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트다운’에서는 차가운 여자지만 딸에게는 극성엄마 전도연
‘카운트다운’에서는 차가운 여자지만 딸에게는 극성엄마 전도연
  • 이승우
  • 승인 2011.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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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에게는 뽀통령에 밀려 속상하다”

【인터뷰365 이승우】데뷔 이후 가장 짧게 자른 머리, 그래서 일까. 특유의 콧소리로 경쾌하게 인사하며 들어오는 모습은 여전했지만 ‘팜므파탈’을 내세운 영화 홍보와는 다르게 흡사 소년 같은 느낌이 묻어났다.

1990년 데뷔 이래 수십 편의 영화를 찍었지만 오는 지난 9월 29일 개봉한 ‘카운트다운’은 전도연에게 남다른 의미의 영화다. “단 한 번도 같은 배우와 연기 한 적 없다”던 전도연이 이번에는 그 룰을 깼다. 그 이유는 “‘카운트다운’이라면 해볼 만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번 작품에서 전도연은 지난 2002년 ‘피도 눈물도 없이’에서 공연했던 정재영과 다시 만났다. 9년 만이다. 게다가 한국종합예술대학교 출신으로 기발한 연출력을 인정받아온 허종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었다.

전도연의 선택은 옳았다. ‘카운트다운’은 신인감독의 작품으로는 이례적으로 해외 영화제의 러브콜이 끊이지 않았고, 지난 9월 13일에는 비경쟁영화제 중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오는 11월에는 도쿄필름엑스영화제에 참석해 레드카펫을 밟는다.

이 영화에서 전도연이 맡은 차하연은 고급 외제차에 가지고 다니는 현금만 5억원. 타고난 미모로 정재계 인사를 주무르는 치명적 매력의 소유자다. 하지만 그의 일상은 여전히 소소했다. 사진 촬영을 할 때면 운동중독으로 다져진 팔 근육을 포토샵으로 수정해 달라고 애교 섞인 부탁을 하는가 하면, 이제 막 세 살 된 딸아이와 틈만 나면 영상통화를 나누는 엄마의 모습까지 숨김없이 보여줬다.

짧은 커트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달리 얼굴이 작아 보이는 전도연에게 우선 물었다.

살이 빠진 건가.

몸무게는 겨우 1kg 줄어들었는데, 나이를 먹으니 얼굴살부터 빠지는 것 같다. 요즘엔 운동도 안하는데 다들 왜 그렇게 말랐냐고 한다. 사실 헤어스타일을 짧게 자를 때만 해도 ‘얼굴이 커 보이면 어쩌지’ 고민이 많았는데, 오히려 만나는 사람마다 ‘영화 홍보 때문에 힘든가보다’고 걱정해 줘서 나이듦에 감사하고 있다.(웃음)

극중 캐릭터를 위해 가장 먼저 변화를 시도한 건 아무래도 외모인 건가.

감독님이 “차하연의 인간적인 모습이 강조됐으면 좋겠다”는 말은 하시면서도 신인감독이라서 그런지 감히 머리카락을 자르라는 말은 못하시더라.(웃음) 내가 ‘카운트다운’에 끌린 이유는 미모의 사기전과범이 아닌 사랑받지 못한 여자가 나오기 때문이었다. 사실 차하연은 누가 연기했어도 튀고, 매력적인 캐릭터다. 여배우라면 누구나 탐낼 역할이었고. 하지만 난 그 이면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차하연이 그렇게 냉혹하고 센 여자가 아니라는 걸. 일단 머리를 짧게 자르니, 화장 전 후가 굉장히 달랐다. ‘카운트다운’에선 그런 내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사실 이 영화는 정재영이 맡은 태건호의 이야기가 주축이다.

모든 드라마는 태건호가 이끌어간다. 시나리오상에도 내가 맡은 차하연에 대한 과거나 묘사는 전혀 없었다. 그런 점이 백지를 채우는 듯한 느낌이 들어 더 끌렸던 것 같다. 언론시사회 이후에도 생각보다 비중이 적은 것 같다는 말을 들었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다. 차하연은 원래 장치적인 역할이었다. 그런 점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악하지만 연약한 캐릭터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는데 이번 영화에서 제대로 소원을 풀었다. 폭이 넓은 역할을 맡은 것에 대한 만족감이 남다르달까.

구체적으로 어떤 만족감이었나.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한다고 차하연은 17살에 딸을 낳고 버린 여자다. 대사로만 “난 17살에 애 낳아서 버렸는데…”라는 말만 나올 뿐 차하연의 과거는 거의 묘사되지 않는다. 고등학생이 되어 있는 딸을 찾아가서도 자신을 아줌마라고 부르는 걸 보고 “언니라고 불러”라고 말한다. 이 장면을 읽고서는 ‘차하연은 독하지만 차가운 여자는 아니구나’를 느꼈다. 10대에 낳은 딸을 버렸을 정도면 안 찾아가도 되는 건데 그 끈을 여전히 놓지 못하는 걸로 봐서 사실은 정 많은 여자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점이 영화에 잘 묻어난 것 같다.

남자배우들도 결혼을 하면 베드신을 되도록 자제한다거나, 아이들과 함께 보는 작품을 찾는다는 등, 배우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당신은 여전히 배우로서의 욕심이 묻어나는 필모그래피를 고수하는 것 같다. ‘밀양’ 이후에 결혼을 하고 ‘멋진 하루’ ‘하녀’ ‘카운트다운’까지 무난한 역할들은 아니다.

그렇잖아도 조카가 어느날은 “고모 영화 보고 싶은데 어른들만 봐야 한대”라는 말을 해서 내가 너무 센 역할만 했나 되돌아보긴 했었다.(웃음) 내 필모그래피가 결혼과 상관없는 것은 아내나 엄마로서의 역할을 직업에 포함시키고 싶지 않은 욕심이 크기 때문이다. 배우는 내 삶의 일부이고 가족들도 그 점을 당연히 생각하고 존중해준다. 그런 면에서 남편의 지지가 큰 힘이 된다. 딸도 이제는 내가 촬영장에 나가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집에 있으면 오히려 “엄마 때문에 뽀로로도 못 본다”며 칭얼대기까지 한다.

집에서는 어떤 엄마인가?

극성엄마다. 모든 걸 간섭하는 스타일. 애를 낳고 보니, 일에 치여 같이 보내는 시간이 없어서 뭐든 함께 한다. 밖에서는 ‘칸의 여왕’으로 불려도 집안에선 뽀통령한테 치이는 불쌍한 엄마다. 이제는 아이가 말도 곧잘 해서 영화도 같이 보러 다니고 문화생활도 같이 하고 싶은데, 찬밥 신세다. 같이 사는 이모님을 더 따른다.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가면, ‘카운트다운’은 영화 전반부와 후반부의 호흡이 전혀 달라진다. 톤이 갈라지는 부분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도리어 두 장르를 잘 조합했다고 본다. 전반부가 스릴러적인 면이 강하다면 후반부는 드라마적인 코드가 강하니까. ‘카운트다운’의 반전은 태건호와 아들하고의 관계다. 나는 그들의 갈등에 중심축에 해당하는 존재이고. 만약 해피엔딩이었다면 출연 안했을지도 모른다. 모든 관객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걸 아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하질 않는다. 관객들의 판단을 믿는다.

경쟁작이 많은 시기에 개봉했다. 공교롭게도 ‘도가니’의 공유 ‘의뢰인’의 하정우등은 같은 소속사 친한 동생들이고.

그동안 개봉운이 좋아서인지 내 영화가 외화랑 붙었으면 붙었지 한국영화랑 싸운 적은 없는데 이번에는 은근 걱정이다. 두 작품 다 너무 잘 나와서 긴장은 되지만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다. ‘도가니’는 원작만 읽고도 며칠 동안을 힘들게 보냈는데, 영화로 만든다니 공유가 정말 걱정됐다. 비록 연기지만 공유도 정신적, 육체적으로도 많이 힘들어 했을텐데, 영화를 보니 잘 견뎠더라.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도가니’는 보러 갔는데 ‘의뢰인’ 시사 때 가지 못해서 (하)정우가 많이 서운해 했다는 거다. 홍보사에서도 내가 그 두 영화 시사회에 가는 걸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고 매니저까지 ‘누나, 가려거든 모자 쓰고 가요. 파이팅 멘트도 되도록 피하시구요’라고 하더라. 그렇지만 나는 셋 다 잘 됐으면 좋겠다.

전작 ‘인어공주’에서 해녀로 나와서 인지 ‘카운트다운’의 물 속 연기는 매우 사실적이다.

와이어로 바다에 빠지는 장면을 포함해서 3번 만에 오케이 받았다. 물에 대한 공포심은 없지만 겨울 바다라 너무 추웠다. 뭐든 익숙한 연기는 없는 것 같다. 매번 할 때마다 새로운걸 느끼고 배우니까.

토론토영화제에 다녀온 소감은 어떤가. 반응이 남달랐다고 하던데.

칸영화제 때의 화려함만 생각하고 가서인지 의외로 작은 규모에 놀랐다. 레드카펫을 생각해서 드레스도 엄청 신경 써서 가지고 갔는데 포토홀 정도만 있었다. ‘내가 너무 촌스럽게 화려하게 꾸미고 왔네’라고 자책하고 있는데 상영시간 한 시간 전부터 관객들이 줄을 서 있더라. 얼마나 감동이던지. 무엇보다 무대하고 관객석이 멀지 않아서 반응을 바로바로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카운트다운’이 코미디장르는 아니잖나. 그런데 박수치고 웃고, 어떤 부분에선 흐느껴 울고. 축제처럼 영화를 즐기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내 영화인데도 같은 관객 입장에서 즐기고 온 느낌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가고 싶은 영화제다.

혹시라도 그런 뜨거운 반응이 ‘칸의 여왕’이라는 관심 때문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나.

한 가지 재미있는 건 그들에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은 그냥 트로피에 불과하다는 거다. 엄밀히 말하면 그들은 여우주연상쯤이야 수십개씩 받은 배우들을 매일 보는 사람들이다. 영화배우보다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축제이다. 그래서 그런지 외신들도 상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내 작품을 모두 보고 디테일한 감정을 물어봤다. 한번은 록커처럼 꾸미고, 청바지에 반지를 10개나 끼고 온 외국기자가 인터뷰를 하러 왔길래 ‘칸영화제 얘기나 하겠군’하고 지레 짐작했더니 ‘해피엔드’부터 ‘접속’까지 줄줄 꿰고 있더라. 배우 개인으로 오롯이 대접 받고 있다는 사실이 들어서 기분 좋았다.

개인적으로 ‘카운트다운’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다면.

딸을 만나러 가서 “알바할 시간에 외모나 가꿔”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바로 장면이 바뀌어 다리 밑에서 자신을 아줌마라 부르는 딸에게 “마지막으로 한 탕 해서 줄테니 그걸로 니 인생 살라”고 충고하는 장면인데 정말 가슴이 짠했다. 현실적으로는 참 매정한 엄마인데, 어쩔 수 없이 핏줄에 땡겨지는 차하연이 고스란히 나오니까.

상대배우인 정재영에 대해서 말해보자. 9년만의 만남이다.

그때만 해도 영화에 있어서는 둘 다 초짜나 다름없었다. 이번에 다시 만나니 ‘벌써 시간이 그렇게나 흘렀어?’라고 되물을 만큼, 어제 만난 사이 같았다. 서로 작품으로 만나왔으니 어색하진 않았다. 어떤 영화에서든 상대배우가 잘 받아줘야 연기가 사는데 (정)재영오빠는 그런 포인트를 동물적으로 ,타고난 배우다. ‘카운트다운’ 전까지만 해도 태건호의 무겁고 우울한 면이 재영오빠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겪어보니 너무 잘못된 생각이란 걸 알았다. 그렇게 유머러스하고 긍정적이기도 힘든데.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두 번 호흡을 맞춘 배우는 처음이지 않나.

맞다. 재영오빠가 유일하다. 그래서 세번째는 서로 안하기로 했다.(웃음) 멋진 남자배우들이이 한 둘이어야지. 포스터 촬영할 때 느낌이 살지 않아서 죽는 줄 알았다. 서로 얼굴 맞대고 있어야 되는데 ‘어떻게 설레지를 않냐’며 서로를 타박하기 바빴다. 남자배우 복? 이 영화가 거의 클라이막스다. 이 영화에 이경영 선배님이 출연한다고 해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배우되기 전부터 팬이었는데 이번에 만나서 정말 영광이었다 또 오만석씨는 현장의 분위기 메이커였다. 인기 많은 이유를 알겠더라.(웃음)

드라마 출연 계획은 어떤가. ‘프라하의 연인’ 이후로는 뜸한데.

종편 소식도 들었는데 왜 섭외가 안 들어오는지 모르겠다. 정말 하나도 안 들어온다.(웃음) 영화는 꾸준한데 드라마는 단 한 편도 안 들어온다. 나는 어떤 대본이든 내 손에 들어오면 꼭 챙겨 읽는다. 나를 염두에 두고 전해준 작품인데 읽지도 않는다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일 아닌가. 만약 못하겠으면 거절도 직접 하자는 주의다. ‘카운트다운’ 잘 풀리면 드라마 러브콜도 들어오려나?(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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