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씬 한 컷으로 마감한 ‘신필름’의 역사
키스 씬 한 컷으로 마감한 ‘신필름’의 역사
  • 김갑의
  • 승인 2008.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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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열의 시대에서 생긴 일 / 김갑의


[인터뷰365 김갑의] 10초도 채 안되는 키스장면 하나 때문에 20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영화제작의 명문 <신필름>이 문을 닫게 된 사건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운명의 장난이었다. 도화선에 성냥불을 그어 댄 것은 중학교 여학생들이었다. 지금은 극장에 학생단체관람이 뜸해졌지만, 70년대만 해도 외국영화 수입을 일정편수로 제한하는 쿼터제도가 시행되었기 때문에 볼만한 영화들만 골라서 수입을 했고, 장기흥행의 말미에는 곧잘 학생들의 단체관람이 이루어지곤 했었다.



그날도 스카라극장에는 학생동원이 있었는데 다음 프로로 상영이 결정된 <장미와 들개>라는 영화의 예고편이 그날부터 상영을 시작했다. 학생들은 학교수업을 마칠 무렵인 4회나 5회에 동원이 되었다. 1회부터 3회까지는 일반 손님들이었으니 가벼운 입맞춤의 키스신이 문제가 될 리 없었을 것이다. 4회 상영시간에 맞추어 여중학교 학생들이 단체로 입장했는데 본 영화 상영에 앞서 <장미와 들개> 예고편이 근사하게 돌기 시작했고 그 예고편 중간쯤에서 홍콩배우 등광영과 오수미의 로맨틱한 키스장면이 나타났다.



몇 백명의 사춘기나이의 여학생들만 모여있는데 로맨틱한 키스신을 대하게 되었으니 누가 안 시켜도 기묘한 합창(?)이 퍼져 나온 건 정한 이치였다. 기묘한 합창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사람들은 학생들을 인솔한 선생님들이었다. 그 중 어느 선생님께서 어떻게 해서 미성년자들이 볼 수 있는 예고편에 키스신이 들어간 채 검열을 해 줄 수 있느냐고 거센 항의를 하게 됐고, 그 항의를 접수하게 된 조선일보 사회부에서는 기자가 출동, 스카라극장에서 그 키스신을 확인하고 다음날 아침신문 사회면에 그 사실을 보도했다.



아침에 집에서 조선일보를 보게 된 문화공보부 관계 공무원들이 서둘러 출근하게 되었고, 신필름 전 직원에게는 비상이 걸렸다. 그 키스신은 검열에서 삭제된 장면이 분명했다. 현상소에서 새로이 제작한 예고편에서 그 키스신을 잘라내고 극장에 배포를 했어야 했는데, 검열을 담당한 사무파트와 필름의 현상과 배급을 맡은 기술 및 영업파트의 인수인계 불찰로 사건이 일어나게 된 것이었다.



검열을 받지 않았거나 검열 받은 상태대로의 영화를 상영하지 않았을 경우 영화법의 벌칙은 3개월 내지 6개월의 영업정지 또는 허가취소였다. 문화공보부는 이 중 가장 무거운 허가 취소처분을 내렸다. 한국 영화계가 자랑하는 거장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은 그날로 문을 닫아야만 했다. 200여명의 유급직원이 일할 정도로 한국 영화사에서 가장 ‘탄탄했던 영화사’ 신필름의 역사는 그렇게 허무하게 마감되었다. 창립부터 이 날 까지 만들어 낸 영화는 총99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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