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추억을 소환하는 윤석화 아카이브 연극 '자화상 1'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추억을 소환하는 윤석화 아카이브 연극 '자화상 1'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21.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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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편의 하이라이트 공연은 아름답고 짠했다
윤석화 배우의 '딸에게 보내는 편지'(1992년)/사진=산울림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나는 배우입니다...”

암전되었던 무대가 밝아지면서 샤막에 뜬 이 자막이 왜 그렇게 가슴에 꽂혔을까.

화가 조덕현이 헌정한 '윤석화 오마주' 이미지가 투시된 샤막 뒤편에 환영처럼 나타난 윤석화가 “나는 배우입니다...”를 수어(手語)로 연기하는데 그 연기가 육필(肉筆)로 쓰는 시(詩)처럼 처연하고 강렬했다.

배우 윤석화가 고백한 '자화상(自畵像)'은 아름답고 짠했다.

“나는 배우입니다.

50년 가까이 환호와 갈채를 받았습니다.

무대 위의 불빛과 갈채가 화려할수록

그 뒤안길의 그림자는 길고

낯설고 외로운 길이기도 했습니다.

다시 부를 노래를 꿈꾸어 봅니다.

그 담대한 자유를 노래하고 싶습니다... ”

소극장 산울림에서 공연 중인 윤석화 아카이브 '자화상 1'은 공연이지만 구성이 색달랐다.

60대 중반의 여배우가 타임머신을 타고 30여년 전 자신의 모습을 무대 위에 재현한 아카이브(archive : 보존할 가치가 있는 자료를 기록하고 보관하는 것) 연극은 필자에게 아련한 향수를 일으켰다.

더욱이 그 장소가 투병 중인 연출가 임영웅 선생이 만든 산울림소극장이고, 다시 올려진 레퍼터리가 임 선생이 배우 윤석화에게 선물한 '하나를 위한 이중주'(1988년)를 비롯, 손수 연출한 '목소리'(1989년), '딸에게 보내는 편지'(1992년)이고 보니 추억이 주마등처럼 흐르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목소리'(1989년)/사진=산울림

연기 인생 50년을 앞둔 배우 윤석화가 돌이켜 본 자화상은 돌꽃이란 이름처럼 아름답고 화려했지만, 때로는 세파에 흔들리고 상처받는 갈대였고, 그럼에도 굳건히 무대를 지켜온 나무 같은 연기자로 자신을 표현했다.

“세찬 비가 내리고 미운 내가 보입니다/간혹, 햇살이 비추일 때는/자랑스러운 내가 보입니다”라는 대목에선 윤동주의 명시 '자화상'이 떠올랐다.

프로그램의 글처럼 “연극은 그의 자존심이었고, 폭발하는 에너지와 강렬한 존재감으로 관객을 사로잡은 그의 연기는 매력 그 자체”였다.

신문의 연극 기자였던 필자는 윤석화가 1975년 민중극단의 '꿀맛'으로 데뷔했을 때부터 '신의 아그네스'와 산울림 전성시대, 그리고 최근 공연까지 그의 무대를 거의 보았다. 열정과 노력을 평가했고 격려와 성원을 아낒 않았다. 그의 단점을 시비할 때도 필자는 “자신의 결점까지도 연출해내는 만능연기자 윤석화”라고 비호했었다.

지금도 필자는 “배우 윤석화는 자신을 연출할 줄 아는 연기자”라고 생각한다. 연기뿐 아니라 연출, 기획, 제작 등을 두루 섭렵해온 노하우가 이번 아카이브 공연을 가능케 했다고 본다.

왼쪽부터 임수진 극장장, 배우 윤석화, 필자.

시리즈로 이어간다는 '자화상'은 자신을 연출하는 윤석화의 맨 얼굴이기에 관객의 반응이 더욱 뜨거웠다.

소극장을 채운 관객들은 어쩌다 온 분들이 아니고 윤석화의 찐 팬들이었다. 보통의 경우 연극을 감상하는데, '자화상' 관객들은 응원의 함성부터 공감의 박수까지 연극 속의 한 요소로 작동했다. 그것이 윤석화를 무대에 혼자 서게 하는 동력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날 공연은 모노 연기로 펼친 '자화상' 수어 연기로 시작해 세 편의 히트작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하나를 위한 이중주'(1988년)/사진=산울림

첫 무대는 '하나를 위한 이중주'.

5개월 간 롱런한 초연에는 신구와 최종원이 상대역으로 출연했는데 이날은 김상중 배우가 목소리로 관객과 만났다.

다발성 경화증으로 인해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음악을 포기해야 하는 스태파니가 정신과 의사와 벌이는 팽팽한 긴장을 윤석화는 홀로 실연으로 펼쳐냈다. 휠체어에 앉아 복잡미묘한 감정을 표정과 몸짓과 대화로 표출하는 윤석화의 연기는 세월만 흘렀을 뿐 결코 녹슬지 않았다. 특히 30초도 안되는 막간에 서너 번의 의상을 바꿔입는 순발력은 젊은이도 따라하기 힘들 정도였다. 암전되면 무대 뒤로 뛰는 모습에 프로정신이 묻어났다.

두 번째 무대는 장 콕토의 1인극 '목소리'.

사랑하는 남자로부터 버림받은 한 여자가 전화로 죽어가는 사람을 구해보려는 사투를 긴 독백으로 펼치는 어려운 역할이다. 전화기 한 대에 의지해 관계를 이어가는 연기를 보면서 윤석화가 왜 모노드라마 전문배우인지를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1992년 산울림의 히트작 '딸에게 보내는 편지'/사진=산울림

세 번째 무대는 1992년 산울림의 히트작 '딸에게 보내는 편지'로 윤석화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모노드라마다.

30여분간 윤석하는 노래하며 눈믈 흘리며 열연을 펼쳤다. 딸의 목소리까지 연기하며 전성기 때의 모습을 펼치는 그의 모습에서 나이는 읽혀지지 않았다. ‘우리들의 시간’이라는 최재광 작곡의 노래는 '자화상' 공연의 하이라이트로 관객을 매료시켰다.

세월이 흘러 연기와 목소리가 예전과 같진 않았지만 찐 팬 관객들은 그런 윤석화의 연기와 노래까지도 사랑한다는듯 열광의 박수를 보냈다.

세 편의 무대를 보면서 필자는 윤석화의 장점인 눈물 연기가 여전한지 궁금했다. 기자 시절 그가 8개월 이상 롱런한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여러 차례 보았는데, 라이브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눈물 흘리는 타이밍을 놓친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날도 조명에 반사된 눈물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30여년 전 자신의 모습을 무대 위에 재현한 아카이브 연극 '자화상 1' 커튼콜 무대에 오른 배우 윤석화/사진=정중헌

윤석화는 타고난 재능도 있지만 이처럼 피나는 노력으로 현장 예술인 연극의 아우라를 살려냈기에 관객 파워를 이어올 수 있었다고 본다.

윤석화의 또 하나 매력은 관객과의 대화 형식으로 진행하는 커튼콜이다. 관객들에게 감사한다는 대목에서는 여지없이 눈물을 흘렸다. 자신을 산울림 무대에 서게 한 임영웅 연출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인사도 빼놓지 않았다.

그런데 스포서와 후원자 소개 전 뜻밖에도 “이 자리에는 50년 가까이 제 연기를 지켜본 정중헌 선생님이 계셔 떨렸다”는 멘트를 하는게 아닌가. 고마웠고 한편으로는 쑥스러웠다.

공연 후 산울림 카페에서 맥주 한 병 나눠 마시며 담소한 순간도 좋았다. 이 자리에는 이날 하우스 매니저를 자청한 뮤지컬 가수이자 연기자인 전수경 배우와 임영웅 선생의 따님이자 산울림 소극장을 운영하는 임수진 극장장, 무대미술가 이인애 디자이너 등이 함께 했다. 윤석화 배우는 필자에게 ‘1일 극장의 하우스 매니저’를 제안했다.

10월 20일 개막한 '자화상 1'은 11월 21일까지 (수 3시 8시, 목금 8시, 토일 3시 공연, 월화 공연없음) 계속된다. 그중 하루, 필자는 하우스 매니저를 하게 될 것 같다.

여러 스태프들과 협업으로 이루어진 윤석화의 아카이브 공연 '목소리'를 보면서 1982년 필자가 산울림 프로그램북에 쓴 “배우 윤석화는 자신을 연출할 줄 아는 연기자” “과일이 익을수록 맛이 드는 것처럼 윤석화라는 배우는 연륜이 더할수록 숨은 매력이 솟아난다”는 평문이 지금도 유효하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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