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65] '재현의 마술사' 신언엽 디오라마 작가 "내 집 마련 대신 '피규어' 사들였죠"
[인터뷰365] '재현의 마술사' 신언엽 디오라마 작가 "내 집 마련 대신 '피규어' 사들였죠"
  • 박상훈 기자
  • 승인 2020.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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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뮤지컬·영화·드라마 공간 디자인 경험 살려 디오라마 제작
-디오라마(Diorama)란? 미니어처 위에 스토리가 담겨 있는 모형
-거액 유혹 떨치고 지켜온 소중한 작품...5년 만에 처음으로 한데 모아 전시
-"디오라마로 역사 기록하고파"...'판문점 선언' 디오라마로 장관 표창 수상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속 장면을 재현한 디오라마 앞에서 포즈를 취한 '재현의 마술사' 신언엽 작가. 조명과 음악이 사실감을 더한다. /사진=인터뷰365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속 장면을 재현한 디오라마 앞에서 포즈를 취한 '재현의 마술사' 신언엽 작가. 조명과 음악이 사실감을 더한다. /사진=인터뷰365

인터뷰365 박상훈 기자 = 15년간 무대 디자인, 방송·영화 미술감독,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한 신언엽(1979~) 씨가 국내 최초 '디오라마(Diorama)' 단독 전시를 열었다.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디오라마'는 현실의 장소를 그대로 재현한 축소 모형이다. 단순 기록용으로 제작되던 과거와 달리 '스토리'가 담기며 순간의 시간과 장면을 표현하는 '재현의 예술'이라고 불리며 주목받고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영화 '배트맨' '매드맥스' '스타워즈' 등의 장면을 재현한 디오라마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실감 넘치는 배경과 피규어, 여기에 화려한 조명과 음향까지 더해지니 마치 영화 촬영장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재현의 마술사'로 칭해달라는 신언엽 작가는 무대 디자인의 전공을 살려 디오라마 전문 작가로 활약하고 있다. 지난해 '4·27 판문점 선언'을 재현한 디오라마로 제작·전시해 이름을 알렸으며 통일부 장관 표창도 받았다.

전시장을 가득 채운 25개의 작품에는 모두 그가 걸어온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작품에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구석이 없다. 피규어를 제외하고는 전체적인 구상부터 도면 그리기, 재료 찾기, 실제 작업까지 모두 그의 손에서 이뤄진다. 

소소한 작업 하나라도 절대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모든 작업을 철저히 혼자 한다는 신 작가는 완성한 작업물을 자신의 이름을 딴 '엽 스타일 디오라마'라고 부를 만큼 자부심도 갖고 있다. 

'재현의 마술사 신언엽의 디오라마' 전시가 한창인 서울 삼청동에서 <인터뷰365>가 신언엽 작가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신언엽 작가에게 통일부 장관 표창장을 안긴 '판문점 선언' 디오라마. 전시장에서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사진=인터뷰365
신언엽 작가에게 통일부 장관 표창장을 안긴 '판문점 선언' 디오라마. 전시장에서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사진=인터뷰365

 디오라마(Diorama)란? 미니어처 위에 스토리가 담겨 있는 모형

-디오라마를 소개한다면.

여러 설명이 있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미니어처 위에 스토리가 담겨 있는 모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작품마다 다 스토리가 있다. 그 스토리에 특별한 효과를 주고, 정교한 피규어를 포함해서 훨씬 더 사실적인 느낌을 전달한다.

-디오라마가 아직은 대중에게 생소한데,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됐나.

전공인 무대 디자인이 바탕이 됐다. 취미로 피규어를 모았는데 표현이 정교하고 또 고가의 제품이 많았다. 비싸게 샀는데 그냥 장식장에만 두기가 아깝더라. 피규어의 배경을 만들면서 시작하게 됐다. 작품 사진을 찍어 공유했더니 반응도 좋고 나도 재미있어서 계속하게 됐다.

-무대 디자인부터 드라마 미술감독까지 디오라마 작업을 하기 전 다양한 분야에서 일했는데.

연극, 뮤지컬 무대 디자인, 드라마·영화 미술감독, 인테리어 디자인도 많이 했다. 호텔 인테리어, 웨딩홀 디자인도 많이 했다. 또 콘서트부터 광고나 뮤직비디오 세트 디자인도 했다. 수입은 인테리어 디자인이 가장 좋았다. 아마 강남 웨딩홀은 거의 다 내가 디자인 했을 거다.

-여러 분야를 오가며 적응하기 어렵지는 않았나.

전부 공간을 디자인하는 작업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대학생부터 시작해서 15년 정도 다른 길로 빠지지 않고 쭉 이 길을 걸어왔다. 또 연극과 영화 방송 모두 다 연결고리가 있었다. 모두 경험할 수 있어서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한 분야만 했다면 나머지 분야의 장점을 얻지 못했을 거다.

'재현의 마술사' 신언엽 디오라마 작가/사진=인터뷰365
'재현의 마술사' 신언엽 디오라마 작가/사진=인터뷰365

거액 유혹 떨치고 지켜온 소중한 작품

-미술과 무대 디자인을 원래 꿈꿨었나?

초등학생 때 미술 실기대회에도 나가고 중학생 때도 미술학원에 다니면서 미술과 가깝게 지냈다. 본격적인 입시 미술을 고등학생 때 시작했다. 학창 시절을 부산에서 보냈는데 미대 입시에 대한 정보가 많지도 않았고 당시엔 무대 디자인에 대해서도 모르던 시절이다. 부모님이 두 분 다 수학 선생님이신데 대학교 전공과 진로를 무대 디자인으로 정하니 처음엔 반대가 심했다. 부모님을 겨우 설득해서 용인대 연극학과에서 무대 디자인을 전공하게 됐다. 지금은 정말 많이 응원해주시고 특히 디오라마를 시작하고부터는 정말 큰 힘이 돼주신다.

-전시된 작품들을 그동안 판매하지 않고 무료 전시만 해왔다. 작품을 구매하려는 사람도 많았을 텐데.

무수히 많은 유혹이 있었다.(웃음) 특히 디오라마 작업을 하면서 젊은 재벌들을 많이 만났는데 작품을 구매하고 싶다던가 제작비를 줄 테니 같이 작업하자는 제안이 많았다. 당시엔 스스로 완성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거절했다. 또 어머니가 절대 팔지 말라고 하시면서, 작품은 작품으로 남아야 한다고 응원을 해주셨던 게 큰 힘이 됐다.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전 세계에 딱 하나 있는 작품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전시된 작품 중 가장 힘들었던 작업은 무엇인가.

영화 '매드맥스'를 재현하는 작업이 힘들었다. 차를 만들어야 하는데 차 구조를 전혀 몰랐다. 설계 도면부터 차 구조까지 공부하면서 만든 작품이다. 당시 드라마 '역도요정 김복주' 미술 감독으로 참여를 해서 밤마다 사무실에 와서 만들어서 더 기억에 남는다. 힘든 만큼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문화재청과 협업한 서대문 복원 디오라마/사진=인터뷰365
문화재청과 협업한 서대문 복원 디오라마/사진=인터뷰365

디오라마로 역사 기록하고파...'판문점 선언' 디오라마로 장관 표창 수상

-서대문(돈의문)을 디오라마로 복원한 작품도 화제였다. (2019년 문화재청, 서울시, 제일기획, 우미건설 등은 민관 협력으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돈의문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일제 강점기였던 1915년에 강제 철거된 뒤 104년 만이다. 신 작가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디오라마로 복원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외부 제의를 받고 작업한 첫 작품인데 서대문 복원이라는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작업이라 참여했다. 돈의문박물관마을에 전시 중인 작품을 이번 전시를 위해 옮겨왔다. 나는 기록되지 않는 역사는 역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기록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디오라마로 해보려고 한다.

-구체적으로 계획 중인 작업을 소개한다면.

디오라마 뿐 아니라 4차 산업 시대의 전문가들과 함께 우리나라의 영웅인 백범 김구 선생,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이회영 의사, 유관순 의사 등 독립 운동가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작업을 계획 중이다. 이번 전시를 함께한 최종원 공간 연출 아트 디렉터, 홀로그램과 영상 맵핑 전문가 이승현 광운대 교수와 협업 중이다. 또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 등 디오라마로 만드는 역사 영화와 다큐멘터리도 준비 중이다. 

-2018년 남북이 공동 발표한 '4·27 판문점 선언'을 디오라마로 재현한 작품이 통일부 장관 표창을 받았는데. 어떻게 기획한건가.

4년 동안 작업 하다 보니까 내가 너무 외국 히어로만 만들고 있더라. 이순신 장군, 안중근 의사 등 우리나라의 영웅을 주인공으로 한 디오라마를 만들고 싶었는데 우리나라 영웅 피규어가 없더라. 고민하던 찰나에 '판문점 선언'을 보게 됐고 뭉클한 감동이 밀려왔다. 그날 판문점 디오라마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지인이 통일부 관계자와 연결해줘서 프로젝트를 진행 할 수 있었다. 논문과 포트폴리오와 피규어를 들고 가서 디오라마에 관해 설명했다. 내가 원한 건 예산 지원이 아니라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규모도 크고 내가 보관할 방법이 없다. 그렇게 통일부 관계자분들과 인연을 맺고 도라산역에 작품을 전시할 수 있었다. 

-디오라마 작품 활동을 하면서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면.

박람회가 있었는데 지방에서 단체로 수학여행을 온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작품에 관심을 두고 사진을 찍는 모습을 봤을 때 정말 뿌듯했다. 미래를 이끌어갈 아이들 아닌가. '내 작품을 보고 나보다 더 크고 훌륭한 작품을 만들고 새로운 역할을 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남다르더라. 그때 특히 그동안 작품을 팔지 않고 보관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한 조명과 턴테이블이 시선을 끄는 '배트맨'과 '조커' 디오라마 /사진=인터뷰365
화려한 조명과 턴테이블이 시선을 끄는 '배트맨'과 '조커' 디오라마 /사진=인터뷰365

-무대 디자인이나 미술 감독 일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미술감독이 아무리 디자인을 멋있게 잘해도 그 위에 총감독이 있지 않나. 온전히 내 의견을 펼치기엔 한계가 있다. 가장 큰 스트레스는 제작비다. 예산이 줄어들면 입체로 만들 수 있는 것도 그림으로 대신해야 될 때도 있었다. 콘서트 무대 같은 경우는 둥근 형태의 무대를 좋아하는데 제작비 때문에 대부분 일자형 무대를 할 수밖에 없다. 인테리어 디자인 할 때는 작업 후에 돈을 못 받을 때도 있었고. 7000만 원까지 손해를 본 적이 있다. 그래서 누구한테 아쉬운 소리 하지 않을 만큼 훌륭한 콘텐츠를 만들자고 다짐했다. 내 돈으로 투자해서 마음껏 좋은 음향과 조명시설을 사용해서 디자인하고 싶다.

-당시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다면.

패티김 선생님 은퇴 콘서트 무대가 기억에 남는다. 선생님이 공연하실 때 동선 파악이 더 쉬웠으면 해서 콘서트 무대 전체를 모형으로 만들었다. 보통은 도면과 그림만 보고 준비하는데 모형을 보고하면 가수도 스태프들도 동선 확인이 더 쉽다. 나는 무조건 모형에서부터 출발하고, 이게 무대 디자이너의 기본이라고 생각하는데 돈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긴 하다.

'재현의 마술사' 신언엽 디오라마 작가/사진=인터뷰365
'재현의 마술사' 신언엽 디오라마 작가/사진=인터뷰365

내 집 마련 대신 나만의 콘텐츠 마련

-스튜디오 대표 직함도 달고 있다. 상업화에 대한 고민은 없나.

돈을 많이 벌었을 때도 버는 대로 피규어를 샀다. 돈을 모아서 집을 샀을 수도 있었을 텐데 나만의 콘텐츠를 위해 투자한 거다. 물론 내 집은 지금도 없다.(웃음) 최근 5년 동안은 돈을 모으기보단 콘텐츠에 더 투자하고, 전시하면서 사람들에게 작품을 홍보하는 데 힘 썼다. 올해가 딱 5년째인데 스물다섯 작품을 만들었다. 앞으로는 더 많은 작품을 만들 생각이다. 또 내년부터는 상업적인 활동도 계획하고 있다.

-디오라마 작가로서 이루고 싶은 최종 목표가 있다면.

디오라마의 원조가 독일이다. 모든 모형 재료들이 독일에서 온다. 그런데 독일은 문화예술과 결합하는 디오라마보다는 자연 배경, 열차, 공항과 관련된 디오라마가 중심을 이룬다. 목표는 디오라마의 고장인 독일에서도 한국으로 전시를 보러올 만큼 훌륭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

내가 무대 디자인으로 시작한 만큼 뮤지컬 무대를 디오라마에 담고 싶다. '로미오와 줄리엣' '오페라의 유령' '노트르담 파리' 등 뮤지컬 분야로 확장해 전시 규모를 조금 더 키워보고 싶다. 또 방송 파트도 마련해서 '이홍렬 쇼' '자니윤쇼' 등을 전시하고 싶고, 음악 부문에서는 방탄소년단 파트를 만들어 전시하고 싶다. 사실 영화도 더 하고 싶은 게 정말 많다. 이 모든 작품을 한군데 모을 수 있는 박물관을 만드는 게 꿈이다. 매일 매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즐겁고 행복하다.(웃음)

 

박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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