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성철·안수민 탈북 작가와 대한민국 청년 화가인 전진 작가 초대
- “남북관계 갈등 완화에 예술이 긍정적 역할 할 수 있다고 생각 안해”
- “남과 북은 언어구조가 완전히 달라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아”
- “北, 예술이 미치는 영향력 큰 점 악용해 주민들 가스라이팅”
- “자유와 민주, 최고 가치로 여기는 체제서 살면 거지로 살아도 행복”
인터뷰365 박현수 편집위원 = 지난 1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서울외신기자클럽 주최로 '네트워킹의 밤 : 탈북 작가에게 묻다'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주한영국대사관과 영국문화원이 탈북민을 위한 영어 교육 프로그램 '잉글리시 포 더 퓨처(English for the Future)'로 지원하고 있는 북한 남포시 출신의 오성철 작가를 비롯해 함경북도 회령시 출신의 안수민 작가가 초대됐다.
특히, 두 작가의 작품과 함께 대한민국의 청년 화가인 전진 작가가 초대돼 남과 북의 미술을 비교해 보는 특별한 자리도 마련됐다.
이날 행사에는 BBC, CBS 뉴스, 블룸버그, 마이니치신문, 닛케이, 파이낸셜타임스, 워싱턴타임스, 알자지라 등 주요 외신들과 다수의 한국 언론들이 참여했다.
오 작가와 안 작가는 기자들에게 예술이 단지 체제 선전을 위한 도구로만 활용되는 북한의 실상을 설명했다.
특히 최근 남북관계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데 현 시점에서 예술이 갈등을 완화하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오 작가는 “공감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북한과 대한민국은 종자가 다른 집단이고, 언어구조가 완전히 다르다”면서 “따라서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 남과 북이 예술교류를 통해 화해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공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 작가는 이어 "북한 미술은 사유, 생각, 창작 이런 것을 국가가 허용하지 않는다"며 "북한 예술은 예술이 아니라 북한 국민들을 정신적으로 노예화하는 도구이자 무기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예술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대단히 큰 점을 악용해 주민들을 가스라이팅 하고 있다”고도 했다.
안 작가도 "북한이 생각하는 미술의 개념과 한국의 미술 개념은 완전히 다르다"며 "북한 예술은 예술이라기보다는 사상을 주입하는 행위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북이 예술교류를 통해 화합한다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두 작가는 통일 이후 예술이 남과 북의 문화적 간극을 줄이는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는 긍정적인 답변을 피력했다.
오 작가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게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중요한 문제인 만큼 통일에 앞서 문화 예술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안 작가도 “통일 이후 예술의 영향력은 크다”면서 “사람들은 교육을 통해서 변화되는데 오감적인 부분은 예술 영역을 통해 배워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 사람들은 미술이나 예술을 통해 인간이 누리는 아름다움을 못 느끼고 있는데, 나중에 통일이 됐을 때 전 세계가 누리는 예술 영역이 북한에 들어가면 젊은 세대들은 그것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북한의 선전 방식이 최근 틱톡 등 다양한 소셜미디어로 변화하고 확장해 가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질의가 이어졌다.
이에 대해 오 작가는 “북한은 체제유지와 선전을 위해 모든 인적자원이 집중되고 사명처럼 느끼는 공동체”라면서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세계의 변화에 대응하고 선전도구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하면 세상 사람들을 속이고, 상황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어 “한국 사람들은 북한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을뿐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면서 “자유와 민주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체제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내 삶의 주인이 나이기 때문에 거지로 살아도 행복하다”고 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 초대된 전진 작가는 예술가의 DNA를 타고난 떠오르는 신예작가로 주목을 받았다.
전진 작가는 이날 기자와 만나 “디자이너이자 현재는 작가인 아버지, 한국무용가이며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는 어머니, 피아노를 전공한 고모, 피아노 학원을 운영했던 할머니 등 예술의 유전적 DNA 덕분인지 어릴 적부터 문화 예술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중에서도 유난히 좋아했던 것은 음악이었는데, 단순히 많이 듣는 것, 아티스트의 앨범을 CD나 LP로 구매하는 것, 아티스트의 공연을 실제로 마주하는 것 외에 무엇을 더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에게 그것은 다름 아닌 그림이었다. 창작 욕구가 들끓었던 것이 가장 큰 강점이고, 관찰력을 가지고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을 줄곧 그려왔다.
전진 작가는 “연필만을 고집하다 아버지로부터 오일 파스텔을 권유받아 형형색색의 재료들을 사용해 보니 체감도가 상당히 달랐다”면서 “그림을 그리면서 느끼지 못했던 자유분방함을 비로소 오일 파스텔을 통해 알게 됐고, 오일 파스텔은 현재 나의 주 무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영화나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들, 남들이 쉽게 놓칠만한 부분들을 오마주 한 것이다. 오래전부터 예술 문화를 좋아했고 그것들을 통해 가장 큰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내게 영감을 주는 원천들을 나만의 기법으로 재해석할 때 큰 기쁨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특히 “작가로서의 절대적인 철칙이 있다면 누군가에 의해 그려진 그림만큼은 모작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그림을 통해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줄 수 있고 나 자신도 행복한 작업이 되길 기대하며 소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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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수 편집위원
서울신문을 거쳐 문화일보 편집국 인터넷뉴스팀장, 조사팀장, 인물팀장으로 35년간 활동. 한국조사기자협회회장 역임. 정보관리학박사(국민대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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