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학의 보고(寶庫), 하버드 옌칭도서관 탐방기(1)
동아시아학의 보고(寶庫), 하버드 옌칭도서관 탐방기(1)
  • 손혜리
  • 승인 2019.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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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혜리박사의 고전산책]
정확한 건물의 명칭을 모르겠다. 옌칭에서 십여 분을 걸어가면 이 문을 통해 하버드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저기 끝에서 좌회전을 하면 하버드대학 사거리가 나온다. ⓒ손혜리

[인터뷰365 손혜리 칼럼니스트] 2년 전 보스턴을 방문한 적이 있다. 하버드대 옌칭도서관에 소장된 한국 컬렉션을 열람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한국연구재단에서 지원하는 사업에 선정되어 과제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그 일환으로 해외 소장 자료를 조사 수집하던 중이었다. 3년 프로젝트로서, 일본에 이어 2년차 출장이었다. 펀드를 지원받긴 했지만 항공권과 2주간의 체류비를 감당하기에는 빡빡한 실정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본과 달리 자료 복사비가 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본의 경우 특히 천리대 도서관은 고서 한 장당 몇 천원의 복사비를 지불해야 된다. 옌칭도서관은 다행히 사진 촬영을 허락해 주었다. 덕분에 적지 않은 금액을 아껴 피자만 먹어야 될 상황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뉴욕을 경유한 터라 한국을 출발한 지 스무 시간이 넘어 보스턴에 도착하였다. 배가 고팠으나 어둠이 짙게 깔린 낯선 도시를 헤맬 자신이 없어 그냥 자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보스턴에서의 첫날밤이 지나갔다.

시차 때문에 밤새 뒤척이다가 알람소리에 겨우 눈을 떴다. 전날 미리 봐둔 지하철역에서 레드라인을 타고 하버드로 향했다. 옌칭연구소에 도착하였으나, 중앙 도서관 즉 와이드너 도서관에서 출입증을 발급받아야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다시 와이드너 도서관으로 가서 출입증을 만들어 옌칭도서관으로 돌아왔다.

모 칼럼니스트의 말처럼, 나 역시 이러한 용도로 사진이 쓰일지 몰랐기에 제대로 된 사진이 없다. 실제 옌칭도서관은 작지만 격조가 느껴지는 건물이었다. ⓒ손혜리

출입증의 바코드를 찍고 들어가서, 백발이 희끗한 남자 직원에게 희귀본 한국 고서를 열람하기 위해 왔다고 하였다. 그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한국 직원을 데려 왔다.

옌칭도서관에서 한국 관련 자료를 관장하는 강미경 선생에 대해서는 이미 들은 적이 있다. 미국에 오기 전, 국립중앙도서관의 학예사로 있는 후배를 통해 연락을 취했으나, 그녀가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휴가를 신청할 계획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나는 한국 직원의 도움을 받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하였다. 서바이벌 영어를 구사하던 내가 하고픈 말을 다 한국어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격스러웠을지 짐작이나 할 수 있을런지.

그녀는 옌칭도서관 소장 자료와 한국 고서에 대한 전반적인 상황을 설명해 준 뒤 나를 데리고 3층으로 올라갔다. 그 곳이 바로 한국본 희귀 고서를 볼 수 있는 곳이며, 책임자는 애니 왕이었다.

그녀는 내가 내민 자료 목록을 보고는 적잖이 당황해하는 눈치였다. 실제 옌칭도서관에 소장된 고서를 보기 위해서는 사전 신청을 해야 한다. 서고에 보관되어 금방 가지고 올 수 있는 것도 아닌 희귀본 고서 목록을 이렇게 많이 종이 몇 장에 써서 내민 나를 보고 그녀가 당황해하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그녀는 다소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내게 이 자료들을 다 볼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진지하게 다 볼 수 있다고 대답하였다. 그녀는 나를 유리로 막힌 희귀본 고서 전용 열람실로 들여보내고선 기다리라고 하였다. 한참 후 그녀는 조교와 함께 신청한 자료가 놓인 카터를 밀고 왔다.

잠시 고서를 뒤적이노라니, 나 선생(나를 고서실로 데려다 준 한국 선생님 이름이 나미향이다.)이 점심시간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녀를 따라 나오니, 또 다른 한국 사서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역만리에서 온 나를 위해 학교 곳곳을 소개해 주기 위함이었다.

우리 세 사람은 낙엽 날리던 11월의 하버드 교정을 가로질러 점심을 먹으러 갔다. 두 분은 내가 하버드를 떠날 때까지 식사 문제부터 각종 자료와 정보에 이르기까지 실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 자리를 빌어 두 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점심시간을 제외하곤 오픈부터 마감 시간까지 자료에 집중하던 내게 애니 역시 최대한의 배려를 해 주었다. 덕분에 나는 애초 계획했던 자료를 거의 다 볼 수 있었다.

떠날 날이 다가오자, 그녀는 더 보고 싶은 자료가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미리 메일을 주면, 언제든 자료를 준비해 두겠다고 하였다. 새삼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인지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하버드의 늦가을은 아름다웠다.

하버드에서 흥미롭게 보았던 자료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김정호(1804~1866?)의 대동여지도이다. 나는 조선 후기, 18~19세기 영·정조 시대의 한국한문학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때문에 옌칭도서관에서 열람한 자료 역시 이 시기에 집중되어 있다. 개인적 관심뿐만 아니라 학적으로도 하버드 옌칭에서 꼭 열람해야 할 자료 중 손꼽히는 것이 바로 대동여지도이다. 대동여지도는 수십 본이 전하지만, 22첩으로 이루어진 채색지도는 전세계에 3본 밖에 없다.

왼쪽은 하버드 옌칭도서관 소장 대동여지도 22책 중 제1책인 관북 지도이고, 오른쪽의 두 지도는 서울의 중심과 오부(五部)를 그린 것이다. ⓒ손혜리
왼쪽은 하버드 옌칭도서관 소장 대동여지도 22책 중 제1책인 관북 지도이고, 오른쪽의 두 지도는 서울의 중심과 오부(五部)를 그린 것이다. ⓒ손혜리

하나는 한국에서 지난 2016년에 경매를 통해 고가에 낙찰된 바 있고, 또 하나는 위스콘신 대학교 밀워키 캠퍼스 도서관에,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옌칭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내가 제일 먼저 대동여지도를 보고자 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한국에서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온라인으로 열람이 가능하다. 그러나 실물을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김정호는 손수 제작한 목판으로 찍어내 간행한 전체 지도를 22권에 나눠 수록하고 각 책을 병풍처럼 펴고 접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를 모두 펼치면 가로 3.8m×세로 6.7m이다. 이 지도의 가장 큰 특징은 크기와 함께 군현별로 채색을 달리한 것이다. 이 때문에 각 군현의 범위와 경계가 한 눈에 들어온다. 혼자서 22첩을 다 펼 수 없어, 한 첩 한 첩 열람하면서 규모와 디테일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갈 길이 먼지라, 벅찬 감동을 뒤로 하고 다른 자료를 열람하였다.

다음날도 어김없이 오픈 시간에 맞춰 자료를 보고 있었다. 애니가 들어와 여기서 곧 수업이 있을 예정인데, 옆에 있어도 괜찮고 불편하면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오는 것이 어떻겠냐며 양해를 구하였다. 나는 방해가 될까 염려되어 자리를 비우겠다고 말한 뒤 짐을 챙기려는데, 애니가 한국 선생님이니 인사를 드리는 것도 좋을 것 같다며 제안하였다. 그래서 기다리는데, 학생 한 명과 함께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내 소개를 드리니, 그 분께서 같이 자료를 보자고 청하셨다.

하버드대 동아시아 언어문명학과에 재직 중이며 한국학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김선주 교수였다. 매스컴을 통해 성함은 알고 있던 터였다. 그리고 그들이 신청한 자료가 왔는데, 바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였다. 기막힌 우연이다. 수업에 참여한 학생은 한국어가 유창하였다. 미국에서 나고 자라긴 했지만 부모님이 한국인인 때문이었다. 우리들은 대동여지도를 펼쳐놓고 자세히 살펴본 뒤 궁금한 것에 대해 서로 물어보았다.

방대한 규모를 사진으로 오롯이 표현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지만, 오른쪽 하단에 비치된 책들을 통해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손혜리

덕분에 어제 못다 본 22첩을 감상할 수 있었다. 옌칭도서관에서 한국인 3명이 김정도의 대동여지도를 펼쳐놓고 한국어로 토론한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였다. 한문학 전공자이기에 지도 곳곳에 쓰여진 한문을 읽고 해석하는데 작은 도움이 되었던 모양이다. 두 분은 고마움을 표하셨다. 김선주 선생님께 하버드에 공부하러 오면 받아주시겠냐고 말씀드리니, 흔쾌히 허락하셨다. 농담 반 진담 반이었지만, 언젠가 기회가 오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하버드 옌칭 이야기는 이어진다.

손혜리

서울 출생. 성균관대에서 한국한문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고려대·경북대 연구교수를 역임하고, 경향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현재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연구교수이다. 조선후기 영·정조 시대에 활동한, 신분적 처지나 지역적 연고로 인해 소외된 지식인들의 삶과 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 했던 이들을 소환하여 생명력을 불어넣는데 집중하고 있다. 《연경재 성해응 문학 연구》, 《낮은 자리 높은 마음》, 《서화잡지》, 《연경재 성해응의 초사담헌》 등 다수의 논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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