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한 곳에서 아득한 시간을 만나다-경주 상인암
아슬한 곳에서 아득한 시간을 만나다-경주 상인암
  • 이 달
  • 승인 2008.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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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최초의 석굴사원 / 이달



[인터뷰365 이달] 경주에 도착 했을 땐 이미 비가 주욱죽 내리긋고 있었다.

그나마 빗줄기가 더 세지기 전에 들려야 할 곳이 상인암.

경주에서 가장 높다는 단석산은 몹시 거친 산세를 가지고 있어서

단단한 4륜구동 차를 가지고도 오르기 벅찬 곳이었다.

거기다 비까지 쏟아지니 정말 아슬아슬...폭포처럼 느껴지는 계곡의 물소리.

차에서 내려 가파른 산 길을 10분 쯤 오르니 빗줄기 속에 상인암이 보였다.



상인암은 신라 최초의 석굴사원이다.

신라에 불교가 공인되고 약 100년 정도 후에 지어진 석굴로써 토함산 석굴암 보다 2백살 쯤
나이가 많은 형님이시다.

8미터가 넘는 거대한 암벽이 ㄷ자형을 이루고 있어 원시적인 석굴사원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본존불은 북면에 모신 미륵장륙상이고 동면과 남면에 보살입상이 하나씩 서있다.




북면에 두 개의 바위가 틈을 보이고 서 있어 그곳이 입구로 사용되고 있었다.

북면의 왼쪽 바위에는 마애불상군이 새겨있다.

가끔 이런 나이 많은 조각물들을 보면서 귀엽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것은

여든, 혹은 아흔을 넘긴 쭈구렁 할매 할배들에게서 느껴지는 귀여움과 비슷하다.

어쩌다 보니 그저 하릴 없이 늙어져 버린 것이 아닌

차곡차곡 꼼꼼히 제대로 나이를 먹어 이쁘게 곰삭은 아름다움... 그런 것이 느껴지면

가볍지만은 않은 미소가 편안하게 스며나오곤 하는 것이다.




아주 곰실곰실 귀엽게 새겨 놓은 이 마애불상군은 아마 후대에 추가된 것이 아닐까?
라고 혼자 생각해 보았다.

우측 하단에 있는 이 마애상은 공양보살들이다.

예법을 갖춘 복장을 하고 손에 공양물을 들고 본존불을 향해 내딛는

저 얌전하고도 섬세한 발동작을 보아라!... 우아하다... 진정!

부처나 보살의 모습이 아닌 일반 공양보살들인 이 바위그림은

신라의 복식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한다.



공양보살들이 공양드리러 가는 발걸음 방향을 따라가면 이 분이 서 계신다.

아래에서 올려보면 미륵불의 상호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바위가 워낙 크다.

그래서 위로 올라갔다.

바위로 오르는 길은 전혀 안내되어 있지 않다 물론. ^^;

올라가지 말라는 말이겠지... 그래도 올라갔다.

산을 올라 오면서도 느꼈지만 워낙에 산세가 험한 산이었다.

길도 없고, 비에 젖은 흙은 미끄럽고, 잡고 매달릴 나뭇가지도 별로 없고...

그래도 올라갔다




용감하게 올라가긴 했는데

위에서 내려보니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아찔했다. 음...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걸...
자~꾸 잊어~

돔처럼 둥글게 쳐있는 보호막의 기둥과 바위 사이가 아슬아슬하다.

빗줄기는 더욱 세어졌다.

정면에는 기둥이 딱 서있어서 도저히 거기까지 갈 엄두가 안 났다. 나도, 목숨 아까운 줄은 안다.

둥그스름한 상호... 아직 청년이라 부르기엔 좀 그렇고

이제 성장기를 마친 남자... 19, 20,

천사백 살이나 된 미륵상의 얼굴을 마주한 첫 느낌은 그랬다.

단석산은 경주의 서쪽 끝 경계에 해당하는 외진 곳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고대 신라에는 더욱이.

산세가 험하고 외진 이곳에 이렇게 거대한 장륙상이 세워진 것은

바로 여기가 화랑들의 수도처였던 때문일 것이다...라고 생각해본다.

모시는 본존불이 하필 동안의 미륵상인 것은

화랑들이 모시던 신앙대상이 미륵불이던 때문이리라...라고 역시 생각만 ^^;

건립에 관한 확실한 기록은 없으니 알 도리가 없지.



다시 미끄러운 길을 벌벌 기어서 내려왔다.

물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다.

서편 출구의 바위 틈으로 하얗게 가라앉은 하늘과 무거운 빗소리가 들어온다.

어쩌면 알 것도 같다. 화랑들이 수련하는 장소로 택한 이유.

강도 높은 수련을 마치고 계곡 물에 몸을 씻은 단아한 젊은이들이

경쾌한 발놀림으로 찾아와 예불을 올리는 그 모습이

아직도 원시적인 석굴 안 곳곳에 남아있는 것만 같아서

나는 그 잔상을 찾으려 눅눅하고 어두운 석굴 안을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그들은 이미 없었다.




예상보다 시간을 너무 지체했지만 서두르진 않았다.

예정했던 다른 것들을 못한다 해도 여기를 먼저 오길 정말 잘했다.

천천히 빗길을 걸어 내려오며

간밤 어느 발톱에 뜯겨 사라졌을, 어느 날짐승의 날개털들이

산길에 흩뿌려져 비에 젖고 있는 걸 보았다.

빗줄기는 무심히 작고 가벼운 깃털을 적시고 있었다.

갑자기, 그 공간이 머금고 있는 시간들이 후루룩 몰려서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는 듯 싶었다.

내가 살면서 언제 또 다시 이곳을 찾을 날이, 있을까?

한번이나 많으면 두번? 아니 한번도 없을지 그건 모르지...




斷石. 김유신이 수도를 하면서 단칼에 바위를 자른 곳이 이 산이라 한다.

그래서 단석산이다.

지금도 산 꼭대기에는 그 바위가 있다한다.

칼로 자른 듯 반듯하게 절단된 바위, 김유신이라는 걸출한 화랑의 탄생, 글쎄,
어느 것이 먼저였을까...

뭐, 무엇이 되었든 상관 없고 중요하지 않지만

좋은 날씨에 컨디션만 좋다면 꼭대기까지 기어 올라가 확인해보고 싶기도 하다.

그 사이 계곡물이 더 불었는지

콸콸대는 소리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차가 그저 스르르 미끄러지는 것만 같았다.

올라갈 때 보다 훨씬 위태위태 무섭다...

설마 차가 뒤집히기야 하겠어? 그럴지도 모르지

그래도 무게가 있는데 미끄러지기야 하겠어? 미끄러지고 있는데? ;;;

으~으~ 뻘,뻘, 진땀을 빼면서 산을 내려왔다.

아, 이눔의 단석산은 첨부터 끝까지 아슬아슬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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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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