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금봉과 김지미의 ‘양귀비 대전’ 목욕신
도금봉과 김지미의 ‘양귀비 대전’ 목욕신
  • 김다인
  • 승인 2008.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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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톱 스타 총출동, 결과는 무승부 / 김다인



A팀 도금봉 김진규 신영균 최은희 허장강

B팀 김지미 최무룡 김승호 장동휘 이예춘


[인터뷰365 김다인] 농구팀 라인업이 아니다. 1962년 ‘양귀비 대전’의 캐스팅 리스트다.

도금봉의 색스러움에 김진규의 젠틀함, 거기에다 뚝심좋은 신영균, 조신한 최은희 쪽이 나을까, 아니면 김지미의 화려한 외모와 김승호의 호탕스러움에 이예춘의 오싹한 차가움이 나을까.

A팀은 ‘1962년도 신춘을 장식할 세기의 거작’이라는 광고카피를 달고 만들어진 <천하일색 양귀비>고 B팀은 ‘한국의 올 캐스트가 경(競)하는’ 광고카피의 <양귀비>다. 워낙은 <천하일색 양귀비> 쪽이 먼저 기획됐는데 이에 뒤질세라 <양귀비>가 제작신고를 하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맞대결을 펼치게 된 것이다.

<양귀비>는 최훈 감독이, <천하일색 양귀비>는 김화랑 감독이 연출해 1961년 홍성기, 신상옥 감독의 <춘향전>과 <성춘향> 접전을 재현하고 있다.

춘향 대결에서는 최은희와 김지미가 치열한 경합을 벌였지만 양귀비 싸움에는 최은희 대신 도금봉이 김지미에게 도전장을 냈다. 최은희는 도금봉을 지원사격하는 문혜비 역으로 물러나 느긋한 구경꾼이 됐다.

처음에 두 영화 모두 양귀비 역에 김지미를 교섭했다. 하지만 김지미가 <양귀비> 쪽으로 기울자 <천하일색 양귀비> 팀은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고 당시 신필름 전속배우로 있던 도금봉을 꾸어오고 신필름의 제2인자였던 최은희까지 지원사격을 나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양귀비 대결은 실제로는 홍성기, 신상옥 감독 대결의 제2라운드라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최훈 감독이 홍성기 감독의 애제자였기 때문이다. 김지미가 <양귀비> 쪽으로 가자 <천하일색 양귀비> 팀은 급히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에 구원요청을 한 것이다.

두 편의 양귀비는 모두 일본 동보영화사에서 이미 만들어진 <양귀비>를 근간으로 해 <양귀비>는 유한철 작가가 <천하일색 양귀비>는 조남사 작가가 시나리오를 썼다. 사실(史實)은 유한철 시나리오가 우수하고, 영화적 재미는 조남사 시나리오가 더 낫다는 등 감독 작가에서 배우 스태프에 이르기까지 온통 라이벌전이었다.

현종 역에는 김승호와 김진규가, 안록산 역에는 이예춘과 신영균이 라이벌이었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촬영이 진행됐는데 <양귀비> 현장에서 이예춘이 말 타는 솜씨가 뛰어났다는 말이 전해지면 <천하일색 양귀비>의 신영균도 신경 써서 말을 타야 했다.

양쪽에서 촬영을 먼저 끝내기 위해 배우들 스케줄을 빼주지 않는 바람에 다른 영화들도 덩달아 난리였다. 당시 내로라하는 스타들은 거의 모두 이 ‘양귀비 대전’에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것은 양귀비의 대결, 김지미와 도금봉의 대결이었다. 경쟁이 절정에 이르면서 등장한 것이 목욕신이었다.

<양귀비>의 최훈 감독은 스승의 부인인 김지미에게 어렵게 목욕신을 찍자고 제의했다. 시나리오상에도 목욕 장면이 나와 있으나 대역이 하기로 돼있는 걸 직접 하자는 제안이었다. 대답은 노!였다. <천하일색 양귀비>를 제압하기 위한 묘수는 그것뿐이라 여긴 최훈 감독의 간청에 김지미는 결국 승낙을 했다. 하지만 조건이 엄격했다. 촬영현장에는 감독과 촬영감독 외에는 개미 한 마리 출입금지, 스틸사진은 단 한 장도 안됨, 신문 등에 김지미가 벗고 촬영했다는 기사를 절대 내지 말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개봉 전 시사회를 절대 하지 말 것 등이었다. 이 조건들을 어길 때는 고소하겠노라고 단단히 약정을 했다.

스탭들은 김지미 마음이 변하기 전에 부랴부랴 촬영을 서둘렀다. 지금 같으면 목욕장면의 방탄막으로 거품비누를 쓸 수 있겠지만 당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오로지 가능한 것은 모락모락 수증기뿐이었다. 김지미 양귀비가 목욕신을 찍던 날은 한겨울이었다. 촬영소는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추웠다. 나무로 목욕탕을 짓고 숯불을 피워 추위를 막았다.

이렇게 해서 찍은 목욕신은 김지미의 강력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찍자마자 스틸사진이 언론매체에 퍼졌다. 포스터에도 대대적인 선전을 했다. 하지만 김지미가 영화사 측을 고소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았다.

이에 질세라 도금봉 양귀비도 과감한 목욕신을 찍었고 누가 더 섹시한가는 개봉 전 핫 이슈가 됐다.

설날 개봉을 목표로 만들어진 두 영화는 <천하일색 양귀비>가 조금 먼저 국도극장과 반도극장에서 했다. 관객수는 3만여명. <양귀비>는 설날 당일 국제극장에 걸렸으나 역시 3만여 관객만 동원했다. 제작비 5천만환을 들인 두 영화는 모두 4천만환 정도 수익을 내고 1천만환 적자를 봤다. 결국 ‘양귀비 혈전’은 제작 영화사만 타격을 입고 싱겁게 끝나버렸다.

이후 영화계에는 ‘목욕신이 있는 영화는 흥행 실패한다’는 ‘목욕신 괴담’이 나돌았다. 국내 여배우 가운데 첫 목욕신을 찍은 배우는 <운명의 손>에서 첫 키스신을 찍은 윤인자였다. 작품은 1957년 김진규와 공연했던 <전후파>. 윤인자는 실직한 남편을 둔 유부녀로 생계 때문에 바에 나가는 여성 역을 연기했다. 남자배우로 처음 목욕신을 찍은 이는 희극배우 김희갑. <희갑이 목욕탕 개업하다>에서였다. 1963년작으로 목욕탕 주인 김희갑이 손님들이 물을 많이 쓴다고 티격태격하는 내용이었다.

이 ‘목욕신 괴담’을 코웃음으로 날려버린 영화는 1988년작 <매춘>이었다. 여주인공의 상반신 누드가 정면으로 나온 이 영화는 숱한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중앙극장에서 그대로 개봉됐는데, 입석 관객까지 꽉 들어찰 정도로 대히트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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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인

영화평론가. 인쇄매체의 전성기이던 8,90년대에 영화전문지 스크린과 프리미어 편집장을 지냈으며, 굿데이신문 엔터테인먼트부장, 사회부장, LA특파원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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