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라드의 마지막황제, '변진섭'의 요즘 희망사항
발라드의 마지막황제, '변진섭'의 요즘 희망사항
  • 조현진
  • 승인 2008.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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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면서, 나누면서, 축복하면서, 감사하면서 그걸 노래하면서 / 조현진



[인터뷰365 조현진 / 사진 김우성] 우선 변진섭이란 사람이 어떤 가수였는지 우리는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무협지를 보면 언제나 보여지는 상황 하나가 있는데 그건 고수들이 할거하는 강호에 어느 날 무명의 무사(武士)하나가 등장해서 순식간에 그들을 해치워 버리고 새로운 무림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다. 변진섭이 꼭 그랬다. 87년도에 그가 등장했을 때 음악계는 ‘발라드 세상’이었다. ‘이문세’라는 절대 지존(至尊)을 축으로, ‘조하문, 고 유재하, 최성수, 이광조’ 등의 고수들이 즐비했던 이 발라드 계를 변진섭은 순식간에 평정해 버린다. <홀로 된다는 것> <내게 줄 수 있는건 오직 사랑뿐> <새들처럼> <너무 늦었잖아요.> 등 1집 앨범에 수록된 그의 모든 노래가 큰 사랑을 받는다. 그리고 <희망사항>이 들어있던 2집은 그를 명실상부한 ‘발라드의 새로운 황제’로 등극시킨다. <희망사항>뿐 아니라, <너에게로 또 다시><숙녀에게><로라>등이 들어있던 이 앨범을 통해 변진섭은 조용필도 밟아보지 못한 ‘가요톱10' 16주 연속 1위라는 전무후무한 기록 위에 선다. 이때 가요계는 ‘변진섭 같은 가수’, ‘변진섭 같은 음악’들이 쏟아져 나오며 우리나라 발라드의 ‘최후의 황금기’가 된다. 그렇게 음악계의 주류였던 발라드의 시대는 ‘서태지’의 출현으로 마감된다. 그리고 20년. ‘발라드 황금기의 마지막 황제, 변진섭’ 을 만났다.



좀 거창하게 시작했지만, 사실 지금의 10대들에게 당신이 어떤 가수였는지 ‘바로 알려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30대 이상의 분들은 대체로 내 서술에 동의하실 것이라 믿는다.

그렇게 말 해줘서 고맙다. 벌써 20년이 지났다. 20대 초반에 가요계에 나왔는데... 정말 화살처럼 시간이 갔다.


요즘 TV에서 자주 만날 수 있어 좋다. 속은 어떤지 모르지만 방송에선 아주 편해 보인다.

그런가? 속도 괜찮다, 하하. 분명히 20년전 하고는 세상이 바뀌었고, 바뀌었다는 것을 좀 늦었지만 이젠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 아닌가? 그냥 인터넷 세상이구나 하고 관념적으로 생각했었는데 이젠 이게 근본적으로 바뀐거구나 하고 인식한다. 말 그대로 아날로그가 디지털이 된 것처럼. 가요계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과 관계의 구조가 다 바뀌어 버렸다. 나는 가수고, 내 음악을 사람들에게 잘 전달해야 의무가 있는 사람이기에, 변진섭의 음악이 변질되면 안 되겠지만, 그 음악을 전달하는 방법은 더 분명하고, 더 확실한 것이 있다면 시대에 맞춰 변화할 수 있는 것이라고 이젠 생각한다.




다른 가수들은 사실 몇 전부터 그런 말을 했고, 그렇게 변했다.

그러게 말이다. 내가 오만하고 좀 게을러서 시대의 흐름을 타지 못했던 건지도 모른다. 데뷔 초에는 앨범만 내도 사람들이 알았던 시절이고, 사실 90년대는 가수가 TV에 많이 나오면 신비감이 떨어져서 음반이나 라이브에 관심이 시들했던 시대였다. 그런데 지금은 방송 안하면 아무도 모른다. 가수가 방송을 나오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자기 음악 알리러 나오는 거지 개그맨이 되려거나, 배우가 되려고 나오는 건 아니지 않나? 나도 그렇다. ‘변진섭의 노래가 있다. 한번 들어줘라.’ 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 이젠 TV가 필요한 거다. 거기 나가야 인터넷에서 관심들도 생기는 거고. 예전엔 팬들이 가수에게 ‘어떤 신비함’을 원했다면 지금은 가수의 속내 그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오픈했을 때 시청자와 팬들이 더 좋아하시는 세상인거다. 인터넷만 두들기면 변진섭의 모든 정보가 다 보이는 세상인데 속일 수도 없고... 그럼 나도 그렇게 바뀌어 가야 하는 거지. 물론 이 결정이 사실 쉽지 않았다. 매니저하고 2년쯤 고민했다.


그래서, 다시 적극적으로 방송을 해보니 어떤가? 가수니까 음악을 알리겠다는 사명이나 숙제도 중요하지만 사실 마음이 불편하면 안되는 건데.

그런 걱정을 나도 처음엔 했었는데 지금은 솔직히 재밌다. 도리어 처음 신인으로 데뷔하는 것 같은 기분, 좀 우습게 말하면 ‘회춘’하는 기분이다. 두 가지 반응에 대한 즐거움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우선은 예전에 나를 몰랐던 세대들, 즉 지금의 10대, 20대들과의 새로운 만남이 즐겁다. 인터넷에 미니홈피나 카페를 많이 만들어 놓으니까 10대와 20대가 많이 들어온다. 그 친구들은 예전의 변진섭을 모르니까 도리어 아무 편견 없이 나를 보고, 내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는 ‘음악 좋은데, 저 사람 누구지? 말도 재밌게 하네...’이런 식으로 ‘새 변진섭’이 그 세대들에게 최초로 인식되어지기 시작하는 거다. 그러니까 사실 그 세대들에게 나는 ‘전혀 몰랐던 신인가수’나 마찬가진 거지. 그렇게 내 음악에 대한 새로운 팬들이 생기는 것이 재밌고, 신기하고 감사하다. 또 한 축의 반응은 물론 20년간 변함없이 나를 사랑해줬던 팬들이다. 그들도 방송에 나오는 나를 보면서 ‘맞아. 내가 좋아했던 진섭이 오빠가 있었지.’하고 다시 리마인드(Remind) 해주시는 거다. 그래서 불편한 게 아니라 도리어 ‘흥미진진’ 해지고 있는걸.



그리고 요즘 방송을 하면서 나의 또 다른 면도 많이 발견한다. 사실 예전엔 TV MC도 해봤고, 라디오 DJ도도 오래했다. 그때 재미, 기억이 지금 버라이어티나 토크쇼 나가면 되 살아 난다. 이건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난 순수 음악인의 피만 흐르지는 않는구나. 또 다른 피도 있구나.’ 하고 가끔씩 느낀다니까. 이게 내가 아무리 음악을 알리려 한다는 목적으로 해도 억지로 하는 거면 잘 안 되는 일일 것이다. 시청자가 바본가? 억지로 하는 일은 표가 나는 법이다. 그런데 토크쇼나 버라이어티를 하다 보니 정말 재밌다. 예전과 달리 함께 출연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뭉개버리면서 자기를 띄울까하는 모습이 ‘무척 많이 보이기도 하지만’ 나만 안 그러면 되지 뭐...하는 생각도 들고. 그러니까 나한테 방송이 맞는 부분도 있는 거다. 그렇게 방송에서 변진섭을 본 사람들이 시간이 얼마나 걸리던 결과적으로는 내 음악의 팬이 될 수 있게 된다면 좋겠지. 그게 나의 희망사항이다.


며칠 전에 이은미 씨랑 통화하는데 ‘그래도 변진섭씨는 변절자 아니야.’그러더라.

오랫동안 같이 음악하며 무대에 섰는데 이은미씨가 변절자 아니라고 하면 아닌 거다. 살았다. 하하하. 그리고 내 스타일이나 이미지가 솔직히 이은미씨 처럼 순수하게 음악만 했던 걸로 기억되고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 도리어 오래된 팬들에게 나는 그냥 동네오빠의 이미지다. 그러다보니 미화 할 것도 없는 것 아닌가? 그냥 있는 대로 보여주는 거지. 음악 하는 친구들 만나도 노래 부르고 연주만 하는 건 아니잖나? 농담도 하고 밥도 먹으면서 음악 하는 거다. 그런 것이 모여서 음악이 나오는 거지. 그런 시간이 모여서 인생이 되는 거고.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유와 넉넉함이 느껴진다. 그렇게 억지로가 아니라 즐기면서 오래오래 음악을 하는 것이 음악인으로서 변진섭의 변함없는 희망사항이라는 거겠지?

당연히.



그럼 음악 말고, 당신은 어떤 희망사항이 있나?

음악 말고는 ‘가족’이겠지. 이번에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면서 내가 ‘학부형’이 되었다. 좀 멍하더라.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흘렀지 싶고. 그런데 참 감사하더라. 재성이, 재준이 두 아이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것도 감사하고, 특히 건강한 아내(그의 12살어린 띠 동갑 아내 이주영 씨는 수중발레 국가대표 출신이다. 최근에 국제심판 자격증도 얻었다.)가 있다는 게 참 좋다. 집에서 감기 걸리는 사람은 늘 나 하나 뿐이다. 지금 돌이켜 보니 당연하겠지만 내 아내가 나에게는 가장 잘 맞는 여자인 것 같다. 내 아내는 고분고분한 타입은 아니다. 그럼에도 내 의견에 대해 잘 의논하고 본인이 납득이 되면 아내는 과감하게 자기 생각을 포기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또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도 있다. 자기 분야에서 사회활동도 하고 인정도 받고 하길 바란다. 그런 아내가 참 기특하다. 그러다보니 나는 우리 집안 구성원의 관계가 이상적이고 편안하다고 생각한다. 이 평안이 변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의 의무이자 희망사항 일 테지.


오늘 당신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나왔던 단어는 ‘자연스러움, 즐기면서, 편안함’ 이런 것들 같다. 사실 이런 단어는 모든 이들의 ‘희망사항’이다.

가수가 된지 20년이 넘었다. 내 음악에, 내 인생에 대해 우쭐했던 적도 있었고, 교만과 나태함도 어느 때는 있었다. 그리고 이건 되고, 이건 안 되고 하는 스스로의 제약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거 다 소용없더라. 내가 가만히 있어도 세상은 변하고 시간은 흐른다. 20년 전에 나를 좋아하던 여학생 팬들은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고, 엄마가 되고, 사회인이 되었다. 그 팬들과 내가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인생을 살기 위해선 그들은 변화했는데 나는 여전히 20대의 ‘진섭이 오빠’면 안 되는 거다. 그것이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이어야 하겠지만 나도 자연스럽게 그 팬들과 함께 변화하는 인생을 보여주고, 그런 변화 속에서 얻어진 새로움으로 만들어지는 ‘새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가수의 일생’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면서 20년 전의 팬들이 아니라 내 새 음악과 교감하는 새 세대의 팬들도 또 생기는 거지. 이런 것이 자연스러움이다. 물론 음악이 산업적으로 위기인 시대다. 하지만 ‘음악 자체’는 소멸하지 않을 것이다. 그걸 알기에 나는 초조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엇을 변화하고 바꾸어야 한다는 자세로 살지 않을 것이다. 그냥 즐기면서, 나누면서, 축복하면서, 감사하면서 그걸 노래하면서 사는 가수의 이름이 ‘변진섭’이면 된다.



변진섭은 20년간 노래를 멈춘 적도 음악을 떠난 적도 없었다. 그 사이 나온 11장의 정규앨범이 그것을 증명한다. 단지 그를 바라보던 우리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옮겨지면서 변진섭이란 이름을 잊었던 것 뿐이다. 그리고 그를 다시보자 ‘그는 늘 같은 자리에 있었음에도’ 우리 스스로가 꼭 변진섭이 어색하게 낯선 자리에 서있는 것 같은 ‘착시’를 느끼는 건지도 모른다. 그 착시는 ‘사실은 내가 변한 거면서, 그를 변했다.’라고 말하는 오류의 데이터를 심기도 한다. 더 이상 변진섭을 ‘발라드의 황제’라고 부를 필요는 없다. 그리고 그를 '황제'라고 표현했다는 것에 대해 신승훈이나 조성모도 있지 않았느냐는 문제제기도 없었으면 좋겠다. 어찌되었건 그건 20년 전에 우리가 함부로 지어서 그를 부르던 호칭일 뿐이었다. 하지만 변함없이 자신에게 펼쳐진 음악의 길에 구속당하지 않고 즐기면서 살아가는 ‘변진섭이란 가수’를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의 요란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희망사항’에 귀 기울일 필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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