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영 365칼럼] ‘카바레티스트’가 전하는 잔 다르크 이야기...살롱 드 캬바레 - 뮤지컬 ‘잔 다르크’
[주하영 365칼럼] ‘카바레티스트’가 전하는 잔 다르크 이야기...살롱 드 캬바레 - 뮤지컬 ‘잔 다르크’
  • 주하영
  • 승인 2025.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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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하영 평론가의 짧은 단상]
- 2023 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후보작 트라이아웃 공연

심층 문화 비평 칼럼 <앨리스 박사의 문화로 보는 세상풍경>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주하영 칼럼니스트가 또 하나의 새 칼럼 <주하영 평론가의 짧은 단상>을 선보입니다. 짧은 형식 속에 담긴 자유롭고 날카로운 문화적 통찰을 기대해 주세요. [편집자주]

[잔다르크] 공연사진(3)_장보람
뮤지컬 ‘잔 다르크’의 배우 장보람./사진= HJ컬쳐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역사적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왕위 계승권을 둘러싼 영국과 프랑스 간의 백년 전쟁에서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아 프랑스군의 승리를 이끈 잔 다르크(Jeanne d'Arc)는 신성 모독과 마녀 행위, 이단 혐의로 종교 재판에 회부되어 19세의 나이로 1431년 화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25년 후인 1456년 교황의 승인 아래 재개된 심사에서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라는 판결을 받으며 복권되어 순교자로 선언되었다. 1909년에 공경의 대상인 복자로 시복된 잔 다르크는 1920년 5월, 교황 베네딕토 15세에 의해 성인(Saint)으로 추대되었고, 프랑스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잔다르크] 공연사진(2)_제이민
뮤지컬 ‘잔 다르크’의 배우 제이민./사진= HJ컬쳐  

하지만 잔 다르크가 마녀에서 순교자로, 복자로, 성인으로 지위가 변한 데에는 때마다 권력자의 정치적 목적과 의도가 작용했다.

1412년 프랑스 동부의 동레미에서 자영농의 딸로 태어난 잔 다르크는 13세 때부터 성 미카엘과 성녀 가타리나, 성녀 마르가리타로부터 영국군을 몰아내라는 계시를 받았다. 16세였던 1428년, 잔 다르크는 왕세자 샤를이 랭스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치를 수 있도록 하라는 성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시농에 있는 왕세자를 만나 기사가 입는 갑옷과 무기, 군대를 지휘할 권한을 달라고 요청한 잔 다르크는, 프랑스군의 사기를 진작시켜 오를레앙을 포위한 영국군을 몰아내고, 영국과 동맹을 맺은 부르고뉴파에 의해 점령당한 랭스로 진격해, 1429년 마침내 샤를 7세가 프랑스의 국왕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잔 다르크는 기세를 몰아 파리로 진군하고자 했지만, 샤를 7세는 협상을 통한 휴전을 원했다. 프랑스 왕실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잔다르크는 1430년, 콩피에뉴 전투에서 부르고뉴파에 의해 생포되었고, 몸값을 지불한 영국군에게 넘겨졌다.

몸값을 지불할 경우 포로를 석방하는 중세 시대의 전쟁 관행이 여전히 적용되던 때였지만, 샤를 7세는 잔 다르크를 구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영국은 자신들의 점령지인 루앙에서 영국에 협력하는 보베의 교구장 코숑 주교가 주관하는 종교 재판을 열었다.

[잔다르크] 공연사진(1)_랑연
뮤지컬 ‘잔 다르크’의 배우 랑연./사진= HJ컬쳐 

잔 다르크의 이단을 증명해 샤를 7세의 정통성에 이의를 제기하고, 점령했던 프랑스의 많은 영토를 잃게 된 패배의 원인을 ‘마녀’에게 돌려, 영국 내 불만을 잠재우려는 의도에 따라 화형에 처해진 잔 다르크는, 25년 뒤 이번에는 프랑스 왕위에 대한 정통성과 명분을 바로 세우기 위해 순교자로 지정되었다.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을 거치면서 19세기에 민족주의와 애국심의 상징으로 자리하기 시작한 잔 다르크는, 위태로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영웅적 면모와 굳은 신앙심, 순교적인 죽음이 강조되며, 20세기의 세계적인 민족주의 확산 및 가톨릭 부흥 운동과 더불어 신화로 자리하게 되었다.

국가보다는 영지로 구분되는 지역 정체성이 강했던 봉건제의 영향 아래에서 중앙 집권적 왕권 강화와 근대 국가로 나아가는 길목에 서 있던 15세기 소녀는, 개인을 둘러싼 세상이 채택한 시선에 따라, 신의 계시를 받은 메신저에서 마녀로, 그리고 500년이 흐른 뒤 성인으로, 600년이 흐른 현재의 시점에서는 페미니즘의 아이콘이자 용기와 저항의 상징으로, 끝없이 존재의 의미가 재해석되었다.

잔다르크_포스터
뮤지컬 ‘잔 다르크’ 포스터./사진= HJ컬쳐

제작사 HJ컬쳐는 잔 다르크의 이야기를 카바레티스트(Kabarettist)가 1인 5역으로 펼쳐 보이는 살롱 드 캬바레 - 뮤지컬 '잔 다르크' 트라이아웃 공연을 선보였다.

프랑스의 작은 카바레 무대에서 자신을 ‘카바레티스트’라고 소개하는 배우는 잔 다르크의 재판을 기록한 ‘만숑’과 프랑스 왕 ‘샤를 7세’, 심문과 판결을 이끈 ‘코숑 주교’, 화형에 처해진 ‘잔 다르크’를 연기하며, 카바레를 찾은 손님들인 관객에게 자신이 해석한 잔 다르크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1880년대 프랑스 카바레 문화를 따르고 있음을 암시하듯, 살롱 음악이 흐르는 극장 안은 큰 테이블과 의자, 스탠드형 마이크, 붉은 커튼, 왕과 주교의 의상, 여성용 의복이 자리해 있다. 무대 뒤쪽으로 몽마르트르의 카바레 유명 인사들을 주로 작품에 담았던 화가 툴루즈-로트렉이 연상되는 그림이 스크린에 영사되고 있다. 그림은 극장 안이 카바레 공간임을 드러내는 장치로 작용한다.

키보드와 기타, 드럼으로 구성된 밴드 연주자들이 무대에 자리하면, 배우가 등장해 관객과 직접 인사를 나누고 친근하게 소통을 시작한다. “음악과 미술 등의 예술적 모티프를 중심으로 다양한 예술 운동을 하는 장르적 태도”라고 카바레 문화를 설명하는 배우는, 자신이 카바레의 공간인 살롱을 운영하는 호스트이자 예술가, 즉 ‘카바레티스트’라고 소개한다.

카바레티스트는 마음속에 울리는 내면의 목소리인 ‘신념’에 따라 살아간 사람인 ‘잔 다르크’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이야기가 역사적 기록에 근거한 것임을 알리기 위해 당시 재판 과정을 기록한 ‘만숑(Guillaume Manchon)’에 대해 언급하는 카바레티스트는, 잔 다르크에 의해 왕위에 오르지만 그녀를 배신하는 샤를 7세와, 종교가 모든 질서의 우위에 있던 시대에 그녀를 화형에 처한 코숑 주교와 관련된 맥락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HJ컬쳐] 잔다르크 공연 사진 (2) 제이민
뮤지컬 ‘잔 다르크’의 배우 제이민./사진= HJ컬쳐  

카바레티스트가 각기 다른 인물로 몰입해 의상을 갈아입으며, 밴드 라이브 연주에 맞춰 노래(넘버)로 설명하는 잔 다르크의 이야기는, 주로 샤를과의 만남과 배신, 재판과 화형에 이르는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만숑의 재판 기록에 근거하기 때문인지, 재판 과정에 길게 주목하는 카바레티스트는 잔 다르크가 보여준 영민함이 드러나는 진술들을 다수 활용한다. 흥미로운 점은 잔 다르크의 대사가 실제로 카바레티스트의 입을 통해 목소리로 관객에게 전달되기 시작하는 부분이 상당히 늦게 배치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마음속에 들려오는 목소리를 따랐을 뿐인데, 자신을 마녀로 몰아세우는 사람들을 보면서 혼란과 갈등을 느끼기 시작하는 잔 다르크를 설명하기 전까지, 카바레티스트는 만숑과 샤를, 코숑의 목소리만을 대변할 뿐, 잔 다르크의 목소리는 스크린에 대사가 출력되는 방식으로 전달된다.

카바레티스트는 잔 다르크가 신념에 대한 갈등을 거쳐 확고한 선택에 이르는 과정을 강조함으로써, 그녀가 “누구보다 자신의 목소리에 충실했던 사람”이라는 해석을 완성해 나간다.

잔 다르크가 들은 계시의 ‘목소리’는 역사 속에서 많은 주장과 논쟁, 분석의 대상이 되어왔다. ‘내면의 목소리’ 혹은 ‘신념의 목소리’라는 해석은 영국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1923년 연극 '세인트 조앤(Saint Joan)'에서 적용된 부분이지만, 최근 몇 년간 여러 공연에서 채택하고 있는 관점이기도 하다.

2022년 영국 런던의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에서 초연된 연극 '나, 조앤(I, Joan)'은 논바이너리(non-binary) 잔 다르크를 설정하며, 젠더 정체성과 내면의 목소리를 연결하기도 했다. 살롱 드 캬바레 - 뮤지컬 '잔 다르크'는 형식의 독특함이 돋보이는 공연이다.

트라이아웃 공연인 만큼 발전될 필요가 있어 보이지만, 카바레티스트의 해석에 따라 잔 다르크를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고증 문제나 잔 다르크에 관한 평가 논란을 최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상지대 겸임교수, 대림대 겸임교수, 한국외국어대 객원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공학대학교 지식융합학부(교양교육센터)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월간 《한국연극》 편집위원과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편집위원 및 이사, 세계문화예술경영연구소 초빙연구원, 외국문학연구소 초빙연구원을 역임했다.

주하영
주하영
jhy02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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