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삶의 표본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위원장
성공한 삶의 표본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위원장
  • 김두호
  • 승인 2009.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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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정신으로 그는 평생을 산다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2009년 새해 아침에 모두가 본받을 만한, ‘성공한 삶의 표본’이 될 인물을 만났다.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집행위원장(72)이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실력까지 겸비해 하는 일마다 업적을 남기고, 인간관계에서 모범이 되어 존경받는 인품을 갖춘 삶이라면 신분과 지위를 불문하고 훌륭한 분으로 꼽을 수 있다.


김동호 위원장은 1992년 문화부차관을 역임한 53세까지 문화예술계의 발전과 변화를 위한 문화행정 분야의 실무 공직자로 많은 업적을 남겼고, 그 후 부산국제영화제를 세계적인 영화제로 격상시킨 지금까지 영화와 관련된 여러 단체의 수장으로 영화인들 사회에서 큰 산(山)으로 존경을 받는다.


그는 장시간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삶이 ‘봉사의 삶’이라고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사회생활 평생은 사심과 사욕을 비우고 봉사의 정신으로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바친 생애였다.

꿈이 무너지고 많은 사람들이 나약해진 2008년이 지나고 이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됐다. 김동호 위원장의 살아오고 살아가는 행로에는 힘든 일이 있어도 신념이 있고 더불어 살며 정을 나누면 일어설 수 있다는 안목과 삶의 지혜들이 여기저기 쌓여있다.



간혹 안부전화를 드리면 해외에 계실 때가 많습니다. 최근에는 두바이를 다녀오셨다고요?

연말에 두바이국제영화제에 갔습니다. 2008년에 스물한 번째 참가한 영화제였어요. 모두 공식 초청을 해오거나 또 심사위원이나 심사위원장을 맡을 때도 있습니다. 갈수록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국제영화제들의 인식 비중이 달라진 덕분입니다.



도대체 연간 해외에서 체류하시는 기간이 어느 정도며 어떤 영화제들입니까?

1년에 절반 정도 될 겁니다. 작년에는 1월초부터 시작해 로테르담, 하지루(이란), 베를린, 베오그라드(세르비아), 도빌(프랑스), 바르셀로나, 피렌체, 우디네(이탈리아), 칸, 그라나다(스페인), 몬트리올, 베니스, 후쿠오카, 도쿄, 상하이영화제 등에 참가했습니다. 늘 우리 영화의 국제 로비스트라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전통이나 권위를 유지해온 영화제에는 우리 부산영화제와 한국영화를 알리고 전도하는 입장에서도 빠질 수가 없어요. 작년에는 또 로스엔젤리스나 파리 등지의 영화와 문화예술 행사에도 참석했는데 도쿄에서 99세로 타계한 무용가 이시이 여사 추도식에 육완순 김문숙 여사와 함께 참석한 일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우리 무용계의 선각자인 최승희 여사와 무용 동기생이었지요.


얼마 전 시사저널과 여론조사기관이 공동으로 실시한 각계 ‘존경받는 인물’ 여론조사에서 영화분야 최상위에 안성기 임권택 유현목 감독과 김동호 위원장 이름이 올라 있었습니다. 영화인 이름 속에 포함되어 눈길이 끌렸습니다.

처음 듣는 이야깁니다. 아마도 부산국제영화제 덕분인지도 모릅니다. 그보다 소중한 것은 우리 영화인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온 덕분 같기도 해요.


개최 초기에는 사실 다들 기대를 갖지 않았습니다. 풍광이나 도시의 특색에서 부산에 국제영화제가 열린다는 것이 의아스럽게 보였습니다. 저도 자주 참석을 했습니다만 해마다 국내는 물론 국제적인 위상과 관심이 폭증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성공요인으로 지자체의 흔한 축제행사라는 인식과 정치색의 틀을 깨고 주제가 분명한 순수 국제영화제의 내실을 보여준데 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준비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이 모두 반대하고 걱정했어요. 아시아영화제도 성공 못시킨 처지에 국제영화제란 우리나라에서 가당찮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할리우드 영화만 보아온 젊은 세대들이 아시아권을 비롯한 유럽의 새로운 영화물결에 열광을 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래요. 처음부터 정치색을 배제한 것도 신뢰와 이미지를 상승시켰어요. 영화를 고르고 보여주는 일은 전문 프로그래머들에게 맡기고 제가 한 일은 예산을 확보하고 정치성 외압을 막는 일이었어요. 1회 때부터 장관을 비롯한 모든 비영화인과 비영화관계자는 개폐막식 무대에 서지 않게 하는 전통을 세웠어요. 입장할 때 잠깐 카메라 앞을 지나가는 모든 인사들을 소개하는 정도지요. 대선을 앞두고 대선 후보들이 모두와도 전통을 지켰어요.


영화제에 참가하는 관객 규모가 다른 국제영화제와 비교해서 어느 정도인지요?

작년 영화제 때는 유료 관객만 19만9천명이었어요. 베니스를 비롯한 국제영화제들이 무료관객이나 축제 구경인파까지 합산해서 3,4만 정도의 관객을 동원하므로 비교할 수 없는 정도지요. 각종 부대행사와 야외 공연인원까지라면 50여만 명을 기록해요. 그보다 의미 있는 일은 영화제 행사에 국내 영화계를 움직이는 모든 분들이 대다수 참가해주는 점이 흐뭇해요.


부산시가 국제영화제 성공 이후 영상문화도시라는 홍보 슬로건을 내걸고 있더군요.
사실 과거의 부산은 영상이나 문화도시라는 말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작년에 프로야구 롯데바람이 불 때 준플레이오프전에서 시구하시는 것을 TV에서 보았습니다.

배우 강수연 씨와 함께 시구 시타자로 초청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영화제의 긍지와 꿈을 롯데의 상승 무드에 연관시켜 저를 부른 것 같아 즐거웠습니다.



많은 영화인들이 김동호 위원장과 술 한 잔씩 안 나눈 사람이 없다고들 합니다. 언젠가 영화제 기간 중 해운대 해변의 수많은 포장마차를 돌며 영화인들과 밤새도록 소주잔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주량이 궁금합니다.

스스로도 측정할 수 없는 정도였지요. 아마도 술이 몸에 맞는 체질인지 공무원시절부터 1년에 한두 번 소주 자리가 있으면 80여명이 주는 술을 모두 받아 마셨어요. 영화진흥공사(현재의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남양주영화촬영소를 조성할 때는 주민 1백분과 한자리에서 혼자 1백잔을 주고받은 것이 뚜렷한 기록으로 기억됩니다. 그런데 2006년 1월 1일부터 술을 끊었어요. 딱 한잔도 그 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술 좋아하시는 분이 금주를 하시다니, 그럼 무슨 재미로 사십니까?

사실 그렇게 많이 마셔도 집에서 혼자 마신 적이 없었고 밖에서도 절대로 혼자 마신 적이 없었어요. 그냥 마실 분이 있어서 마셨다고 할까요. 그런데 나이도 들고 체력도 유지해야 하고 이러다가 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2006년 칠순이 된 새해부터 금주를 결행한 것이지요.


지금도 술 생각이 안 나십니까?

전혀 없어요.


또 하나 많은 영화인들이 김동호 위원장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 중에 5천여 영화인들의 경조사에 잊지 않고 찾아준 일입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아무에게도 연락을 않고 경조사를 소문 없이 치르거나 알고 찾아와도 봉투를 받지 않아 화제에 오릅니다.

집사람이 약국을 운영하는 덕분에 공직에 있을 때부터 탐욕을 버리고 지낼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 별세하셨을 때나 3남매 결혼 시켜도 양가 합의로 가족끼리 조용히 올리는 것이 마음이 편해서 그렇게 했어요. 남에게 부담 주는 일은 정말 싫거든요. 공무원 시절의 하는 일이 언론 문화 종교 에술 분야의 지원업무였고 공직자리가 국민에게 서비스를 주기능으로 일하는 직업입니다.


잠깐, 가족분들 소개 좀 해주시지요.
집사람(홍명자)은 저보다 4살 연하인데 아직도 약사로 살고 있어요. 큰 딸(김대환)은 바이올린 전공의 국민대 교수, 가운데 아들(김주환)은 컴퓨터 전공의 미국 버클리대 교수고 막내 딸(김지환)은 초등학교 교사로 있어요.


고향은 강원도 홍천이시지요?

지금도 조상의 선영이 그곳에 있습니다. 홍천이 고향이지만 조부모님과 부모님이 서울로 오시면서 3살 때부터 서울서 살았어요. 어릴 때 아버님이 광산을 하시다가 실패해 대학시절(서울대 행정학과)까지 참 어렵게 지냈습니다. 다들 힘들 때지만 부산 피난시절에는 길거리에 좌판도 벌이고 목판을 메고 미군부대서 나온 담배 초콜릿 과자를 팔며 행상도 했습니다.

중고교(경기중고) 시절은 학비를 못내 늘 쩔쩔매고, 대학 때는 청량리 집에서 동숭동 학교까지 걸어서 다녔습니다. 돈이 없어서 책 한권을 제대로 산 기억이 없습니다. 사실 문화공보부 국장이 될 때까지 전셋집에서 살았지만 가난이 몸에 밴 탓인지 돈에 대한 욕심이 없었던 게 결국 언제나 마음 편하게 일을 하도록 만들어 준 것 같습니다.



문화공보부(현 문화관광체육부) 시절 공보, 문화, 국제교류, 기획실장을 거치면서 현대미술관이나 독립기념관, 한국예술종합학교 설립 등을 주도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로 하는 일들이 창의적인 일들이라 과장시절부터 제2차 문화예술진흥5개년 계획을 세워 문화예술진흥원 설립부터 시작해 국책 문화사업에 실무책임자로 줄곧 참여했었지요.


영화진흥공사 사장 시절에는 남양주종합촬영소를 세우며 소문난 일화도 많이 남겼습니다. 고생도 많이 하셨지요?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습니다. 45만평 부지를 찾기 위해 뛰어다니며 부지를 찾고 이어서 주민들을 설득하는 일이 끝나면 상수원보호권역이라 개발허가를 받기 위해 정부와 도청, 지역관청을 뛰어다녀야했지요. 각고 끝에 공사를 끝냈는데 YS정부가 들어서면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지만 6개월간 집중감사를 받았어요.


경기 서울대 출신의 엘리트 관료 출신이라 각계에 친한 명사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깝게 지내는 사람은 어떤 분들입니까?

인맥이라기보다 고교시절 청량리에 살 때부터 몰려다닌 친구들이 있어요.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 부부모임을 갖는데 고건 전 국무총리, MBC진주방송국장 출신의 형진환, 피아니스트 김석, 라이프건설회장을 역임한 조내벽, 사업을 하는 조정형, 삼성생명 고문인 윤영원 등이 그들입니다.

또 재미있는 모임으로 86회라는 50년 넘은 친구모임이 있어요. 대학 재학 중 입대해 논산훈련소 한 내무반에서 만난 23연대 8중대 6소대 전우들이지요. 그 소속 숫자를 따서 86회라고 이름을 달았는데 모두 최전방으로 배치되었고 제대 후 헤어지며 나눈 주소로 다시 만나 지금까지 우정을 나눕니다. 40명 중 이민가고 먼저 작고한 사람 빼고 현재 20명이 남아 역시 한 달에 한번 만납니다.


어떤 분들입니까?

변호사 강신옥, 한화그룹 임원인 강상열, 대우에 있었던 박종덕, 미국 미주리대 교수를 지낸 장원호를 비롯해 교통순경, 예산농고 교사로 있던 친구 등 직업도 다양합니다.



영화인들 중에는 누구와 가깝습니까?

일일이 이름을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감독들과 배우 제작 기술 스태프들이 저와 친밀한 관계를 나눕니다. 굳이 몇 명을 꼽는다면 해외영화제를 다니며 정이 든 임권택 감독과 배우 안성기 강수연 씨 같은 분들이지요. 강수연 씨는 연기자로도 뛰어나지만 효심이 지극해요. 임 감독은 합리적이고 자기관리가 엄격하면서 영화에 대한 집념과 미학적인 감각이 뛰어납니다. 안성기 씨도 성품이 좋고 리더십이 있는 좋은 배우입니다.


베니스 등 세계의 대표적인 국제영화제에서 김 위원장의 개막식 좌석이 칸, 베를린의 집행위원장과 나란히 배치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영화제를 통해 우의를 나누는 해외 영화인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술을 끊었습니다만 칸영화제의 테어리 프레모 위원장, 대만의 대표적인 감독 허우샤오시엔, 네덜란드의 영화저널리스트 피터반 뷰어렌, 로테르담집행위원장 사이먼 필드 씨 등과 5명이 타이거클럽을 만들어 영화제에서 만나면 밤새도록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고 춤추고 술 마시며 우정을 나눕니다. 타이거란 이름은 로테르담영화제의 로고가 호랑이이고 제 이름의 끝자가 호랑이와 관계된다고 로테르담에서 그렇게들 이름을 달았어요. 모두 부산국제영화제에 몰려오면 이곳에서 2박3일 체류하지만 노래방에서 곧장 공항으로 가곤합니다. 칸의 프레모 위원장은 해외 영화제 참석을 잘 안해 삼고초려(三顧草廬)로 간신히 부산영화제로 초청한 분인데 지금은 부산영화제와 한국영화를 너무 사랑합니다.


아, 김 위원장께서 영화배우로도 활동하셨지요?

하하하, 그렇습니다. 이재용 감독의 <정사>와 한국계 중국감독 장률의 <이리> 그리고 끌레어드니 감독의 <침입자>(Intruder)라는 영화까지 3편입니다. 부산영화제에서 만난 프랑스의 끌레어드니 감독이 부산의 자갈치시장에 반해 두 차례 촬영을 왔어요. 시나리오에 한국 이야기를 넣은 것이죠. 유럽에서 온 부호의 아들이 아버지에게 선물 받을 선박을 구입하는 과정에 제가 부산 조선소의 한국인 사장으로 출연해 협상하는 장면입니다.

장률 감독은 베니스에서 알게 되어 부산영화제에 초청했고 한국에서 만든 <이리>에 옛 연인을 찾아가는 노신사 역으로 저를 출연시켰습니다. 전문성보다 취미 정도의 선에서 연기를 해본 겁니다.


한때 국전에서 서예 작품이 입상한 적도 있으시지요?

공무원 시절 서예가 원곡 김기승 선생이 중앙청 근처에 살고 계셔서 퇴근길에 사사한 때가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한문과 서예에 취미가 있어서 열심히 배워 신인예술상을 받았지만 꾸준히 매달리지 못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유화를 그리고 싶은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틈나면 미술관에 가고 전시회 도록을 꼭 수집해 오고 있습니다. 국내 미술관의 전시회도 걸작선은 반드시 관람합니다.



사진도 전시회를 갖지는 않으셨지만 작가라고들 하더군요.

부산영화제 일을 그만두면 사진 전시회부터 개최하려고 해요. 작가가 될 생각보다는 좋아서 카메라를 안고 다닙니다. 영화제에 가면 우리 영화인들의 사진은 제가 도맡아 공식 카메라맨이라고들 부릅니다. 우리 영화인들 해외 수상 장면부터 각종 활동 모습을 모두 담아 귀국 후 나누어줍니다.


그렇게 다방면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시는데 체력을 어떻게 유지하십니까?

술을 좋아할 때나 지금이나 기상시간은 언제나 새벽 4시에서 5시 사이입니다. 일어나서 우리 집 부근의 아차산을 산책하고 냉온욕을 합니다. 해외에서도 그 운동을 반복합니다. 주말에는 테니스를 열심히 쳐요.


그러고보니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성공담뿐입니다. 실패나 좌절한 경험은 없습니까?

아까 이야기했던, 목판장수 하던 때가 저에게 어둡고 힘든 시절이었지요.


지금 영화계의 제작 사정이 어렵고 결과적으로 영화인들의 활동도 부진합니다. 극복하고 타개할 대안이 없을까요?

경제와 사회적 분위기에 민감한 곳이니 영화만 어려운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스크린 쿼터 축소에 대해 정부가 보완책으로 조성한 발전기금과 극장 모금을 통한 4천억 원의 기금을 효율적으로 운용해 나가야 합니다. 우선 빛을 못 보는 저예산 영화의 유통망을 넓히고 독립영화 제작을 활성화해야 합니다. 청룡영화제 심사위원장을 하며 느낀 것인데 우리 영화계에는 희망이 될 만한 유능한 신인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인재들이 나와야 발전합니다. 그들이 설 수 있는 제작 지원 풍토의 조성과 독립영화들의 상영 배급망을 확대 개선해야 합니다.


아직도 꿈이나 하려는 일들이 많으시지요?

부산국제영화제는 이제 3백여 편이 넘는 출품작 중에 최초로 공개하는 신작 출품영화가 1백여 편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아시아권 영화인을 대상으로 좋은 시나리오를 선정해 투자자를 연결하고 감독 지망생을 모아 정예교육을 시키는 인재양성, 다큐 제작에 매년 27명을 선정해 제작을 지원하는 사업 등을 다채롭게 전개해 나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한국영화가 세계로 통하는 교두보가 되고 세계의 영화인재들이 부산영화제를 등용문으로 인식하는 대표적인 권위와 전통을 세우는 게 마지막 꿈입니다.




기자는 김동호 위원장이 영화진흥공사 사장 시절인 1988년부터 공사석에서 만날 기회가 많았다. 그는 누굴 만나도 언제나 말을 하는 쪽보다 듣는 쪽이다. 아무리 술잔이 돌아도 결코 언행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표정은 누구 앞에서나 미소를 잃지 않고 어떤 일이 일어나도 흥분하거나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남의 입장을 잘 배려해주는 그는 아마도 공직에서 일할 때 주변사람들의 여러 가지 부탁도 많이 들어주거나 도와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오해를 사거나 오점을 남긴 일이 없었던 것은 대가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언젠가 어느 영화감독이 그에게 도움 받은 일을 잊지 못해 양주 한 병을 들고 자택으로 신년 인사를 갔다는데 주인은 포장지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도 않고 선물을 한사코 되가져가게 해 얼굴을 붉힌 일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김동호 위원장의 인간적인 매력은 바로 그런 인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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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화제 김동호 위원장, 영화 <이리> 출연



[인터뷰이 나우] 김동호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원장 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 집행위원장이 새로 신설된 대통령 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초대 위원장에 취임했다. 임기 1년의 대통령 자문기구로 신설된 이 위원회에는 인터뷰365 인터뷰이인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인 영화배우 안성기 씨와 한국장애예술인협회장 방귀희(인터뷰365 인터뷰이) 씨 등을 비롯해 궁중음식연구원 이사장 한복려, 바이올리니스트이면서 이화여대 석좌교수인 정경화, 연극배우 박정자, 성신여대 문화예술대 학장인 송승환, 토지문학관 대표 김영주, 한택식물원 원장 이택주, 전시기확자 유진상 씨 등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앞으로 문화융성위는 박근혜 정부에서 주요 국정 기조로 내세운 문화 발전을 위한 각종 정책의 자문기구로 활동하게 된다.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97아시아태평양영화제 집행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대종상 및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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