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 사치품 ‘커피’를 볶는 바리스타, 김용덕
정신의 사치품 ‘커피’를 볶는 바리스타, 김용덕
  • 조현진
  • 승인 2008.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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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으로, 눈으로, 뇌로 그리고 가슴으로 마시는 커피 / 조현진



[인터뷰365 조현진 / 사진 권오준] ‘때때로 인생은 단지 커피 한 잔의 문제 또는 커피 한 잔이 가능케 해 주는 친밀감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미국의 소설가 리처드 브라우티건이 쓴 문장중 하나이다. 커피. 대부분의 사람들은 커피를 좋아한다. 나도 좋아한다. 특히 커피는 독한 술처럼 취하게 만들거나, 와인처럼 많은 공부를 하고 마시지 않아도 된다는 안심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어쩌면 우리는 커피를 ‘너무 모르고’ 마시는 건지도 모른다. 강릉에서 테라로사(TERAROSA)라는 커피전문점과 팩토리를 운영하고 있는 김용덕 씨(50세)는 소문난 ‘바리스타’ 이다. 그와 마주앉아 ‘커피 한잔’을 마셨다.


우선 나는 당신과 커피에 대해 수준 높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준비되거나 훈련이 된 인터뷰어가 아니기에 걱정이다.

걱정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때론 한 잔의 커피가 모든 두려움과 문제를 해결해주기도 한다. 나도 그랬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은행원이 되어 은행을 21년간 다녔다. 그러다보니 파릇한 열여덟 소년이 마흔의 중년남자가 되어있더라. 어느 날 거울을 보다가 깜짝 놀랐지. 이 사람 누군가 하고.


커피한잔 마실 여유 없이 살았었다는 말로 들린다.

그렇다. 굉장히 어렵게 살았다. 어렸을 때 부터 가난했었고 말하자면 고학생이었다. 고등학교 진학할 때, 내가 인문계 가야하나 실업계 가야하나 고민도 못해보고 당연히 실업계 학교를 갔다. 내가 뭘 잘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뭐든 빨리 돈을 버는 방향으로만 살아야했지. 그렇게 졸업하고 은행에 들어가고, 매일 계산기 두드리며 뒤도 안돌아보면서 살다가 보니 마흔 살이 된 거였다. 그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커피 한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올드보이>처럼 물었다. ‘누구냐. 너.’ 하하.


그 질문과 대답이 은행을 그만두게 만들고 커피의 세계로 당신을 인도 한 건가?

글쎄. 하지만 분명히 그날, 이전까진 한 번도 상상 못했던 ‘은행을 그만둘 용기’가 생겼다. 다행이(?) 그때 IMF도 왔다. 명예퇴직자 신청 받는다고 해서 제일 먼저 손들고 퇴직 한 거다. 그리고 1년 동안을 처음으로 나를 위한 사치스런 시간을 썼다. 이제 뭘 해야 하나라는 두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우선은 내 인생을 결박하고 있는 유, 무형의 규칙들로부터 먼저 내가 좀 자유스러워질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1년간 전 세계를 여행했다. 그리고 돌아와서 ‘살아야 하니까’ 레스토랑을 차렸는데 잘 안됐다. 물론 나중엔 왜 안됐는지 원인도 알았지. 충분한 음식공부를 하지 않은 채 섣불리 시작했기 때문에 당연히 안된 것이었다. 그래서 또 6개월 음식공부만 했다. 청담동의 유명한 음식점들을 시작으로,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최고의 음식을 먹어보고, 느끼고 배우면서. 그러다가 커피를 만난 것이다.




‘그러다가 커피를 만난 것이다...’라는 말은 좀 감상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날마다 커피를 만나고 마신다.

물론. 그런 시각과는 아주 다른 만남이었지. 감성적으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지만 내게는 분명히 ‘충격적’이었다. 그리고는 커피에 푹 빠진 거다. 커피의 기원부터 파기 시작했다. 원산지들은 어딘지, 전 세계의 기준은 무엇인지도 차츰 알아갈 수 있었고. 그렇게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다보니 내 안에 ‘방향성’이 생겼다. 내가 어떤 커피를 만들고 소개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 말이다. 그리고 6년 전 이 곳 강릉에 ‘테라로사’를 연 것이다.


당신이 발견한 기준이나 방향성을 묻고 싶지만, 그러면 너무 전문적인 영역으로 들어갈 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이전에 우리나라 커피산업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부터 묻자.

개인적으로는 ‘스타벅스’가 소개되면서 부터 우리나라에 커피가 대중화 된 것이라 보고 있다. 하지만 이건 대중에게 알려진 정도일 뿐 일반화 되었다고 말할 순 없다. 아직 우리나라의 인스턴트와 원두커피의 소비량은 9:1정도다. 물론 기성세대들의 입맛이 평생 인스턴트 커피에 길들여져 온 영향도 크지만, 대형 커피 브랜드들이 원두커피 시장이 생기도록 가만 놔두지도 않았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커피산업은 가까운 일본에 비해서도 수 십년은 뒤쳐지고 낙후된 것이다.

낙후되었다는 표현의 근거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기술적인 부분인가? 아니면 시장 환경?

전반적으로다. 일본은 한해 원두를 약 50만 톤 소비한다. 우리나라가 7만5천 톤에서 8만 톤 정도 소비를 하니까 6배 정도 차이가 난다. 그게 세계3위(일본)와 세계11위(우리나라)의 차이이다. 그렇지만 그 여덟 계단은 이미 따라잡기 힘든 차이다. 우리가 일본을 능가하자고 한다면 30년 내지 40년이 걸릴 것이라고 본다. 우선 우리는 인프라가 너무 취약하다. 지금은 남미 만이 아니라 아프리카, 중동 등 세계의 많은 나라가 커피를 생산한다. 일본 북해도 쪽에 있는 작은 커피전문점을 다녀온 적이 있다. 우리 가게의 절반도 안 되는 크기의 작은 집이이었다. 그 집 주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 사람은 ‘예맨 커피’의 대단한 전문가였다. 그는 30년 동안 세계의 모든 커피농장을 돌아다니면서 원두를 찾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 작은 커피집 주인이 예맨 커피에 관한한 세계적인 전문가이다. 근데 일본엔 그런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예를 들어 ‘브라질이다’ 하면 브라질 농장을 다니면서 농장주들하고 친분을 유지하며 하는 식이다. 심지어 직접 농장 관리까지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대기업에 조차도 ‘산지 전문가’가 당 한명도 없다. 그러니 당연히 좋은 원두를 확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을 따라 잡겠는가?




세상에는 100원 짜리 커피도 있고, 100만원 짜리 커피도 있다. 그리고 현재 최고급의 커피 전문 시장은 일본이 장악하고 있다. 그들은 이미 1950년대부터 질 좋은 원두를 확보하는 것이 커피산업의 기본이라는 것을 인식했던 거다. 우리나라 대기업이 인스턴트 커피 매출을 위해 원두시장을 의도적으로 묵살해온 것과는 정 반대지. 그렇게 일본의 경우는 앞서나간 선구자들이 굉장히 열심히 잘했다. 그러니 뒤 따라오는 사람들이 ‘어떤 것이 낫다’라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고 커피 전문가들이 돈과 명예를 얻었다. 그러다보니 ‘아 나도 저렇게 될 수 있구나. 멋진 것이구나’ 하는 걸 느꼈다는 거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커피에 대한 그 ‘산업적인 드리밍’ 조차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생각하는 커피시장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그런 기업들의 노력과 함께 ‘문화적 환경’도 동반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쉽게 말해, 10만원 짜리 커피도 마실 수 있다는 견해들 말이다. 미국인들에게 스타벅스는 출근하면서 당연히 한잔을 들고 가는 생활 속 문화이지만, 우리의 시각은 그렇지 못하다. 아직도 4,000원짜리 밥 먹고 5,000원짜리 커피 마신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더 많다.

우선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의 커피 값은 너무 비싸다. 물론 원인은 있다. 먼저 말한 대로 우리가 직접 좋은 원산지와 거래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보니 나만해도 원두를 일본인 도매상을 거쳐서 사온다. 그러면 당연히 소비자가 부담해야할 코스트가 올라가는 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커피 값이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나라중의 하나이다. 일본이 200엔에서 250엔이니까 환율을 따져도 비싸다. 유럽에 가면 어떤 카페는 한 눈에 봐도 럭셔리 하다는 것이 보여 진다. 그런데 사실은 그 럭셔리한 카페를 아무나 다 들어간다. 거기 앉아서 마시면 비싸지만, 서서 마시면 1~2달러에도 그 집의 커피를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것이 ‘고급 대중문화’ 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중이 진짜로 커피를 사랑하는 모습이라고 받아들여진다. 현재 우리에겐 '인스턴트는 싼 커피, 원두는 비싼 커피'라는 이중적 잣대밖에 없다. 인스턴트가 싸기 때문에 대중적이다 라고 말하면 안 된다. 좋은 것을 대중적으로 맞추려는 노력이 문화의 임무 아닌가? 나와 커피도 마찬가지다. 저건 비싸니까 하며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걸 ‘대중의 높이’에 맞출 수 있는가를 고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서울 강남이 아니라 이 ‘강릉’에 커피전문점을 차린 이유이기도 하다. 커피는 결코 부자들만의 문화가 아니다. 처음엔 시골에서 이 커피점을 내니까 이곳 사람들이 이해를 못했다. 이게 무슨 커피냐 하면서. 근데 그걸 뛰어넘으려는 열정으로 밀어 붙였다. 그렇기 때문에 6년 이상 살아남은 것이다. 이런 것이 많아지게 되면 대중화가 되는 거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 강릉만 해도 이제 그런 열정이 있는 커피전문점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런 열정이 전체의 대중문화를 끌고 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멋진 철학이다. 커피 한잔으로 대중문화의 핵심을 설명하신 것 같다. 하지만 언제나 개척자의 길이란 쉽지 않은 것일 텐데...

물론 나 역시 아직까지 금전적으로 쉽다고 할 수 없는 상태이다. 버는 것 보다 쓰는 게 많다. 하지만 내가 가야될 길이 어디인지, 전 세계 최고 품질의 커피가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소개하는 것이 먼저 시작한 사람으로서 의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요즘은 많은 분들이 커피전문점을 하겠다고 나를 찾아오신다. 그래서 그 방향으로 물꼬를 트는 역할을 내가 나름대로 할 수 있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확신으로 힘든 단계를 넘어서야 하겠지. 그걸 넘어서면 보기 좋아지는 것이고.


최근 커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온라인상에서 동호회를 조직하고 직접 브랜딩을 해서 마시는 움직임도 활성화 되고 있다. 그런 이들을 위한 강의도 많이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인터넷 세상이 좋긴 좋다. 인터넷 안에 워낙 좋은 커피에 관한 전문 자료들이 많다. 그러다보니 가끔씩 그런 분들을 만나면 이론적로도 너무 우수해서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이것은 분명히 우리의 강점이다. 일본 친구들은 한 번 길을 확인하면 역동성이 없어서 그걸 벗어나지 못하는 게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거 아니면 이거’ 하고 도전적으로 뛰어 넘는다. 넘어지기도 하지만, 한계를 깨는 경우도 그러다보면 나온다. 그래서 나는 희망이 있다. 이 커피를 멋지게 연출하는 사람이 나타나서 산업적으로도 성장하고, 문화공간이 되고 ‘야 어디에 가면 그런 집이 있다더라.’ 하게 될 것이다.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하나의 음료만 입안에 넣는 것이 아니다. 눈으로는 그 공간을 마시는 것이고, 뇌로는 하나의 산업을 마시는 것이고, 가슴으로는 동시대의 문화를 마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커피가 우리에게 선물하는 ‘맛과 멋’이겠지.


마지막으로 묻겠다. 커피 한 잔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음... 커피만큼 인류에게 정신적 사치를 느끼게 해 준 발명품은 없다고 생각한다. 많은 철학자와 예술가들이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자신의 사상과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고, 개인의 인생이나 역사가 선택의 순간을 만날 때 언제나 커피 한 잔이 동행한다고 생각한다. 나 개인적으로는 커피를 통해 마흔 살이 될 때까지 몰랐던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일을 꿈꾸었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된 동기였다고 본다.




‘바리스타 김용덕 씨’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노트를 열어 그가 이야기한 문장을 적어보았다. ‘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하나의 음료만 입안에 넣는 것이 아니다. 눈으로는 그 공간을 마시는 것이고, 뇌로는 하나의 산업을 마시는 것이고, 가슴으로는 동시대의 문화를 마시는 것이다.’ 그가 만들어 내 준 한 잔의 커피는 오래 기억날 정도로 맛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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