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를 넘나드는 초인적 산중 시인 최승호
생사를 넘나드는 초인적 산중 시인 최승호
  • 김철
  • 승인 2008.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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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장산 자락 자연과 벗 삼은 이 시대의 이방인 / 김철



[인터뷰365 김철 / 사진 김우성] 시인은 시로 말한다. 세상과 담 쌓고 운장산 자락 첩첩 산중에서 구름과 외롭게 살아가는 이 시대의 이방인 시인 최승호 씨의 짧은 시다. 제목이 ‘달갑지 않은 놈’이다.


“안 왔으면 좋겠다. / 제 멋대로 찾아와 / 아랫목을 차지하고 있는 놈 / 삶의 피로.”


삶은 이렇게 살아도 덧없고 저렇게 살아도 부질없다. 세상 부러울 것 없는 부귀영화를 누린다 한들 결국은 흔한 말로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게 인생이 아닌가. 이순을 훌쩍 넘긴 최 시인이 절감하는 삶의 의미가 함축적으로 담긴 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친 김에 한 편을 더 소개한다. 이번에는 ‘길손(人生)’이란 제목이다.


“낡은 바랑에 주장자 / 이 산골 지나는 나그네 / 청하여 / 마루에 나란히 앉아 마시는 술 / 사이에 오래 오래 고이는 침묵 / 거나했는가, 말없이 떠나가네 / 한 점 뜬구름.”


운수행각이란 말이 있다. 바랑 하나 달랑 메고 구름과 물처럼 세상을 유유히 떠돌아다닌다는 의미이다. 두 번째는 허공에 떠도는 구름을 운수납자에 비유하며 구름과 대작을 하는 최 시인의 유유자적한 삶의 현주소를 엿보게 하는 시다.


두 편 모두 자연인과 시인으로서 그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시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최 시인은 지금까지 ‘이상한 사이(86)’ ‘모습 없는 사람들(99)’ ‘세상에서 산에서(01)’라는 세 권의 시집을 냈다. 앞엣것은 최근에 쓴 미발표작이다. 최 시인은 여느 시인과 다른 독특한 일면을 갖고 있다. 그는 애절하거나 달콤한 시를 쏟아내는 이름 난 시인이 아니다. 그렇다고 문단에서 내로라할 만큼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더욱 아니다. 그저 이름 없는 평범한 시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여느 시인과 차원이 다르다. 두 편의 시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는 자신의 시처럼 시와 삶이 일체가 되어 살아가는 이 시대의 보기 드문 선객을 연상케 하는 시인이다.





성직자와 도인들도 행하기 힘들다는 무소유, 무욕의 실천적 삶이 그렇다. 그의 인생 역정은 예사롭지 않다. 일찍이 월남전에 참전, 고엽제의증환자가 된 국가유공자이다. 한때 유망한 사업가로서 기반을 닦기도 했던 그는 태권도와 합기도 검도 등에도 능한 무술인기도 하다. 무엇보다 의사의 예상을 깨고 암을 극복하는가 하면 간경화로 인한 시한부 사망판정마저 물리치며 시를 쓰는 초인적인 시인이기도 하다. 그런 것들이 최 시인을 찾은 이유이다. 그가 사는 곳은 고원지대인 진안의 운장산을 끼고 도는 한 외진 산간오지이다. 마을이라고 해 보았자 두 가구뿐이다. 허름한 낡은 흙집에서 홀로 15년째 살고 있다.


외부 세계와 담을 쌓고 첩첩 산중에서 벗도 없이 홀로 살아간다는 것은 구도자도 힘든 일입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하군요.

욕심이 없으니 불만도 없이 하루하루 그럭저럭 지냅니다. 물질문명의 아수라계라 할 수 있는 도시와는 달리 진실한 벗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청정한 숲, 그 위로 흐르는 구름, 그 사이를 스치는 바람, 앉고 나는 산새들, 다 좋습니다. 때로는 닭과 놀고 고양이와 놀고 강아지와 노니 무료함 같은 게 있을 수가 없지요.

요즘은 손바닥만 한 텃밭을 가꾸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하루살이는 하루밖에 못 사는 존재라 하지만 제 타고 난 명을 마음껏 누리고 산다고 하지 않습니까. 인간의 삶을 미물에 비교한다는 것이 미안한 일지만 그보다 못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시집 가운데 '세상에서 산에서'를 통해서도 발표했지만 산중생활을 하면서 현실적이던 과거의 시와 달리 작품의 방향과 질적인 면에서 많아 바뀐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생사를 초월한 서정시라고 해야 하나요.

젊은 시절의 치기였겠지요. 권위주의 시절에는 비민주적인 강권통치에 분개하고 민족분단이라는 현실 앞에서 가슴앓이를 했지만 그것도 나이가 들면서 차츰 달라지더군요. 뭐랄까. 일시적인 사회현상에 집착하기보다는 보다 근원적인 삶의 본질 문제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뭐 그런 쪽으로 자연과 더불어 나고 가는 삶의 원초적 문제를 많이 짚었지 않나 봅니다.



세 권의 시집 가운데 마지막에 펴낸 ‘세상에서 산에서’는 최 시인의 삭막한 도회지에서 생활과 산중 생활이 극명하게 대조를 드러낸다. 요즘에 발표하는 시는 말할 것도 없다. 생사 문제로 접근하는 시가 대부분이다.



밤낮 가리지 않고 술을 가까이 하고 있는데 걱정스럽습니다. 더구나 암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지금은 간질환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술잔을 놓지 않고 있군요. 굳이 조지훈의 주도 18 단계로 말한다면 최고수인 폐주가의 반열에 올랐다고 봐야 하지 않습니까.

남들이 보면 당연히 알코올 중독이라고 하겠지요. 그러나 내게는 일상입니다. 술이 평생 벗이나 다름없는데 어떻게 멀리 한단 말입니까. 잔을 놓는 날이 가는 날이 되겠지요. 12년 전에 구강암으로 수술을 받았는데 의사가 2년밖에 못 살 거라는 판정을 내리더군요. 암은 보통 5년 만 생존해도 완치라고 보지 않습니까. 또 4년 전에는 간경화로 진단되어 3년이라는 시한부 사망선고를 받은 적이 있어요. 그러나 나는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그런 몸으로 왜 술을 마시느냐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난 입을 닫습니다. 영겁 안에서 인생은 어차피 찰나에 불과한 것 아닙니까. 어찌하여 즐길 것을 못 즐기고, 굳이 금연이고 금주란 말입니까.





최 시인의 주량은 두주불사 정도가 아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잠잘 때까지 술잔을 달고 있다. 물론 매일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통음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기분이 좋을 만큼 술을 즐기는 편이다. 건강이 좋을 때는 말술도 사양하지 않았지만 주석에서 그의 매너와 주도는 언제나 흐트러짐이 없고 주선의 경지로 주위에서 정평이 났다.



한때 우리나라의 3대 기인이라고 일컫던 소설가 이외수와 작고한 천상병 시인 그리고 걸레스님으로 유명했던 중광스님과도 잠시 인연이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최 시인께서 숨은 기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은데요.

중광스님이 동대문 근처 암자에 머물 때 술을 사 들고 간 적이 있어요. 그 때 걸레스님은 팬티만 입고 그림을 그리고 있더군요. 그러면서 대뜸 "술이 있으면 뭘 해, 안주가 없는데."라고 하는 겁니다. 무슨 영문인가 하고 잠시 어안이 벙벙했는데 왜 여자를 데리고 오지 않았느냐는 유머라는 걸 금방 알아차렸지요. 그러면서 아이들처럼 순진스럽게 웃던 모습이 삼삼하게 생각납니다.

이 시인은(소설가 이외수를 지칭) 내가 명색이 손님으로 갔는데도 고양이새끼처럼 소파에 쪼그리고 앉아 코딱지를 후비고 있는 겁니다. 그 꼬락서니를 보면서 한방에 날려 버리고 싶었습니다. 그 때가 태양이 이글거리는 어느 해 8월의 무더위 때였습니다. 그러나 불볕더위를 무릅쓰고 나를 위해 맛 좋은 동동주를 사 오겠노라고 춘천의 집에서 강촌으로 가려는 그의 모습에서 따뜻한 인간미를 짙게 맡았습니다. 단편적이나마 이 시인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던 거지요. 날더러 기인이라니요. 그건 터무니없는 말입니다. 아주 평범한 자연인일 뿐입니다.



최 시인이 한 출판사의 주간으로 있을 때 ‘도적놈 셋이서’라는 제목의 책을 낸 적이 있다. 앞서 든 세 사람의 에피소드 등을 엮은 것으로 당시 베스트셀러가 되어 세간에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본인은 부인하지만 술에 관한 한 초인적인 기인라고 할 수 있는 그가 당대의 이름 난 기인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는 것은 진기한 기록으로 남을 만하다.



시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서예와 무술에도 남다른 일면을 갖고 있습니다. 누구의 영향인가요. 원래 그런 쪽에 관심이 많았는지요.

서예를 따로 학습한 적은 없습니다. 제 조상이 서산대사인데 어쩌면 글을 좋아했던 조상들의 피내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무술은 하고 싶어서 시작한 겁니다. 어릴 때 남달리 체격이 왜소하여 늘 얻어터지고 지내면서, 내 스스로도 깡패 몇 놈쯤이야 제압할 수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 62년도부터 운동을 했으니까, 오래된 셈이지요. 그 동안 닦은 무술이 공수도, 유도, 합기도, 검도인데, 그로 말미암아 기초체력과 정신적 자신감을 얻은 것은 나름의 소득이겠으나 마땅치 않은 일에 칼날 같은 기질이 나도 모르게 나타는 것은 오히려 무술로 인한 부작용이라 봐야 할 것입니다.





최 시인의 서예 실력은 주변에서 알아준다. 서체가 독특하다. 그의 방안에는 직접 쓴 '無何爲所(무하위소)'라는 현액이 걸려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인위적인 것과 작위성 없이, 있는 그대로 그저 머무는 곳을 뜻한다.



혼자 생활하는데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많지 않습니까. 편한 도시생활을 마다하고 굳이 어려운 산중 생활을 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혼자처럼 편안한 게 어디 있겠는지요. 돈이라는 것은 있으면 번거롭고 없으면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그까짓 것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돈과 상관없는 산에 살고 있는 겁니다. 산골에서는 돈이 있어도 쓸 곳이 없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당연히 불편하고 궁색하게 보일 겁니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그렇게 느끼지 않습니다. 산중 생활에 익숙해졌다고 보기보다 오히려 이렇게 사는 것이 내게는 편안합니다.


서울에서 무일푼으로 이곳으로 내려와 정착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이곳에 터를 잡는데 준비하는 기간만 10여 년은 될 겁니다. 틈만 나면 팔도강산과 제주도까지 전국을 헤맸습니다. 인생 매듭지을 곳을 고르기 위해서 말입니다. 수구초심이라 했던가요. 결국 고향(그의 고향은 전주) 근처에 자리를 잡기는 했지만.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다 쓰러져가는 버려진 폐가에서 기거했어요. 아궁이는 아예 없고, 방바닥도 절반 넘게 가라앉았더군요. 흙벽에 뚫린 구멍으로는 산새들이 드나들며 새끼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풀이 무릎이 넘도록 자란 마당에는 슬금슬금 뱀이 기어 다닐 정도였습니다.




가지고 간 재산 70 만원은 사흘 만에 바닥이 나더군요. 아궁이와 방바닥 수리비로 몽땅 들어갔습니다. 그럼 그런 게지 뭐 어떡하나 하는 심정으로 술잔을 기울이는데, 해질녘에 낯선 동네 청년 둘이 다타나더군요. "타지에서 왔으면 동네 분들에게 인사부터 해야 되는 것 아니냐"라고 대들듯 따지는 겁니다. 그러나 나는 타일렀습니다. "봐라. 솥단지 하나나 있나, 술잔이 몇 개나 되는가. 모처럼 동네에 든 사람 환영은 못할망정 꼬투리부터 잡고 나서는 게 이 동네의 인심이냐? "고 했지요. 집성촌이자 산골짜기이니까 그런 텃세가 있을 법도 하지만 마음은 개운치 않았습니다. 어디를 가나 텃새가 있는 모양입니다.



도회인들은 대부분 현직에서 은퇴를 하거나 나이가 들면 전원생활을 꿈꿉니다. 그러나 막상 실행에 옮기는 것은 간단치 않은 것 같습니다.

나는 그런 말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그들 중에 어느 누구라도 자연에 들었다는 이야기를 못 들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아마 평생 전원으로 가지 못할 겁니다. 자녀들 교육시켜야지, 결혼시켜야지, 집 사 줘야지, 손자 봐야지, 산에 가서도 살 수 있는 돈이라도 마련해야지, 하는 욕심과 핑계는 현대 물질문명이 아주 좋아하는 먹잇감입니다. 그 같은 희망사항은 도회의 공해 속에서 흐지부지 시들게 마련입니다. 이런 저런 미련과 욕심이 있고 용기가 없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와서 보면 산촌생활이 어떤지를 알 수 있을 겁니다. 느긋한 자연이 얼마나 좋은가를 말입니다.


가족들의 걱정이 많을 것 같습니다. 사후에 시신기증까지 했다는데 주위에서 만류하지 않던가요.

나의 입산을 어느 누가 말린 다 해도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는 인간의 회귀본능을 누가 말리겠습니까. 그건 하느님이라 한들 막을 수 없는 노릇이지요. 시신을 기증하겠다고 했을 때 형제자매 자식들 모두가 펄쩍 뛰었습니다. 자식들의 인장을 새겨 시신기증 등록을 했지요. 비록 쓰고 남은 찌꺼기일지라도 배우는 의학도들에게 참고가 될까 해서였습니다.






작심하고 산간 오지를 택해 정착한 최 시인은 지병이 갈수록 깊어가는 요즘도 시를 쓰고 있다. 그의 곁에는 들고양이 한 마리와 진돗개 한 마리 그리고 몇 마리의 토종닭이 전부다. 그리고 출가 아닌 출가를 한 그를 찾아 지인들이 이따금 ‘무위처소’를 찾는다.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그의 시 한 편이 선객으로 자연에 묻혀 여여하게 살아가는 그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일러주고 있다. ‘이 흙집에’라는 제목의 최근에 쓴 시다.


산골 / 옹색하고 누추한 흙집 / 사람들 가끔씩 들고 난다 / 글 나부랑이 끄적거리는 문단의 선후배, 도 닦는답시고 팔도강산 떠도는 / 땡땡이 중, 사업하려다 깡통 찬 안쓰러운 놈, 고부의 갈등 못 견뎌 뛰쳐나온 녀석, 허무 지나 염세에 빠진 바보이자 천재인 자식 / 그들 / 가끔씩 온다, 와서는 얼마든 머문다 / 편안하기 때문이리라 / 지 고프면 언제라도 먹고, 지 졸리면 마음대로 잔다 / 지 있다고 뉘 뭐래, 지 간다한들 뉘 막아 / 그래, / 가도 가도 팍팍한 인생길, 서둘 일 없는 길 / 때로는 가던 길 멈추고, 때로는 쉬기도 하면서 / 그냥 그렇게들 쉬었다 가게나 / 삶의 무거운 시름 / 이토록 허름한 흙집방에 / 다 / 부려 버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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