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65 박상훈 기자] 영화 '부러진 화살' '남영동1985' 등 사회 고발 영화를 주로 연출한 정지영 감독, 복잡한 금융 범죄라는 무거운 소재, 관객을 압도하는 열연이 때로는 피로감을 느끼게 하는 배우 조진웅까지. 상업영화로서 매력을 찾기가 어려웠던 영화 '블랙머니'의 첫인상이었다.

'블랙머니'는 실화가 가지는 힘을 바탕으로 복잡한 경제 이야기를 쉽게 풀어냈다.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는 물론 재미와 감동까지 챙기며 상업적인 가치도 200% 발휘한다. 어려운 소재를 탄탄한 이야기가 받쳐주고, 다채로운 캐릭터들이 훨훨 날아다니니 지루할 틈이 없다. 

영화는 IMF 이후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진행된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소재를 바탕으로 극화한 작품이다. 자산가치 70조 은행이 1조 7000억 원에 넘어간 희대의 사건 앞에 금융감독원과 대형 로펌, 해외펀드 회사가 뒤얽힌 거대한 금융 비리를 파헤치는 평검사 '양민혁'(조진웅)의 활약상을 그린다.

경제 전문가들이 어려운 경제 용어를 떠들며 싸우는 대신, 경제를 전혀 모르는 인물 '양민혁'을 내세워 관객들에게 친절한 전개로 흘러간다. '모피아'(MOFIA : 재경부 인사들이 퇴임 후에 정계나 금융권 등으로 진출해 막강한 세력을 구축하는 것을 마피아에 빗댄 표현)의 실체를 밝혀 나가는 과정 역시 흥미롭게 그려진다.

'양민혁'의 시선을 따라 극이 진행되는 만큼 조진웅의 역할이 특히 중요했다. 강렬한 등장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빠르게 사로잡는데 성공한 조진웅은 어느 때보다 여유로운 강약 조절로 끝까지 관객을 붙잡는 데 성공한다. 완벽한 인물의 서사와 연기력에 배우가 가진 특유의 유쾌한 매력까지 더해지니 호불호를 떠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대체 불가한 연기가 펼쳐진다.

조진웅이 관객을 끝까지 이끌어간다면 배우 이하늬는 관객과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영화적 재미를 더한다. 이하늬는 불같은 성격인 '양민혁'과 정반대에 서 있는 냉철한 엘리트 변호사 '김나리'를 연기했다. 극 중 '김나리'는 신념과 목표, 정의와 범죄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선택을 반복하며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1600만을 웃긴 영화 '극한직업'의 코믹한 이미지를 단숨에 지워버린, 올해 한국영화 속 가장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의 등장이다.

사회와 인물을 바라보는 정지영 감독의 섬세한 시선은 영화에 등장하는 조연 캐릭터들을 활용하는 방법에서도 드러난다. 주연만을 위해 존재하는 불필요한 조연은 이 영화엔 없다. 분량을 떠나 확실한 존재감을 내뿜는 캐릭터들이 조화롭게 뭉쳤다. 다만, 배우 이경영과 같이 예상 가능한 연기, 익숙한 이미지의 반복은 아쉬움을 남긴다.

정지영 감독은 "주인공과 함께 사건을 따라가면서 관객들이 뜨거운 여운과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동시에, 우리가 알아야 할 사건의 진실을 마주하고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러닝타임 113분. 12세 이상 관람가. 13일 개봉.

박상훈 기자

1007@interview365.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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