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도, 출판하는 언니들' - '에디토리얼' 대표 최지영 편
- '비평연대' 김재훈·유희선이 띄우는 헌사
각자도생이 당연해진 시대, 1인 출판사를 창업해 십수 년을 버텨온 30년 업력의 대표 다섯 명이 모여 '오늘도, 출판하는 언니들'(박희선·박숙희·전은정·최지영·이현화, 유유)을 펴냈습니다. 치열하게 자리를 지켜낸 '선배 언니'들을 향해, 현장의 젊은 출판인·비평가 그룹 '비평연대' 10인이 '동생'의 자리에서 헌사와 답장을 보냅니다. 책을 평가하는 서평을 넘어, 각 대표에게 두 명의 '동생'이 마음을 전하는 특별 기획 '오마주 서평'을 매주 수요일, 총 5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편집자주]
■ 후배 편집자가 자신의 세계를 설계하는 기록/김재훈(클라우드나인 PM·비평연대)
건축을 공부하는 동안 저는 늘 형태를 다루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형태보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만들어내는 사람과 공간 사이의 분위기와 사유에 더 오래 시선이 머물렀습니다. 출판도 그런 것 같네요. 책의 형태는 독자 앞에 완성된 모습으로 놓이지만, 그 안에는 편집자의 시간이 구조처럼 숨어 있었습니다.
고백하자면, 이 장의 제목 앞에서 저는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엄마 편집자. 저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자녀도 없습니다. 출산과 육아가 삶을 어떻게 뒤흔드는지 짐작조차 어렵네요. 그런데 글을 읽어 내려가며 나와 가장 먼 자리에서 쓰인 글이 어느새 점차 가까워지는 듯했습니다. 경험은 짐작할 수 없어도, 선배가 어떤 마음으로 일을 대하는지, 그 태도와 사유는 선명하게 전해져 오고 있었습니다. 모르는 세계 앞에서 움츠러드는 대신 그 세계의 언어를 먼저 배우러 가는 마음. 그림책을 독학하고, 과학책을 쌓아 읽고, 대중지성 공간을 찾아다니며 감각을 갱신해 온 시간. 그건 결국 한 사람이 자신의 세계를 지켜내고 넓혀 온 기록이었습니다.
선배는 ‘일과 가정’이라는 두 손에 쥔 떡 앞에서 어느 것도 소홀히 하고 싶지 않았다고 썼습니다. 지금 저에게 그 두 손에 쥔 것은 ‘일과 꿈’인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작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합니다. 그럼에도 건축을 다 놓은 것은 아닙니다.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 계속 갈 것인지, 건축의 언어로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것인지, 아니면 아직 상상하지 못한 제3의 길이 있을지. 매일 고민해도 답은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선배의 글을 읽으며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양자택일이 아니라, 두 세계를 오가며 나만의 자리를 만들어 가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선배가 육아를 통해 과학이라는 세계에 진입했듯, 저의 건축도 언젠가 제가 만들 책의 세계로 스며들지 모르겠습니다.
선배의 글은 이렇게 끝납니다. “아주 먼 곳을 미리 내다봐야 할까, 볼 수는 있을까. 그런 걸음걸이로 여기까지 와 있다.” 먼 곳이 보이지 않아도 걸음을 멈추지 않는 사람의 문장이었습니다. 저도 그런 걸음걸이를 배우고 싶네요. 일과 꿈, 두 손에 쥔 것을 어느 것도 놓지 않은 채로.
■ 후배 마케터가 자신의 세계를 넓히는 법/유희선(위즈덤하우스 마케터·비평연대)
저는 4년 차 기혼자입니다. 결혼은 어른의 삶이 저글링이라는 걸 알려줬습니다. 나, 배우자, 내 가족, 배우자 가족의 기념일을 챙기는 큼직한 일정부터 시작해 유통기한이 지났는지 헷갈리는 식재료를 고민하다 음식물쓰레기 봉투에 담는 것, 화장실 타일 틈 곰팡이를 효과적으로 닦아낼 수 있는 솔을 고르는 것까지 ‘그동안 엄마가 해줬던 일’을 동시에 해내야 했습니다. 그동안의 저글링은 꽤 순탄했지만 ‘자녀’라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거대한 탱탱볼이 끼어들었을 때 그걸 능숙하게 잡았다 놓았다 하며 다룰 준비는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2년 차 출판 마케터이기도 합니다. 포트폴리오에 베스트셀러를 쌓는 경험-인간을 키우는 일을 저울에 올리면 마음은 전자로 기울었습니다. 일하는 엄마가 된다는 것은 일과 육아 두 세계를 번갈아 건너며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하고 거듭 고개를 숙이는 죄인의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언니의 역사를 읽으면 육아가 자신을 무너뜨리며 일부를 잃어가는 과정이 아니라 ‘나의 세계를 넓혀가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오빠가 아니라 언니가 그리 말하니 인생에 손해는 아니겠지요.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행복’이라며 출산을 독려하는 선배들 말씀은 퍽 지겨워요. 틀린 말이라서가 아니라 너무 많이 들은 말이라서요. 이보다는 언니 글에 마음이 동하네요. 이과 성향 자녀와 공통 언어로 대화하기 위해 과학책을 읽어나갔던 언니의 여정이요. 새로이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 그 존재와 같은 언어로 대화하기 위해, 상상도 못한 세계에 기꺼이 진입하게 된다는 건 한 번 사는 인생을 더 풍성히 살게 하는 크나큰 이득처럼 느껴집니다. 실은 최근에 자녀를 가지기로 했거든요. 나이에 떠밀려 에라 모르겠다, 눈 꾹 감고 내린 결정이었는데요. 자녀를 통해 책을, 책을 통해 자녀를 키워가는 이야기를 만나 이제야 용기를 얻습니다. 겁 많은 제가 언젠가 찾아올 아이에게 건넬 기꺼운 환대에는 지영 언니의 지분도 있을 겁니다.
- Copyrights © 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