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변산' 이준익 감독 "관객과의 소통 중요...난 '악플수집가'"
[인터뷰] '변산' 이준익 감독 "관객과의 소통 중요...난 '악플수집가'"
  • 김리선 기자
  • 승인 2018.06.2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변산 통해 청춘들과 기성세대간 소통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길"
-"철을 든다는건 꼰대가 된다는 것...'천진성' 놓지 말아야"
-"13편 다작 감독? 임기응변 덕분...악플 읽어보며 차기작 결정"
이준익 감독

[인터뷰365 김리선 기자] 1993년 영화 '키드캅'으로 감독으로 데뷔한 후 지금까지 총 13편. 최근 4년간 '사도'(2015)에 이어 '동주'(2016), '박열'(2017)까지 매년마다 한 작품이 그의 손에서 탄생됐다. 이준익 감독(1959~)은 스스럼없이 스스로를 '박리다매' 감독이라 부른다. 그러나 겸손의 말씀. 지난해 '박열'로 대종상 감독상, 아름다운예술인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10대 영화상 등을 휩쓸며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그다. 

수상의 감흥이 채 가시자마자 이 감독이 올해 선보이는 영화는 랩와 힙합을 소재로 한 영화 '변산'이다. 고향을 떠난 빡센 인생을 살아가던 무명 래퍼 '학수'(박정민)가 동창생 '선미'(김고은)로 인해 고향으로 강제 소환되고, 잊고 싶었던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평범해보이는 스토리와 등장인물 속에서 이 감독은 틀을 깨는 신선함과 유쾌함으로 이야기꾼다운 면모를 과시한다. 관객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그에겐 따끔한 '악플'도 소통 수단이다. 이 감독은 "악플에 길이 있다. 이전 영화의 악플이 내일의 영화를 결정짓는다"고 말했다. 이런 측면에서 영화 '변산'은 전작 '박열'에 달린 악플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다만 이 감독은 "영화 '변산'은 청춘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니다"며 '동주'와 '박열'에 이은 청춘 3부작으로 불리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전했다. 그는 "랩을 통해 그는 청춘들과 기성세대인 '꼰대'와의 소통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달 4일 영화 개봉에 앞서 2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준익 감독과의 일문 일답.

이준익 감독

-오랜만에 현대극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힙합'을 소재로. 

처음엔 이준익이란 이름과 '변산'이란 제목만 듣고 다들 사극이겠구나 생각했던 것 같더라. '이준익이 힙합을 해?' 이런 궁금증을 유발했다가 시사회 후에는 '변산이 이런 영화였어?'란 의외의 반응이 나오더라. 기대 반비례 법칙이랄까.(웃음)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가 의외의 획득점이 있으니 더 좋아보이는 기이한 현상?   

-전작 '동주'(2016), '박열'(2017)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전작들이 일제 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상을 배경으로 당시 비극적인 청춘들의 이야기를 묵직하게 담아냈다면 이번 작품은 이 시대 평범한 청춘들의 모습을 유쾌하게 담아냈다. 

필연적인 결과다. 같은 감독이 다음 작품으로 갈 때는 전작으로부터 가장 멀리 가는게 지향점이다. 전작이 성과가 있다고 그 언저리에서 대충 하다간 '작살'이 난다. 매너리즘에도 빠지고. 사실 '동주'와 '박열'도 시대가 유사해서 그렇지, 가는 방향은 전혀 다르다. '변산'의 경우 현대극이다보니 외형적인 편차가 워낙 커서 멀리 갔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시대적인 조건 보다도 영화의 톤앤매너나 인물 관계성의 복잡 다양성 등의 면에서 보면 전작에 비해 가장 멀리 튕겨 나온 영화다.  

- '변산'이 '동주', '박열'에 이은 청춘 3부작이라고 불린다

마케팅 콘셉트일 뿐이다. 앞선 작품을 하면서도 내가 일부러 청춘을 이야기하고자 한게 아니었으니까. '청춘 3부작'이란 말은 걷어내야 할 프레임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청춘'으로만 보려는 선입견이 생긴 것 같아서.

이 영화는 청춘을 이야기 한게 아니다. 주인공이 학수인거다. 이 영화는 아버지와의 관계성에서 파생된 개인의 아픔과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불행과 그게 삶을 지배하면서 비롯된 사건들, 그리고 이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한 각자의 트라우마들이 만났을때 어떻게 할 것인가. 이 같은 질문을 던지는 영화로 시작했다. 

-의상이나 배경 등에서 정겹지만 촌스러움을 친근하게 담아냈다. 촌스러움을 강조한건가.  

그렇다. 미국 유럽에서는 옛것을 새로운 감각으로 재포장해서 만들어내는 방식이 일반화된 장르 중 하나다. 따지고 보면 영화 '라라랜드'같은 영화도 의도된 촌스러움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우리의 문화나 역사에 대해 상대적으로 평가절하하는 측면이 있다. 마치 '서양 것은 좋은 것이야' 처럼.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적이고 전통적인 것들에 대한 재발견에 관심이 높아지긴 했지만, 한국에서 전개된 문화적 사조에 대해 여전히 전분야에서 인색한 편이다. 

물론 내가 뭔가 거시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덤비는 건 아니다. 그러나 미시적인 발견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 촌스러움이 과연 대중적으로 어떤한 교감을 할 수 있을까, 해보고 싶었다. 

제목인 '변산'의 '변'은 변두리란 의미다. 변두리와 가장 대척점에 있는 청춘들의 핫한 장르인 힙합 문화가 영화의 배경이 되는 전라북도 부안에서 어떻게 어우러지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이 영화를 찍은 동력 중 하나였다. 찍고 나니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더라. 

영화 '변산' 스틸 컷
영화 '변산' 스틸 컷

-과거 '라디오스타(2006)', '즐거운 인생(2007)', '님은 먼곳에(2008)' 등 음악적 요소를 가미한 영화들도 선보이긴 했지만, 랩이란 소재는 파격적이다.

사실 랩은 위험한 선택 중 하나였다. 미국의 랩을 흉내내는 것에 급급하면 안되니까. 자기 내면의 고백을 거침 없이 내뱉는 통로로서의 랩이어야 했다. 영화 속 학수가 들려주는 랩은 누굴 흉내내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랩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적인 몰입을 높였던게 아닌가 싶다. 

-평소 랩을 즐겨 들었나. 

나야 록 세대다. 랩에 대한 존재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래퍼들과 영화 작업을 함께 하면서 가깝게 접하게 됐다. 랩과 록이 저항과 자유를 외치는 것은 동질하지만 차이는 뭘까, 이 영화를 찍으면서 나름대로 정의를 내렸다. 

록은 공동체에 대한 책임을 묻고 공동체를 위한 이념을 이야기하는 장르로 볼 수 있는 반면, 공동체 의식에서 개인주의 시대로 전환되는 시점에서 나온게 랩이다. 랩은 공동체 의식보다는 공동체 폭력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고, 개인의 권리와 주장을 이야기 한다. 

영화 속 학수가 쓴 랩의 내용은 자기 사연 안에서 내면의 고백으로만 이뤄져 있다. 사회적 고민은 없다. 사회적 고민을 울부 짖던 과거 록 세대, 부모 세대, 소위 지칭하는 '꼰대'들은 랩을 이해 못할테지. 또 청춘들은 부모 세대의 록은 관심이 없을 테고. 

이 영화를 통해 조금이나마 청춘들과 꼰대 간 소통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청춘이 꼰대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청춘의 시기를 경험해 본 꼰대들이 청춘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조금은 더 열려있으니까. '아, 랩이 저런거였구나, 단순히 소리지르고 시끄러운 음악이 아니라 젊은이들이 내면의 소리를 저렇게 표현하고 있구나' 이렇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랩 자막도 청춘이 아닌 세대들을 위해 자막으로 넣었다. 꼰대들을 위해서랄까. 

이준익 감독

-좋은 꼰대가 되려면 

철을 빼야 한다. 철이 든다는건 꼰대가 된다는 것과 같은 말 아닌가. 인간은 태어나서부터 철드는 교육을 받는다. 10살까지는 철이 안 들어도 어른들에게 크게 야단 받지 않지만, 11세부터는 언제 철드냐 타박받는다. 그러다 점점 철이 들어간다. 41세가 되던 해에 이대로 가는 건 아닌 것 같더라. 지난 20년간 철을 빼기 시작했는데, 아직도 다 못 뺐다. 아마 10년은 더 빼야한다. 

-철을 뺀다는 의미는

어린아이처럼 살면 된다. 청소년때는 굴러가는 낙엽만 보고도 웃는다고 하지 않나. '천진성'을 죽을 때까지 놓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이준익이란 모습은 어디 쯤에 있을까.

추하고 찌질한 모습이 골고루 담겨 있는 것 같다. 남의 글을 보고 탐나서 훔치고 싶었던 원준의 마음이나 어린시절 누군가에게 시달려서 복수하고 싶은 용대의 마음, 어린시절 누군가를 괴롭혔다가 나중에 호되게 당할 것 같은 두려움도 있고. 다 섞여 있다.   

-이번이 13번째 영화다. 거의 매년 작품 활동을 해왔다. 

그래서 '박리다매(薄利多賣)' 감독이라고도 불리지 않나. 허허. 임기응변이 아니면 이렇게 찍을 수가 없다. 굉장히 논리적인 사고로 철저한 준비와 완벽한 설계를 갖고 찍는다면 불가능하다.   

남들이 날 보면 일년에 한 편씩 찍으니 굉장히 목적형, 의지형 인간이라고 연결지을 수도 있는데, 난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그러니 아이러니한거다. 나는 나를 잘 안믿는다. 자기 확신이 없다. 그런데 영화를 계속 만든다. 나도 이상하고 그게 나도 궁금하다.

분명한 건 일단 내가 굉장히 성실하다는거. 그거 하나다. 남의 말을 잘 듣고. 그리고 자의식이 약하다. 그런데 무의식은 또 어마 어마하게 강하다. 무의식을 믿는다. 그래서 임기응변이 강하다. 임기응변을 경쟁력 있는 단어로 말하자면 직관이다. 잘되니까 주변에서 그걸 직관으로 미화시키는데, 난 여전히 임기응변으로 살아가고 있다.  

-결정이 빠른 건가. 

결정이 어마어마하게 빠른데 실수도 그만큼 많다. 일처리도 살벌하게 빠르다. 메모를 안하다. 평생 메모장이란걸 써본적이 없다. 기억도 안한다. 이렇게 말하니 마치 천재같지? 그게 절대 아니다. (웃음) 모르면 주변에 물어보면 된다. 그럼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다 물어보고 한다. 최고의 노하우는 잘 물어보는 거다. 세상의 일이라는게 정답이 없지만, 좋은 질문은 있다. 난 좋은 질문을 쫓아 다닌다. 답 생각은 안한다. 내가 고민 없이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웃음) 

이준익 감독

-영화 '평양성'(2011)년 이후 상업 영화 은퇴 선언도 했는데.

(그는 '평양성' 흥행 실패로 은퇴 의사를 밝혔다가 영화계의 숱한 러브콜 끝에 영화 '소원'(2013)으로 복귀했다.)

다시 복귀한지 5년이 됐고, 그 동안 다섯 편의 영화를 찍었다. '은퇴했는데 아직도 찍네'란 댓글이 다섯 편째 달리고 있고. 항상 볼 때마다 반성한다. 그리고 더 잘 찍어야겠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지금 돌이켜보면 사실 영화 '평양성'을 찍기 전까지 '자의식 덩어리'였다. 영화 '소원'을 찍으면서 자의식을 버린 것 같다. 자의식을 안 믿게 된 것도 이때부터 였던 것 같다. 추하고 못난 자의식들을 오기로 버티다가 더 이상 자의식을 믿지 않게 된 것 같다. 

-작품에 들어가기 전 준비 작업이 있나. 

일년에 영화를 찍는 사이 사이에 썼다가 많이 엎는다. 이 영화를 찍고 나서도 짬짬이 작업을 했는데, 세 작품을 썼다가 엎었다. 

오랫동안 생각해온 소재와 기획들이 있는데, 관객들과 소통의 결과에 큰 영향을 받아 매칭이 되는 순간이 올 때가 있다. 영화가 개봉하면 댓글에 악플들이 달리지 않나. 그런데 여기에 길이 있다. 난 자칭 '악플 수집가'다. 악플이 내일의 영화를 결정짓거든. 영화 '동주' 악플을 보고 '박열'을 찍었고, '박열'의 악플을 보고 '변산'을 찍었다. 차기작 역시 '변산' 개봉 후 악플을 보고 정해지는 거다.

-생각해놓은 작품이 있나.

생각하는건 여러 개다. 그러나 투자나 캐스팅 등 여러 변수들이 많으니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는 모른다. 

김리선 기자
김리선 기자
interview365@naver.com
다른기사 보기



  • 서울특별시 구로구 신도림로19길 124 801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737
  • 등록일 : 2009-01-08
  • 창간일 : 2007-02-20
  • 명칭 : (주)인터뷰365
  • 제호 : 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
  • 명예발행인 : 안성기
  • 발행인·편집인 : 김두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문희
  • 대표전화 : 02-6082-2221
  • 팩스 : 02-2637-2221
  • 인터뷰365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 .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interview365.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