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골프 스윙의 허상을 깨부순 골프연구가 김영웅
[인터뷰] 골프 스윙의 허상을 깨부순 골프연구가 김영웅
  • 김다인
  • 승인 2012.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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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퀼리브리엄 스윙은 쉽다. 이것은 채택이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발견의 문제일 뿐이다”

【인터뷰365 김다인】대부분 사람들은 짜여진 틀 안에 안주하면서 안도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그 틀을 깨려 부단하게 노력하며 스스로의 궤적을 새롭게 만들어간다. 대개 역사는 후자들에 의해 새롭게 쓰여지기 마련이다. 아마추어 골프 연구가 김영웅(45)씨는 그 후자에 속한다. 그리고 그가 새롭게 쓰고자 하는 것은 골프 스윙에 관한 것이다.


골프 스윙은 골퍼의 평생 숙제다. 신새벽부터 필드에 나가며 골프에 공을 들여도 결국 스윙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마는 골퍼가 대부분이다. 골퍼가 스윙을 극복하지 못하면 볼을 정확히 치는 것에 매달려 골프 게임의 본질인 ‘파를 기준으로 하는 코스와의 대결'이라는 뜻을 살릴 수 없다. 그러나 자세와 동작 위주의 골프 레슨을 통해 스윙의 경지에 올랐다는 아마추어 골퍼를 만나는 것은 드문 일이다.


김영웅 씨가 접근하는 골프 스윙은 그 출발점부터 다르다. 그는 신화와 역사, 철학, 물리, 과학을 종횡무진하며 다양한 메타포로 골프 스윙을 이야기한다. 골프에 관해 이처럼 박학다식하게 그리고 쉽게 그 인문학적 배경을 설파하는 사람을 만난 것은 처음이다.


골프에 관한 오디세이만 펼쳐내는 것이 아니라 그는 새로운 골프 스윙 이론을 스스로 만들어내기까지 했다. 그가 주장하는 골프 스윙의 이론은 이퀼리브리엄 스윙. 이퀼리브리엄(equilibrium)은 평정, 평형을 일컫는 말로 필자 같은 이는 2002년 개봉한 크리스천 베일 주연의 동명의 SF영화가 먼저 떠오른다. “골프 스윙 이론의 역사에 획기적인 일대 발견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며 이 새로운 골프 스윙 이론을 펼쳐내는 그의 입담은 화려하고 상대편을 빨아들이는 힘이 있다. 그는 스스로를 ‘타작 선생’이라 칭하며 ‘타작닷컴'(
www.타작.com)을 열어 자신의 새로운 골프 스윙 이론과 골프 오디세이를 설파하고 있는 중이다.


우연한 기회에 골프채를 잡게 되어 어느덧 연습볼만 1백만개쯤 치게 되었다는 그는 어느 순간 골프 스윙의 원리를 깨쳤다고 한다. 그가 파악한 바, 골프 스윙에는 명백한 원리가 있고 그것을 풀어내는 숱한 사투리가 있다. PGA 매뉴얼 스타일을 스윙의 표준어법인양 가르치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라고 주장하는 그의 스윙 이야기를 들어보자.

우선 궁금한 것이 하나 있다. 아마추어 골퍼가 당신처럼 골프스윙의 주요 원리를 발견하거나 위대한 티칭프로가 된 적이 있나
당연하다. 스윙의 궁극적 원리까지를 발견했는지는 모르지만 정교한 분석가였던 이들이 있고 위대한 챔피언들이 지금도 첫손가락에 꼽는 스윙레슨 책을 쓴 이도 있었다. 골프역사의 기념비적 분석서라 불리는 <완벽한 스윙을 찾아서>의 공저자들은 모두 프로는커녕 골프의 고수 근처에도 가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이들 중에는 아예 문외한도 있었다. 대개가 물리학이나 공학자들이었다. 타계한 호머 켈리 역시 순수 아마추어 연구가였다. 일부 논란이 있으나,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프선생의 한 명으로 꼽히는 사람이다. 아니카 소렌스탐을 비롯한 많은 골퍼들이 지대한 영향을 받은 것에 대해 그에게 깊은 존경을 표하고 있고 현재 타이거가 채택한 스택앤틸트 스윙의 뿌리가 바로 호머 켈리의 <골핑 머신>에 있다. 원리는 경험과 별개의 문제일 수 있기 때문에 나처럼 여러 스포츠에 걸쳐 두루 몸공부가 되어 있는 사람일 경우 깊이 파고들다 보면 골프 스윙의 원리를 발견하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웹사이트가 타작닷컴이고 스스로를 타작선생이라 한다. 왜 타작인가.
타작은 때려 만든다는 말이다. 스윙이 결국 샷메이킹을 하는 것이다. 나는 태생이 산골사람이다. 타작은 추수한 곡식을 털어 알곡을 만드는 것이다. 백날 농사짓는 것도 결국 타작으로 알짜를 걷기 위함이다. 마당질이라고도 한다. 내가 볼 때 대개 골퍼들은 사실상 헛스윙을 한다. 마당질로 털어봐야 쭉정이만 나오는 것과 같다.

인문학적인 시각으로 골프 스윙을 풀어내는 예는 처음 보는 것 같다. 이처럼 새로운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이 레저골퍼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나.
뭔가 아는 체하자는 것이 아니다. 골프와 전혀 무관해 보이는 이야기를 끌어대는 것도 모두 골프 스윙을 위한 것이다. 특히 다른 스포츠에 축적된 오랜 지혜와 통찰의 눈을 빌려서 설명하는 것이 스윙에 효율적이기만 하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골프는 골프일 뿐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가 더욱 적극적으로 다른 분야에서 재료를 구해와 설명하는 이유는 메타포만이 레저골퍼를 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골프 스윙은 그 짧은 순간에 일어나는 몸짓으로 표현한 시(詩)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시는 여간해서는 이해하기 힘들고, 깨닫는 것은 더욱 어렵다. 잭 니클로스가 말한 것처럼 자신의 스윙자세를 모방할 수는 있어도 결코 자신과 같은 스윙을 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몸짓의 핵심이 겉몸짓이 아니라 속몸짓에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무엇인가를 지시하는 것이라면 자세와 동작만으로도 뜻이 전달된다. 그러나 자세와 동작이 아니라 그 속에 든 힘의 표출이 숙제일 때, 그것은 모방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프로가 골퍼들을 가르치면서 하는 말에 힘을 써야지 용을 쓰지 말라고 한다. 결코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을 억지로 이루려 할 때 똥심을 쓰게 되는 것이다. 레저골퍼 입장에서, 속몸짓을 지시적 언어로 설명하려고 용을 쓰는 프로들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은유를 모르기 때문에 의사를 전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속몸짓을 멘털이라고 해석하면 안된다. 기술과 힘이 없이 정신력과 심리요법만으로 스윙이 해결되지 않는다.

겨우 클럽 몇 번 잡아본 처지로서는 알듯 모를 듯한 설명이다.
프로들은 이런 말을 한다. “비록 프로들마다 설명이나 표현이 다르더라도 어느 것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고르라.” 아마추어인 내 입장에서는 얄궂게 들린다. 그럴 바에야 가르친다고 할 것이 뭐가 있나 싶다. 그러나 골프 스윙에서 이런 경우는 다반사다. 내가 대가로 꼽히는 선생들이 불러오는 혼돈만을 따로 설명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왜 그래야 할까. 어떤 것은 곧장 질러서 가르쳐도 되는 것이 있고 어떤 것은 유일한 소통이 우회적인 설명일 수밖에 없는 것도 있다. 아예 비유로만 설명할 수밖에 없는 몸짓도 있다. 이것을 모두 뭉뚱그려 자세와 동작으로만 설명을 하다보니 어, 그게 아닌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설명이 제각각이고 아예 정면충돌하는, 모순되는 설명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프로들이 저마다의 스윙으로도 다 잘 치는 데서 힌트를 얻어야 한다. 자세와 동작이 아니라 볼을 임팩하는 원리의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레저골퍼에게 이런 눈이 있나. 어린 백성이 난무하는 팁 가운데서 취사선택할 능력이 없는데 선생들은 스스로 맞는 것을 찾으라고 한다. 그것은 가르침을 포기하는 것이다. 레슨무용론이 달리 나온 말이 아니다.

여기서 잠깐, 김영웅씨의 골프 타작 일부를 들어보고 넘어가자. 그는 무심히 사용하는 일상적 언어를 확실히 뒤집어 본질을 드러내 보인다. 예를 들어 롱아이언클럽이나 웨지에 대한 해석이 그런 것이다. 그의 ‘말타작’은 이렇다.
골프의 초기에는 1, 2, 3번 아이언이었고, 1번이 사라지니 2-3-4번아이언이 롱아이언으로 불렸다. 2번도 사라진 지금은 3, 4번 혹은 5번 아이언까지를 롱아이언이라 부른다. 3-4번 아이언조차 마다하는 요즘 추세를 반영하여 어떤 프로는 5-6번 아이언을 롱아이언이라고도 한다. 프로들이 레저골퍼에게 부담스러운 롱아이언 대신에 하이브리드 클럽으로 대체하라고 할 때의 그 ‘길다’는 것의 기준이 무엇인가. 자신이 가진 아이언 중에 가장 길면 롱아이언인가. 이름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때로 본질을 반영한다. 나는 입장이 확실하다. 클럽의 번호가 아니라 자신이 다루기에 너무 긴 아이언, 그것이 롱아이언이다. 달리 말해 클럽 길이에 비례하여 비거리가 늘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이 롱아이언이다. 그것은 이미 실효가 없는 클럽이다.
웨지샷을 잘 하는데 하나의 히트를 얻고 싶다면, 웨지라는 단어가 가졌던 골프 이전의 본래 의미를 새겨보면 된다. ‘쐐기’가 웨지다. 볼이 깊은 러프와 같은 트러블에 놓인 상황에서 풀과 볼 사이에 쐐기를 박아넣듯이 쳐서 볼을 캐내라는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 웨지라 할 수 있다. 늘 그렇지는 않겠지만 말과 글이 답을 품은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런 것도 골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될 것이다.

본격적으로 스윙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스윙이란 무엇인가
골프게임을 진행하기 위한 핵심적 요소인 동시에 골퍼가 넘어야 할 첫 관문이다. 평생을 부여잡고 씨름해야할 골프의 최종목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레저골퍼는 스윙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절망한다.

그래서 스윙을 오디세이라고 표현하는 것인가?
골퍼에게 스윙만한 방랑길이 있나. 그리스의 호메로스가 쓴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 후 십 년에 걸친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노래한 서사시다. 20세기의 최대작가라고 불리는 제임스 조이스는 블룸스데이 단 하루에 일어난 일을 두고 20세기판 오디세이인 <율리시즈>를 썼다. 스윙은 단 1초 남짓한 시간에 벌어지는 방랑이야기라 할 수 있다. 방랑과 모험은 시간의 길이 문제가 아니다. 프로와 아마추어를 불문하고 1초 동안의 스윙에서 길을 잃고 헤매보지 않은 골퍼가 없고 대부분의 골퍼에게 방랑은 계속되고 있다. 골프 스윙은 골퍼로서 살아있는 한 무한반복되는 모험담이다. 비록 1초의 찰나적 시간에 지나가버리는 것이지만 스윙에 대한 고뇌와 도전의 시간은 평생을 간다.

골퍼들이 왜 그렇게 스윙을 어려워하나?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단일동작의 난이도로는 메이저리그 투수의 볼을 치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 볼이 빠르기만 할 뿐 아니라 투수가 타자의 타이밍을 뺏으려 들기 때문이다. 골프 스윙은 이와 다르다. 볼은 늘 놓인 그 자리에 그대로 있고 골퍼는 자기 리듬으로 치는 것이다. 스윙 그 자체는 단순한 동작이다. 기껏해야 막대기로 공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스윙을 둘러싼 환경설정이 단순치 않다. 이것에 대해서는 윈스턴 처칠이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골프란 용도에 어울리지도 않게 생겨먹은 기이한 연장을 들고 아주 작은 볼을 지독하게 작은 구멍에 쳐넣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게임이다.”
영어표현에 squaring the circle 이란 말이 있다. 수학에 흥미가 있었던 사람이라면 기억할 수 있겠지만, 원과 면적이 같은 정사각형을 작도하는 것을 뜻하며, 일상에서는 불가능하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골프 스윙이란 일반적으로 스윙의 원과 임팩에서 클럽페이스와 볼의 스퀘어 컨택의 연합으로 구성되는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이렇게 보는 순간 바로 좋은 스윙은 squaring the circle , 즉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스윙은 동심원이나 2차원적 타원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스윙 속에 조화로운 수학적 세계가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스윙은 유클리드기하학이 아니라 차라리 나비리본을 골퍼의 몸을 중심으로 굽혀놓은 듯한 이미지, 혹은 쾌걸 조로의 눈을 가리기 위해 양쪽 귀에 걸어놓은 안대처럼, 굳이 문자 써서 말하자면 곡면기하학의 세계라 할 수 있다.

스윙에 관한 한은 레슨과 팁이 난무한다. 그 많은 팁으로도 스윙이 해결되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팁이란 임시처방전 같은 것이다.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없다. 핵심을 모르니까 대답이 길어지는 것이다. 골프레슨의 대부분은 스윙에 맞춰져 있다. 기본 퀘스트도 깨지 못하는 것이다. 흔히들 골프가 인생의 반영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 말도 농담에 지나지 않는 과장이라고 생각한다. 골프는 골프일 뿐이다. 또 때로는 골프치는 것을 보면 사업스타일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이 역시 마찬가지다. 식당에서 밥먹는 것을 보거나 축구하는 것을 보고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사업을 위한 스포츠로 골프만한 게 없다는 것은 골프가 널리 퍼져있는 영어권국가나 한국, 일본 등에서는 정설에 가깝다. 이것은 골프가 갖는 멘털게임적 특성을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골프레슨의 대부분은 멘털게임에 맞춰져야 하지 않나. 왜 그렇게 못하고 스윙을 주로 가르치나. 스윙이라는 첫 관문을 뚫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멘털게임이나 전략게임으로서의 골프를 하지 못하고 허구헌날 스윙에 매달리고 그 중에 다시 드라이브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걸음마 수준을 거의 벗어나지 못한 채 구력만 늘려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골프 스윙의 핵심은 무엇인가.
임팩이다. 모든 것을 다 잘 배우고도 임팩만 못배웠다고 한다. 바로 그것이다. 정작 핵심인 알맹이가 빠져있는 것이다.

무엇이 제대로 된 임팩인가.
최대의 헤드스피드로 볼을 스퀘어타격하는 것이다. 이것이 스윙의 이상인 ‘멀리 그리고 곧게’" 날아가게 만든다. 듣기에는 쉬운 말이다. 어떻게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것이 문제다. 바로 여기서 스피드 원리의 문제가 주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알기만 하면 수백만개가 넘는 스윙팁을 일거에 해소할 수 있다.

그 많은 선생들은 그러한 사정을 몰라서 못 가르치나
하나는 요새말로 지식의 저주라고 하는 것이다. 티칭프로 중에는 투어프로로서 성공하지 못한 골퍼들이 많다. 밥 토스키처럼 투어를 제패한 이가 티칭프로가 된 이도 있고, 애초 프로골퍼가 아니었다가 나이가 들어서 문득 티칭프로가 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챔프를 꿈꾸던 유망주들이 어린 시절부터 골프를 하다가 투어프로로서 가망이 없을 때 선생으로 변신한다. 이들은 어릴 적부터 골프를 배웠다. 그러니 아마추어의 문제를 미처 깨달을 겨를도 없이 고수가 되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골프 스윙을 모국어를 배우듯 자연스럽게 익힌 것이다. 그러나 아마추어 골퍼는 어떤가. 외국어를 배우는 것처럼 골프 스윙을 배운다. 어색하기 짝이 없다. 선생들은 아마추어의 문제는 알지만 그 원인은 모른다.
다른 하나는, 선생들조차 피나는 노력을 하다보니 그런 스윙을 했을 뿐 제대로 된 스윙 원리를 안다고 보지 않는다. 원리는 모른 채 자세와 동작을 가르치는 것이다. 다만 그들 스스로는 그 어색한 자세와 동작 속에서도 어떻게 힘을 발산하는 지를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다. 그렇게 훈련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잭 니클로스가 말한 그대로의 문제다. "누군가 내 스윙동작을 그대로 흉내내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결코 나와 같은 스윙을 하지 못할 것이다. 핵심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스윙 역학이다. 힘쓰는 원리를 모르고 동작만 따라 해봐야 일정한 수준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골프처럼 본능적이지 않고 후천적 학습을 필요로 하는 고난이도의 동작에서 동작을 따라하는 것은 거의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고속의 스피드를 내려고 의욕하는 순간에 특정구간에서의 자세와 동작을 모방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타이거의 스윙동작을 정지자세로는 누군들 따라하지 못할까마는, 실제 스윙에서는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잭 니클로스 같은 이들은 핵심을 알고 있다는 것인가?
많은 스윙이론가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챔피언들은 필드 위의 챔피언이지 교육의 챔피언이 아니다. 잭이 그렇게 칠 수 있다는 것과 그것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 역시 자신의 속몸짓은 설명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것은 경험이 아니라 원리의 문제인 것이다. 세상의 모든 프로들이 다 이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도 설명해 보고 저렇게도 설명해 본 것이다. 그러다보니 팁이 수미산만큼 쌓여버린 것이고, 레저골퍼들은 이 거대한 스윙팁의 똥무덤 속에 허우적거리는 것이다.

그러면 뭘 어디서 다시 시작해야 하나
스윙의 원리에서 시작해야 한다. 미로를 연상해 보라. 답에서 거꾸로 나오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자세를 익히면서 역학의 핵심으로 결코 들어갈 수 없다. 역학원리를 가지고 몸의 형편에 맞게 자신의 스윙을 설계하는 스윙의 DIY방식이 답이다. 어차피 스윙자세는 제각각일 수 에 없다. 잭과 타이거가 한날 한시에 동일한 스윙을 배워도 실제 동작은 차이가 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스윙원리를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기만 하면 자세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이것은 아마추어 골퍼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여기서 생각이 시작되어야 스윙이 한없이 쉬워진다.

올바른 단 하나의 스윙법이 따로 있나고 보나?
아니다. 올바른 스윙의 원리가 있을 뿐이다. 스윙법은 원리를 각자의 몸에 맞게 구현하면 되는 것이다. 역사상 최고수들의 스윙 역시 제각각이었다.
골프사에서 최고의 볼스트라이커로 꼽는 사람이 셋 있다. 벤 호건, 모 노먼, 리 트레비노가 그들이다. 이들은 스트레이트볼에 관한한 3대 천왕이었다. 그러나 각자 스탠스가 달랐다. 그러고도 모두 하나같이 최고의 볼스트라이커가 되었다. 이 현상을 두고 부치 하먼은 에이밍의 중요성이 과장된 반증이라고 진단한다. 스탠스가 달라지면 에이밍 포인트가 변하는 건 맞지만, 나는 달리 해석한다. 이들은 스트레이트볼을 치기 위해 자신의 몸 형편에 맞는 스탠스를 취한 것이다. 사람마다 스퀘어스탠스의 의미가 다른 것이다. 덮어놓고 양발을 가지런히 놓는 것이 스퀘어스탠스가 아니다. 자기 몸과 몸짓의 특성에 맞게 서는 것이 스퀘어스탠스라고 해석해야 한다. 그 자세에서 각자에 맞는 스트레이트볼을 위한 스윙구간이 나오는 것이다. 이들 세 전설들은 그 의미를 경험적으로 깨달았던 것이다. 이것을 두고 캐나다의 전설적 스윙이론가였던 조지 넛슨이 그의 책에서 설명한 적이 있다. 왼다리가 오른다리에 비해 8/5인치 더 길었던 자신의 신체적 특성 때문에 스탠스를 약간 닫고 서는 것을 기본스탠스로 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골퍼는 누구나 자신의 양다리의 길이 차이를 알고 있어야 한다. 다리길이가 다른 신체적 특징을 반영하지 않고 기계적인 스퀘어스탠스를 취한다는 것은 밭일하던 농부가 남 따라서 똥장군 지고 장에 가는 것이다. 그러니 타고난 구질이 드로니 페이드니 하는 것이다.
웃기는 소리는 이제 그만해야 한다. 골프 스윙 자체가 비본능적인 동작인데 타고난 구질이 어디 있나. 차라리 양다리의 길이가 같아서 몸이 완전한 대칭이거나 어느 한쪽이 더 길거나 짧다고 하는 것이 먼저다. 그 특징을 감안한 스탠스가 스퀘어스탠스다. 자신만의 스퀘어스탠스를 선다면 누구나 스트레이트볼을 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스트레이트볼 역시 타고난 구질이라는 말은 아니다. 골퍼에게 가장 유리한 구질이기에 스트레이트볼을 치고자 하는 것이고 누구나 원리만 알면 칠 수 있다는 것이다.


여태까지는 그것을 왜 몰랐을까.
근본적인 문제는 ‘선생의 실패’다. 나는 레저골퍼의 헛스윙보다 프로의 요령부득이 더욱 딱하다. 몸짓을 전달하는 소통능력이 떨어진다. 그러다보니 학생은 원리를 묻지 못했고 선생은 답하지 못했다. 제대로 물었어도 답하지 못했을 것이 확실하다. 선생도 모르니까 별 수 없는 것이다. 당연히 우문에 우답만 양산했을 뿐이다. 학생이 선생더러 스피드를 내는 원리를 들려달라는데, 선생은 헤드스피드를 내야 비거리가 난다고 돌려 답하는 꼴이다. 선생은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는 것이 전부다. 잘해봐야 이러저러한 자세와 동작을 설명한다. 자세와 동작 이전의 문제, 즉 스윙스피드의 원리를 모르니까 헛스윙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레슨무용론이 나오는 것이다. 선생이 옆에서 짚어줄 때는 되는 듯하다 혼자 플레이하면 영락없이 헛스윙을 면치 못한다. 원리는 모른 채 문제풀이만 배운 것이다. 또 하나는 프로들의 골프 세계관의 문제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설명할 방법이 있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질문에 질문으로 답을 한다는 말이 재미있다. 이를테면 어떻게 가르쳤으면 더 쉽게 배울 수 있었나?
원리로 해결되는 것이라면 어지럽게 말을 빙빙 잡아돌리지 말고 원리를 주면 된다. 나는 이런 상상을 한다. 골프의 연원과 전개의 땅이 영국과 미국이다보니 경험주의적 티칭의 지독한 폐해가 스윙레슨에 녹아있는 것 아닐까, 만약 골프가 유럽대륙이나 동양에서 발원한 것이라면 어떻게든 개별적 자세와 동작이 아니라 원리에서 출발해서 동작을 전달하는 교육으로 진화해 오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학적인 공리들은 경험적, 귀납적 설명보다 논리적, 연역적 설명이 효과적일 때가 많다. 골프 스윙에는 자세와 동작만이 스윙메카니즘이라는 말로 남아 있다. 이게 레저골퍼에게는 죄다 엉터리요 헛소리다. 나는 프로의 세계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지만 내심 프로에게도 억지춘향식의 짜맞춘 허상일 뿐이라 확신한다.
선생들은 스윙은 골퍼마다 다르다고 한다. 하나마나한 소리다. 원리를 모른다는 자기고백과 같은 것이다. 가르쳐 봐야 안되고 배워봐야 헛일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도 같은 말을 한다. 스윙은 골퍼마다 다르다. 그러나 스윙의 원리는 모든 골퍼에게 동일하다. 그것은 선가에서 말하는 3*3은 9의 세계다. 공통의 원리를-원리란 이미 공통인 것이다- 개성적 몸에 적용하는 몸짓이 스윙이다. 이 경우, 각자가 최대의 헤드스피드를 낼 수 있다. 서로 다른 모양으로. 그러나 여기에는 비트겐슈타인의 표현처럼 '가족유사성'(family resemblance)이라 불리는 것이 있을 것이다. 스윙의 DNA라 할 수 있는 핵심원리를 공유하기 때문에 겉몸짓은 달라도 속몸짓은 같게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선생의 실패를 비켜갈 만한 스윙레슨의 새로운 길이 있나?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나는 젊은 시절 아프리카에서부터 남미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닌 여행가였다. 돌이켜보면 나의 여행은 산은 산 물은 물,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다시 산은 산, 물은 물이로되 예전의 그 산과 그 물이 아니다, 라고 하는 선가적 변증법을 발견하고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다른 것을 보고, 그것이 같음을 알고, 다시 그것이 다르다는 것을 서로 다른 차원과 깊이에서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양한 문화와 역사가 여행가에게 펼쳐보이는 그 궁극의 퀘스트는 역시 ‘나는 누구인가’ 하는 것이었다. 델포이의 신전에 새겼다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하는 말이나, 선가의 화두인 '이 뭣꼬?'만 보더라도 모두 자신의 본성을 바로 보라는 단 한 가지 궁극의 숙제였다. 동서와 남북을 막론하고 결국 질문과 답은 나에 관한 것이며 나머지 이야기는 모두 이 화두의 변주이거나 뜻풀이에 지나지 않는다.
절집을 찾아보면 일주문 기둥이나 불당 입구의 벽 등 눈길이 머물만한 곳에는 어디라도 심오한 뜻이 담긴 글들이 깊이 새겨져 있다. 주련이라 하는 기둥글의 내용은 선가의 슬로건이나 캐치프레이즈라 할 수 있는 말들이다. 말없음의 집에 너무 많은 글이 적혀있다보니 뜻은 증발하고 이미지로만 남아 단청처럼 장식으로 여겨질 때가 많다. 이 집의 기둥마다 비록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결국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것이다.
골프 스윙의 신전 기둥에 새겨진 이야기들도 부지기수다. 골프의 삽삼조사라 할 수 있는 초인적 골퍼들이 남긴 골프와 스윙에 관한 팁들은 어느 것 하나 옳지 않은 말들이 없다. 그러나 그 자체로는 허깨비다. 팔만대장경에 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잖나. 스윙의 자세와 동작을 설명하는 이야기들도 마찬가지다. 자세와 동작을 백날 가르쳐 봐야 헛일이다. 오직 힘의 원리를 깨치게 도와주고 나머지는 골퍼의 몫으로 남겨둬야 한다. 즉, 원리를 재료로 골퍼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세와 동작으로 반영해야 할 뿐이다. 우리 레저골퍼들은 프로들에게 허깨비의 몸짓만 배워온 것이다. 내 이야기는 아마추어의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레저골퍼에게 들려줄 현답이 이퀼리브리엄 스윙인가?
그렇다. 종종 선생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고수들도 있다. 이들은 스윙의 원리를 꿰찬 사람들이다. 스윙을 원리로 이해하고 나면 스스로의 기준으로 스윙을 바로잡을 수 있다.

왜 이퀼리브리엄 스윙이라 명했는가.
윌리엄 블레이크 <순수의 전조>라는 시에,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우주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한 순간 속에서 영원을 보라는 구절이 있다. 나는 무엇을 하더라도 끝을 보려는 미련한 사람이라 스윙을 연구하는 동안에는 브리티시오픈을 구경도 못해보고 죽은 시인의 멀쩡한 시조차 골프 스윙의 완벽한 메타포로 읽혔다. 우주에, 인생에, 1초 내외의 짧은 스윙 속에 완벽한 부조화만큼이나 날카롭고 아름다운 균형점이 들어 있다. 이퀼리브리엄은 물리학용어로 하나의 물체에 미치는 힘을 모두 더한 합력이 제로가 되는 균형을 말한다. 이퀼리브리엄은 골프 스윙에도 예외없이 존재하며 헤드스피드를 최대로 내는 결정적 역할을 하는 몇 개의 시공간으로 존재한다. 나는 이것을 두고 이퀼리브리엄 포인트, 즉 스윙의 절대균형점이라 명명했다. '절대'균형점이라 한 이유는 이퀼리브리엄 포인트는 타이거 우즈의 스윙에도 있고 108타를 치는 초보골퍼의 스윙에도 있기 때문이다. 이 균형점들을 연결하는 스윙을 하는 것이 레저골퍼가 라이프타임 베스트 스윙을 하는 궁극적 비법이라 믿는다. 내가 오랫동안 몸공부를 해 온 바탕 위에서 대략 1백만 개의 볼을 치면서 골프사상 최고로 꼽히는 볼스트라이커들의 스윙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것이지만 이제 레저골퍼들은 이것을 한나절이면 충분히 배워 저주스런 헛스윙에서 탈출할 수 있다.

이퀼리브리엄 스윙은 스윙법 중 하나인가?
하나의 스윙법이 아니라 스윙의 핵심원리다. 자세나 동작이 아니다. 그것은 이퀼리브리엄 스윙 원리를 바탕으로 골퍼 스스로 자신의 몸과 몸짓의 형편에 맞게 만들면 된다. 그렇게 스스로 만드는 스윙이라야 언제나 일관되어 골퍼를 배신하지 않는 믿을 만한 메카니즘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어떻게 스윙하면 되나.
답은 두 가지다. 하나는 올라갔던 길 그대로 내려오라, 다른 하나는 클럽을 가속할 만한 시점에서 가속하라는 것이다.
갔던 길 그대로 돌아올 수 있다면, 스윗스팟으로 조준해 놓은 어드레스의 모양대로 원위치 할 수 있어 스윗스팟을 맞힐 찬스가 커진다. 당연하지 않나. 또, 클럽을 가속할 만한 시점에서 가속해 주어야 최대스피드를 낼 수 있다.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당연한 것조차 잊고 사는 것이다. 이것이 요체다.

여기에 골프가 장비운동이라는 특성을 살리면 된다. 즉, 골프스윙은 클럽의 결을 살리고 볼이 놓인 라이의 결을 따라야 한다. 클럽이 생긴 꼴대로 스윙하고 임팩하면 된다. 가속해 줄만한 시공간에 도달했을 때 가속해주면 된다.
결을 따라 친다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그 말은 골퍼의 본능을 따르라는 말이 아니다. 사람의 본능은 때로는 옳고 때로는 그르다. 대표적인 것인 다운블로다. 프로의 높은 탄도는 거리를 의미하고, 아마추어의 높은 탄도는 거리의 손실을 의미한다. 아마추어는 퍼올려야 볼을 뜰 것이라고 본능적이면서도 지성적인 판단을 한다. 틀린 생각이 아니다. 퍼올리면 볼이 뜬다. 문제는 거리다. 골프 스윙에서는 볼을 띄우는 의미가 여럿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거리를 얻기 위함이다. 볼을 내려치는 동작으로 볼이 솟구치는 힘을 얻고 그 다음에 밀어주는 동작으로 추가적 거리를 얻어야 한다. 프로들은 예외없이 그렇게들 한다. 아마추어들은 클럽헤드를 볼에 떨어뜨려 주는 동작으로 볼이 솟구치는 것이 아니라, 그 힘은 캐스팅으로 다 소진하고 나서, 볼을 밀어줘야 할 힘으로 퍼올린다. 그러니 높이는 나오지만 거리는 실종되는 것이다. 이것은 스윙에너지의 배달사고다. 에너지를 엉뚱한 곳에 전달한 것이다. 스포츠 동작의 대부분은 본능에 반하는 것이다. 스포츠에서 운동효율의 극대화란 그저 느끼는 대로 치는 수준으로는 발생되지 않는다. 도덕경에서, 반자 도지동이라 했다. 되튀는 것이 순리다. 내리쳐야 솟구치는 것이다. 그것이 육안과 본능에 어긋나 보이지만 자연의 결을 따르는 스윙이다. 그저 그러한 대로 스윙하라, 이것이 핵심이다. 이를 두고 나는 스윙의 자연이라 표현한다.

스윙의 자연? 재미있는 표현이다.
사진예술의 정점이라 추앙받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미학적 고갱이는 '결정적 순간(L'instant décisif)’이라는 말이다. 그가 말하길, 삶의 움직임 속에는 그 동작의 과정에서 각 요소들이 균형을 이루는 찰나가 있다. 사진은 바로 이 평형의 순간을 포착해 고정시키는 것이다라고 했다. 사진뿐이겠는가. 어떤 서투른 몸짓에도 균형점이 들어있다. 단지 보지 못하니까 포착하지 못할 뿐이다. 거의 대부분의 스포츠에서 특히 이 순간을 포착하는 자가 고수인 것이다. 골프스윙으로 촛점을 맞추면 모든 골퍼의 스윙 속에 이 결정적 순간이 시공간으로 존재한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이퀼리브리엄 포인트, 즉 스윙의 절대균형점이다. 이 균형점은 프로와 아마추어, 고수와 하수를 차별하지 않는다. 여기서 스윙이 시작하고 끝내는 것이 바로 스윙의 자연을 이루는 것이다.

당연하기 때문에 얼핏 해볼만하다는 자신감이 드는 것 같기도 하다. 누구라도 채택할 수 있나?
이퀼리브리엄 스윙은 쉽다. 누구나 할 수 있다. 이것은 채택이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발견의 문제일 뿐이다. 이퀼리브리엄 포인트는 당신의 스윙에도 고스란히 들어 앉아 있다. 직각은 90도이고, 3*3=9다라는 것은 경험이나 믿음의 뒷받침이 필요없다. 골프 스윙의 핵심이 이런 것이다. 나는 그것을 발견한 사람일 뿐이다. 이것은 착시일 수 없다. 스윙에서 이퀼리브리엄 포인트는 만인공통이다. 사람마다 개성이 있으나 머리, 몸통, 사지가 있는 것은 공통인 것과 같다. 타이거의 스윙에도 있고 당신의 스윙에도 있다. 이퀼리브리엄 포인트만 확인하면 당신의 스윙은 며칠만에도 라이프타임 베스트에 도달할 수 있다. 운동감각이 좋다면 굳이 배울 필요도 없다. 구구단을 굳이 구구단의 발명자한테 가서 배울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며칠이면 원리를 배워서 혼자 연습할 수 있나.
당장에는 타작의 이야기를 그저 가볍게 읽으면 된다. 그리고 몸으로 기본 컨셉을 확인하는 데는 사흘이면 넉넉하고 일주일이면 넘친다. 익숙해지는 것은 혼자서 연습하면 된다. 그것조차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골프 스윙은 매우 간단한 것인데, 프로에게 배우고도 익숙해지기 위해 죽도록 연습해야 하는 스윙법이라면 원리를 제대로 전달받은 것이 아니다.
이퀼리브리엄 스윙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이 원리를 세상에 내놓으면서 뭘 바라나. 자칫 논쟁거리가 될 수도 있을텐데?
바라는 바 없다. 골퍼들이 스윙의 늪에서 더이상 번뇌하지 말고 스윙 그 너머를 바라볼 수 있길 바란다. 논쟁도 원치 않는다. 원리는 입증의 문제일 뿐이고 다툼의 대상이 아니잖나. 오도자불입(悟道者不入) 깨달은 자, 골프 스윙에 대해서 나름대로 답을 가지고 있고 할 말이 많은 사람은 내 웹사이트에 들어올 필요없다. 시간낭비다.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 잘하면 된다.


김다인

영화평론가. 인쇄매체의 전성기이던 8,90년대에 영화전문지 스크린과 프리미어 편집장을 지냈으며, 굿데이신문 엔터테인먼트부장, 사회부장, LA특파원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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