 11년 만에 우승으로 이끌었을 때도 기억에 남지만, 이 모든 것이 나를 아껴주신 최 감독님이 계셨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감독님께서도 어렸을 때 홀어머니 밑에서 힘들게 사셨다고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모습에 정이 많이 가셨는지 야단도 많이 치시고, 때리기도 많이 때리셨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따뜻한 마음으로 나를 잡아주셨던 분이다.


마무리투수에게 블론세이브(마무리 투수가 동점이나 역전을 허용한 뒤 가까스로 세이브에 성공하는 것)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 아닌가. 인생에서의 블론세이브 경험이 있나?

내 인생의 블론세이브가 언제였는지 거창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웃음) 나는 어떤 일이든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패라고 거듭 생각한다면 그 이상 무엇을 더 하겠나. 물론 좌절도 있겠지만 잘하기 위한 과정인거지, 잘못을 한 이후에는 그 다음이 중요하다.


최근 임수혁 선수 돕기 행사에서 공연을 가졌다. 두 사람의 인연이 각별한 것으로 아는데.

나야 언론을 통해 부각이 됐을 뿐 수혁이 형을 진심으로 도와주는 분들이 많다. 부모님들끼리의 인연도 있지만 수혁이 형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1년 선배다. 수혁이 형 자체가 호인이다 보니 나뿐만 아니라 절친했던 지인들이 많다. 남자들 단체 생활하면 괴롭히는 사람 한명씩은 꼭 있지 않나. 형은 모든 후배들에게 친구 같은 따뜻한 사람이었다.


야구를 하는 동안에도 야구를 그만둘 때도, 망설임 없는 모습이었다. 이상훈을 이야기 할 때 성공과 좌절, 위기와 기회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성공’은 잘 모르겠다.(웃음) 또 나는 겁이 없어 ‘좌절’을 모르는 게 아니고, 배짱이 좋아서 ‘위기’를 위기같이 여기지 않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머리가 좋아서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능력도 없다. 다만, 선택을 한 이상 최선을 다하고 나를 믿어야 하지 않겠나. 내 결정에 후회는 않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아쉬운 건 있을 수 있다. 나에겐 거창한 수식어가 없다. 이 자체가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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