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모노드라마 하는 ‘장나라의 아빠’ 배우 주호성
중국서 모노드라마 하는 ‘장나라의 아빠’ 배우 주호성
  • 유성희
  • 승인 2008.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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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나라를 사랑해준 중국인들에 대한 보답”/ 유성희



[인터뷰365 유성희] ‘장나라 아버지’로 더욱 유명한 연극배우 주호성이 오랜만에 연극무대에 선다. 한국이 아닌 중국에서다. 주호성은 중국 북경의 선봉극장에서 10월 19일부터 11월 16일까지 모노드라마(1인극) <원숭이 피터의 아름다운 생활>을 올린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서>를 각색한 작품으로 국내에서는 연극배우 고(故) 추송웅의 <빨간 피터의 고백>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그의 공연은 중국 현대연극 탄생 101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제2회 베이징 세계 연극페스티벌의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주호성은 1969년 성우로 방송생활을 시작해 TV 드라마와 연극, 영화를 통해 만능엔터테이너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딸인 장나라가 연예계에 데뷔한 이후부터는 딸의 일을 돕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여왔다.


장나라는 국내에서 가수 겸 배우로 활동하다가 중국으로 진출해 한국의 대표적인 한류스타로 발돋움했다. 한중수교 15주년을 기념, 한국 여가수로는 첫 단독 중국콘서트를 가졌고 중국드라마 <띠아오만 공주>에 출연했다. 최근 중국 후진타오 국가 주석의 방한 당시에는 이영애와 함께 청와대에서 열린 만찬에 초대받기도 했다.


100편이 넘는 연극을 한 배우로, 인기 스타의 아버지로 두 몫의 삶을 사느라 바쁜 주호성이 잠깐 귀국한 틈을 타 인터뷰는 이뤄졌다.



중국어로 모노드라마를 한다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무대 위에서 한 시간 반 동안을 혼자 지껄이고 혼자 노래 부르고 북치고 장구 치고 혼자 다 해야 합니다. 스무살 때 ‘환타지 卍’이라는 모노드라마를 하던 시절이 기억납니다. 대학시절인 당시에 문학동인회 친구가 써준 모노드라마를 공연했어요. 관수동에 있는 ‘양지’라는 다방에서 살롱드라마로 공연했지요. 아 그 작품을 써준 친구 지금 고등학교 국어선생인데, 장나라 이름을 지어준 친구죠. 박기원이라고...그때만큼 죽어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왜 시작했나 후회가 될 때는 없으셨나요?

후회는 없습니다. 진심이니까요. 모노드라마이다 보니 혼자서도 연습이 가능해서 오밤중에 벌떡 일어나 연습할 수 있어서 좋고요. 이정도 우리나라말 대사의 연극은 일주일이나 열흘 연습이면 대사를 다 외우는데 이번 연극의 대사를 외우는데 꼬박 넉 달이 걸렸네요. 요즈음은 계속 시연회를 합니다. 그냥 중국의 연극인이나 친구, 이웃사람들 두어 사람 모아놓고 하기도 해요. 두 번 보는 사람은 저의 시연회 관객으로는 자격이 없어요. 두 번 보면 저의 언어에 익숙해져서 대사를 다 알아들으니까 생전 처음 보는 관객이 명확히 알아들을 때까지 계속 시연회를 하는 거죠. 어제 제 시연회를 봐준 중국의 청년 연출가가 ‘대사전달에 아무 문제 없습니다.’라는 극찬을 해주어서 오랜만에 행복한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특히 모노드라마를 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이 40에 극단 ‘산울림’에서 ‘술’이라는 모노드라마를 했어요. 술을 마실 수밖에 없는 인생을 무대 위에 그려서 남들에게 술을 권하고 실제로 저는 단주를 한 연극이죠. 이제 60이 되어 중국어로 모노드라마를 공연합니다. 이 연극을 하는 첫 번째 이유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 이유는 장나라를 사랑해준 중국인들에 대한 답례입니다. 사실 장나라의 중국 활동을 기획하면서 혼신의 힘을 다 했고 호응해준 모든 중국인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싶어서 벌인 일입니다.


장나라의 홈페이지 ‘나라짱닷컴’에는 아버지 주호성이 이야기하는 딸의 소소한 사연들이 실려 있다. 딸의 첫 남자친구이야기부터 대학입시, 악바리 장나라에 대한 이야기까지. 아버지의 사랑이 홈페이지 한가득 진동한다. 딸은 그렇게 아버지의 사랑을 먹고 자라 아버지같은 연극배우를 꿈꿨다. ‘파파걸’과 ‘장빠’는 두 사람의 각별한 사이를 두고 만들어진 애칭. 연예활동의 조력자인 두 사람에게는 부녀관계이기 때문에 감수해야하는 따가운 시선도 더러 있었다.




장나라씨의 연예생활에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하고 계신데요. 홈페이지에 글도 직접 남기고 굉장히 열정적이십니다.

저는 무슨 일을 하던지 최선을 다합니다. 안 하면 안 하지, 했다 하면 최선을 다 해야죠. 그 때문에 장나라의 기획 일도 최선을 다 했고요. 특히 수많은 연극을 하면서 언제나 생애의 마지막 작품이 되더라도 최고의 작품을 만들겠다는 자세로 죽을 힘을 다해서 해왔어요.


그동안 아버지가 너무 딸의 일에 개입한다고 좋지않게 보는 시선도 있지 않았습니까.

대중연예계는 힘든 곳입니다. 장나라도 저를 완전히 이해해 주지는 못합니다. 아버지가 직접 나선다고 말들을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방송사에서나 제작사도 아버지가 나서는 것은 싫어합니다. 왜죠? 아버지가 나서고 있어서 도덕적으로 껄끄러운 점들도 있고, 아버지가 나서서 보아서는 안 될 일들도 있다는 건가요?


가장 답답한 점은 무엇이었나요?

우리나라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선입견은 곱지 않아요. 젊은 세대에겐 아버지에 대해서 컴플렉스도 만만치 않죠. 연기를 가르치면서 아버지를 원수처럼 생각하는 친구들을 여럿 만났어요. 예전에 35등 한 성적표를 컴퓨터로 15등으로 위조한 아들이 아버지 앞에 위조 성적표를 내놓고 칭찬을 기다렸는데 귀싸대기를 보기 좋게 맞았답디다. 위조한 것이 들켰구나 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순간, 아버지에게 나온 한마디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허망하게 만들더랍니다. ‘10등 안에 들어!’ 그 아들은 아버지가 35등이라는 아들의 현실을 모른다고, 연기연습으로 진행하던 사이코드라마에서 눈물을 흘리더군요. 젊은 세대들은 아버지와 마주앉는 기회가 적은 것 같아요. 텔레비전을 향해서 나란히 앉았다가 기껏 마주보고 하는 소리는 ‘너 머리가 그게 뭐냐?’ ‘공부 안 하냐’ 같은 나무람뿐이죠. 장나라에게 아버지가 기획 일을 하는 것이 그런 평범한 아버지로만 보여서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은 아닐까 해요.


선친은 어떤 분이셨나요?

제 아버님은 6.25 초기에 제가 세 살 된 해에 돌아가셨습니다. 사진 한 장도 없고 아무 기억이 없어요. 초 중 고 다니면서 왜 그렇게 학기마다 가정조사를 했는지 선생을 말도 못하게 미워했었죠. ‘아버지 없는 사람 손들어….’ 그 후에 나오는 ‘집에 전화기 있는 사람 손들어. 테레비 있는 사람 손들어’ 그런 건 워낙 있는 사람이 귀하던 시절이니 부끄럽지 않았고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았지만, 지금도 ‘아버지 없는 사람 손들어’는 제 귀에 쟁쟁합니다. 아버지 있는 사람이 제일 부러웠습니다. 그냥 송장처럼 누워있어도 되니까 내게도 아버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철없이 울었더랬습니다.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자녀들에게 더욱 사랑을 쏟으셨을 것 같은데요. 자녀들에게는 어떤 아버지이신가요?

좋은 아버지 되겠다는 결심은 진정으로 저의 꿈이었습니다. 연극하느라고 잘 돌보지 못한 집이었지만 자식들을 위한 기도만큼은 누구보다 절실하게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과한 것도 있었겠지요. 넘치는 것이 자식에게 짐이 될까 늘 염려했는데. 허허. 이번 연극도 장나라를 사랑해준 답례로 한다고 떠벌이고 있으니... 장나라가 원한 것도 아닌데...



중국에서 장나라씨의 인기는 어느 정도입니까?

중국 언론은 장나라를 ‘소천후’라고 부릅니다. 막내 천후라는 뜻이죠. 중화권의 사대천황, 사대천후는 누가 뽑은 것이 아니고 영화, 드라마, 광고, 등의 각 부문을 두루 인정받은 예인들을 지칭하여 언론들이 부르는 호칭입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오! 해피데이> 라는 장나라의 영화가 있었는데 좀 과장해서 이야기하자면 13억 인구 중에 안 본 사람이 본 사람 보다 훨씬 적은 영화라고 말씀 드릴 수 있어요.


장나라씨가 중국에서 꾸준한 인기를 유지하는 비결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만큼의 장나라는 장나라가 만들었습니다. 저는 뒤치닥거리를 했고요. 제가 연극배우라는 사실을 아는 분들은 제가 장나라에게 연기를 가르쳤다 생각하시는데요, 그러나 저는 ‘연기는 가르치거나 배우는 예술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는 사실을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연기는 느끼고 깨우치는 예술입니다. 그걸 알기에 누구도 가르치려 들지는 않습니다.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잘 살펴서 좋은 점은 드러나고 나쁜 점이 감춰지는 충고를 하는 정도이지요.


한류가 예전만 하지 못하다는 소리가 많잖아요. 한류 최전선에서 활약 중인 시각에서 볼 때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한류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드라마, 영화 한류와 대중가요 한류, 그리고 무대 한류가 중국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각기 다른 것입니다. 중국대륙에서는 무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현대는 대중문화경쟁시대입니다. 대중문화가 앞서는 나라가 이기는 나라죠. 외국과의 교류에서 정치나 경제논리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빨리 깨우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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