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정 대사의 미국 서부 여행스케치](16) 은퇴자의 천국 산타바바라, 그리고 귀국
- 24일간의 미국 여행을 마치며
▶(15) 기차타고 산타바바라로...서부개척시대 역마차 같던 암트랙 이어서
인터뷰365 장시정 칼럼니스트 = 9월 29일이다. 내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비행기를 타고 귀국길에 오르니 오늘이 사실상 마지막 미국 여행날이다.
아침에 일어나 방문을 열어보니 간밤에 비가 왔다. 산타바바라는 건조한 지역인데 비가 왔다면 좋은 일이다. 나중에 체크아웃을 하면서 물어보니 그래도 일년에 20일 정도는 비가 온다하니 그렇게 건조한 지역은 아닌 것 같다.
아침 식사후 해변으로 나갔다. 발길 닿는대로 가까운 데로 가다보니 스턴스와프(Stearns Wharf)란 곳이다. 바다 한가운 데로 나무 다리를 길게 만들어 배가 정박할 수 있게 만든 곳이다. 19세기 중반에 만들어 졌다 한다. 여행 중 오랜만에 만난 흐린 날이다. 구름과 나, 그리고 바다를 쳐다본다. 내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의 노인인가? 난 먼 바다에서 사나운 청새치를 잡기는 커녕 낚시도 안하는 사람이다. 지나친 비약이다.
다시 호텔로 돌아가 체크아웃을 하고 룩삭을 메고 이곳의 중심 거리인 스테이트 스트리트(State Street)로 나섰다. 정갈한 스페인풍의 건물들이 예쁜 거리다. 유명 관광지다운 정경도 연출하고 있다. 산타바바라는 은퇴한 시니어들이 많이 모여 산다고 한다. 방문자센터에서 물어보니 리비에라(Riviera)나 몬테시토(Montecito) 같은 고급 주택가들이 있다고 한다. 레이건 대통령도 이곳에서 은퇴생활을 했다.
내가 외교관 생활을 하는 동안 만난 외교단 동료들 중 미국 친구들이 선호하는 은퇴지는 주로 플로리다나 대서양 섬들이었다. 지금은 플로리다의 물가가 많이 비싸져서 미국인 은퇴자들의 선호지가 바뀌었다 한다. 애리조나의 투산(Tucson)이나 텍사스의 코퍼스 크리스티(Corpus Christi), 조지아의 아테네(Athens) 등지가 그 대안이라 한다. 독일 외교관들은 말타나 이스탄불을 거론했다. 이스탄불을 선호한다는 친구는 그곳이 물가가 너무 싸서 좋다고 했다. 나는 어디로 가야할까?
암트랙 버스를 타고 베이커즈필드(Bakersfield)로 향했다. 프레즈노로 돌아가기 위해서 였다. 로스엔젤레스 로 가는 101번고속도로를 남쪽으로 타고 가면서 여러 곳에 들러 승객을 태우고 내렸다. 벤투라(Ventura), 옥스나드(Oxnard), 산타 파울라(Santa Paula)등 4~5 군데를 들려 5번 고속도로로 험준한 산악 지대를 거쳐 피라미드 레이크를 지나 베이커즈필드에 도착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 고속도로
그런데 산타 파울라(Santa Paula)에서 126번 고속도로를 들어서자 '한국전쟁 참전용사 고속도로(Korean War Veterans Highway)'라는 입간판이 고속도로 옆에 세워져 있었다. 한참 후 5번 고속도로에서 다시 똑같은입간판을 보았다. 이 나라가 바로 우리의 혈맹 미국이 아닌가, 그렇다면 한국전 베테랑들이 피를 흘려 싸운 우리나라에서 이들의 헌신을 기억할 수 있는 고속도로가 있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미군 중 제일 먼저 한국전에 투입된 스미스 중대가 오산 전투에서 싸웠다. 오산을 지나는 고속도로라, 경부고속도로다. 이 고속도로의 별칭을, 적어도 오산- 천안 구간만이라도 스미스 부대 메모리얼 고속도로라고 명명하면 좋겠다.
4시가 다되어 베이커즈필드에 도착해서 10여분 후 출발하는 프레즈노행 암트랙 기차를 탈 수 있었다. 이제 캘리포니아 레일 패스(California Rail Pass)를 갖고 3박 4일 간의 기차 여행을 마쳤다. 캘리포니아 가운데를 네모를 그리며 돈 셈이다.
24일간의 미국 여행,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다
9월 30일, 지난 24일간의 미국 방문, 여행을 마치고 귀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12시간 반 만에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날짜가 바뀌어 10월 1일이 되었다.
인천 공항은 언제 봐도 번듯하고 매끈하다. 세계 어디에다 내놔도 손색이 없다. 활주로는 몇 백 톤 무게의 항공기가 내려찍는 만큼 그 지반이 단단해야 하기 때문에 보통 난공사가 아니다. 인천공항은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의 갯벌을 메운 후 5년 만에 세계 제일의 공항을 만들어 냈다. 과거 동베를린의 쉐네펠트 공항을 개조하여 2020년 10월 완공된 베를린 신공항은 14년이 걸렸다. 우리의 기술력과 집중력이 대단하지 않나.
이질적이지만 결집력이 큰 미국
미국은 역시 큰 나라다. 인종의 용광로란 말이 있듯이 대단히 이질적인(heterogeneous) 나라다. 그러나 미국의 국가 결집력은 대단하다. 미국 사회의 전문가 집단과 상층부를 관통하는 애국심과 미국 정신은 이토록 복잡다단한 사회를 무리 없이 이끌고 있다.
1990년 여름 보스턴에서 한 달 이상 머문 적이 있었는데, 당시 미국은 이라크와 전쟁 중이었다. 내가 유숙하던 보스턴 교외의 주택가는 전쟁의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는 미국의 한 부자 동네였지만 집집마다 나부끼는 성조기의 물결에서 미국이 전쟁을 하고 있다는 긴장감이 묻어나는 듯했다.
내가 함부르크에서 만난 일본학 전공의 한 교수는 미국에서 살 때 미국인들의 애국심에 놀랐다고 했다. 학교에서는 아침마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했고 농구 경기 도중에도 국가를 제창했다 한다. 독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다고 했다. 이런 것들이 이질적인 사회를 결집시키기 위한 정치적 상징 조작 일수는 있지만, 한국의 현실과 비교할 시 자괴감이 든다. 한국 사회는 낯 거죽은 동질적이지만 뇌는 이미 미국 사회의 겉보기 이상으로 이질적이다. 미국에 있는 동안 맨날 그 밥에 그 나물이던 한국 뉴스를 보지 않아서 좋았는데, 이제 다시 그 뉴스를 접하게 되니 벌써부터 식상한다.
미국 여행 중 페이스북에 18편의 포스팅을 했다. 낮에 엄청 다니다가 밤에 글을 쓴다는 건 도무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호텔 방에서, 태평양 해안을 달리는 기차 안에서, 그리고 귀국행 비행기에서까지 기를 쓰며 썼다. 옛 선인들의 주경야독을 생각해 본다. 몸은 시달린 것 같은데, 2㎏가 불어서 돌아왔다. 맥주살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