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이렇게 어른이 된다. 가수 에반
소년은 이렇게 어른이 된다. 가수 에반
  • 조현진
  • 승인 2008.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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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음악, 나와 당신을 치유할 수 있다면 / 조현진



[인터뷰365 조현진 / 사진 김우성] 봄비가 오는 날이었다. 가수 ‘에반’을 만나러 가는 자동차 안에서 와이퍼로 연신 빗물을 닦으며 <손 끝이 아픈 이유>라는 그의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비오는 날 자동차 안에서 들리는 그의 노래는 ‘잊고 있던 내 스무 살, 꿈과 연애와 이상으로 가득 찼던, 그리고 그것이 내 마음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좌절감으로 예민했던 그 날’을 생각나게 했다. 이제는 누군가의 아내와 엄마가 되었을 그 때 첫 사랑 이름도 생각났다. 어쩌면 추억, 어쩌면 상처. 자동차의 와이퍼는 그 기억과 생각을 빗물과 함께 닦아내고 있었다. 반복적으로.


그런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지요. 각각 사랑하는 형식은 다르지만 이별 후에 경험하게 되는 상처는 똑 같은 것 같아요. 사랑하고 기뻐했던 기억이 그 크기만큼 상처로 돌아오기도 하고요. 이번 제 음반은 그걸 다루고 싶었어요. 그래서 ‘Pain Reliever’ 라는 타이틀을 붙였지요. ‘상처를 위로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면 되겠네요.


이제 24살이 된 가수 에반은 이런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상처를 위로한다... 그 의미가 그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에반이라는 개인의 내면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지 물었다. 그것이 그에게 상처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에반에겐 이미 자신이 사용하고 지나온 두 가지의 이름이 더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유호석’이란 그의 본명이고 또 하나는 그에게 ‘아이돌’이란 호칭을 붙여 주었던 ‘클릭비’ 시절이다.


당연히 제 개인의 치유과정이라고도 생각해요. 저는 내성적이진 않지만 제 생각과 감정을 말로 잘 표현 못하는 타입 이예요. 좋아한다, 힘들다, 슬프다 이런 말들을 잘 나눌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하죠. 그래도 다행인건 음악을 통해서는 말을 하는 것보단 솔직하고 분명하게 내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어쩌면 음악은 말로 할 수 없는 이야기까지를 꺼내게 하니까요.





이번 앨범에 들어있는 <울어도 괜찮아>같은 곡이 그런 제 솔직한 마음 이예요. 타인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동일하게 하는 주문이고. 그렇게 제 음악의 다른 이름이 ‘위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요. 저는 부르면서 위로받고 팬들은 들으면서 위로받는. 그리고 ‘클릭비’에 대해선 후회나 아쉬움 같은 건 이제 없어요. 분명한 건 ‘클릭비’는 제 10대 후반에 보낸 '사용한 시간'이라는 거예요. 그러기에 그 시간은 제가 지워버리거나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사실’이죠. 가수는 자기의 나이, 자기의 생각을 노래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 나이 때에 맞는 감성이 있는 것이고요. ‘클릭비’는 17살 때 소년 ‘유호석’의 감성이었고, 이제 24살이 된 그때보다 조금 더 성장한 청년의 감성이 에반의 음악에 묻어나는 것이겠죠. 저는 그런 것이 자연스럽고 솔직하다고 생각해요. 가고 싶어도 이젠 ‘클릭비’를 하던 나이로 돌아갈 수 없잖아요. 또 존경하는 뮤지션 흉내 낸다고 그 음악을 따라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솔직한 나의 음악도 아니니까... 그저 지금 제가 가진 것을 나타내고 나누는 거지요.


1999년. 17살이었다. 2002년까지 4년간 ‘클릭비의 유호석’으로 활동하던 그는 뉴욕의 뉴 스쿨 대학교로 (New School University)훌쩍 떠나 버렸다. 거기서 그는 재즈(JAZZ)를 공부했고 ‘에반’이란 이름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난해에 <남자도 어쩔 수 없다>는 곡이 수록된 1집을 소개한 이후, 얼마 전 그의 2집이 세상에 선을 보인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아직까진 제 인생에서 늘 좋은 사람들만 만났던 것 같아요.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다행이지요. 제가 대학교 1학년 때까지 ‘클릭비’ 활동을 했는데 공부도 다 때가 있는 거니까 지금 기회를 놓치면 나는 이미 형성된 테두리 안에서 계속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좀 걱정이 되더라고요. 그 걱정 덕분에 공부를 하러 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바로 참 잘한 선택이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제 안을 채울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다양한 음악에 대해서도 신나게 공부할 수 있었고.





다시 돌아와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우려했던 것 보다는 아주 좋아요. 팬들의 반응을 모니터 해보면 ‘에반이 클릭비였어?’ 하는 말이 더 많이 들리거든요. 그건 지금의 팬들이 에반을 먼저 인정하고 클릭비로 넘어간다는 거잖아요. 거꾸로 느끼시는 것 보단 훨씬 감사하고 다행인 거지요. 7년 전에 유호석의 감성을 좋아하던 소녀들도 이젠 저와 함께 나이가 들어 가다보니 그 때 소년, 소녀로 나누던 교감이 이제는 조금 어른스럽게 바뀌면서도 서로 그 변화를 편안하게 소통하는 것 같아서 좋아요. 그래서 다른 많은 가수들에겐 한 면(面)의 팬들만 있는데 저는 에반과 클릭비라는 두 개의 다른 면을 팬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도 큰 혜택이죠.


맞는 말이다. 그리고 가수에게도 팬에게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예전의 추억’을 꺼내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오늘’을 지속적으로 나눈다는 것은 서로에게 더욱 중요하고 기쁜 일인지 모른다. 확실히 에반에게 ‘클릭비’는 후회나 지우고 싶은 기억은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안 나오고 대학에 갈 수 없듯이,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제가 있는 거지요. 어리고 서툴렀다는 것을 생각하면 작은 후회는 있지만 그 시절을 통해 ‘음악을 하는 방법’을 알게 된 거고, 지금은 ‘음악으로 내 것을 꺼내는 방법’과 내가 어떤 음악을 해야 하는 구나를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하는 거지요. 그리고 더 나이가 들면 ‘내 음악을 잘 나누는 방법’도 알게 될 거구요. 그러니까 긍정적이 되요.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지금 제 모습도 언젠가 후회가 될 테니까요. 그건 어리석은 일이죠. 그래서 다른 기억이나 편견으로 인해 ‘오늘의 에반’을 놓치지 말아 달라고 꼭 부탁드리고 싶어요. 제 개인 보다는, 제 기억보다는 지금 들리는, 지금 나누는 이 음악들에 조금만 집중해 달라는 거지요.





에반이 집중해 달라는 음악. 에반이 서로 솔직히 꺼내서 함께 치유해 보자는 각자의 상처들.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방법을 물었다.


특별한 방법이나 요구는 없어요. 느끼는 대로 들어주시면, 생각해 주시면 되지요. 제가 재즈라는 음악에 빠지게 된 계기도 ‘정해진 것이 없다.’ 라는 것 때문 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만들고 부르는 사람의 느낌을 듣는 분들도 똑같이 받으라는 건 억지라고 생각해요. 그건 강요지요. 제 음악은 그런 강요가 아니길 원해요. 누구나 사람은 이중적이라고 생각해요. 속에는 있지만 겉으로 나타낼 수 없는 것이 누구에게 나 있지요. 그걸 굳이 끄집어내서 수술하고 해체한다는 것 보단, 그것이 뭔지 확인은 해보자는 거예요. 자기를 솔직히 꺼내는 체험의 시간에 제 음악이 함께 있으면 좋겠어요.


에반의 마지막 이야기는 ‘신입사원 론’이었다.


전 지금 ‘가수’고, 그리고 앞으로도 가수로 계속 남고 싶어요. 그러려면 저 스스로 계속 노력하면서 음반을 내고, 공연을 해야겠지요. 그러다가 보면 ‘아 저 친구 가수구나.’하고 편안하게 인정받을 수 있다고 기대해요. 고등학교 소년에게 노래는 직업이 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20대 중반의 남자에겐 ‘선택해야 하는 현실’이고 전 음악을 선택한 거예요. 그러니까 회사에 입사한 신입사원 같은 기분이죠. 일을 잘 해서 회사의 사장이 될 수도 있고, 무능해서 금방 퇴출당할 수 도 있는 거잖아요.






저는 이런 생각으로 음악과 제 일을 생각해요. 댄스냐 발라드냐 하는 형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거죠. 그건 회사로 치면 기획실에서 근무하는가, 영업부에서 근무하는가 하는 정도의 차이일 뿐 이예요. 중요한 건 어디서 일을 하건 제가 준비된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거죠, 그러기에 음악도 ‘내가 뭘 담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우선시 되는 거예요. 이런 게 요즘 저의 마음이고 실제로 현실 이예요. 저 혼자만이 아니라 저와 함께 일을 함께 하는 동료들도 (매니저, 코디) 있잖아요. 이 직업을 30~40년쯤 하면 제가 주장을 안 해도 ‘에반은 가수가 직업이구나.’ 하고 인정받겠지요. 그래서 제가 어디까지 버티는가를 확인하면서 그 힘으로 음악을 하는 거예요. 무게나 부담이 왜 없겠어요? 초조하고 무겁지요. 못 버티고 떠나는 사람도 많이 봤고요. 하지만 ‘해보자. 힘을 내자. 신입사원 에반. 너도 사장이 될 수도 있다.’ 라고 주문을 걸면서 걸어가는 거죠.


우리는 함께 웃었다. 유쾌한 인터뷰였다. 마지막에 ‘신입사원론’을 말한 것을 확인이라도 하듯 에반은 나에게 ‘음반을 많이 사주는 것이 가수를 살리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앨범 한 장만 사 주세요.’ 라고 초보 영업사원처럼 말했다. 그것이 행복이었건 상처였건 누구에게나 소년, 소녀로 지나온 시간은 있다. 누구나 사춘기의 여드름을 짜 내며 그 시간을 건너 어른이 된다. 울어도 해결되지 않는 아픔을 경험하고, 손끝이 시린 겨울을 지나다 보면 어른이 된다. 아픔과 상처의 실체는 과거가 되어버린 시간이 가지고 간다. 그리고 성장의 새 시간을 만난다. ‘그러니까 괜찮아. 울어도 괜찮아.’ 그 시간이 지나면 모든 소년은 어른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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