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에서 캐내는 생명과 환희
비무장지대에서 캐내는 생명과 환희
  • 정중헌
  • 승인 2008.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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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사진작가 최병관 / 정중헌

 

 

 

 

[인터뷰365 정중헌]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올해로 58년이 된다. 국토를 폐허로 만들고 백성을 가난과 원한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6.25가 다가오는 요즘, 나라는 온통 쇠고기 파동과 촛불집회로 바람 잘 날이 없다.

 

흙더미 속에서 먹을 것이 없어 맹물로 배를 채우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래서 이밥에 쇠고기국 먹어보는 것이 그 시대 최대의 갈망이었는데, 지금은 미국산 쇠고기 불안해 못 먹겠다니 우리 같은 세대는 금석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다. 38선 비무장지대를 사이에 두고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데도 6.25는 기억 저 편의 슬픈 전설로 잊혀지고 있다. 6.25는 진정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며, 우리 뇌리에서 잊혀질 수 있는 일일까?

 

이런 바보 같은 의문은 사진작가 최병관을 만나면서 한 순간에 풀렸다. 그가 카메라의 눈으로 기록하고 현상해 낸 DMZ 작품과 경인선 복원 기록 사진에 6.25의 잔영은 결코 지워지지 않았으며, 남과 북의 이질성은 생각보다 골이 깊고 심각했기 때문이다.

 

 

■ DMZ의 상흔과 자연을 담는 작가

 

6월 20일부터 7월 19일까지 경기도 양평에 소재한 사진 전문 갤러리 와(031.771.5454)에서 ‘생명, 환희, DMZ’라는 주제로 초대전을 갖는 최병관 작가는 예술과 다큐멘터리 작업을 넘나드는 전천후 작가이나, 그의 이름 앞에는 ‘DMZ 사진작가’라는 애칭이 붙는다. 건군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국방부와 육군본부가 선정한 DMZ 촬영 작가로 위촉되어 민간인에게는 엄격히 통제된 비무장지대의 전쟁 상흔과 미답의 자연 비경을 찍을 수 있는 행운을 가졌기 때문이다.

 

최 작가는 1997년부터 2년간 휴전선 155마일을 도보로 3번 왕복하며 작업한 작품으로 <회한과 긴장, 그리고 소망의 땅 휴전선 155마일>전을 서울을 비롯한 전국 8개 도시에서 가졌다. 이어 일본 동경도 사진미술관과 하와이에서 초대전을 가져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번 초대전은 인천 소래에 파묻혀 작업만 해오던 제가 세상과 소통하는 계기이자 아티스트로서의 본격 출발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작품의 주제도 일반에게 친숙한 ‘걷고 싶은 길’, 제 고향을 주제로 한 ‘바다가 그리워질 때’, 예술성을 살린 ‘환희’ 등 세 가지로 잡아 신작 위주로 꾸미려 했어요. 그런데 갤러리 와 김경희 관장이 ‘DMZ'는 꼭 넣어야 한다고 해서 포함시켰는데 지역으로 보나 시의로 보나 잘한 것 같습니다.”

 

 

■ 자연광으로만 연출한 빛과 색채의 향연

 

이번 초대전을 위해 그가 직접 편집 제작한 사진집에는 필터나 후드를 쓰지 않고 트리밍도 전혀 하지 않은, 오로지 자연광으로만 연출한 빛과 색채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으나, 그래도 시선이 ‘생명의 땅 DMZ'에 먼저 가는 것은 6.25 전쟁 체험세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최병관의 비무장지대 사진에서 눈꽃으로 덮인 겨울의 철책선은 분단의 흉물이라기보다 대지에 세운 거대한 설치예술처럼 아름답고 평화롭다. 그 너머로 광활하게 펼쳐지는 눈 덮인 산하, 그러나 그곳은 왕래가 안 되는 북녘이라는 현실이 가슴을 짓누른다.

 

녹슨 철모의 구멍을 뚫고 나온 이름 모를 풀꽃, 비무장지대 장단 역에 멈춰 선 철마는 잡초에 묻혀있다.

 

“총탄 구멍이 숭숭 뚫린 저 녹슨 철모의 주인은 하늘나라에서 이 땅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겠지요. 저 녹슨 기차에 타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어둠이 깔린 자유의 다리, 철조망의 사계와 야생화로 넘어가던 최 작가의 눈길은 두 장의 사진에 멈춘다. 하나는 야산의 탱크를 가로막고 선 듯 한 파란 하늘의 흰 십자가, 또 한 장은 야간 근무에서 돌아와 애인이 보낸 편지를 뜯어보지도 못한 채 곤한 잠에 빠진 병사의 모습이다.

 

“체감 온도 영하 40도의 살을 에는 혹한 속에서 초소의 병사들은 눈을 을 부라리고 긴장과 고독을 견디며 경계근무를 합니다. 어느 날 동틀 무렵 내무반을 돌아보는데 한 병사가 곤한 잠에 빠져 있더군요. 그런데 병사의 손에는 후방의 여자 친구가 보낸 편지가 뜯기지 않은 채 쥐어있었어요. 저는 창틈으로 새어든 햇살을 최대한 활용하여 잠자는 병사의 모습을 찍었습니다. 조심스럽게 셔터를 누르는 데 눈물이 왈칵 쏟아져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 야생화 찍다 지뢰도 밟아

 

비무장지대에서 2년간 수백 고지를 걸어서 오르내리며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이만저만한 고생이 아니었다. 여기 저기 지뢰밭이어서 수색 팀이 선도하는 길만 가야 하는데 한 번은 눈 속을 뚫고 나온 야생화가 너무 아름다워 자신도 모르게 다가섰다가 지뢰를 밟은 적도 있다.

 

“제가 발을 떼면 모두가 죽거나 다치는 찰나에 경험 많은 리더가 침착하게 지뢰를 제거해 한 숨을 내쉰 적도 있습니다.”

 

실향민도 아닌 그에게 비무장지대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언젠가는 비무장지대가 해제되고 평화가 깃들 날이 오겠지요. 그 때까지 환경도 많이 변할 겁니다. 제가 그 어려운 다큐멘터리 작업에 도전한 것은 우리의 아픔과 통한이 서린 역사의 현장과 자연을 기록으로 남겨 후대에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진으로 표현 못한 감회들은 글로 썼습니다. 사진과 글을 제가 직접 편집하고 디자인하여 책으로 만든 것도 자료로 남기기 위해서 입니다.”

 

 

■ 경의선 복원 현장 미발표작 전시가 꿈

 

그런데 최 작가는 어렵게 참여했던 경의선 복원 현장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을 아직 전시도 못하고 책으로 내지 못한 것을 몹시 아쉬워하고 있다.

 

“2000년 6월 5일 남북 공동선언으로 경의선 철도 연결이 공표됐습니다. 그 해 9월에 우리 측 건설지원단이 도라산 역에서 발대식을 열고 18일 비무장 지대에 투입됐습니다. 지뢰 제거 작전을 펴 1년 만에 도로가 완공되어 3년 후인 2003년 10월 31일 연결 공사를 마쳤습니다.”

 

최 작가는 경인선 철도 연결 작업에 참여해 전 과정을 카메라로 촬영, 방대한 분량의 사진을 만들었다.

 

“그때 수거된 전쟁 잔해물이 엄청난 양입니다. 그 잔해물들을 박물관에 보존하고 제가 찍은 기록들은 책으로 만들고 전시도 하는 것이 당초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가 세운 계획 자체를 없애버렸습니다. 당시 수거된 전쟁 유물들도 아마 흩어져 버렸을 겁니다.”

 

최 작가는 비무장지대에 버려진 가재도구, 잡초에 뒤덮인 역과 끊어진 다리들, 그리고 병사들의 지뢰 제거 작업과 철길 공사 현장. 북한군의 작업 과정과 주변 풍경을 찍었다.

 

 

 

 

 

 

“북한군의 작업을 지켜보며 가슴이 아팠습니다. 체구가 작고 바짝 마른 군인들이 삽과 가래로 경사면 다지기 공사를 했고, 철도 연결 공법도 60년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더군요. 우리 측이 만든 동물 이동 통로를 이해하지 못할 만큼 남북 간 수준이나 이질감의 격차가 심했어요. 북한 수준이 올라가지 않고서는 통일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병관 작가는 정부나 독지가가 경의선 복원 사진 작업을 책으로 엮을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한다.

 

“경의선은 남과 북을 잇는 평화 번영의 실크로드가 되어야 합니다. 사진 자료들은 제 힘으로 가제본 해놓았지만, 제 작업실에 쌓여있는 미 발표작들을 국내외에서 전시하고 싶습니다.”

 

 

■ 독학으로 사진 공부한 자유인

 

작가 최병관은 한마디로 자유인이다.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했고, 태어난 소래 포구를 떠나지 않았으며, 팔 목적으로 작품을 하지도 않았다.

 

“자유롭게 살기 위해 사진작가의 길을 택했습니다. 물질과 명예를 좇았다면 이 힘든 작업을 벌써 접었을 것입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자신의 길만 걷다보니 중앙의 사단(寫壇)에서 그는 소외당했다. 전문성과 예술성, 작업량에 비해 그의 이름은 별로 알려지지 못했다.

 

아마 5년 전 지금의 아내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는 고집스레 자신의 작업에 함몰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인천시 문화상을 받았을 때 지역 유지가 자신의 부인 친구인 한복희씨를 소개해 오붓한 가정을 꾸리면서 최 작가의 작업과 소통 방식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연극배우 한상미'로 잘 알려진 한복희씨는 <극단 산하> <창고극장> <실험극단>을 거쳐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연극과 영화에 출연해온 중견 배우로 독신을 고집해오다 뒤늦게 짝을 찾았다. 지금 한씨는 기획자로 매니저로 남편을 외조 하느라 분주하다.

 

갤러리 와의 이번 초대전은 작가 최병관이 DMZ 작가에서 빛의 예술가로 폭을 넓히는 중요한 모티브가 되고 있다.

 

“제 사진 주제는 모두 자연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하늘에서 빛이 내려와 자연과 마주할 때 생겨나는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색깔들은 과학의 논리로 는 풀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 제일가는 화가라 할지라도 자연이 빚어내는 색깔만큼 아름답고 고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사진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카메라를 이용해 사람이 만드는 것”이라고 명료하게 답했다. 빛이 자연에 떨어지는 색을 작가의 의지로 연출해서 포착한다는 것이다.

 

“해가 있을 때 좌우상하 노출이 서로 다른데 카메라를 이용해 빛을 어떻게 얼마나 쪼개서 잡아내느냐가 관건입니다.”

 

자연광만을 이용하는 그는 결코 후드나 필터를 사용하지 않으며, 찰칵하는 순간에 모든 작업을 끝내기 때문에 일체의 트리밍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색 보정도 물론 하지 않는다. 자기가 원하는 감정이 나올 때까지 숱한 작업을 계속 하지만 감정이입이 안 된 필름은 몇 자루씩 버리기 일쑤다.

 

 

■ 25년 전 카메라로 담아내는 삶의 풍경

 

그의 카메라는 25년 전 단종(斷種)된 니콘 F2다. 디지털 시대에 그는 아날로그를 놓지 않는다. 요즘 카메라로는 손맛도 느끼지 못하고 원하는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인이며 사진작가인 최병관은 매사에 호기심이 많아 주제가 풍부하다. 나뭇결 등 계속 추적 중인 주제만 30여 개에 달한다. 처음 작업은 소래 포구의 명물인 염전을 찍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염전이 사라진 자리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그의 옛 사진들은 추억이 돼버렸다.

 

이번에 발표하는 오솔길과 바다는 우리 주변의 풍경들이 이렇게 아름답고 색감 곱고 정겹고 그림 같다는 생각을 새삼 할 만큼 눈을 즐겁게 만든다.

 

특히 세 번째 주제인 ‘환희’는 빛의 예술 사진의 개성을 극대화 시켜 강렬한 인상을 안겨 준다. 유화나 채색화와는 색감이 다른 추상회화의 구도와 색채들이 보는 이들을 사로잡는다.

 

“사진을 시작한지 3년 만에 카메라를 버렸습니다. 그림보다 예술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 어머니께서 ‘오직 한 우물을 파야 맑은 샘물을 마실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다시 중고 카메라를 장만하며 화가들이 그리는 그림보다 아름다운 사진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사진은 할수록 어렵다고 말하는 최 작가는 “이제야 사진에 대해 조금 알 것 같다”고 겸손해 한다. 한복희씨와 새 보금자리를 꾸민 후부터 술도 끊고 작업에만 매달린다는 그의 미소에서 작가의 순수성이 느껴졌다. 왜 이런 작가가 주목을 끌지 못하는지 우리 사회와 화단 구조를 이해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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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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