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속을 떠돌듯 목인미술관을 거닐다
무덤 속을 떠돌듯 목인미술관을 거닐다
  • 이 달
  • 승인 2008.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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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길의 길라잡이 노릇을 하는 나무 꼭두들 / 이달



[인터뷰365 이달] 목인박물관 2층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엄마 손 잡고 땡깡부리던 아기호랑이와 눈이 딱 마주쳤다.

가을빛 도는 햇살이 투명하게 내리쬐는 유리창가에서, 그 놈은 놀고 있었다.




목인박물관에는 목조각들이 있다. 오래된 것들이긴 하나 썩 오래된 것들은 아니다.

우리가 만나는 그 어떤 박물관의 유물들 보다 나이가 젊은 것들임에 틀림없겠지만 절대로 친숙한 것들은 아니다.

하지만 또한 그것들은 우리네 삶과 굉장히 친숙하고 가까운 공간에 있는 것들이다.

그랬었다. 가까운 과거에는. 이미 박물관에 들어있는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넓지도 않은 2층 전시실은 둘로 구분되어 있다. 입구 쪽 전시실에서 안쪽 전시실로 들어가려면 계단 몇 개를 내려가야 하는데

마치 옛 무덤의 널길과 널방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햇빛이 잘 드는 바깥쪽과 달리 안쪽은 어두컴컴하기 때문에 더 그렇다.

약간 긴장된 걸음으로 계단을 밟으면 천정에 떠있는 무리들이 지긋이 내려본다.

이들의 시선은 사뭇 조롱조이다. 낄낄대며 웃는 것도 같고. 쯧쯧 속으로 혀를 차는 것도 같다.

오호~ 그래 잘 왔구나. 저승길이 그리도 궁금하더냐?... 이러면서 쳐다본다.



전시실 한 가운데에는 상여가 놓여있다. 아주, 제대로 된 상여다.

관 위로 3단의 세계가 조성되어 있고 봉황과 사자들이 지키고 선 이 거창한 상여는

아무나 태워주지 않는다. 망자라 해서 누구나 이 상여에 올라타고 저 세상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 비싼 영구차는 화려한 장식으로 요란하게 꾸며졌다.

싸구리 화선지로 접어 오린 꽃송이들 둥둥 달고 떠가는 허접꽃상여와는 차원이 다르다.





용, 봉황, 저승사자, 귀신

이것들 말고도 다양한 군상들이 상여 위에 올라타고 있다.

이들의 임무는 망자의 길동무가 되어주는 것이다. 순장과 비슷한 개념이려나?

이런 상여가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은

예술품으로 가치를 인정 받아서가 아니라 빈곤한 시절에 재활용하기 위해 보관한 탓일 것이다.

사실 이 정도의 상여부속품들을 모았다는 것은 굉장한 열정과 노력이다.


목인박물관은 사설박물관으로 시설이 그다지 좋지 않다.

전시물의 크기가 작은 것들이라 폭 30cm 높이 50cm 정도의 칸이 상하좌우로 이어지고 한 칸에 작품 하나씩 들어있는 그 모습은 마치 상품 진열대 같다.

주루룩 일관성 따위 무시하고 마구잡이로 넣어 둔 진열과 미흡한 설명은 둘째 치고

진열장 소재가 유리여서 온통 다 비치고 그림자 위에 그림자가 겹치고... 한 마디로 정신 사납다.

조명까지 너무 어두워서 사진 찍기는 더욱 망하다.


유리칸막이들이 만드는 그림자가 겹치고 겹쳐져서 저 오래되고 괴기한 표정의 목각들은 마치 어떤 결계에 갇혀있는 듯 보였다..




참으로 다양하여 이름도 외기 힘들었던 이 인물상들은 직업과 연령층이 아주 다양하다.

무녀와 광대들이 주를 이루는 이유는, 일반인들이 해줄 수 없는 위로를 그들은 해줄 거라 믿었던 까닭? 아마도.

천차만별인 이들의 공통점 한 가지는 그 생김이 괴기하다는 것에 있다.



이것은 목각인형과는 달리 얇은 나무판을 오려 채색한 것인데 벽에 붙여 놓으니 아주 재밌다.

특히 '교차되는 사람들'이라는 조각은 제목부터가 아주 인상적이다.

교차되는, 에서 귀신의 형체가 오버랩되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것도 거리에서...



그리고 불상이라는 제목으로 별도 유리케이스에 들어 있던 이 조각들은 내가 만난 어떤 불상보다 인상적인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이것은 화장실 싸인. 둘을 붙이니 개화기 남녀의 데이트풍경 같다.





지하전시실에는 꽃모양 조각들만 따로 모아두었다. 그것들은 꽃이라 이름 하기엔 어딘가 미심쩍은 점도 있어 보였지만

나름 심플하고 과감한 도안으로 분명 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참 이채롭다.



사진을 찍는 일은 계획에 없던 일이었기에 충전 안 된 배터리는 금방 아웃되어 버렸고 소용량의 카드가 들어 있어 제일 작은 사이즈로 사진을 찍었다. 그래도

애초에 사진이 목적은 아니었으니, 더구나 촬영이 허락될 줄은 짐작도 못했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관람을 마쳤다.


관람하는 내내 바닥에 진을 치고 앉아있던 한 떼거리의 학생들 때문에 무척 답답하였는데

커피를 마시려고 옥상으로 올라가니 거기에 또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덕분에 옥상정원의 느긋한 여유는 즐기지 못했다.



木人

저승길의 길라잡이 노릇을 하는 이 인형들을 '나무 꼭두'라고 부른다는 것

관장이 유명그룹 계열사의 대표를 지냈고 개인적인 관심으로 모았다는 것.

5천여 점의 소장품 중 3백 점 정도를 번갈아 전시 한다는 것. 정말 괜찮은 작품들은 전시하지 않는다는 것.

이 정도가 목인박물관에 대해 내가 아는 전부이다.


구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체로 19세기와 20세기 초반의 것들이다. 그 전의 것들은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정교하게 다듬지 않은 거친 조각들이지만 전문 장인들이 있었을 것이고

나름의 법칙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것.

그 법칙이 민화와 상당히 비슷하다는 것.

이 정도가 내가 짐작하는 전부이다.



개인의 관심만으로 전혀 존중되지 않던 것들을 오천 점이나 모았을 때는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죽음의 현장들을 훑고 다녔을 것인지

그것은 짐작조차 되지 않는 것이었다.


오천원에 무덤 속을 거니는 것 같은 관람을 하고 커피까지 한잔 마실 수 있다면

더구나 그 커피가 맛도 훌륭하고 전망도 끝내주는 곳이라면

기꺼이 즐겨 갈 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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