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문화의 원조, 자연주의 실천가 이지은
웰빙문화의 원조, 자연주의 실천가 이지은
  • 배병호
  • 승인 2011.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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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하지 않는 것이 친환경 화장법이다”

【인터뷰365 배병호】친환경 자연주의 삶의 실천가이면서 자연생활 계몽 운동가, 발명가, 사업가, 디자이너 등으로 활동해온 '자연의 벗' 대표 이지은(61) 여사는 웰빙이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전인 1970년대부터 자연 미용, 자연 건강을 실천하고 외쳐온 친환경 웰빙 운동의 선각자다.

이지은 여사의 사회활동과 연계된 직함을 더 구체적으로 열거해보자. 먹어도 해가 없는 친환경화장품 개발원조, 여성발명가 신지식인 1호, 우리 옷 세계화 디자이너, 녹색대학 살림학교수, 생명철학 전문강사, 한국전통생태생활연구가, 심리치유가, 명상가, 한국건강연대 대표, 세계차없는날 한국공동조직위원장 등인데 사회교육기관의 고정 강좌를 제외한 공사 단체의 초청 강의만 지난 30여 년 동안 2000회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강의 주제는 주로 자연미용과 자연 건강에 대한 것들이다.

이지은 ‘자연의 벗’ 대표의 라이프 스토리에는 아토피 아기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질병으로 고통을 겪고 20대에는 폐결핵으로 투병생활을 하며 스스로 자연요법을 통해 건강을 회복한 기록들이 들어 있다. 자신의 체험과 발견을 토대로 1980년대부터 친환경운동과 연관된 푸른건강실천회를 만들어 식품공해반대운동을 시작했다. 1987년에는 한국자연미용법연구회를 발족시켜 화장품 피해 신고센터와 한국자연미용법연구회 활동을 함께 했다. 화장품 공해 반대운동도 하면서 식용으로도 가능한 천연 화장품을 직접 연구하고 개발하여 성공한 사업가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비누 없이 세수하고 목욕하고 그 물을 버리지 않고 꽃과 나무를 키우며 식물과 미생물까지 사랑하는 자연양생(自然養生)을 생활철학으로 실천하며 살아가는 이지은 ‘자연의 벗’ 대표와 마음을 열어놓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먹고 사는 데 걱정이 줄어들면서 언제부터인가 자연(내츄럴), 무공해, 친환경, 청정, 유기농, 녹색(그린), 천연 따위의 용어가 유행어처럼 등장했다. 삶의 질을 높이고 인간의 몸에 이로운 식품이나 생활용품의 좋은 이미지를 대변하는 머리말로 애용되고 있다. 그것들을 굳이 앞세우는 것은 우리의 생활주변에 그렇지 않은 것들이 더 많다는 얘기가 아닌가?

물론이다. 선진국에 가보면 그런 말을 애써 강조하지 않는다. 인체에 유해한 것을 생산단계에서 배제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제 많이 변했다. 화장품만 해도 화학재료를 주로 이용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천연 화장품들이 대부분이다. 식품도 친환경 친자연 제품이 소비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친환경 화장품과 자연미용이라는 말을 누구보다 앞서 부각한 분으로 알고 있다. 그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언제쯤인가? 어떤 동기가 있는가?

어머님이 교직에 계셔서 외조모님의 뒷바라지를 받고 자란 나는 아토피를 비롯해 몸도 병약하고 성격도 유약해 어릴 때 가족들이 자폐아로 생각하고 걱정을 많이 했다. 모든 행동을 죄가 되는지 안 되는지를 고민하다가 사람을 기피하는 버릇도 생기고 표정이 심각해 건방진 여학생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성장했다. 하지만 활동적인 부모님의 유전인자를 받은 탓인지 사회생활을 하면서 성격도 원래로 돌아온 것 같다. 옳지 못한 것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가 생겼고 문제 해결을 위해 공부하고 연구하고 대안을 만들어 전파하는 운동가의 집념과 기질이 생겼다. 1970년대인 20대에 폐결핵으로 투병생활을 하면서 생명의 근원적인 문제에 의문을 가지고 한의학과 동양철학 한국철학 분야에 깊이 접근해간 것이 결국 자연에 대한 친화와 가치를 발견하는 과정이 됐다. 질병의 근원적인 예방이나 치료, 인간의 삶의 질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유지하는 방법은 인간의 섭생(攝生)과 환경을 자연 생태로 돌려주는 데 있다는 것을 절감했고 나의 병도 마음도 자연 치유요법으로 회복했다. 여성의 화장과 미용에 특별히 관심을 두게 된 것도 그 무렵이다.

푸른건강실천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식품공해 반대운동을 시작한 것이 1984년인데 사회단체 등 비행정기구의 활동에는 제약이 많은 시대였지만 우리의 주장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을 가진 사람이 많아 큰 어려움은 없었다.

푸른건강실천회를 통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의 활동을 한 것인가?

하루 한 끼 현미밥상 이용하기나 무농약식품으로 자연식 실천하기 운동을 하고 여의도 사무국 한켠에 시식코너를 만들어 회원이 아닌 일반 시민들에게도 자연식을 접하게 했다. 당시 강남에는 유흥음식점과 카페로 돈을 버는 사업이 흥청거렸는데, 왜 돈도 안되는 이런 사업에 매달리느냐고 걱정해주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1986년 보도매체를 통해 이상구 박사의 채식건강론이 센세이션을 일으키자 나의 푸른건강실천회 운동도 크게 주목을 받았다. 나 역시 여기저기서 강연을 해달라는 초청이 많아졌고 각종 매체의 인터뷰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미용과 화장품에 대해 관심을 둔 것은 언제부터인가?

내가 여자인 탓인지 친환경이나 자연건강운동을 하다 보니 저절로 여성들의 미용생활과 화장품의 품질문제로 관심이 옮겨갔다. 사실 20대 투병생활을 할 때 약물성 간염과 위염으로 얼굴에 검게 내려앉은 기미 때문에 절망했던 경험도 있다. 1987년 11월 나의 일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참여한 30여명의 여성들과 한국자연미용법연구회를 출범시켰다. 불량화장품 피해신고전화와 상담센터를 운영하면서 공해 요소가 없는 대안 화장품 연구의 필요성을 느꼈고 그로부터 개발한 화장품들을 특정 회원들에게 보급하기 시작했다.

1988년 일본의 산케이신문이 '한국의 자연미용의 기수 이지은'을 보도한 적이 있고 이어 중앙일보가 '한국을 움직이는 인물'로 선정했다.

자연미용법연구회 회원이 2000명을 넘어섰을 때 대안화장품의 조사 연구를 위해 일본도 자주 다녔다. 1990년대까지도 자연미용이라는 말이 친근하게 들리지 않았다. 1995년 EBS교육방송 TV의 환경다큐 프로그램을 통해 ‘자연의벗‘이 내놓은 친환경 화장품이 소개되면서 큰 반향을 남겼다. 그 무렵 환경친화적 생활 캠페인 행사로 봄나물 캐기 대회를 3년 정도 개최해 각박한 도시인들의 정서에 많은 호응을 불러 모은 일도 기억에 남는다.

도대체 친환경 자연 화장품이란 어떤 화장품을 뜻하는가?

한마디로 먹어도 해가 없는 식품과 같은 자연물질을 재료로 한 화장품이다. 우선 화학약품이나 석유추출물을 배제하고 식품, 생약, 생물, 자연물질 등을 활용한 것, 비누가 없이 맹물로 씻어도 90% 이상이 씻어져야하고 1회용 각종 박스와 포장용기가 절제된 것 등을 내세울 수 있다.

이어서 자연에 대한 사랑이나 신뢰와 인간의 건강에 대한 진정한 효용성이 반드시 반영되어야 한다. 환경보호를 우선 가치로 삼아야 하고 인위적합성물질을 배제해 피부의 휴식과 치유적인 개선 효과를 주는데 생산 목적을 두어야한다. 친환경 자연 화장품이라고 해서 화장품의 소비를 부추기는 생산 및 공급 판매행위도 반사회적이며 자연 환경면에서 역행으로 볼 수 있다. 나와 '자연의 벗'은 그것을 언제나 경계해 왔다.

화장품과 환경보호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예를 들면 사람의 피부에 발라서는 해롭지 않은 성분의 화장품도 땅과 물에 스며들어가면 잘 분해되지 않는 유해 오염물질이 있다. 일반 소비자들은 잘 모른다.

한복 의상 디자이너에서 현재는 음식명상요법연구가로도 활동하지 않는가?

나는 한복이라는 말보다 '우리 옷'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한겨레신문의 문화센터에서 자연건강과 미용 강좌를 4년째 운영하다가 IMF가 터진 1998년 '우리 옷을 내손으로 만들어 입기'라는 주제를 내걸고 새로운 강좌를 개설했는데 수강생이 구름처럼 몰려 성공했다. 전국 순회강연을 다닐 정도였다. 사실 그보다 앞서 1996년 내가 만든 자연화장품과 우리 옷이 여성발명대상 은상을 수상하고 한글이름과 관련해 발명가들에게 주는 '신지식인'으로 선정된 일이 있다.

음식명상요법은 1986년에 개발했으나 강의활동을 한 것은 2000년부터였다. 2010년에는 서울시의 후원으로 8주간 비만 고혈압 당뇨 거식증 등의 자연치유를 위한 음식조절력강좌를 마련했다. 금년 10월에는 생명밥상지도자 과정을 마련했다.

언젠가 세계적인 팝피아니스트 리차드 클레이드만이 내한 공연 때 입은 한복을 직접 디자인했다고 해서 화제에 오른 일이 있다.

1999년이었다. 우리 옷을 입혀 관객의 환호를 받았던 뮤지션 일행이 9명이었다. 몸집이 큰서양인들이 한복을 입으면 아주 우아하고 화려하게 보인다. 또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2000년 1월을 전후해 사물의 명인 이광수와 전통뮤지컬팀에 합류하여 우리의 전통의상을 디자인, 제작하고 연출한 적이 있는데, 그들 미국 6개 도시 순회공연에 또 함께해서 오프닝무대에 '자연의벗 우리옷 쇼’ 로 갈채를 받았다. 그래서 우리 옷에 매료되어 많은 시간을 쏟은 적이 있고 지금도 여전히 한국인의 명품옷은 우리옷이라 생각한다.

의상의 디자인이나 제작은 전문성이 필요하다. 다방면에서 전문성을 갖게 된 비결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성장기의 순수한 꿈은 어느 쪽인가?

대학에서 전공은 가정학과 교육학이었고 석사과정은 심리학이었지만 어릴 때부터 전통 의상에 관심이 많았다. 한산모시 축제에 초청받아 모시옷 패션쇼도 하며 우리 옷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창조하는 디자인 사업에 관심을 둔 것은 20대 초 의상디자이너로서의 수업을 받은 적이 있어 가능했다. 그 후 선대의 철학을 내 나름으로 익히고 연구하며 한국인의 정체성에 관해 고민하다 보니 의식주 가운데 우리의 의생활이 친환경적이라는 것을 깊이 느끼게 되어 더 열심히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다.

어머니는 1920년대에 동아일보 학생콩쿨에 자수로 입상격력이 있을 정도로 자수와 옷 만들기 등 솜씨가 좋으셨고, 50년대 이후 교편생활하시며 우리 학교 교복 디자인을 직접 하여 샘플 제작한 것을 내가 입고 운동장 교단에서 선을 보인 적도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라면서 당시 외할머니의 세수와 목욕하는 방법, 매일 화장하고 출근하는 어머니를 눈여겨본 것이 오늘날의 화장을 비롯한 자연미용 분야의 영역으로 확장된 것 같다.

자연치유를 권장하는 건강편지 쓰기 등 을 전개한 한국건강연대를 창립한 것은 언제인가?

원래 95년에 발족된 것을 NGO구도로 재정립하기 위해 2002년부터 준비해서 2003년에 단체명을 바꾸어 총회를 주도했다. 각종 건강축제 행사와 청소년건강학교를 개설하며 지금까지 단체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2008년부터는 세계 4000개 도시에서 동시 진행되고 있는 '차없는 날' 한국행사에서 공동조직위원장을 맡아 활동하는 것에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차없는 날'은 아직 자가 운전자들에게 관심을 모으지 못하는 행사인 것 같다.

나 하나만이라도 승용차 없이 살아보자는 생각으로 운동화만 신고 다녔다. 그래서 그 운동의 선봉에 선 것이 즐겁다. 모든 사회운동이 처음부터 호응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앞장을 선 사람들이 명분을 가지고 솔선수범으로 실천하며 꾸준히 열정을 바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 확신한다.

아마도 그것이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가로 활동하고 사회운동을 해온 이 여사의 신념이나 철학으로 보인다. 좀 더 자신의 삶에 대한 소신을 밝혀달라.

창포로 머리를 감고 성냥개비 숯으로 눈썹을 그리던 옛 어른들의 소박한 미용법이 우리의 친환경 미용법의 원조였다. 보석으로 치장을 하고 서양의 옷만이 명품이고 성형으로 얼굴을 고치는 이 시대의 미용방식은 정체성 부실이며 환경친화적이지 않다. 그래서 나의 미용건강운동의 초기 정신은 화장품을 사용하지 않고 얼굴을 가꾸는 데 두었지만 도도히 밀려오는 상품 문화의 물결을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내손으로 화장품으로 개발하는 데까지 뛰어들었다. 사회운동을 하고 사업을 하고 강의를 하는 내 정신은 모두 선조가 물려준 전통 생활철학과 성인 성현들의 말씀, 생명과 물질에 관한 알렌 왓츠의 주장, 니체가 남긴 자연인의 정의론, 환경의 중요성을 깨우친 다윈의 진화론 등등 자연생활 운동은 그런 분들의 철학과 이론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

자연 화장품을 개발하고 사업으로 성공했는데, 그동안 펴낸 저서를 소개해 달라.

여기저기 약 10여 년간 이지은 자연미용 칼럼을 모은 ‘예뻐지는 이야기’(1995)가 있고, 같은 시기에 ’이지은 아줌마의 자연미용‘, ‘쉽고 재미있는 이지은의 자연미용’, ‘1000원으로 만드는 팩’, ‘10살 어려보이는 자연피부 천연화장수’, ‘명품아기 피부 자연화장수’ 등이 있으며, 주부생활에 ‘이지은자연미용법’이 2007년까지 연재되었다. 그러나 친환경에 뜻을 둔 NGO단체들에 연재한 것이 더 애착이 간다. UNEP(우리는 이미 아름답다)와 녹색연합(작은 것이 아름답다-자연담은 미용법)의 연재, 여성민우회의 지구를 위한 화장법‘ 등이고, 어머니 덕분에 내놓은 번역본 ‘위험한 화장품’(일본소비자연맹 1977년 발행) 있다. 이 책은 연구회원들의 교육자료로 사용됐지만 절품되어 육필원고만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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