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용 감독의 '안개'(1967), 김승옥의 단편소설 ‘무진기행’이 원작
▶(33) ‘만추’(1966)와 배우들...신성일·문정숙 이어서
인터뷰365 백학기 칼럼니스트 = 1967년 개봉작 ‘안개’는 한국 영화사의 한쪽에 묵연히 내려앉은, 지워질 듯 흐르면서도 묘하게 오래 남는 필름이다. 김수용 감독이 김승옥의 단편소설 ‘무진기행’(1964)을 스크린으로 옮긴 이 작품은, 신성일·윤정희라는 당대의 얼굴들을 내세우고 있지만 단순한 멜로드라마의 틀을 벗어난다. 오히려 이 영화는 한국 근대화의 초입에서 ‘성공’이라는 단어에 짓눌린 어느 남자의 내면 오디세이이며, 한국 영화사에서 보기 드문 ‘도시인의 공허와 존재론적 피로’를 정면으로 응시한 작품이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많은 한국 영화의 장면을 기억하고 잊고를 반복했지만, 이상하게도 ‘안개’ 속 몇몇 이미지들은 지워지지 않는다. 무진의 흐느적거리는 흰 안개, 음악교사 인숙(윤정희 분)의 말간 눈빛, 윤기준(신성일 분)의 말 없이 돌아앉은 뒷모습 같은 장면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농도가 짙어진다.
안개 속에서 드러나는 것들 - 시대와 영화의 물성
1967년은 한국 영화에서 변곡점과도 같은 시기였다. 산업화의 바람은 거칠었고,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근대인’이라는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안개’는 바로 이 인물형을 가장 먼저, 가장 냉정하게 그려낸 작품 중 하나다.
윤기준은 제약회사 상무다. 과부였던 사장의 딸과 결혼했고, 그 결혼 덕분에 상무가 되었다. 이 출세 과정 자체가 이미 그의 내면에 어둡게 응결된 ‘안개’의 기원을 암시한다. 그는 능력으로 올라간 것이 아니라, 연줄과 사적 관계의 합일을 통해 사회 구조의 한 축에 편입되었다. 이런 상황의 윤기준에게 아내는 휴식하라며, 모처럼 고향 무진에 다녀오라고 권한다. 남편의 피로를 걱정하는 말투지만, 그 이면에는 남편을 전무로 올리기 위한 완벽한 전략의 한 조각이 놓여 있다.
즉, 윤기준의 ‘귀향’은 휴식이 아니라 이미 기획된 출세 코스의 미션이다.
무진은 명산물이라고는 안개밖에 없다는, 그야말로 비물질적 도시다. 그곳에 도착한 기준은 폐병환자였던 젊은 시절의 자신을 떠올린다. 이 회상 구조는 영화 전체에 ‘과거의 망령’을 은근한 베이스로 깔아놓는다. 그리고 이 과거의 기억이 인숙을 향한 끌림으로 이어진다.
김수용 감독의 연출은 지금 봐도 뛰어나다. 흑백 촬영은 안개라는 물성을 극적으로 살리고, 시각적 과잉이나 감정적 폭발 대신 절제된 리듬으로 인물의 내면을 휘감는다. 79분이라는 러닝타임은 짧은 듯하지만 오히려 농도 높은 ‘침잠’을 가능하게 한다.
윤기준이라는 존재 - 성공의 자리에서 비어가는 심연
윤기준(신성일)의 표정은 이 영화의 절반을 담당한다. 당시의 신성일은 한국 영화 산업이 만들어낸 전형적인 ‘멜로드라마 남주인공’의 이미지가 강했지만, 이 작품에서는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그는 끊임없이 피로해 있고, 어딘가 불편한 듯 자신이 앉아 있는 공간과 조응하지 않는다. ‘성공한 자’의 얼굴이 아니라, 성공의 안쪽에서 무너지고 있는 남자의 얼굴이다.
그가 무진에 도착했을 때 카메라는 길게 그를 잡는다. 그 화면 속 기준은 안개 앞에서 흐릿해진다. 그는 도시에서는 분명한 윤곽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고향의 안개 속에서는 경계가 풀린다. 이 경계의 소멸은 중요한 표현이다. 그가 가꿔온 커리어의 외피가 모두 벗겨진 채로 남는 것은 ‘과거의 자신’이다. 병약했고, 도시로 도망치고 싶었고, 그토록 싫어했던 무진에 결국 다시 돌아온 이 남자는 성공이라는 이름의 도피처가 부서지는 순간을 맞이한다.
인숙을 향한 그의 관심은 일종의 도피본능이다. 젊고, 도시를 동경하고, 나른한 기색 속에서도 반짝이는 눈을 가진 인숙은 윤기준에게 ‘잃어버린 가능성’처럼 보인다. 그러나 관객은 안다. 그 가능성은 애초에 그에게 속하지 않은 것이며, 그가 결코 붙잡을 수도 없는 것이라는 것을.
인숙(윤정희)이라는 유령 - 시대가 놓친 여성의 초상
'안개’를 이야기할 때 인숙(윤정희)을 빼놓을 수 없다. 윤정희의 초기 연기 중 가장 섬세한 결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녀는 서울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꿈과 현실 사이에서 붕 떠 있는 젊은 여성이다. 인숙이 가진 ‘부유함’은 단지 정서적이거나 심리적인 차원이 아니다. 그녀는 시대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틀에 맞춰 넣기 어려운 여성’이다.
1960년대 한국 사회는 여성을 ‘집안의 역할’ 또는 ‘남성의 서사에 결합되는 대상’으로 주로 위치시켰다. 그러나 인숙은 그렇지 않다. 그녀는 스스로의 욕망을 인지하고 있고, 도시를 향한 끊임없는 동경과 자기긍정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 동시에 삶의 불안정성이 묻어나는 인물이다. 그녀가 윤기준에게 “서울로 데려가 달라”고 말하는 순간은 단지 멜로적 갈등의 시작이 아니다. 그것은 무진이라는 정체된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은 한 젊은 여성의 절규다. 그 절규는 현재의 관객에게도 특별한 울림을 준다.
왜냐하면 인숙이라는 인물은 시대를 50년 앞서 ‘정체된 고향에 갇힌 여성의 초상’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기준에게 인숙의 절규는 단지 ‘잠깐의 자극’으로만 스쳐간다. 그가 인숙을 구할 마음이 없다는 건, 영화를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알 수 있다. 그는 이미 성공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에 갇혀 있고, 인숙은 그 톱니바퀴의 한 바퀴를 흔들기엔 너무 연약한 존재다. 그들의 관계는 애초에 지속될 수 없다. 안개가 걷히면 사라질 이미지처럼.
무진이라는 공간 - 한국적 우울의 원형
'안개’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방식은 ‘무진’을 하나의 거대한 상징으로 읽는 것이다.
무진은 현실의 지명이지만 영화 속에서는 거의 신화적 공간처럼 작동한다.
안개는 결핍의 상징이다. 침묵하는 사람들은 고향이라는 이름의 억압에 다름 아니며, 인숙의 부유성은 탈출의 욕망을 의미한다. 이 이미지들이 서로 얽히며 무진은 단지 윤기준의 고향이 아니라, 그가 벗어나지 못한 내면의 심연이 된다. 서사적으로 보면 무진은 폐병, 병역 기피, 패배주의, 동경, 그리고 소멸을 의미한다.
윤기준에게 무진은 ‘도망쳐 나온 곳’이지만 동시에 ‘도망쳐 온 곳’이기도 하다. 그는 무진을 떠나서 살았지만, 실은 그 안개를 가슴에 품고 살아온 셈이다. 이 영화가 지금 시대에도 읽히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의 ‘무진’을 가지고 산다.
어디서든 우리를 잡아당기는 어떤 결핍, 혹은 부끄러운 과거, 혹은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기억의 바닥에서 계속 기척을 내는 어떤 감정들 말이다. ‘안개’는 바로 그 내면의 고향을 영화적 이미지로 정교하게 빚어낸 작품이다.
영화적 기법 - ‘안개의 리듬’을 구현한 한국적 미장센
김수용 감독의 연출은 문학적 성찰과 영화적 표현의 균형점을 찾는 데 탁월하다.
이 작품에서 가장 빼어난 것은 ‘리듬’이다. 스토리는 단순하지만, 장면 구성의 템포와 프레임의 정지, 그리고 배우들의 절제된 대사가 만들어내는 전체적 리듬은 정말 뛰어나다.
흑백 촬영의 이 영화는 흑백의 대비가 아니라, 흑백의 ‘흐림’을 사용한다. 안개는 선명하지 않다. 그래서 인물의 윤곽이 풀리며, 관객은 기준의 시선에 함께 잠긴다. 영화의 대사는 많지 않다. 대신 무진의 공기, 바람, 조용한 노랫소리 같은 배경 사운드가 대사보다 많은 말을 한다.
그 공기감이야말로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한국적인 정서다. 배우 신성일의 시선은 늘 흔들린다. 반면 윤정희의 시선은 언제나 고정되어 있다. 이 시선의 교차가 두 사람의 ‘불가능한 관계’를 정확하게 시각화한다.
‘안개’는 1967년 제6회 대종상에서 감독상, 편집상을 받았다.
1968년에는 제15회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에서 감독상, 그리고 제4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 신인연기상을 받았다. ‘안개’가 한국 영화의 서사 지형을 바꾼 작품 중 하나임을 보여주는 지표다. “한국 영화도 인간의 실존을 다룰 수 있다.” “한국 영화도 무의식의 풍경을 그릴 수 있다.” 그 점에서 ‘안개’는 이후의 한국적 모더니즘 영화들-이만희의 작품들, 김기영의 후기 영화들-에까지 이어진 사유의 계보를 형성했다.
1967년의 흑백영화 ‘안개’는 시대를 초월한다. 왜냐하면 이 영화가 다루는 것은 ‘고향’도, ‘멜로’도, ‘출세’도, ‘도주’도 아니다. 이 작품이 끝내 붙잡는 것은 단 하나의 감정이다. “나는 누구인가.” 그래서 ‘안개’는 다시 볼 때마다 다른 영화가 된다. 젊은 날 보았을 때는 인숙이 보이고, 중년에 보았을 때는 윤기준이 보이며, 노년에 다시 보면 무진 자체가 인생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안개는 걷히지 않는다. 인간 존재의 안개는 언제나 우리 앞에 있다. ‘안개’는 그 흐릿한 존재론의 풍경을 가장 섬세하게 그려낸 한국 영화의 귀중한 유산이다. 이 오래된 흑백 필름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길을 잃고, 또 돌아온다. 마치 윤기준처럼, 그리고 어쩌면 우리 자신의 모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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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학기 칼럼니스트
시인 겸 영화감독. 전북 고창 출생으로 <삼류극장에서 2046>등 여러 권의 시집을 냈으며, 영화 <공중의자><이화중선><선미촌>등을 감독했다. 현재 서울디지털대학(SDU) 교수로 재직 중으로, 섬진강영화제 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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