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인터뷰] 울산 대형복합 화재 현장서 22명 대피 이끈 미담의 주인공, 이승진 수의사
[신년인터뷰] 울산 대형복합 화재 현장서 22명 대피 이끈 미담의 주인공, 이승진 수의사
  • 김리선 기자
  • 승인 2021.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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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 삼환아르누보 화재 당시 혼란에 휩싸인 입주민 22명 대피 이끈 이승진 씨
- 초고층 33층 거주했던 이 씨 "입주 당시 대피경로 미리 파악해"
- 울산 삼환아르누보 대형 화재였지만 사상자 ‘0’의 기적 일궈
- 소방 공무원에 500만원 기부..."화재 당시 헌신한 소방관들에 대한 존경심"
- 30년간 수의사로 활동...생명존중대상 수상금 유기동물보호센터에 쾌척하며 선한영향력 이어가
- "제 행동보다 과분한 관심...사회에 환원하고 싶다"
사진=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울산 삼환아르누보 화재 당시 위험 속에서 적극적인 구조활동을 펼친 이승진(이승진동물의료센터 대표 원장) 씨. 갑작스러운 화재로 혼란에 휩싸인 입주민 22명을 안전 지대로 무사히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국무총리 표창과 생명존중대상 등을 수상했다. 이 씨는 "제가 한 행동에 비해 과분한 상"이라고 겸손해하며 "많은 관심을 받은 만큼 사회에 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사진=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인터뷰365 김리선 기자 = 지난해 10월 8일 밤 11시경. 울산 남구에 위치한 33층 주상복합아파트에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강풍까지 불면서 건물 상층부까지 불길이 치솟았다. 대형 화재였다. 거센 화마 속에서도 사상자 수는 0명. 살신성인했던 소방관들 뿐 아니라 긴급한 상황에서 신속하게 대피해 침착하게 구조를 기다린 주민들이 일궈낸 기적 같은 일이었다.  

주상복합아파트 삼환아르누보 화재 당시 위험 속에서 적극적인 구조활동을 펼친 미담의 주인공이 있다. 갑작스러운 화재로 혼란에 휩싸인 입주민 22명을 안전 지대로 무사히 이끈 이승진(1965~) 씨다.

잠을 자다 화재 경보로 깬 그는 심상치 않은 상황을 감지하고 신발을 신을 겨를도 없이 아파트 옥상을 향해 뛰었다. 옥상문 앞에는 밖으로 나가지 못한 입주민 22명이 있었다. 대피 경로를 알고 있던 이 씨는 안전 지대를 확보해 주민들을 무사히 옥상 위 헬기장까지 대피시켰고, 소방관의 안내에 따라 비상계단을 통해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 씨는 급박했던 당시 대형 화재 현장을 떠올리며 "입주 당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옥상, 비상통로, 대피경로를 미리 파악 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곤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줘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의 용감한 활약상이 알려지면서 화재현장에서 인명구조 활동 공로를 인정받아 국무총리 표창, 울산 시장 감사패를 비롯한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수여하는 생명존중대상 등을 수상했다. 그는 "제가 한 행동에 비해 과분한 상"이라고 겸손해했다. 

이 씨는 현재 울산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수의사(이승진동물의료센터 대표 원장, 수의외과 박사)이자 울산수의사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생명존중대상 상금으로 받은 1000만 원을 유기동물보호센터 시설 개선을 위한 비용으로 쾌척했다. 또 소방 공무원들을 위해 써달라며 500만 원을 기부하는 등 선한 영향력을 이어가고 있다. 

<인터뷰365>가 이 씨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화상 속 그의 모습 뒤에는 손글씨로 빼곡한 '울산 삼환 아르누보 화재 생존자 일동'이라고 쓰인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인터뷰365>와 화상으로 인터뷰 중인 이승진 씨. 그의 모습 뒤에는 '울산 삼환 아르누보 화재 생존자 일동'이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있다. 

- 뒤에 보이는 현수막은 무엇인가요.

"화재 당시 관심을 가져준 모든 분들께 고맙다는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제작했습니다. 손글씨는 거주민들이 직접 쓴 것이죠. 대형 화재 현장에서 단 한 명의 희생자 없이 모든 입주민이 구조될 수 있었던 건 TV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본 국민들의 마음, 그리고 헌신적인 노력을 해주신 소방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입주민들에게 제안해 감사의 편지와 손글씨 현수막을 제작하게 된 거죠. 100명 이상의 주민들이 동참했습니다."

- 사상자 0명은 해외에서도 주목을 받은 만큼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아파트 화재 당시 화마에 휩싸인 외관의 모습이 매우 위험하고 급박해 보였는데, 당시 상황은 어땠나요.

"자다가 화재경보가 울려서 깼는데 냄새가 심상치 않았죠. 거실로 나오니 연기가 자욱했어요. 거실 등을 켜고 1-2분 있다 에어컨 배관이 터지면서 정전이 됐어요. 그러면서 연기가  갑자기 확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큰일 났다 싶었죠. 부랴부랴 수건을 찾아 물에 적셔서 입을 막은 후 나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현관문이 안 열리는 겁니다. 아무리 당겨도 꿈쩍을 안 해요. 고장이 났나 큰일 났구나 싶었는데 문을 밀지 않고 당겼던 거죠. 문을 밀어야 할지 당겨야 할지 파악이 안 됐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어요. 신발도 못 신고 맨발로 뛰쳐 나갔으니까요."

2020년 10월 8일 밤 11시경 발생한 울산 주상복합아파트 삼환아르누보 화재 당시 모습./사진=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영상 캡쳐

- 몇 층에 거주하셨던 겁니까.

"33층으로 꼭대기 층이었습니다. 당시엔 우선 옥상으로 피하자 싶었습니다. 고층 거주는 처음이라 입주 당시 화재 대피 상황을 예상해 비상통로와 옥상 구조, 옥상 위 헬기장 위치까지 건물 구조를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집이 부산인데 근무지가 울산이라 임시 숙소로 사용하고 있었거든요. 숨을 참고 급하게 달려 나가다 복도에서 넘어지기도 했어요. 나중에 보니 근육이 파열되어 일주일 동안 다리도 절뚝거리며 다녔지요.

공동 테라스 쪽으로 나가 비상구 문을 열고 옥상 쪽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옥상 출입구 쪽에 불안에 떨고 있는 22명의 주민이 모여있더라고요. 처음엔 옥상문이 잠겨있는 줄 알았어요. 옥상 바깥 상황을 모르니 섣불리 밖으로 피신할 엄두를 못내고 발을 동동구르고 있었던 다급한 상황이었어요. 시간이 지체되면 모두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우선 옥상문을 뚫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앞쪽으로 나가서보니 옥상문이 열리더라고요."

- 옥상 상황은 어땠나요. 

"바람에 날려온 외장재로 옥상 절반이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어요."

- 오도 가도 못하는 급박한 상황이었겠군요. 

"주민들에게 옥상에서 안전하다고 보이는 장소까지 피신을 유도했습니다. 비상계단에 있는 것보다는 훨씬 안전할 것 같았죠. 20-30분 후 소방관분들이 올라왔어요. 비상 계단을 통해 피신할 것이라고 말씀하셔서 다들 대기하고 있는데 옥상에 연기가 굉장히 많이 밀려왔습니다. 더 기다리면 다들 위험해지겠다 싶었는데, 헬기장이 생각났어요. 소방관에게 헬기장의 위치를 말씀드렸고 그 곳으로 모두 안전하게 피신할 수 있었습니다. 모두들 헬기장에서 2시간 정도 차분하게 대기했고, 소방관들의 지시에 따라 비상통로를 통해 무사히 구조될 수 있었던 거죠."

- 헬기장에서 대기하던 심정은 어땠나요.   

"맨발에 얇은 티셔츠 하나 걸치고 피신했는데 당시 기억나는 건 너무 춥다는 생각이었어요. 제가 추위를 많이 타다 보니 너무 추웠거든요. 추운 것이 죽는 것보다 싫구나 그런 생각도 했던 것 같습니다. 이 일을 겪고 나니 화재의 무서움을 느꼈어요. 화재현장에 가보니 바닥부터 천장까지 탈 수 있는 건 모두 다 탔더라고요. 순식간에 남김없이요."

- 가족분들도 놀랐겠습니다. 

"구조된 후 부산에 있는 제 가족 뿐 아니라 친구들, 그리고 제가 일하는 병원의 직원들이 안도의 울음을 터트리더라고요. 마음이 참 찌릿했습니다. 제가 살아온 것 자체가 헛되지 않았구나 싶었죠. 보답도 하고 올바르게 살아야겠다 생각했어요."

"미리 비상통로 파악하면 급박한 상황에서 생명 지킬 수 있어"

- 대피 경로를 알고 있었던 점이 위급상황에서 큰 힘을 발휘했던 것 같습니다.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보람을 느낍니다. 우연찮게 화재 현장에서 아파트 구조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안전한 장소까지 사람들의 피신을 도울 수 있었던 거죠. 

- 화재현장에서 인명구조 활동 공로를 인정받아 국무총리 표창과 생명존중대상 등을 수상하셨습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가 한 행동에 비해 과분한 상입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사회적으로 남들을 위해 좀 더 많은 역할을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사진=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 소방 공무원들을 위해 써달라며 500만 원을 기부했다고요.

당시 구조 후 병원을 갔다가 화재 현장에 돌아왔어요. 외부 불길을 사그라들었는데, 각층 내부에는 군데군데 불길이 보였죠. 어둡고 연기가 자욱한 상태인데도 소방관들이 랜턴 하나에 의지해 각 집들을 살피더라고요. 밑에서 그 모습을 모고 경이로울 정도의 존경심이 우러나왔습니다. 고마웠어요. 이분들께 조금이라도 보답을 드리자, 그래서 울산소방본부에 얘기해 기부를 하게 됐습니다. 이전까지는 소방공무원 유족들에 후원 사례가 전혀 없었다고 해요. 저 이후 여러 건의 후원이 들어왔다고 들었는데, 제가 첫 걸음이 된 것 같아서 보람을 느낍니다. 

- 화재 사건을 겪은 이후 트라우마라던가 심적으로 힘들었던 적은 없었나요.

"그 일이 있은 후 이틀은 잠을 못 잤어요. 이후엔 괜찮은 줄 알았는데, 며칠 전 거주하고 있는 곳에서 저녁에 화재경보가 울리더군요. 오작동으로 판명은 났는데 다시 들어가서 잘 엄두가 안 났어요. 결국 다른 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왔지요. 비슷한 상황이 닥치니 두려움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커진 것 같습니다. 대신 안전에 더욱 신경 씁니다. 출장으로 호텔 같은 숙박시설에 가더라도 비상통로를 꼭 확인해요. 1-2분이면 확인이 충분합니다. 그 1-2분이 생명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을 몸소 느꼈으니까요."

- 저 역시 그동안 비상계단이나 비상통로를 유심히 본 적이 없었네요.

"공동주택에 생활하시는 분들은 입주 초기에 5분 정도만 투자해 비상통로와 대피경로를 파악해두면 화재처럼 급박한 상황에 닥칠 경우 생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자신을 지키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이니까요."

30여년간 수의사 활동...유기동물보호소 위해 상금 쾌척

사진=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수의사이자 울산시수의사협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이승진 씨. 이 씨는 생명존중대상 상금으로 받은 1000만원을 사설유기동물보호소 시설 개선을 위해 내놓았다./사진=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현재 이 씨는 울산에 위치한 동물병원의 대표 원장이다. 병원에는 15명의 수의사를 포함해 60여 명의 임직원이 몸담고 있다고 한다. 울산시수의사협회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 생명존중대상 상금으로 받은 1000만 원을 유기동물을 위해 사용했다고요.

"울산에 사설 유기동물보호소가 있는데, 심장사상충 검사를 해달라는 부탁이 왔어요. 가보니 소를 키우는 축사로 사용했던 공간을 이용해 유기동물을 보호하고 있었던 터라 환경이 열악했죠. 검사보다 좋은 환경에서 보호받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비용이 만만치 않았죠. 고민하던 중 감사하게도 시상금을 받게 되어 보호소 시설 개선에 충당했습니다. 저도 틈틈이 현장을 찾아 철거와 시공에 참여했어요. 어제도 마지막 작업을 했지요. 소형견 100마리를 보호할 수 있는 깨끗한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재단에서 준 소중한 시상금을 제 나름대로 뜻깊은 일에 쓰게 되니 보람 있네요."

생명존중대상 수상금으로 받은 1000만원을 울산의 사설유기동물보호시설 개선을 위해 쾌척한 이승진 씨. 그는 유기동물보호소 철거와 시공에 직접 참여했다./사진=이승진 씨 제공 

- 30여 년간 반려 동물과 함께하며 보람된 일도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울산시에 제안해 지난해 9월에 시에서 운영하는 국내 최초 반려 동물 문화센터를 열었는데 뿌듯했던 성과입니다. 반려동물과 편하게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이지요. 그리고 울산을 반려 친화도시로 추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반려 동물 자체가 흔히들 개를 위한 문화로 알고 있는데, 국민들의 정신적 복지와 건강에 기여하는 측면이 크다고 봐요. 반려동물의 긍정적인 측면을 정책적으로 채택해 시민들에게 복지 차원으로 접근하는 부분이 필요합니다. 일선에서 반려 동물을 대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런 생각을 갖기가 힘들거든요. 울산시수의사회장을 맡으면서 반려동물에 대한 이해를 돕고 올바른 정책을 수립하도록 하는게 수의사로서의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 마지막으로 새해를 맞는 소감, 그리고 계획이 있다면요.

"50대가 되면서 남들을 위해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역할을 담당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이 일을 겪은 후 제가 한 행동에 비해 너무나 많은 관심을 받다 보니 사회에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올해를 시작하며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뭘까 열심히 고민 중입니다."

 

 

김리선 기자
김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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