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인터뷰] 투자사 눈치 안보는 유일한 영화제작자 원동연
[BIFF인터뷰] 투자사 눈치 안보는 유일한 영화제작자 원동연
  • 이희승
  • 승인 201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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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영화 생태계 위해 기꺼이 총대 멘다”

【인터뷰365 이희승】이쯤 하면 미다스의 손이 따로없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로 660만명, ‘광해:왕이 된 남자’로 1200만명을 끌어 모은 남자. 영화계에서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였던 웹툰 ‘신과 함께’ 의 판권을 손에 넣고, 얼마 전 제대한 한류 스타의 차기작을 확정지은 것도 모자라 꽤 유명 작가의 소설을 영화화 하려고 준비 중이다.
그는 현재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힘 있는 제작자다. 스스로를 “대한민국에서 투자사의 눈치를 안 보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라고 칭하는 영화사 리얼 라이즈픽쳐스의 원동연 대표를 멀쩡한(?) 정신으로 만났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거의 모든 자리에서 유쾌하게 흥에 들떠 있는 모습만 봐왔기에 “맨정신에 있는 모습이 적응 안된다”고 하자 “난 쉬운 남자”라며 자기 디스를 시작한다. 그의 트위터 멘션(@shywdy) 을 한번이라도 읽어봤다면 어린 시절의 꿈인 ‘개그맨’이 진짜였음을 알 수 있다. 영화에 대한 잡담처럼 보이는 뼈있는 진실들이 140자 안에 축약되고 있어 그의 타고난 유머감각이 충분히 가늠되고도 남는다.
매의 눈으로 작품을 보는가 싶다가도 어느 순간 철없는 남자의 전형을 보여주는 그의 양면성은 일상에서 드러난다. 자신의 세례명을 배우의 수호신인 ‘제네시오’라고 지었다는 대목에선 숙연함이, 피카소가 한 “예술은 가짜를 진짜로 보이게 하는 것”이라는 말에 감명 받아 이왕이면 제대로 된 ‘진짜 거짓말’을 보여주기 위해 지은 회사명이 ‘리얼 라이즈(realies)’라는 대목에선 감동의 물결이 일렁인다.
하지만 그 세례명이 아이들의 교육 때문에 오랜 시간 떨어져 캐나다에 가 있는 아내가 “영세 안 받으면 한국으로 들어가 살림 합칠 것”이란 협박카드의 결과물이란 걸 안 순간, 거기다 명함 뒤에 그려진 영화 ‘매트리스’ 속 알약을 보노라면 그의 숨겨둔 소년 본능이 느껴진다.


지난 2년 ‘광해’로 꽤 바쁜 한 때를 보냈지 않나. 최근 일상은 어떤가.
작품을 한꺼번에 3개를 준비 중이라 굉장히 바쁘다. 많이 알려진 ‘신과 함께’ 외에도 ‘증거불충분’이라는 영화에 곧 착수한다. 아직 도장 찍기 전이기 때문에 배우는 밝힐 수 없지만 얼마전 현역 제대한 친구다. 나머지 한 작품은 ‘헤이 버디’라고 남다은 평론가의 여동생인 남다정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그의 전작 ‘플레이’를 너무 잘 봤다. 병원에서 바뀐 두 남자애가 21년 만에 만나는 이야기다. 버디가 친구잖나. 한명은 굉장히 아프고, 한명은 굉장히 부자집인데 둘도 없는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는 내용이다. 기대해도 좋다.


회사의 근황 말고 개인의 근황도 궁금하다.
솔직히 말하면 영화제작자로서의 행복한 삶을 만끽하고 있다. 굳이 내 사생활이 궁금하다면 내가 제작한 역할에 단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영화배우 문소리의 졸업 작품에 내가 주인공으로 나온다.(웃음) 딱히 주연은 아니어도 비중있는 역할이라고 해서 개런티를 물어봤더니, 오히려 촬영장에 와서 밥 사라더라. 아직 시나리오는 받지 못했다. 요즘엔, 내 말로 하긴 그렇지만, 일종의 재능기부인 외부 일이 많아 좀 줄여나가려 한다. 올해 부산도 심사위원 자격으로 온 거다. 게다가 학교에 대한 강의도 많고, 영진위에서 시키는 일도 많다.


제작자로서 감독을 고르는 기준이라던지, 가장 눈여겨보는 덕목은 무엇인가.
영화를 친분으로 할 수는 없다. 아무리 친해도 작품과 안 맞으면 절대 안한다. 일단 가능한 한 대화를 많이 한다는 것. 신인이라면 본인이 시나리오를 썼는지 안 썼는지를 먼저 본다. 그래서 2%라도 가능성이 보이면 하는 편이다. 가장 사랑하는 감독을 꼽으라면 얼마 전 ‘미스터고’의 김용화 감독이다. 수익률 제로. 마이너스 100%를 기록한 바로 그 감독.(웃음)


두 분은 실제로도 막역한 사이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를 같이 했고, ‘국가대표’도 내 기획을 준 거다. 그 정도로 김 감독을 사랑한다. (영화 실패 후) 지금은 꽤 씩씩해졌다. 난 유복하게 별다른 고생없이 기복없는 인생을 살아온 편이지만 그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어찌나 긍정적이고 미래에 대해 진취적인지, 안 좋아할 수가 없다. 열심히 하는데다가 한 가지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아서 도리어 내가 많이 배운다. 솔직히 나는 영화에 목숨 거는 애들, 궐기하는 부류를 진짜 싫어한다.


그러면 이번엔 리얼라이즈에서 또 한 편 할 수도 있겠다.
내가 산 게 아니라서 아주 조심스럽지만 김영하 작가의 작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그 얘기했더니 무척 관심있어 하더라. 쇼박스와 또 할 수 있을 것 같냐고? ‘미녀는 괴로워’와 ‘국가대표’로 꽤 벌어줬으니 또 해도 되지 않을까? 물론 한 번에 말아먹었지만. 하하.


원동연 대표가 제작한 영화 빅3. ‘광해’ ‘미녀는 괴로워’ 그리고 행운의 첫 작품 ‘돈을 갖고 튀어라’


이쯤 해서 ‘광해’의 수익을 안 물을 수가 없다. 정산은 다 된 건가.
다 끝났다. 솔직히 1200만이 봤는데 돈을 안 벌 수가 있겠나. 로또 맞은 사람의 평균 금액 정도? 이미 이 바닥 사람들은 정확한 금액을 안다.


손 벌리는 사람도 많겠다.
정말 많다. 돈 빌려달라는 건 그때마다 상황 봐서 알아서 처리한다. 다행히 술 사라는 연락이 대부분이다. 나는 제작을 해 번 돈을 다시 작품에 투자도 하니까 생각보다 여유가 있진 않다. 딸이 셋에다 모두 외국에 나가 있으니 들어가는 돈도 만만치가 않다.


영화계의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일에도 꽤 적극적이다.
내가 투자자 눈치를 안 봐도 되는 국내의 몇 안되는 제작자니까.(웃음) 내가 영화를 통해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있는데, 당연히 건강하게 만들어야지. 진심으로 난 건전한 영화계를 만들고 싶다. 대부분 어렵고 몇 퍼센트만 잘 사는데,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의미있는 일을 해야 된다고 본다. 나도 어느덧 선배가 됐는데 내가 너무 내 일만 하기엔 염치가 없는 것 같더라.


극장과 메이저 배급사에 대한 일침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뭐라고 보나.
(업계의) 수직계열화다. 나는 모든 대한민국의 투자사들이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본다. 한국영화가 이렇게 활황을 맞을 때 가장 혜택 보고 있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스태프들이 아닌 극장이다. 매년 매출이 어마어마하게 뛰고 있다. 영화산업은 이제 겨우 흑자이고, 그간의 누적 적자는 말할 수도 없다. 그런데 대부분의 투자사들이 극장도 가지고 있으니까 아무 말도 안 하고 넘어가는 거지. 투자는 6:4로 나눠야 하고 중간에 들어온 부분 투자도 돌려 줘야 되는 등 나가야 할 게 너무 많다. 하지만 극장이 자기들 거라 그 부분에 대해선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


정확히 얼마나 가져가는 건가.
영화 전체 파이로 500원을 번다고 하면 400원은 극장 몫이다. 250원만 벌어도 충분히 남는데, 롯데나 CJ E&M은 극장도 가지고 있으니 그 부분에 대해선 함구하는 거지다 만약 분리 되어 있었더라면 그들이 더 난리쳤을 거다.


대안은 뭐라고 보나.
솔직히 아예 깨지는 못할 거라고 본다. 대안이 확실하지 않으니 차라리 극장의 몫을 나눠 스태프들이 가져 갈 수 있게 가자고 해도 아무도 그걸 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니 ‘천안함 프로젝트’의 상영 중단 같은 일이 생기는 거다. 부율도 얼마나 웃기냐면 개봉 후 3주가 지나면 극장의 몫이 더 커진다. 3대 3에서 8대2 이런 식으로. 그런 걸 싸우자는 이야기다.


총대를 메서인지 곱지 않은 시선도 존재한다.
이해는 한다. 나처럼 여유있는 제작자들이 많이 않으니까 눈치 봐야 하고. 하지만 누군가 해야 하지 않겠나. 나는 대기업을 욕하는 게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자는 말을 하는 거다. 그래야 영화산업도 잘 산다. 극장이 이익을 독점하고 있다는 게 문제인데 아무도 안 나선다는 게 말이 되나.


야구경기를 함께 볼 아들이 없어 섭섭하다는 그는 태생적인 한화 팬이다.
전공대로 인생이 가질 않는다는 걸 잘 알지만. 의외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더라.
경희대 출신이다. 아버지가 모래와 자갈을 파는 골재업을 작게 했다. 연간 50억 정도하는.(웃음) 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는 연로해 내가 바로 가업을 이었는데 너무 괴로운 거다. 그 일 하면서 시나리오를 쓰게 됐다. 난 일기도 한 번 안 써본 놈이었는데.


그게 ‘돈을 갖고 튀어라’ 아닌가. 풀려도 너무 잘 풀렸다. 배우 박중훈에 정선경. 게다가 김상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삼성영상사업단과 당시 차승재 형이 대표로 있던 우노 필름의 창립작이었다. 이게 영화화 된것도 정말 우연이다. 내가 선배로 모시는 분이 광고 계통의 일을 했다. 그런데 내 시나리오가 웃기니까 “내 사촌동생이 강우석 감독의 조감독으로 있는데 지금 영화 데뷔 준비 중이거든. 한번 줘 볼까?” 했다. 읽더니 한다고 하면서 승재 형을 소개시켜준 거지. 나는 영화를 하게 될지 정말 몰랐다. 영화를 만들 의지도 없었고, 할리우드 키드도 아니었다. 그 뒤에 프로듀서 공부를 좀 더 하고 ‘싸이렌’ PD를 하고 지금까지 오게 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인연이란 게 있는 것 같긴 하다.


영화계의 그 유명한 ‘64라인’ 말인가.
CJ E&M 영화사업 부분의 사장인 정태성이 중학교 동창이고 제네시스 픽쳐스를 같이 만들었다. ‘마지막 늑대’ ‘미녀는 괴로워’를 만들었고, 중간에 태성이가 쇼박스로 간뒤 나는 계속 제작에 남은거지. 지금 NEW의 김우택도 휘문중 동창이고, 쇼박스의 유정훈은 고등학교 친구다. 정태성과 유정훈은 상문 고등학교 동기동창이다. 처음부터 안 건 아니고 다 영화계에서 알게 된 친구의 친구들이다.


다른 건 몰라도. 자신의 영화를 가지고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가는 건 부럽더라.
‘광해’로 7개국을 갔다. 공짜로 가니 나도 좋고, 또 내가 영어가 좀 되니까.(웃음) 이런 말 하기 미안할 정도로 나는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 누가봐도 혜택받은 영화인이잖나. ‘광해’도 내가 캐스팅은 다 했어도 기획 개발은 하지 않은 작품이었다. 누군가 그러더라고. 나는 1등이 운, 2등이 성격, 3등이 실력이라고.


가족들은 영화 제작자인 아버지이자 남편을 어떻게 보나. 꽤 오래 전에 가족들이 캐나다로 가 기러기 아빠로 있다.
정확히 11년 전에 갔다. 큰딸이 6학년 때였으니. 여기엔 약간의 가족사가 있다. 우리 아버지가 종손에 장남인데, 나에겐 딸 셋. 남동생은 딸만 둘이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가 스트레스를 좀 줬거든. 그래서 그걸 풀어주기 위해 단둘이 아내의 절친이 있는 캐나다에 갔는데 그곳에서 신세계를 봤다. 자연환경 좋지 애들 과외 안하지. 아내와 애들이 거기서 살고 싶다는 거다. 그래서 신청했는데 덜컥 되서 떨어져 살게 됐다.


그런데 솔직히 불쌍한 기러기 아빠의 포스는 아니다. 좀 즐기는 듯한?
난 기러기 안했으면 이혼 당했을 걸.(웃음) 그래서 더 애틋하다. 나는 아침마당 같은 프로에서 아내를 여자라고 생각하라고 말하는 거 보면 거짓말 같다. 23년 산 여자를 어떻게 여자로 보나? 사랑보다 의리가 더 크다. 나는 첫사랑이랑 7년 연애해서 결혼 했다. 내가 껄렁껄렁해서 뭔가 많이 해봤을 것 같지만 한 여자만 만나서인지 사랑보다 더 큰 의리란 게 더 크다고 본다. 지금 큰딸이 스물셋, 둘째가 스무 살이다. 간만에 만나 둘러 앉아 식사를 하면 내가 아내한테 반했던 감정을 딸을 통해 본다. 우리 와이프는 물리적으로 늙었는데, 저 풋풋한 시절이 있었던 여자가 나를 만나 이렇게 늙었구나 하는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사진을 보여주며)떨어져 살아서 더 그런 것 같다. 나는 운전할 때 아내가 옆에서 자고 있으면 그게 되게 가슴 아프다. 마음이 착잡해진다.신혼 때는 ‘넌 내가 운전하는데 잠이 오냐?’ 그러면서 막 싸웠는데. 내가 언제까지 영화를 할지 모르겠지만 아내가 캐나다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어하니 내가 건너가야지 뭐.


“난 영화에 목숨 안 건다. 목숨은 가족에게 거는 거다.”
딸들이 굉장한 미인이다. 이래서 반하신 건가.
큰 딸은 웨딩회사에 다니고 둘째는 올해 대학에 입학했다. 집에서 가장 먼 대학을 골랐더라.최민수씨 와이프가 졸업한 캐나다 런던에 있는 웨스턴온타리오대학교다. 다들 배우하고 싶다는 말은 전혀 안한다. 시키고 싶지도 않고.(웃음) 아들이 없어서 서운한 건 같이 야구 경기를 못 본 것 빼고는 전혀 없다. 아버지가 서운해 하시지. 고루한 충청도 양반인데, 우리 집안이 어디 나가서 빠지는 집안이 아니거든. 매형은 판사였다가 지금 변호사, 누나는 이대 교수, 매제는 의대 교수, 큰 아들은 영화제작사라 밖에 나가선 좋은데 대가 끊긴다는 사실에 미치려고 하신다.


고루한건 비슷한 거 아닌가. 서울에서 나고 자랐어도 한화 팬인 거 보면.
충청도 사람이라는 교육을 너무 받아서 나도 모르게 각인된 것 같다. 그리고 당연히 프랜차이즈는 고향을 응원해야지! 한화의 마지막 우승이 15년 전이다. 맨날 꼴찌지만 난 한화를 너무 사랑한다. 내가 뭔가를 사랑 할 수 있다는 대상이 고맙고, 가족 같고, 나도 억제할 수 없는 감정이 생긴다.


요즘 눈여겨보고 있는 감독이나 배우가 있나.
영화감독으로서는 ‘더 테러:라이브’를 잘 봤다. 제한된 공간에서 그렇게 긴장감 있게 만들기가 힘든데. 배우는 권율이 좋고. 내가 부르면 다 오냐고? 일적으로 함부로 부르진 않는다. 흔히 말해 간 다 보고 나서 안한다고 하는 건 결례라고 본다. 일로 부를 때는 시나리오 주고, 본인도 오케이 하면 공식적으로 만난다. 지명도 있는 배우를 부를 때는 거의 하겠다는 마음을 먹어야 한다. 교류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공식적인 자리로 만나는 건 신중해야 한다.


그렇다면 제작자로서 가장 끝까지 지키고 싶은 건 뭔가.
영화에 목숨 안 거는 것? 목숨은 가족에게 걸어야지. 항상 ‘영화가 내 인생보다 중요해?’라는 마인드로 임한다. 물론 영화가 소중하고 사랑하지만 내 삶보다 우위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내 삶이 초라하고 행복하지 않은데 영화를 위해서 살아야 한다면 미련없이 떠날 거다. 직업에 대한 마인드를 지키고 싶지, 사명감으로 영화를 하진 않는다. 제작자는 내가 돈을 벌고 가족을 건사해야 하는 직업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장단점은 뭔가. 외부에서는 쉬운 말로 연예인 병? 이랄까. 좀 다가가기 어렵게 보기도 하더라.
정말로 날 그렇게 보나? 난 되게 쉬운 남자인데. 단점은 좀 가볍다는 것뿐이다.(웃음) 장점은 작가 출신이다 보니까 시나리오나 캐릭터에 대해서 같이 대화할 수 있다는 것. 가장 큰 장점은 유머러스하다는 거다. 난 폼 잡고 권위 내세우는 거 되게 싫어한다. 근데 내가 마르고 얼굴이 예민하게 생겨서인지 되게 성깔있게 본다. 난 사실 허당인데.


마지막으로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행복한 영화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영화가 너무 좋아서 하는데 정작 행복한 사람이 별로 없더라. 내가 사랑하는 산업이니까.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해서 그런 ‘오지랖’도 하는 거니 좋게 봐달라.


자신의 표현대로라면 ‘쓸모있는 오지랖’인 건강한 영화 생태계를 위한 일에는 누구보다 앞서고 있는 원 대표. 인터뷰가 끝난 몇 시간 뒤 우연히 만난 그는 영화제 파티 때마다 보여줬던 특유의 천진난만한 춤사위로 리듬을 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미처 하지 못했던 질문-자신이 네오였다면 어떤 약을 먹었을까-이 우문일 것이라는 사실을 금방 깨달았다. 그는 이미 빨간 알약(현실)의 세계에서 파란 알약(영화)의 세상을 만들고 있는 진짜 주인공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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