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이들과 '영혼의 빵'을 나누는 큐레이터
소외된 이들과 '영혼의 빵'을 나누는 큐레이터
  • 조현진
  • 승인 2007.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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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일미술관 수석큐레이터 홍성미씨 / 조현진



[인터뷰365 조현진] 세칭 ‘청량리 588 골목’이 조금 소란스러웠다. 일련의 노숙인들이 그 골목을 따라 어디론가 몰려들고 있었던 것. 그들은 골목 복판에 위치한 ‘신애 복지 재단’ 건물 안 으로 우르르 들어갔다. 처음엔 흔희 볼 수 있는 무료 배식 봉사인줄 알았다. 하지만 잠시 후 그 건물 안으로 악기 가방을 든 시각장애인 3명도 들어가는 모습이 보이더니 이내 건물 안에서 음식냄새가 아닌 바이올린 선율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작은 강당 안에 가득한 노숙인들. 그리고 그들을 앞에서 연주하고 있는 시각장애인 연주자들. 바로 <노숙인들을 위한 '희망 샘 미니 콘서트'>라는 이색 연주회의 풍경이었다.


객석의 반응이 신통치 않자, 무대 구석에서 연주자와 객석을 번갈아 바라보던 한 여성의 초조한 얼굴이 심상치 않다. 하지만 20여분쯤 지났을까? 얼음 같던 객석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몇 사람은 연주의 맞춰 손바닥을 부딪히기 시작했고, 어깨가 들썩이는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사뭇 진지해진 객석은 그 이후부턴 말 그대로 몰입이었다. 1시간을 예정했던 공연은 30분 이상을 더 넘겼다. 연주자들은 계속 쏟아지는 앵콜에 황홀한 연주로 화답을 했다. 초조해보이던 그 여성의 얼굴도 환하게 피어 올랐다.


공연이 끝나자 예상했던 음식 나눔도 없이 노숙인 들은 건물을 빠져나갔고, 시각장애인 연주자들도 악기를 정리하고 무대를 떠났다. 그리고 거기엔 오늘의 공연을 기획하고 진행했던 바로 그 여성 - 홍성미(44세)씨 만이 남아있었다. 그녀의 얼굴엔 피로함과 후련함이 교차하고 있었다.



“와! 마지막에 보셨죠?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그녀는 아직도 흠뻑 취한 공연의 감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드라마 <대장금>의 마지막 대사를 흉내 내듯 말을 이었다. “보세요. 된다고 하지 않았어요?”라고.


오늘 공연은 홍성미씨가 기획한 9번의 콘서트 중 7번째 날이었다. 그 사이 여성 노숙인 센터, 치매노인 요양원등에서도 공연이 이어졌었다. 모두가 소외된 이들이었다. 홍성미씨가 이 공연을 기획하게 된 이유는 어떻게 빵 만으로 사람의 모든 허기를 다스릴 수 있는가라는 자문에서 시작되었다. 노숙인들, 소외자들은 상실 속에서 사는 이들이고 그렇다면 진정으로 그들을 돕고 채우는 방법은 육신과 영혼 모두를 살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에서 였다.


그녀가 찾은 방법은 ‘음악’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벽’이 그녀를 가로막았다. 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소위 전문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모두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그녀를 쏘아붙였다. 무엇보다 그녀를 상심하게 한 것은 음악을 하는 사람도 아닌 미술관 큐레이터(그녀는 현재 가일미술관 수석 큐레이터이다.)가 왜 그런 일을 벌이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술이냐 음악이냐 하는 형식이 뭐 그렇게 중요하겠어요? 예술이란 건 모두 사람을 향하고 있어야 하는 거고 그 사람의 영혼의 허기를 채우는 거잖아요.” 하지만 이 생각을 실행에 옮기는 일은 그리 수월한 것만은 아니었다. 당장 노숙인 쉼터에서조차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듯 색안경을 끼고 그녀를 바라봤고 선뜻 그녀의 계획에 동참하겠다는 연주자들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첫 공연을 했을 때 까지만 해도 저 조차도 많이 혼란스러웠는데 용산에 있는 엘림 여성 센터(여성인 노숙자 쉼터)에서 두 번째 공연을 할 때 제 또래 한 여성이 고개를 푹 숙이고 계속 울기만 하더라고요. 나중에 왜 그런가 알아봤더니 그 분이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분이었던 거예요. 그때 좀 쨘 하더라고요. 아. 저들이 우리와 하나도 다른 사람이 아니구나. 누구나 노숙인이 될 수 있는 거구나 하구요. 그 날 이후 저는 어떤 편견이 없어진 것 같아요. 조금 행색이 남루하고, 지금 힘든 삶을 사는 것 뿐이지 이 분들 역시 문화의 소비자고 문화가 관계해야 하는 상대라는 거지요. 저도 연주자들도 그런 걸 그 날 배운 거예요”



그 진심이 통해서 였을까? 그 날 이후 이 공연은 노숙인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며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공연마다 사람들이 가득 찼고, 매번 빠짐없이 공연장에 나타나 이제 그녀와 인사를 나누는 노숙인들도 생겨났다. 공연이 끝난 이후 그들의 발걸음이 어디를 향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영혼의 포만감으로 돌아서는 모습이었다.


“올해 아홉 번을 해요. 내년에는 더 많이 할 거예요. 올해는 노숙인 들과 치매노인들을 대상으로 했지만 내년부터는 고아들, 외국인 노동자들까지 확대하려고 해요. 장르도 음악만이 아니라 미술이나 뮤지컬, 영화까지 확장시킬 수 있다면 좋겠어요.”

요즘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뉴스로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화제가 되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직업을 우아하게 차려입고 미술관 나들이를 한 사람들에게 ‘그림 설명’이나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홍성미씨가 정의하는 큐레이터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녀는 큐레이터를 ‘문화 나눔이’라고 명명한다. 그림 하나를 설명 할 때도 큐레이터가 필요한 이유는 그 작가의 이력이나, 화풍이 아닌 그 그림이 나오게 된 문화적, 시대적인 배경을 알려주는 직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림을 통해 사람을 읽고, 삶을 설명해주는 것이야 말로 큐레이터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그녀는 믿는다.



“세상에 너무 불신이 팽배해 있어요. 좋은 것인지 나쁜것인지 확인해보기 전에 의심부터 하죠. 우리조차 아이들에게 처음 보는 사람이 말 걸면 대답하지 말라고 가르치잖아요. 실제로 어느 분교에 가서 아이들 미술체험을 해주겠다고 하면 환영하는 학교가 그렇게 많지 않아요. 꼭 ‘이런 행사 한다고 나라에서 돈 지원 받아서 생색내는 거지?’ 하는 시각이라니까요. 그렇게 비뚤어져 있는 게 우리 사회예요. 미술을 하는 사람이 음악회를 하면 왜 안되나요? 그 말은 고깃집 사장이 생선 먹지 말라는 말과 같은 거죠. 그게 밥이건 문화건 간에 다 함께 어울려서 먹고 누리는 거. 배고픔을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뭔가를 먹어야 한다는 것 처럼 문화역시 특정인들의 기호가 아니라 모두가 나누는 식량이 되어 사람을 살리고 사회를 건강하게 해야 한다는 거죠. 노숙인들은 보통 사람보다 조금 더 나눔이 필요한 분들이잖아요. 그런 분들을 소외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더 나눠야 하는 거죠.”


그래서 홍성미 큐레이터의 눈은 언제나 사람을 향하고 있다. 미술관에서 새로운 전시를 계획하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분교 어린이들에게 달려가 미술체험 수업을 빼먹지 않고, 이렇듯 노숙인 들을 향한 음악회를 만드는 것은 그녀의 포커스가 ‘사람’을 향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학력을 위조하는 큐레이터가 등장하고, 미술이 투기가 되는 이 혼란한 상황에서 이런 사람을 만나는 것은 참 상쾌한 일이다. 오늘의 미술계가 우리에게 준 허기짐을 그녀를 만나 다시 채운다. 맞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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