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힘들지만 더이상은 숨지 않을 거예요, 황기순
너무 힘들지만 더이상은 숨지 않을 거예요, 황기순
  • 신일하
  • 승인 2007.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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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도박과 전 아내의 불륜. 그럼에도 오늘을 사는 남자 황기순 / 신일하




[인터뷰365 신일하]
“도박 사건이후, 아내문제로 또 한번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를 하게 되었지요. 영광이 아니고 고문이었어요.”


그랬다. 해외 원정 도박 사건으로 필리핀에 머물다 98년 귀국해 ‘대인기피증’ 홍역까지 치루며 겨우겨우 회복되던 개그맨 황기순(44) 에게는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었다 “그 뉴스와 포탈사이트 검색어 1위 순위가 또 다시 우을증과 대인기피증을 발작시켜 삶에 회의를 가져오더군요. 아직도 힘이 들지만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그 얘기(선배 스타A에게 전 부인을 빼앗긴 일)만큼은 여기서 꺼내지 말았으면 하는데요”라는 이야기를 시작하는 황기순을 만났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과 붉은 단풍이 맑은 햇살에 빛나 가을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여의도 공원을 걸어가며 오늘 황기순에 꼭 한 가지는 물어보아야 한다고 생각했었지만 포기하고 말았다.


KBS 신관 커피숍. 휴대폰 진동음이 들렸다. “신 기자님 도착하셨어요. 차가 막혀 5분쯤 늦을 것 같네요.” 약속 시간을 못 지켜 미안하다는 거다. 예의상 전화 해준 황기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의 데뷔 시절 몸에 밴 연예인 특유 예의가 그대로 인 것 같았다. 초년병 시절 MBC 녹화 스튜디오를 찾아가면 “오셨군요. 점심 드셨어요?”하며 언제 뽑아왔는지 자판기 커피를 슬며시 내밀며 응석(?)을 떨던 황기순이 신관 로비에 들어서는 게 보였다. 구리 빛 얼굴에 늘 생기발랄한 애 같아 보이던 얼굴이었는데 그 젊음의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우리 만남의 공백은 10년이 넘었다. “오늘 스케줄 어떻게 되나요?”했더니 “생방송 <6시 내고향>만 하면 돼요”하는 거다. 방송 준비해야 돼 4시30분까지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단다. “방송도 많이 하는 것 같던데?” “커피부터 드시고 하세요. 오늘 바쁘면 내일이라도 시간을 낼 테니. 네 .많이 해요. <6시 내 고향> <아침마당> <세상의 아침>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도 해요. <6시 내고향>은 지방에 가서 리포트하는 거라 매주 하루 출장도 가고요. 밤업소 출연을 모두 정리했어요. 필리핀에서 귀국했을 때 생계 문제로 제일 먼저 밤무대 출연을 했는데 지금은 욕심 내지 않고 방송 출연료만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도박으로 탕진한 돈과 빚 얘기 등을 꺼내면 그가 걸어온 새로운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 없어 그 얘기를 생략하자고 하고 혹시 부업을 하는지 물었다.


“세제 없이 물로만 때를 닦아내는 첨단 섬유소재 청소용품이죠. 브랜드는 ‘캐치 맙 스폰지’인데 친구가 하는 회사 (주)클렘본 제품으로 주주로 참여해 이사직을 맡았어요” 케이블 방송에 나가 홍보 하는 바람에 알려진 것 같다는 그는 “돈에 대한 욕심 내지 않고 살고 싶어 연기에 몰두하려 해요”하고 대화를 방송일로 돌렸다.


“필리핀에서 돌아와 힘들었지요?” “밤무대를 하러 가면 간혹 손님들이 불러요. 욕먹는 게 아닌 가 겁이 났지만 내 귀에다 대고 ‘힘내세요’ ‘축하해요’ ‘열심히 사세요’하고 격려해주는 분들이 많아 용기를 얻었어요” 놀림이나 야유 보다 그를 환영해주는 취객들이 많아 고마웠다는 황기순은 자신의 대인 기피증을 치유해준 건 “동병상련의 주병진 선배였다”고 했다.



내 인생의 새로운 진로는 주병진 선배가 주선


98년 12월 23일 귀국한 그는 두문불출하고 지냈다. 방안에 처박혀 있다 보니 잡념에 빠져 뒹굴다 잠들면 무서운 꿈을 꾸었다. 눈을 뜨면 숨 막히는 어두움뿐이었다. 자신을 억누르는 무겁고 어두운 공기 덩어리가 그를 더욱 괴롭혔다. “폐기처분 된 연예인이 소각장까지 간 걸 재생시켜주신 거나 다름이 없는 선배이죠. 주병진 선배가 찾는다고 해 갔더니 ‘너 연극해봐. 내가 주선해 줄 테니’하는 거예요. 얼마나 고마웠는지 선배 앞에서 눈물을 왈칵 쏟았어요” 주병진의 인간적인 배려를 평생 잊지 못할 거라고 했다. 그는 막상 무대에 올라갔지만 관객이 자신을 야유하는 것 같아 직시할 수 없었다. 동료들과 대학로 공연장에 올린 연극 ‘코미디 죽이기’ 무대에 섰지만 대사를 까먹고 땀을 흘리며 쩔쩔 매기 일쑤였다.


“대안학교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연극치료를 적용해 성격 장애와 비뚤어진 심리를 치유했다는 거예요. 성과를 거둔 사례를 얘기해 주시면서 ‘기순아 너 해봐. 넌 할 수 있어’하고 용기를 주어 출연했으나 2달 동안 실수 투성이었죠. 그럴 적마다 함께 연기한 동료들의 배려와 온정이 없었더라면 고통을 이기기 힘들었을 거예요” 연극 무대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겨우 치유한 경험담을 털어놓은 그는 자신의 의지력을 테스트 해보고 사회봉사를 하는 길을 찾고자 혼자 장애인 휠체어를 타고 반성의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는 것이다.


“내가 너무 이기적인 삶을 살려고 했던 거예요. 정신 건강이 좋지 않았던 게 원인이라는 걸 의식하니 나를 돌아보게 되었고 어머니는 물론이고 가족을 제일 많이 괴롭혔던 것 같았어요. 그래서 방황에서 벗어나긴 위한 길이 뭘까 찾았어요.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을 체험해 보고 속죄해 보자고 생각하니 떠오르더군요. 그게 장애인 휠체어 체험이었죠”




사회에 진 마음의 빚 평생 걸쳐 갚겠다

7년 동안 장애를 앓고 있는 불우이웃을 돕고자 ‘사랑 더하기 사이클 대장정’ 거리모금을 해온 황기순이 전달한 휠체어는 수동 800대 전동 7대에 이른다. 200년 행사를 시작할 때는 3개월 일정으로 혼자 수동 휠체어를 끌고 서울-부산을 왕복했다. 도박에 대한 자신의 과오를 깊게 반성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차가웠고 모금결과가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휠체어를 구입, 전달하는 과정에서 용기를 얻은 황기순은 “나보다 어려운 환경의 분들이 많은데 그동안 불평만 내세우며 살아온 내가 아니었던가 하는 자책감을 가지게 되었다”면서 선배, 동료 개그맨과 연예인들의 후원 덕분에 지금에 이른 거라고 했다.


“사회에 진 마음의 빚 갚는다는 말이 있죠. 그전에는 그 의미를 몰랐어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으니. 혼자 휠체어를 타고 서울-부산 왕복하고 돌아와 알게 되었어요. 어느 날 신문을 뒤척이다 <서번트 리더십>에 대한 책 광고를 보았어요. 서번트란 하인을 뜻하는 말이잖아요. 21세기 조직의 지도자가 되려면 ‘서번트 리더십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는 글귀가 확 눈에 들어왔죠. 책을 구입해 보았는데 부하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며 관리, 감독하기보다 부하 스스로가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게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리더십을 말하더군요”


남다른 삶을 체험한 황기순이지만 이처럼 성숙한 건가? 개그 스타가 되기까지 시련이 많았지만 그 정상에 섰을 당시와 의식 구조가 크게 달라졌다. 어느 연예인 보다 생각이 깊어진 것 같았다. 체험에서 울어난 그만의 삶에 대한 눈이 있을 것 같아 “인생 수업에 투자한 게(돈) 천문학적일 텐데 얻은 것도 있는 것 같다. 책도 많이 보는 가 본데?”하고 그가 책을 즐겨하는 지 물었다.


“죄송해요. 좀 아는 척한 것 같아. 인생 수업에 탕진을 했지요. ‘서번트 리더십 원전’이란 책이 있더군요. 미국 최대 전화 회사 A&T에 있었던 로버트 그린리프 부회장의 저서로 사람을 지배하고 군림하는 게 아니라 섬기고 봉사하는 사람이 진정한 지도자답다는 글이었죠. 그는 헤르만 헤세 소설 ‘동방순례’라는 책에 나오는 레오라는 인물을 서번트 리더로 예를 들었어요. 레오는 순례자들 틈새에서 허드레 일이나 식사 준비를 돕거나 지친 사람들을 위해 밤에 악기를 연주해 주기도 하고. 그리고 사람들이 요구하지 않아도 먼저 나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배려해주어 순례를 하러 온 사람들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지치지 않게 해주지요. 그러나 어느 순간 레오가 사라져 일행은 혼돈에 빠지고 결국 순례는 중단 되요. 사람들은 충직한 심부름꾼이었던 레오가 없어지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는데 일행 중 한 명이 몇 년을 찾아 헤맨 끝에 레오가 교단의 책임자이고 정신적 지도자이며 훌륭한 리더이었다는 걸 알게 되는 줄거리의 이야기죠. 그런 레오란 인물에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어! 이거 누구 앞에서 문자 쓰는 것 같아 죄송하네요. 딱딱한 얘기 그만 하고 커피 한 잔 더 드시죠?”


‘쾅’하고 전봇대에 이마를 부딪친 것 같았다. 조리 있으면서도 절제된 톤으로 내 뱉는 황기순의 화술과 제스처가 자랑스러워 보였고 얼굴에서 성숙미가 넘쳤다. 어느 경지에 도달했는지 그 깊이를 알 수 없다. 나도 모르게 “고마워요. 좋은 얘기 해줘.”하고 커피를 마셨다. 여기저기서 강연 요청을 받아 준비하다 보니 좀 지식을 쌓은 것 같다는 것이다. 자신은 유명 인사가 아니지만 굴곡이 심한 생활을 해온 경험이 있어 대학, 기업, 사회단체 같은 곳에서 초청 강연이 온단다.


“인기 개그맨일 때 받기만 하고 베푸는 건 몰랐어요. 연예인들은 주인 의식만 가지고 있지 하인 다시 말해 서번트 의식에는 부족한 것 같아요. ‘동방순례’의 레오처럼 헌신적 배려의 정신을 가져야 팬들이 오래 사랑할 거로 봅니다”


도대체 쌓은 내공이 어느 정도인가. 상대의 마음을 가늠하고 투시할 정도의 눈빛 같아 더 질문이 필요 없었다. 생방송 때문에 일어날 시간이 되었다. “오늘 우리의 좋은 만남을 오래 기억할 거예요”했더니 환한 웃음을 지었다.


“인터넷이 다양한 문화와 정보 등을 쉽게 접하게 만든 건 사실이죠. 커뮤니케이션과 지식공간으로의 효용도 크지만 인터넷이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핫라인으로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색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이번 경험을 통해 실시간 검색 순위가 미치는 병폐 등 역기능이 있으나 거론되지 않았다는 걸 지적하고 싶어요.” 헤어지며 “좀 더 노력하면 인재육성 명강사로 성공할 수 있겠네요”하고 칭찬해 주었더니 “그걸 성취한 건 (김)병조 형이죠. 한번 만나보시죠?”하고 추천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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