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영화잡지 ‘스크린’과 ‘로드쇼’
80년대 영화잡지 ‘스크린’과 ‘로드쇼’
  • 김희준
  • 승인 2008.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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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과 함께 한 팬터지의 세계 / 김희준



[인터뷰365 김희준] 9월 2일 연합뉴스는 일본 발 기사로 일본의 영화전문지 ‘로드쇼’가 11월 21일 발매하는 2009년 1월호를 끝으로 휴간할 예정이라는 기사를 냈다.

‘로드쇼’를 발행하고 있는 슈에샤(集英社) 측은, 한때 35만부 넘게 팔리던 잡지가 인터넷 등에 밀려 최근 평균 5만부 발행에 그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이 그 이유라고 밝혔다.

이 기사를 보니 80년대 영화잡지에 대한 추억이 방울방울 떠오른다.

80년대 국내에는 영화잡지 두 권이 창간됐다. 하나는 84년 3월 창간된 ‘스크린’이고 다른 하나는 그로부터 5년 후인 89년 창간된 ‘로드쇼’였다.

당시 국내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잡지로는 ‘어깨동무’, 십대를 위한 잡지는 ‘여학생’과 ‘하이틴’이, 그리고 여성 전용 잡지로 ‘여원’ ‘주부생활’ 등이 있었으나 영화전문 잡지는 전무했다. ‘선데이서울’ 등에서 연예인이나 연예기사를 다루기는 했으나 영화를 전문적으로 다룬다는 의미에서 처음 창간된 ‘스크린’의 의미는 특별했다.

국내판 ‘스크린’이 창간되기 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일본이나 미국 잡지를 펴들고 잘 못하는 일어, 영어를 가지고 끙끙대야 했다. 아니, 내용은 몰라도 좋았다. 유명한 스타들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컬러로 실려있어 그걸 오려 방안에 붙여놓고 황홀해 했으니까.

그러다가 한글로 최신 외국 영화 소식이나 유명 스타들 뉴스를 볼 수 있는 영화잡지가 생긴 것은 일대 사건이었다. 지금 삼십대는 중학시절에 중년층은 대학 시절에 ‘스크린’을 보며 영화에의 꿈을 키운 사람이 많다. 그만큼 ‘스크린’의 존재는 독보적이었다.

1984년 3월 창간된 ‘스크린’은 일본판 ‘스크린’이 모델이었다. 1950년대부터 발행된 일본판 ‘스크린’은 일본의 영화역사를 대변하는 대중잡지였다. 국내판 ‘스크린’은 기사는 물론 (매우 불법적인 일이지만) 화보사진까지 일본판에 수록된 것을 간간이 그대로 싣기도 했다. 당시는 아직 전세계적으로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없던 시절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일본판 ‘스크린’은 좋은 종이에 선명하게 인쇄가 돼있어 전문용어로 ‘반사분해’가 가능했다. 비록 질은 원본보다 확연하게 떨어졌지만 그만만 해도 독자들은 황홀해 했다.

국내판 ‘스크린’ 창간호의 모델은 당시 전세계적으로 인기있던 십대 스타 브룩 실즈였다. 지금은 케이블TV에서 방영하고 있는 미국 드라마 <립스틱 정글>에서 중년의 영화제작자 모습으로 출연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푸른 산호초> 등의 영화로 전세계를 사로잡은 하이틴 스타였다. 브룩 실즈 외에도 <라 붐>의 소피 마르소, <리틀 로맨스>의 다이안 레인 등이 삼파전을 이루며 인기 높이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었다.

세 명 가운데 가장 인기도가 높은 브룩 실즈를 표지로 내세운 ‘스크린’은 4만부를 찍은 창간호가 다 팔려나갈 정도로 공전의 히트를 쳤다.

화보는 화려했으며 기사는 충실했다. 반사분해한 사진들이 좀 흐릿해도 상관없었다. 외국 스타들이 실리고 영화에 대한 본격적인 해설 기사들이 실린 잡지를 본다는 것만 해도 꿈 같았다. 지금처럼 컴퓨터가 없던 시절이어서 기자들은 2백자 원고지 한 칸 한 칸을 볼펜으로 메우며 기사를 써서 2백 쪽이 넘는 책을 만들어냈다.

‘스크린’이 나오면서 영화는 비로소 제대로 된 정체성을 갖기 시작했다. 딴따라나 하는 것이 영화인 줄 알던 시대를 넘어선 것이다. ‘스크린’을 통해 영화를 다시 보면서 영화는 배우만이 아니라 감독 등 스태프들이 만든 대중예술이라는 인식이 점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스크린’이 영화계에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잡은 지 5년 후 ‘로드쇼’가 탄생했다. 이는 일본판 ‘로드쇼’와 판권 계약을 맺은 잡지로 일본판은 1972년 창간됐다.

‘로드쇼’는 그때도 여전히 인기 높았던 소피 마르소를 표지 모델로 내세웠고 ‘스크린’의 출발과는 달리 필름과 슬라이드로 화보를 만들어 훨씬 선명하고 화려한 화질을 자랑하게 됐다. 영화잡지의 수준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이후 국내 영화잡지는 ‘스크린’과 ‘로드쇼’의 양대 산맥으로 이뤄졌고 좋은 의미에서 경쟁적 동반자 관계를 유지했다.

이 두 영화전문지는 80년대 후반, 그전까지 영화업이 허가제였던 것이 등록제로 바뀌며 한국영화산업이 부흥하는 현장에 함께 했다. 초기 외국 영화나 스타들의 사진에 할애했던 지면들은 점차 국내 영화, 국내 스타들로 바뀌었고 기자가 영화를 비롯한 엔터테인먼트 현장에 직접 나가 취재를 해 생동감을 높였다. 가수 이승철, 개그맨 김미화, 탤런트 최수지 등 숱한 스타들이 이 잡지들의 지면을 빌어 데뷔를 알렸고, 현재 중견 영화인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영화계 인사들은 이 두 잡지에 글을 쓰며 영화 경력을 시작하기도 했다.

당시 감독 지망생이었던 박찬욱 감독은 일반 사람들이 잘 모르는 컬트적인 비디오를 소개하는 독특한 글을 썼으며 영화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김소영, 유지나 씨 등도 각각 뉴욕, 파리 통신원으로 ‘스크린’에 글을 썼다. 또 영화평론가 정성일 씨는 창간한 ‘로드쇼’의 편집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영화잡지 시장은 지각변동이 일어나 월간지 리듬에서 주간지 리듬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스크린’과 ‘로드쇼’는 점차 입지가 좁아져 결국 ‘로드쇼’는 폐간하고 말았다.

이제 일본 ‘로드쇼’까지 휴간을 한다니 80년대 양대 산맥 가운데 하나는 영영 없어지는 것 같아 아쉽다.

하지만 “내 청춘을 ‘스크린’ 또는 ‘로드쇼’와 함께 보냈다”고 추억하는 사람들이 많은 동안, 이 두 잡지의 잔영은 여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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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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