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열 365칼럼] ①대한민국과 폴란드의 동병상린(同病相燐)-폴란드 안보의 역사적 특성
[하정열 365칼럼] ①대한민국과 폴란드의 동병상린(同病相燐)-폴란드 안보의 역사적 특성
  • 하정열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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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란드는 왜 대규모의 무기를 한국서 구입하려는 것일까
하정열 칼럼니스트<br>
하정열 칼럼니스트 

인터뷰365 하정열 칼럼니스트 = 최근 폴란드가 25조원 규모의 한국 무기체계를 구매하기로 결정하였다. 우선 독자들을 위해 폴란드에 대해 요약하면, 공식명이 폴란드공화국 (The Republic of Poland)이며, 인구는 약 4000만명이고, 면적은 312,685㎢로 한반도의 약 1.5배이며, 인구분포는 폴란드인 96.9%, 실레지아인 1.1%, 독일인 0.2%, 우크라이나인 0.1%, 기타 1.7%이며, 주로 폴란드어를 사용하고 있다.

폴란드는 우선적으로 K2 전차 1000대, K9 자주포 670여 문, 탄약운반장갑차 300대, FA-50 경공격기 48기를 구매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폴란드에 대한 이번 방산 수출은 25조원 규모이지만, 앞으로 30년 이상 군수지원까지 더하면 60조∼70조원으로 추정된다. 참 반가운 일이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폴란드...한반도와 유사한 지정학적 환경

폴란드 지도/사진=픽사베이

폴란드는 왜 갑자기 1년 국방비 총액을 초과하는 대규모의 무기체계를 한국에서 구입하려는 걸까?

첫째, 가장 중요한 이유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다음은 폴란드라는 위기의식이 고조된 결과이다.

그중 가장 중요한 요인인 폴란드의 지정학적 환경과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폴란드는 우리 한반도와 같이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다. 폴란드 역사를 보면 주변 강대국의 흥망성쇠에 따라 폴란드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폴란드가 분열되거나 힘이 없을 때에는 대부분 주변국간의 전쟁터로 변했으며, 그들 강대국에 점령을 당해 나라를 잃거나 속국이 되기 일쑤였다.

폴란드에 왕조체제가 정착된 10세기에는 신성로마제국의 침략에 대항하여 치열하게 싸워야했다. 13세기 들어서는 1241년, 1259년, 1287년에 연이은 몽골군의 침입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1386년 폴란드 여왕과 결혼을 통해 리투아니아의 대공을 겸한 폴란드왕 브와디스와프 2세가 왕위에 올랐다. 브와디스와프 2세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맹을 구성하여 이후 4세기 동안 중동유럽에서 강대국으로 군림하였다. 이러한 힘을 배경으로 1610년 폴란드는 모스크바까지 침공하기도 하였다.

폴란드는 17세기 들어 스웨덴 및 러시아의 부상으로 점차 국력이 쇠퇴했다. 1648년 우크라이나에서 폭동이 일어나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보호를 이유로 개입하여 1654년부터 1667년까지 러시아와 전쟁을 벌여 결국 남동부 지역을 상실하였다. 1655년에는 스웨덴의 침공으로 포즈난을 비롯하여 폴란드 서북부 전역이 파괴되었다. 이러한 와중에 프러시아와의 전쟁까지 치루며 약 400만 명의 폴란드인이 사망하며 폴란드의 국력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해졌다.

18세기 들어 외세의 간섭과 공격을 막을수 없을 정도로 국력은 더욱 쇠퇴하였다. 결국 1772년 폴란드의 혼란을 틈타,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는 폴란드를 분할하여 영토의 30%와 인구의 절반을 상실하였다. 1794년 폴란드의 민족주의적 코시치우슈코 봉기(Kościuszko Insurrection)는 러시아에 의해 진압되었다. 이를 계기로 1795년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는 3차 폴란드 분할을 감행하여 이후 1세기 동안 폴란드는 지도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폴란드는 독립의 희망을 갖고 의용군을 결성해 나폴레옹을 도와 여러 전투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몰락하자 러시아는 폴란드왕국(Kingdom of Poland)을 세워 러시아 연방으로 병합하면서 폴란드의 독립은 좌절되었다. 폴란드는 독립을 포기하지 않고 저항하였으나, 러시아는 폴란드왕국을 해체하여 러시아 제국으로 편입해 버렸다. 이후에도 폴란드는 19세기 내내 독립을 위해 저항하면서 큰 희생을 치렀다.

외세의 간섭·공격으로 점령 당한 '피의 역사'  

1914년 제1차 세계대전과 1917년 러시아혁명이 발발하자 폴란드는 독립의 기회를 맞았다. 연합군 측은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내세운 민족자결 원칙에 따라 폴란드의 복원을 지지하였다. 이에 고무된 폴란드의 200만명의 군인들은 독일에 대항해 싸워 그 중 약 45만명이 전사했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사회주의자인 이그나치 다신스키의 주도로 폴란드 공화국이 건설되었다. 

폴란드 제2공화국의 황금기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과 독일의 침공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1939년 독일과 소련 간 체결한 몰로토프-리벤트롭조약(Molotov–Ribbentrop Pact)에는 폴란드를 독일의 관할에 두고 동부지역과 리투아니아는 소련이 점령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에 따라 독일은 폴란드를 점령해 관할에 두고 동부지역은 러시아군이 진주하였다.

폴란드 국기/사진=픽사베이

폴란드의 강경한 저항은 큰 피해로 이어졌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의 폴란드 점령기간 동안 300만명의 폴란드인과 같은 규모의 유대인이 희생당했다. 소련 역시 폴란드 동부지역에서 20만명이 넘는 폴란드 지식인을 학살하였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폴란드에서 희생된 사람의 90% 이상은 민간인이었다.

1945년 종전과 함께 연합국의 합의 하에 폴란드 동부지역은 소련의 영토가 되었고, 폴란드의 서부는 오데르-나이세강(Oder-Neisse River)을 경계로 확대되었다. 이에 따라 폴란드 영토는 전체적으로 서쪽으로 이동하였고, 수백만 명의 폴란드, 독일, 우크라이나인들이 거주지를 떠나 새로운 영토로 이주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함께 폴란드를 점령한 소련은 저항군을 신속히 제압하고 생포된 폴란드 군인은 처형하거나 감옥에 보냈다. 또한 저항군 지도자들은 폴란드인들의 사기를 꺾기 위해 모스크바로 보내 공개재판을 통해 처형했다.

여기까지 보면 우리나라 역사를 되짚어보는 것 같지 않은가? 그렇다. 폴란드가 한 때 강했을 때는 영토를 확장하고 모스크바까지 공격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약소국으로서 주변국에 점령당하여 영토를 잃거나 분활당하고 국체조차 유지하기 힘들었다.

NATO 핵심 회원국 된 폴란드, 유럽연합 내 안보방위정책 확대 적극적 

이제 폴란드는 서유럽과 러시아의 중간에 위치한 입지로 NATO의 핵심 회원국이며, 중동유럽에서는 외교, 군사 및 경제부문에서 지역강국이다. 폴란드는 1996년에 OECD 가입 이후, 2004년에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이 되었다.

특히 폴란드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을 보며 안보에 커다란 위협을 느껴 군사력을 증강하고 친나토와 친미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폴란드 국방군의 임무는 영토수호와 함께 국제적 차원에서 폴란드의 이익 수호로 특별히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으로서 군사적 목표를 공유한다.

폴란드는 러시아와 인접한 지리적 특성으로 유럽연합 내에서 안보방위정책 확대에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며, 미국과 군사협력이 활발한 국가이다. 단적으로 폴란드는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유럽연합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요청을 수락하여 영국과 함께 참전한 바 있다. 또한 2020년에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주독일 미군의 유지비 문제로 독일과 갈등을 빚자, 폴란드는 주둔비 전액 부담을 약속하며 미군의 폴란드 주둔을 요청한 바 있다.

폴란드군은 육해공 3군 체제에 특수부대와 영토방위군 등 다섯 개의 군으로 편재되어 있다. 폴란드 정규군은 약 12만 3000여명이며, 육군이 절반을 차지한다. 이외에 공군 1만 6500명, 해군 7000명, 특수부대 3500명, 영토방위군 2만 1700명의 병력이 있다. 폴란드는 유럽연합 회원국 내에서 GDP 대비 방위비 지출비중이 큰 국가이다.

폴란드군의 최대 현안은 서유럽의 NATO 회원국에 준하는 군작전과 기동능력 향상, 공군력 강화 및 정예군의 양성이다. 이러한 목표를 위해 폴란드는 2020~2035년 기간 총 1330억 달러의 국방비를 배정하여 장기적인 군방개혁을 진행하고 있다. 2020년 기준 방위비 지출은 GDP 대비 2% 수준인 135억 달러에 달했다.

두 번째, 미국을 포함하여 독일 등 주변국에 무기체계가 우수한 국가가 많지만, 폴란드가 위기시 신뢰할 수 있는 주변국이 많지 않을 거라는 불신 때문이다. 이것은 앞에서 열거한 지정학적인 운명과 역사적인 사실에서 기인한다. 폴란드는 러시아를 불신하는 것은 물론 이웃 국가인 독일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독일의 무기체계가 우수하지만, 독일이 언제 돌변하여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폴란드에 넘긴 오더-나이제 선까지 공격을 할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차리리 멀리 떨어져 있지만 동병상린의 한국이라면 항구적으로 군사협력이 가능하리라고 믿는 것이다.

세 번째, 한국무기의 성능이 가격대비해 효율적이란 요인이 결정적이었다. 대한민국의 방산기술과 품질, 신뢰성과 생산능력이 독일과 프랑스 등 군사 선진국을 제친 것이다. 그리고 폴란드에 먼저 진출한 민간기업들이 그동안 쌓아논 실적들이 신뢰로 연결되었다. 한국과 폴란드는 1989년 11월에 수교하였다. 한국의 폴란드에 대한 무역규모는 약 70억 달러이며 주요 수출품은 기계, 평판디스플레이, 자동차부품, 승용차 등이다.

한국의 폴란드에 대한 투자는 지금까지 누계 기준 약 35억 달러이며, 폴란드 내에 약 300개의 한국법인이 영업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중 90%가 제조업 분야이다. 한국기업의 폴란드에 대한 투자는 전자, 가전, 자동차 등 서유럽 시장을 겨냥한 첨단 제조업에 집중되어 있으며, 최근에는 플랜트, 에너지 및 R&D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지금까지 폴란드의 안보현실과 역사적 특성 및 한국으로부터 최대 규모의 무기체계를 구입하려는 의도를 살펴보았다. 이제는 폴란드를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나라의 안보현실을 직시해 볼 때이다.

이 칼럼은 2편(▶②대한민국과 폴란드의 동병상린(同病相燐)- 안보를 위한 대응전략은)으로 이어집니다.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하정열 칼럼니스트

칼럼니스트, 육군소장(예), 북한학박사, 북한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한국안보통일연구원 원장, 우주화가, 시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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