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순에 1만5천여 평 과수원 개간, 성공한 인생 2막 입지전
인터뷰365 김두호 기자(/인터뷰어) = 한국원로영화인회의 임원이기도 한 노진아(본명 홍성덕, 1947∼) 원로 영화인은 한국영화의 ‘충무로시대’로 일컫는 7080년대에 관객들의 갈채를 받은 영화 '아픈성숙', '사후세계', '질투' 등 20여 작품에 출연한 인기 배우였다.
지금 그는 ‘자연인 홍성덕’으로 돌아가 강원도 인제의 특산명품으로 떠오른 사과 과수농원 ‘편파골 애플밸리’의 주인으로 변신해 있다. 과수원은 놀랍게도 노령으로 접어든 칠순에 인생 2막의 꿈을 안고 삽자루를 쥔 그의 손과 집념이 일궈낸 인간승리의 비화가 맺혀있다.
계곡 아래 소양강 물줄기가 흐르는 강원도 인제군 남면 수산로 첩첩산중, 해발 500여m의 야산 1만5천여 평에 사과나무 2000여 그루를 심고 가꾸기 시작한 지 8년이 지난 지난해부터 생산 판매에서 흑자 수익을 올리고 있다. 마침내 인제에서 가장 큰 사과단지로 등장한 것이다.
2막 인생을 스스로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살고 있는 그의 감동적인 입지전이 소문나면서 지난 10여 년 개척의 삶을 두고 최근 기록영화 제작 활동을 해온 봉회장 감독이 ‘산골로 들어간 영화배우 노진아(가칭)’의 다큐 작품도 준비 중이다.
험준한 산골의 꾸불꾸불 비탈길을 한참 동안 달려 지금 한창 사과나무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 편파골 과수원을 찾아가 ’자연인 홍성덕‘으로 살고 있는 노진아 원로배우를 만났다.
내 인생이 한 편의 영화였다
- 골짜기 하나가 산 중턱까지 사과나무밭으로 이어진다. 어떻게 이런 곳에 과수원을 조성하게 되었는가?
"나이 칠순에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일을 한다는 것은 모험이었고 용기가 필요했다. 나는 늦은 나이에 별세한 남궁원 윤양하 선배의 소개로 심성이 착하고 깊은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아내를 만나면서 나도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내 인생행로도 많이 바뀌었다. 과수원으로 만든 이곳은 과거에 사둔 쓸모없는 땅이었다. 어느 해 미국으로 이주해 살고 싶은 꿈이 있어서 재산을 정리하려 할 때 풍광 좋은 인제 땅은 팔지 말자는 아내의 의견이 있었고 또 미국행도 포기하면서 야산의 개발방안을 찾게 되었다."
- 사과 과수원을 생각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라면.
"처음은 인제군에서 공직 근무를 한 친구가 기후 온난화로 강원도가 사과 재배의 적지가 되었다며 과수원 개발을 권유했다. 이어서 평창에서 사과 과수원을 하는 후배를 만나 수입도 좋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때부터 전국 사과 과수원을 답사하며 재배 지식을 익히고 재배 작업 체험도 하게 되었다. 과수연구소를 찾아다니면서 전문가에게 최신 재배 정보와 기술도 배워가다가 일본의 유명한 사과단지 아오모리까지 찾아가 재배 수업을 받은 뒤 돌아와 소매를 걷어 올리고 삽자루를 들었다."
- 개간 기간이 얼마나 걸렸는가? 투자비용은?
"한때 공연사업의 투자가 실패해 거액의 빚더미를 안고 고생할 때가 있었다. 과수원 조성을 결심했을 때 나의 재산은 그 산골 임야와 가진 돈 5천여만 원 밖에 없었다. 도저히 엄두를 낼 수 없었지만 10년이 걸린다 해도 내 손으로 해보겠다는 오기로 거처할 컨테이너 농막을 짓고 중장비를 동원해가며 일을 저질렀다."
- 수확하고 판매수입이 있기까지 남모르게 겪은 비화도 적잖을 것 같다.
"한때 잘 나가던 배우였고 또 영화사를 세우고 영화를 제작, 배급도 해서 스스로도 상상할 수 없는 거액의 재산을 모은 시절도 있었다. 그런 내가 노년기에 겁도 없이 삽자루를 들고 일을 벌였다. 8년이 지난 2019년에 마침내 조성사업을 끝내고 몇 해 전부터 생산 투자 대비 판매 수익에서 흑자로 안정기를 맞이하고 있다."
- 영화배우 시절 얘기로 돌아가 보자.
"나의 고향은 경기도 부천이다. 어릴 때 아버지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나는 외조부 슬하에서 자랐다. 일찍 영화에 홀려 서울예대(전 서울예전)에 진학해 배우를 꿈꾸게 되었다. 신구, 민지환, 전무송 배우들이 나의 선배이고 민욱, 황범식, 박은수, 정운용 배우들이 동기였다. 1974년 당시 액션 영화의 스타이면서 감독 활동과 제작도 했던 박노식(1930∽1995) 배우에게 발탁되어 '왜'라는 영화로 데뷔했다. 나의 예명 노진아도 박노식 배우가 지어준 이름이다."
- 대표 작품을 꼽는다면.
"'독수리 날개를 펴다', '아픈성숙', '사후세계', '질투', '장대를 잡은 여자'등 주연 영화를 비롯해 TBC-TV '추적100회' 특집프로 등 20여 작품이 있다. 영화사 ‘지나필름’을 설립해 내가 제작한 영화도 있고 수입외화를 배급해 크게 흥행에 성공, 한때 부자가 됐다는 소문도 있었다.
허가된 20개 영화사가 영화 제작 및 수입영화 배급을 하던 때 자금을 조성해준 영화사가 부도나면서 '벤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십계', '람보', '후래쉬댄스' 등 히트 외국영화의 리바이벌 배급권을 인수받아 많은 재산도 가져봤다. 그 무렵 ‘지나필름’ 영화사를 설립해 '금달래', '피조개 뭍에 오르다', '다섯사람들' 등의 작품도 제작했다."
- 살아오면서 좌절이나 실패한 적은 없는가?
"있다. 1978년 친구가 기획, 연출한 대작 연극 '모모'의 서울과 부산 공연 제작비를 전담했다가 크게 실패한 일이 있다. 당시 상상할 수 없는 40여 명의 출연진이 무대에 오르는 대작 규모의 작품이 관객 동원에 실패해 가진 재산도 날아가고 빚더미까지 안겨주었다. 참담한 고통을 겪었다. 부산에서 숙박비도 갚지 못할 정도가 되어 잠시 막다른 생각까지 했다."
- 영화계를 떠나 수입차 판매회사를 운영한 적도 있다던데.
"영화사들이 수입외화의 흥행에 의존해 영화산업의 자본을 조성하고 국내 영화 제작비를 조달하던 때에 미국의 대표 배급사인 UIP가 직접 배급으로 한국영화 흥행시장이 흔들렸다. 영화인들이 직배 반대 투쟁을 하는 외국영화 개방 시기에 나도 영화사를 접고 다른 길을 찾았다. 1995년 벤츠와 BMW를 수입하는 오라이온이라는 무역회사를 차려 안정된 운영을 하다가 IMF 때 문을 닫았다."
- 근래 TV프로 중에 깊은 산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자연인’ 관련 방송 프로들이 인기를 모은다. 지금 이 산속에 주거 주택을 마련해 살고 있는 모습 그대로가 ‘나는 자연인이다’는 프로를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과수원을 일군 과정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든다고 들었다.
"나의 편파골 과수원 조성담을 알고 있는 다큐 영화 제작자 봉회장 감독이 극영화 같은 감동적인 기록영화를 만들겠다는 제의를 해왔다. 사실 지금 이곳을 관리하고 작업하는 인력은 나와 필리핀에서 온 아브리온(41), 마이클(40), 우말리(28)라는 근로자까지 4명이다. 이 땅을 사과밭으로 만들고 관리하면서 그들과 나눈 사연들만 정리해도 이야기가 된다."
- 지금 우리 사회 한쪽 부문에는 엄청난 해외 근로자들이 들어와 주로 농어촌에는 다민족 다문화의 숱한 일화들이 피어나고 있다. 함께 일하면서 겪고 나눈 감동적인 실화가 있다면?
"내가 사는 집과 별도로 숙소를 두고 이 외딴 산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그들은 모두 처자식을 둔 필리핀 친구들이다. 어느 깊은 밤, 잠이 오지 않아 숙소를 나섰다가 밝은 달을 바라보며 훌쩍이는 아브리온 근로자를 만났다. 고향에서도 저 달을 바라보며 자신을 그리워할 아내와 자식들을 생각하며 울고 있는 그를 말 없이 끌어안고 함께 눈시울을 적시는 것들이 모두 멜로드라마다."
- 우리도 과거 독일 탄광이나 중동 사막 땅에 많은 근로자로 돈 벌려고 나가 고생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 그럴 때 그 시절의 우리 어른들이 떠오른다. 그렇게 생사고락을 함께하다 보니 정이 들고 마침내 팀장 역할을 하는 아브리오와 세 근로자들이 사는 그들의 고향인 필리핀 바탕가스시가 가보고 싶었다. 나의 고향처럼 느껴져 한두 번 방문하다가 몇 해 전부터는 일이 없는 겨울 한 철을 나는 가족과 함께 4개월쯤 바탕가스에서 살고 온다."
- 세 근로자를 소개해 달라.
"작업팀장인 아브리오 씨는 2남 1녀, 마이클 씨는 3남 1녀, 우말리 씨도 어린 아들이 있다. 그들은 한 도시에 사는 선후배 친구들이다. 모두 아브리오 씨가 소개해서 왔다. 가끔 그들과 함께 인제 장터에 가서 장을 보고 음식을 함께 먹는 즐거움이 나의 행복한 시간이다. 그들은 나와 함께 우리 가족이 되어 임금의 대부분을 가족에게 보내며 착실하게 과수 농장을 이끌어가고 있다."
- 영화배우로 화려한 시절도 있었다. 지난 삶을 돌아보면 스스로는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인간은 모두 한편씩의 드라마를 만들어 가는 주인공들이다. 나의 젊은 시절은 남의 시선을 모으고 또 시선을 끌기 위해 보낸 배우의 삶이었다. 늙어도 좋은 배우로 사랑을 받을 수 있지만 역시 배우들 무대의 주인공은 젊은이들이다. 일찍 그런 생각을 하며 미련 없이 새로운 활동무대로 옮겨 다닌 덕분에 나의 노후 인생은 내 인생에서 내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당당하게 살게 한다는 자긍심을 갖게 한다. 남의 시선을 의식 않고 스스로 만족하는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련도 없었다. 그저 지금 과수원 사과 열매가 최고의 결실로 수확되기를 바라는 것이 나의 희망이고 소박한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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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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