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외길 최고참 극장간판화가 백춘태, 상영 발전 감사패 받아..."언제나 마음은 극장 간판에"
50년 외길 최고참 극장간판화가 백춘태, 상영 발전 감사패 받아..."언제나 마음은 극장 간판에"
  • 김리선 기자
  • 승인 2019.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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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서 간판 작업 시작 후 1970년 초 서울 단성사로 진출...'태성기획' 차려 제자 양성
-50년간 영화예술 및 상영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 인정 받아
-"언제나 마음은 극장 간판에 머물고 있어"
한국상영발전협회
극장 간판 작업 후 백춘택 화백(사진 왼쪽), 한국상영발전협회 공로패를 수상한 최고참 극장간판화가 백춘택 화백/사진=한국상영발전협회  

[인터뷰365 김리선 기자] 50년간 극장 간판을 그린 백춘태(1943~)화백이 사단법인 한국상영발전협회(이사장 이창무)로부터 최근 공로 감사패를 받았다.

인천 인천극장에서 간판 작업을 시작한 간판화가 백 화백은 극장 '미술부'에서 '오야지'라 불리는 미술부장(메인 화가)이 되어, 보조화가, 레터링 작가로 구성된 미술부 직원들을 거느리며 극장 간판을 그려왔다.

1970년 초 서울 단성사로 진출한 후 최초로 '태성기획'이라는 극장간판전문회사를 차리고 활동하며 여러 제자들을 키워낸 그는 국내에서 50년간 활동한 최고참 극장(영화상영관)간판화가다.

한국상영발전협회는 백 화백이 극장 간판화가로서 50년간 영화예술 및 상영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특별히 감사패를 제작, 전달했다. 영화상영관과 상영문화 발전을 위해 설립된 한국상영발전협회는 매년 분야별 상영발전공로자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다.

1970년대 한국영화의 중흥기의 영화 흥행은 곧 간판의 경쟁(효과)을 의미했다. 전국 극장들 간에 어디가 더 매력적인 간판을 잘 그릴 수 있는지 경쟁이 붙었다.

간판의 완성도가 흥행과 직결되던 시절, 30~40대였던 백 화백은 성실함과 실력으로 충무로에 이름을 알렸다. 서울 시내 유명극장의 간판 대부분은 그의 손을 거쳐갔으며 여러 곳에 작업실도 운영했다. 

백 화백은 "극장 간판은 최대로 함축성 있게 잘 조화시켜서, 관객들이 보고 바로 무슨 영화인지 쉽게 알 수 있도록 표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50년간 활동한 최고참 극장간판화가 백춘태 화백은 지금도 개인 작업실에서 종종 작업을 한다. 단양에 살고 있는 백 화백은 "언제나 마음은 극장 간판에 머물러 있다"고 밝혔다./사진=한국상영발전협회

1990년대 실사 간판과 복합상영관(Multiplex)의 등장은 간판화가들을 극장가 뒤안길로 사라지게 했다. 간판작업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자, 일부 간판화가들은 판화를 작업해 해외에 수출하기도 했다.

10년 전까지 작업 했던 백 화백은 지금도 개인 작업실에서 종종 작업을 하며 여러 매체를 통해 자신의 작업과 간판장이들의 생활 등을 알리며 1950~1990년대 극장가 문화상을 그려왔다.

2011년에는 김영준, 김형배, 강천식 등 극장 간판화가들과 함께 '사라진 화가들의 영화'라는 전시행사도 열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스템으로 전환된 지금은 대부분 실사 간판이 사용되고 있다.

단양에 살고 있는 백 화백은 "언제나 마음은 극장 간판에 머물러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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