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연극 '아바, 아버지', 고령화 시대의 서글픈 우리네 자화상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연극 '아바, 아버지', 고령화 시대의 서글픈 우리네 자화상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2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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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익 작·연출 '아바, 아버지', 국립극단 배우 정상철의 가슴 먹먹한 아버지 연기 
김경익 작·연출 '아바, 아버지' 포스터.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국립극단 출신의 명배우 정상철이 연기한 '아바, 아버지'의 절절한 연기는 필자처럼 늙어가는 세대에게는 송곳에 찔리듯 고통을 안겼다. 연극이지만 우리 이웃에 이런 상황이 없어야 한다는 사회적 메시지도 서늘하게 느껴졌다. 대학로 인근 소극장 동국에서 11월 15일까지 공연하는 '아바, 아버지'는 김경익이 쓰고 연출한 창작극이자 제4회 극장 동국 연출가전 참가작이다. 

연극이 동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라지만 이 작품에 비친 우리들의 현실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잔인한 형벌같았다. 부분 치매인 최돌석은 배변 장애와 악취로 인해 손녀까지 폭발하고 가출한다. 이런 아버지를 아들은 대공원에 데려가 버린다. 시설에 맡겨진 돌석의 마지막을 지킨 것은 아들 며느리가 아닌 10여년 기른 유기견 웅이였다. 

김경익 작가는 "노령화는 피할 수 없는 삶의 정거장"이라며 "이 작품은 젊은 세대들에게 울리는 연극적 경종"이라고 했다. 부모에게 태어나는 아이는 아버지라고 말하기 전에 아바라 부른다. 그 아바가 병들자 먹고살기 힘든 자식은 아버지를 유기한다. 하지만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던 아들은 휠체어 신세가 되고 만다는 이야기다. 

김경익 작·연출 '아바, 아버지' 커튼콜 무대에 선 배우 정상철(사진 오른쪽)과 신수현./사진=정중헌

소극장 연극이고 관객도 적었지만 이 작품은 정상철 배우의 농익은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입장료가 아깝지 않았다. 70대의 그는 지난 여름부터 술도 끊고 이 작품 속에 들어가 살았는데, 그 진솔한 아우라가 온몸에서 배어 나왔다. 

출산 후유증으로 아내를 잃고 평생 자식바라기로 살아온 아버지상을 온몸으로 빚어낸 그의 말투며 동작은 현실감을 더해 객석에 짙은 여운을 안겨주었다. 특히 아비를 버리는 자식에게 뭐하나 줄게 없어 자신의 금이빨을 뽑아내는 뒷모습 연기가 관객을 아프게 했다. 

7명이 조화를 이루는 재우들의 연기 호흡도 잘 맞아 관람이 편했다. 사람이 하는 연극에서 동물 연기하기가 쉽지 않은데 늙은 유기견 웅이 역을 맡은 강지수의 연기는 리얼하다 못해 측은지심을 금할 수 없을 정도였다. 개의 특성을 온몸으로 살려낸 그가 말하는 개가 되어 주인 돌석을 위로하는 장면은 이 작품의 압권이었다.

아버지를 버리고 휠체어 신세가 된 아들 역 신수현, 1인 2역을 해낸 오근영 오보혜 구자순과 마도수 역 정윤영 등이 이 시대의 그늘에 가려진 서글픈 자화상을 리얼하게 표출해냈다.

개인적 의견이지만 비참한 이야기인데 눈물이 나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 감정선을 자극해도 될 부분까지 냉정함을 견지한 연출의 의도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마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동화 현상에서 울고 싶었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거창한 구호 속에 박제된 것 같던 연극의 해 기념 공연보다 대학로 작은 공간에서 만난 정상철의 '아비, 아버지'가 더 진정성 있게 다가왔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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