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에 사는 배우 오지혜의 ‘수다스런’ 시골살이
양평에 사는 배우 오지혜의 ‘수다스런’ 시골살이
  • 유성희
  • 승인 2008.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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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사람을 가르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어요” / 유성희



[인터뷰365 유성희] 배우 오지혜는 서울에 없다. 벌써 2년 전부터 경기도 양평에 아담한 집을 마련해 시골살이를 하고 있는 중이다.

연극배우로 시작해 드라마와 영화 등에서 비중있고 개성있는 연기를 해오고 있는 오지혜는 얼굴선에서부터 도회적인 분위기가 강했다. 그런 그가 서울 아닌 곳에 터를 잡고 있다는 사실은 의외였다. 그래서 일 때문에 서울에 자주 올라온다는 오지혜를 굳이 양평 그의 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오지혜는 모태신앙처럼 연기자 될 운명을 타고난 배우다. 연극배우인 오현경, 윤소정씨를 부모로, 그 위로 초창기 한국영화계의 산증인인 감독이자 배우 윤봉춘 선생을 외할아버지로 모시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3대가 연기를 하는, ‘연기종가(宗家)’의 외딸로 태어난 오지혜는 당연한 것처럼 배우가 됐다. 그리고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동문인 연하의 남편 이영은 감독을 맞아 종가의 전통(?)도 이어가고 있다.


추석을 며칠 앞둔 하늘 높은 날,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에 위치한 오지혜의 집을 찾았다. 마을 초입을 가로지르는 돌다리를 지나 비포장길에 들어서자 따가운 햇살 아래 잔디마당이 넓은 하얀 이층집이 눈에 들어왔다. 강아지들이 뛰노는 사이로 꽃무늬 원피스에 화사한 두건을 두른 오지혜가 나타났다.

그를 따라 들어간 집안은 곳곳에 주인의 손길이 머문 흔적이 역력했다. 벽에는 전원생활이 묻어나는 사진들이 걸려있고, 알록달록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제자리를 찾아 놓여있었다.

햇살이 고루 비치는 거실 테이블에 앉아있자니 주방에서 다과를 준비하던 그가 먼저 큰소리로 얘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전화로 인터뷰 약속을 잡을 때의 딱딱함은 사라지고 털털하고 시원시원한 말소리다.


“집에만 있어도 살이 타는 집이에요. 채광이 너무 좋아. 햇빛 작렬! 밖에 안 나가도 썬 크림 바르고 있어야 돼. 명색이 여배운데 피부관리 해줘야 하잖아요.”



어떤 이유로 양평에 터를 잡게 되셨나요?

전원생활은 누구나 꿈꾸는 로망이잖아요. 서울을 벗어나 살아보려고 2006년도에 큰 결심을 하고 여러 군데를 알아봤어요. 덕소 쪽을 먼저 갔는데 서울하고도 가깝고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그런데 우리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한 둘이 아니더라고요. 집값이 너무 비쌌던 거죠. 그렇게 알아보고 다니다가 양평까지 오게 됐어요. 곧 있으면 이곳에 온 지도 2년이 되어가네요.



누구나 전원생활을 꿈꾼다고는 하지만 어지간한 용기로는 실행에 옮기기가 쉽지 않잖아요. 주변에서 부러워하는 동료들도 많겠네요.

내가 자기들 로망을 대신하니깐… 이사 와서 한동안은 끊이지 않고 사람들이 찾아왔어요. 여기가 다들 자기네 별장이라도 되는 것마냥 ‘마당에 뭘 심어라. 텃밭 놀리지 마라.’ 왜 그리들 참견은 많은지. 하하. 또 사람들 내려오면 풀만 먹일 수 없잖아요. 내려오는 사람들과 매주말마다 마당에서 바비큐파티를 했는데 어느 날은 우리애가 “엄마 나 바비큐 안 먹으면 안 돼?’ 그러더라고요.(웃음) 우리 부부는 고기 굽는 선수 다됐고요.


겉보기는 신선놀음 같지만 시골생활을 하려면 현실적으로 맞닥뜨려야 할 문제들이 한둘이 아니잖아요?

많았죠. 정말 손톱이 문드러지도록 일을 했어요. 아파트에 살 때는 문제가 생겼을 때 관리실에서 알아서 해주잖아요. 그 모든 걸 스스로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갑자기 물이라도 안 나오면 우리가 고쳐야지 어떡하겠어요. 다행히 우리 신랑이 맥가이버예요. 영화감독이 촬영 없을 땐 백수잖아요. 신랑이나 저나 시골생활이 처음이라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어요. 이 집이 펜션용으로 지은 집이라 겉보기에는 참 예쁜데 손봐야 할 곳 투성이었어요. 지금의 모양새를 갖추기까지는 피땀 어린 노력이 필요했지요. 우리 신랑은 선반이며 수납공간 만드느라 엄청 못질했어요. 선반회사 차려도 될 정도예요. 손재주 좋은 건 알았지만 서울에 있을 때는 시켜볼 기회가 없잖아요. 이제는 동네에서 공사 주문 들어올까 겁나. 너무 잘해서.(웃음) 저는 디스크 환자인데 이곳에 와서 너무 열정적으로 집을 가꾸다 보니 오른쪽 다리에 마비가 와서 한동안 지팡이 짚고 다닐 정도로 심각했어요.


그렇게 생고생을 하면서 만들어낸 이곳 생활만의 특별함으로 무엇이 있을까요?

일단 날씨 변화에 아주 민감해요. 서울은 늦더위라 밤에도 아직 덥다는데 여기는 낮에 덥다가도 해 떨어지면 ‘자, 지금부터 밤이야’하고 마치 공기가 알려주듯이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요. 서울에서 살 때와는 확연히 다른 맑은 공기도 느껴지고요. ‘서울을 떠나긴 했구나’ 많이 느껴요.



마당에 텃밭도 가꾸시던데, 힘들여 키워 수확하는 재미가 쏠쏠하죠?

그럼요. 땅에서 먹을 것이 나온다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코딱지만한 텃밭인데도 미친 듯이 먹을 게 나요. 여름에는 호박, 가지 상추, 깻잎, 고추 등등 나오는 것마다 반찬 해먹기에 바빠요. 씨를 뿌린 땅에 물을 주면 얼마 후 바로 우걱우걱 씹어 먹어도 되는 토마토가 열리고, 채소들이 주렁주렁 달려요. 얼마나 무공해인지 벌레가 가장 많이 먹는다는 채소가 깻잎인데 우리집 깻잎 보면 구멍이 송송 뚫려서 고기에 싸먹으면 다들 ‘뿅’가요. 방송국 갈 때 같이 일하는 방송작가나 혼자 사는 후배, 친정, 시댁에 밑반찬 해다 주거든요. 이제는 선물을 줄때도 우리 텃밭에서 나는 채소들을 갖다 줘요. 농사짓는 사람들이 추수할 때 조상들에게 제를 올리잖아요. 난 너무 이해가 가는 거야. 정말 어딘가에 대고 감사를 하고 싶어져요. ‘내가 뭘 했다고 이런 것들을 주시나’ 싶은 게. 나보다도 우리 아이 입에 들어갈 음식들이라 생각하니 땅에게 더 감사함을 느껴요. 땅이 사람을 가르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고 이사 오길 잘했다 생각했어요. 서울에서 나고 자라 마흔이 다 되어 온 곳인데 감탄 그 자체예요.


그래도 주로 활동하는 무대가 서울인데 불편한 점은 없나요?

아무래도 서울 오가는 게 힘들지요. 재밌는 건 이곳에 와서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버릇이 하나 생겼어요. 내가 그렇게 차 안에서 혼잣말을 하더라고요. 하하. 옛날에 영화나 드라마에서 혼잣말 하는 사람들 보면 리얼리티 너무 떨어진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러고 있더라고. 서울까지 이동거리가 차 밀리는 것까지 감안해서 최소 두 시간 이상 걸리는데 음악 듣는 것도 한계가 있고, 뭘 볼 수는 없지. 나도 모르게 ‘왜 이렇게 안가는 거야’ 혼잣말을 그렇게 하더라고요. 내가 지금 뭐하는 건가 깜짝깜짝 놀라요. 얼마나 심심했으면.(웃음)


외동딸인 자녀도 여기 생활을 좋아하나요?

딸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인데 여기 초등학교는 한 학년에 한 반씩만 있어요. 공교육인데도 불구하고 대안학교의 성격을 지녀서 공부를 한다는 느낌보다는 체험학습을 위주로 해요. 평소 상상만 했던 환상적인 교육이죠. 쑥 캐서 튀김 해먹고, 산으로 들로 나가고… 덕분에 아주 새까매졌어요. 우리애가 이곳에 와서 시인이 다 됐어요. 맑은 공기에 산과 들을 거닐다 보니 저절로 시가 나오나봐요. 딴따라 4대째라 평범한 끼는 아니겠지만. 내가 연기나 노래 쪽이었다면 우리 애는 그림 그리고, 글 쓰는 데 소질이 있는 것 같아요. 상상력이 풍부하고, 독특한 생각이 담긴 시를 참 잘 써요.



서울 엄마들의 극성스러운 교육열을 익히 알고 계실텐데, 내 아이만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 되지는 않으세요?

전혀요. 신념이 있었으니까 온 거죠. 아이를 공부로 들볶지 않고,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키우고 싶은 마음이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우리 애가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가래 끓은 거 마냥 목소리가 탁하고 맑지를 못했어요. 한번은 소리(배우 문소리)가 놀러왔다가 ‘수린이한테 판소리 시키냐’고 한 적이 있을 정도예요. 그런데 음식조절하고 공기 좋아지니까 아이 목소리도 한결 좋아졌어요.


아이에게 어떤 엄마세요?

좋은 부모의 역할은 아이의 유년기를 행복하게 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여기 와서, 공부 안 시키는 학교에, 매일 놀아주는 엄마 아빠가 있으니 아이가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환경 덕분에 얼떨결에 좋은 부모가 된 셈이죠. ‘최고의 부모는 최상의 부부다’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아이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태어난 환영받은 존재라고 느낄 수 있게 우리 부부는 정말 잘 놀아줘요. 내년이면 결혼 10주년인데 쿵짝이 잘 맞는 엄청난 수다쟁이들이에요. 저는 아이가 나중에 크면 아무것도 안 해주려고요. 나중에 아이가 “나한테 너무 지원이 없는 거 아니야?”라고 따지면 “우리가 네 유년시절에 행복하게 해줬잖아!” 반대로 소리치려고요. 하하.



오지혜는 <지하철 1호선> <날 보러와요> <비언소> 등의 연극을 통해 먼저 알려진 배우다. 이후 영화 출연도 활발하게 하며 <창> <초록물고기> <8월의 크리스마스> <싱글즈> 등으로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오지혜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계기는 그에게 청룡영화제 여우조연상을 안겨준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통해서다. 이 작품에서 그는 그룹사운드 보컬을 했던 주인공의 첫사랑 역을 맡아 억척스런 삶을 연명해가는 여자의 회한을 연기했다. 특히 영화 막바지 나이트클럽의 여가수로 등장해 심수봉의 ‘사랑밖엔 난 몰라’를 부르던 장면은 짙은 페이소스를 자아내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배우 오지혜’하면 아무래도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인희’역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인생의 회한이 담긴 얼굴이 인상적이었어요.

출연한 작품이 별로 없어서 그래요. (웃음) 아무래도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기억에 남죠.



영화 <초록 물고기>와 <8월의 크리스마스> 두 작품에서 모두 한석규씨의 여동생으로 출연하셨죠? <초록 물고기>를 보고 허진호 감독이 캐스팅을 한 건 아닐까, 혼자 추측했었는데요.

허 감독님한테 그런 이야기는 들은 적 없는데…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또 석규형 (그는 남녀공학에 다니는 여대생처럼 한석규를 아주 자연스럽게 ‘형’이라 불렀다) 동생으로 나오니깐 돌아가신 유영길 촬영감독님이 둘이 진짜 남매처럼 닮았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초록 물고기> 찍을 때 첫 대면 하던 자리에서는 석규형이 자기하고 닮았다고 하면서 대뜸 저더러 쌍꺼풀 수술하지 말라고 그랬어요. 우리들의 눈의 시대가 온다고 하면서. 제기랄, 오긴 뭐가 와. 하하. 둘이 정말 남매같이 잘 맞기도 했어요. 별다른 디렉션을 주지 않는 게 허 감독님의 특징인데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할 때 허 감독님이 ‘여기 여동생이 있고 오빠가 집으로 들어오는 설정인데 어떡하죠?’ 그러는 거예요. 말 그대로 어떻게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석규형이 뭐할 거냐고 묻더라고요. 마침 마당에 빨래가 널려 있길래 나는 빨래 걷을 거라고 하고는 형은 뭐할 거냐고 물으니까 ‘나? 난 그냥 들어올게’ 하는 거예요. 하하. 서로 믿는 구석도 있어서 연습 없이 갔는데 한 번에 오케이 됐어요.


스크린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가장 좋아 보였던 작품은 무엇이었나요?

흥행 면에서 큰 반향은 없었지만, <안녕, 형아>에서 아픈 아이의 엄마 역할을 연기하면서 가슴이 많이 아팠고, 기억에 남아요. 제가 그동안 사회문제에 대해 이런저런 관심을 표명했는데, 그 중에 가장 관심이 많은 게 아픈 아이들이에요. 가짜인 줄 알면서도, 머리 깎고 분장한 어린 배우들 보면 매번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실제로 이렇게 아픈 애들이 얼마나 많이 있겠어요. 영화 장면 중에 치료를 포기하라는 의사 말에 포기 못하겠다고 덜덜덜 떨면서 우는 연기가 있었어요. 흔히 말해 극한 감정의 연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카메라 이동이 복잡해서 기술적인 NG가 계속 나는 거예요. 가슴 찢어지는 연기를 일곱 번에 걸쳐 똑같이 연기했어요. 지켜보던 동료 배우가 ‘어떻게 그렇게 연달아서 똑같은 슬픔에 이를 수가 있느냐’고 하던데, 자식 죽는 장면은 70번을 해도 그렇게 해낼 것 같아요. 내 새끼가 그렇다면 지금 생각해도 미칠 것 같애.



오지혜는 사회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특히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 어린이를 돕기 위해 ‘북녘어린이 영양빵공장 홍보대사’로도 활동 중이다. 인터뷰 중간에도 그는 “아이들이 굶어서 죽는다는데, 먹지를 못해서. 굶어서 죽고 있다는데 그건 막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지혜는 연기뿐 아니라 글솜씨도 뛰어나고 말솜씨도 좋다. ‘한겨레21’에 연재한 <오지혜가 만난 딴따라>를 통해 수많은 대중문화계 인사들을 재조명해왔으며, 지금은 라디오 <오지혜의 문화야 놀자>을 진행하고 있다.



부모님과 함께 남편인 이영은 감독의 영화 <이대로, 죽을 순 없다>에 출연하셨죠?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연기생활 하시면서 그렇게 단역을 맡은 적이 없어요. 사위가 감독이라니 선뜻 출연을 하신 거죠. 영화 제작사측에서 우정출연으로 할지, 특별출연으로 할지 물어보는데 제가 그랬어요. “특별출연은 돈을 못 받으니 안되겠고, 우정출연은 가족인데 무슨 우정출연”이냐며 ‘애정출연’으로 넣어달라고요. 그래서 영화 크레딧에는 저희 가족이 애정출연으로 올라갔어요. 엄마는 긴장을 해서 평소 연기보다 못하셨어요. 딸이 감독이면 좀 덜 했을텐데 사위가 만드는 영화니까 더 잘해야 된다고 생각하셨나봐요.



최근 류승완 감독의 영화 <다찌마와리>에서도 잠깐 출연했는데, 다음 작품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배우는 ‘뽑히길 기다리는 꽃밭의 꽃 같은 존재’라는 말이 있어요. 감 밑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게 계획이라면 계획이랄까요. 제 다음 작품은 영화사 제작자나 감독에게 물어봐주세요. 다음 작품에 오지혜 출연시킬 계획이 있는지.(웃음)



인터뷰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자 마침 그의 남편과 아이가 스쿠터를 타고 집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타이밍 한번 정확하다며 서로를 반기는 모습을 보자니 절로 미소가 번졌다. 오지혜 표현대로, ‘쿵짝이 잘 맞는 엄청난 수다쟁이’ 세 사람은 이내 무궁무진한 수다의 세계로, 그들만의 행복의 나라로 성큼성큼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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