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정재호 연출의 '변신', 현실감 있게 카프카의 실존 투영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정재호 연출의 '변신', 현실감 있게 카프카의 실존 투영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20.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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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연보다 커진 무대와 구체화된 이야기, 출연진 열연 몰입감 높여
- 25일까지 대학로 드림아트 3관 공연
정재호 연출의 연극 '변신(變身)'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연극 '변신(變身)'의 변신. 극단 이구아구가 대학로 드림아트 3관에서 공연(~25일까지) 중인 프란츠 카프카 작, 정재호 연출의 '변신'은 초연 때보다 여러모로 달랐다.

무대가 커졌고, 이야기가 더 구체화되었으며, 출연진의 면면도 새로웠다. 무엇보다 벌레로 변한 그레고오르가 어머니의 절규 속에서 죽는 장면이 클라이맥스로 부각되었는데, 객석에서 흐느낌이 들렸고 필자도 감정선의 떨림을 경험했다.

실존이라는 난해한 베일에 가려있던 카프카의 '변신'이 이제야 제대로 이해되는 것 같았고, 코로나가 옥죄는 현실 속에서 오늘 우리의 이야기로 다가왔다는 실감이 더 강했다.

지난해 7월 후암스테이지 1관에서 공연된 정재호 연출의 '변신'을 관람 후 필자는 장황한 리뷰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카프카의 '변신'을 오늘의 상황에 되비췄으며, 이해하기 쉬운 작품 해석, 깊이 있는 연출력, 배우들의 살아있는 연기가 어우러진 웰메이드 연극이었다고 했다.

당시 본 '변신'은 소극장의 이점을 최대한 살려냈다. 철제 구조의 세트와 동그란 의자 세 개가 전부여서 관객들은 바로 코앞에서 전개되는 무대 위의 모든 상황들을 보고 함께 호흡할 수 있었다. 간혹 음향과 음악이 흐르고 암전이 있을 뿐 무대는 오로지 배우들의 공간이었다. 마치 진공 상태 같은 무대에서 관객들은 배우들의 눈빛과 동작과 목소리에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연극적 아우라를 한껏 체험케 한 것이 이 작품의 매력이라고 썼다. 솔직히 정재호 연출의 '변신'을 보면서 연극다운 연극을 대학로 소극장에서 발견했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카프카 '변신'(2019)/사진=극단 이구아구

정재호 연출은 카프카의 '변신'으로 2019년 말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가 제정한 제39회 올해의 최우수 예술가상(연극 부문)을 수상, 이번에 수상 기념 앙코르 공연을 가진 것이다.

다시 본 정재호의 '변신'은 우선 중극장으로 옮겨 무대가 커졌다. 동그란 의자 세 개는 그대로이지만 철제 세트는 더 크고 견고해졌다. 그레고오르와 배우들의 공간 활용과 운신 폭이 넓어졌다. 여기에 조명, 음향(효과), 음악이 더 깊이 스며들어 전체적인 그림(미장센)이 한 눈에 들어왔다.

출연진도 달랐다. 초연에서 좋은 연기를 보인 임은연(어머니), 이동건(그레고오르). 정다은 (여동생) 등은 전반부에 등장했고, 이날 무대에는 아버지 역에 연기파 서광재, 어머니 역에 1980년대 극단 광장에서 활동했던 이은향, 그레고오르 역은 '현혹'에서 서광재와 콤비를 이뤘던 정형렬, 지배인 역은 '롤러코스트'의 엄지용이 출연했다.

카프카 '변신' 출연 배우들./사진=극단 이구아구

여동생 역만 초연 때 본 조지영이 그대로 했는데 연기가 아주 자연스러웠다. 동그란 의자 세 개를 중심으로 펼치는 서광재 이은향 조지영의 연기 호흡이 잘 맞아 매끄러운 앙상블을 보였고, 웃통을 벗고 온몸으로 벌레 연기를 펼친 정형렬도 조명과 어우러져 군더더기 없는 연기를 보였다.

특히 모든 배우들의 극중 캐릭터를 개성 있게 표출해 극 이해를 도왔다. 혼신의 노력으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던 그레고오르가 어느날 벌레로 변신하자 아버지 역 서광재는 시종 똥 같은 존재라며 사과를 던쟈 상처를 내고, 연민의 마음으로 아들을 대하던 어머니 역 이은향도 결별을 고하고, 가장 가까이서 오빠를 이해하고 수발했던 여동생 역 조지영마저 귀찮은 존재로 변하는 과정을 리얼하게 연기해 낸 것이다. 정형렬은 사랑하던 가족들로부터 상처를 받으며 죽어가는 벌레 역을 몸으로 보여줘 연민을 자아냈다.

정재호 연출은 작품 구석구석에 상징과 시그널로 초연의 미비점을 보완하기도 했지만 서사를 구체적으로 풀어내 20세기 실존의 문제를 오늘날 청년 세대의 문제로 현실화시켰다는 점이 돋보였다.

가족과 사회에서 소외당한 채 비극적 종말을 맞게 되는 그레고오르 잠자의 모습은 매일 사회면을 장식하는 사건들과 오버랩되어 관객의 가슴을 헤집는다. 그럼에도 행복한 내일을 꿈꾸며 나들이 가는 모습 또한 우리 모습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카프카의 '변신'에 왜 관객이 만석을 이루고 공감을 자아내는지, 코로나와 초기술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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