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신성일’은 잘난 내 남자, 배우 엄앵란
그럼에도 ‘신성일’은 잘난 내 남자, 배우 엄앵란
  • 김두호
  • 승인 2008.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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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사전 같은 내 인생, 한강 향해 3배 올리며 사는 까닭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가슴이 바다같이 넓은 후덕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삶의 지혜를 전도하며 TV 명사로 뜬 엄앵란. 칠순을 넘어선 60년대 은막의 히로인은 여전히 젊고 건강하게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청춘스타로 인기가 절정이던 시절에 신성일(현재의 강신성일)과 톱스타 커플이 된 이래, 그녀의 인생은 절반이 신성일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깊이 들여다보면 일과 사랑, 영광과 좌절의 삶을 두 사람은 오래도록 한 가닥으로 엮어왔다.


큰 가슴을 가진 엄앵란의 순수하고 단단한 사랑과 그래도 조강지처의 위치를 존중하는 신성일의 변함없는 애정이 있는 한 그들은 이 세상 끝까지 풀어지거나 끊어지는 일 없이 한 가닥의 삶을 엮어갈 것으로 보인다. 지금 부군은 대구근교의 영천에 자신의 기념관을 짓느라 한동안 집을 비우고 있다. 춘분(春分)을 며칠 앞두고 한강에서 봄바람이 창안으로 밀려들어오는 어느 날, 한창 만면에 화색이 가득 피어 있는 엄앵란을 만났다.



부군(신성일)께서 영천에 별장을 짓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한데 지금 어느 정도나 지었습니까?

하하하...별장이 아니고 기념관입니다. 평소 그 양반과 친분이 두터운 정대철 의원께서 일본에 있는 불세출의 톱스타 이시하라 유지로의 기념관을 구경한 이야기를 귀띔해 자신도 그 꿈을 실현하고 있어요. 그의 기념관이 일본의 경치 좋은 산골에 있나 봐요. 그도 1960년대 스타인데 우리 부부가 출연한 <가정교사> <맨발의 청춘> 등 히트 영화의 시나리오를 일본에서 가져가 제작할 때 주연 배우였어요. 일본 영화계의 신성일 이었지요.


영천이면 서울서 먼 곳인데 위치 선정에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

글쎄말이에요. 서울서 가까운 곳에 마련하자고 했지만 그 양반 고집을 누가 꺾어요. 대구서 지역구 국회의원 할 때 당원 한분이 자신의 포도밭을 큰 부담 없이 기념관 땅으로 내놓은 것 같아요.


규모가 어느 정도입니까? 아무래도 부부 기념관으로 문을 열겠지요?

글쎄요. 엄앵란 기념관으로 쓸 문 칸 방 하나를 내어줄지 모르겠네요. 하하하. 9칸짜리 한옥으로 설계한 집인데 오는 19일 상량식을 한다니 나도 그때 구경 가봐야죠. 그런데 부부가 수십 년 동안 안 버리고 모은 각종 의상과 액세서리며 기념품들이 무지 많아요. 결혼식 때 입은 웨딩드레스에서 결혼기념일에 주고받은 반지들, 각종 상패와 만년필 시계 모자 넥타이까지 가족의 오랜 수집벽 덕분에 작은 박물관 하나는 나올 것 같아요.




아직 현장에 못가 보셨군요. 건축비용도 적잖게 들겠네요.

큰 부담 없이 짓고 있어요. 우리 부부가 인생 굴곡이 많아도 인덕이 있어서 도와주는 분들이 많아요. 평소 형님아우하며 지낸 분들이 비싼 자재를 무상으로 지원해주고 있어요. 강원도에서 목재소를 하는 분은 고급 춘양목, 목축업을 하는 분은 목초지에서 나온 맥반석을 40트럭이나 실어다 주고 있어서 남편은 입이 찢어지게 좋아하고 있어요.


이 일 저 일, 좋은 일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다시 에 출연도 하시고 또 광고를 보면 결혼정보회사도 운영하시는 것 같고.

맞아요. 지금 너무 행복하고 편안합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창문을 열어젖히고 저 한강을 바라보며 합장하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며 3배(三拜) 하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닥스(결혼정보회사)는 일주일에 2일간 근무하며 카운슬러를 해주는 일이지 내 회사는 아니랍니다. 그래도 이 나이에 가족과 함께 건강하게 웃으면서 일하고 살 수 있다니 기쁨밖에 없어요. 욕심이 없으니 사는 것이 홀가분하고 질투도 없어졌어요.


욕심이 없으니 질투도 없어졌다구요?

언젠가 젊을 때 질투하고 속상했던 일을 남편에게 끄집어냈더니 언제 그런 적이 있느냐고 펄쩍 뛰길래 내가 그럼 김두호(본 인터뷰어는 스포츠서울 기자시절 신성일의 수기를 연재한 바 있음) 불러와서 물어보자며 웃고 넘어갔어요. 지난 일도 이제는 우리들의 즐거운 이야깃거리가 된 거지요.





















지난 일이 되었지만 두 분만큼 행복과 불행의 양극을 오고간 부부도 흔치 않을 것 같아요. 실제 사는 것도 영화만큼 화제를 많이 남겼습니다.

과거 이야기가 나오면 우리 부부 인생을 백과사전 인생이라고 해요. 천당과 지옥, 온탕과 냉탕을 오가며 남들보다 3배쯤 인생을 더 다양하고 길게 산 것 같아요. 드라마만큼 희로애락의 기복이 심했지요. 그런데 힘들고 울고 싶을 때 도와주는 분들이 많아서 한편은 행복했었지요. 이것 봐요. 조금 전에도 저를 좋아하는 분이 딸기하고 직접 뜯었다는 봄나물을 가져왔어요.


부군이 정치판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부터 큰 고비들이 많았지요?

그래요. 오래전 시작부터 그랬었지요. 바닥까지 추락하고 또 시작해 국회의원도 했지만. 진흙탕 속에 남편이 빠졌을 때도 많은 분들이 우릴 위로하고 힘이 되어주셨어요. 심지어 밑반찬을 담아다주시고 젓갈과 귤을 보내시는 분들이 아직도 계십니다. 머리를 밑으로 내리면 진흙이 숨구멍을 막아 죽는 줄 알고 힘이 들어도 숨을 쉬며 살도록 힘이 되어 주시는 분들이 너무 고마웠어요. 살고 있는 마을(서울 용산구 이촌동)에서는 남편 옥바라지할 때 순식간에 1천명의 주민들이 탄원서를 만들어주셨어요. 자, 이제 우울한 지난 이야긴 그만 해요.



신성일은 20여 년 전, 스포츠서울에 연재한 수기형식의 <스타고백>에서 첫 국회의원 선거에 낙선 후 채권자의 협박과 빚더미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해 투신자살을 결심하고 한강변의 장소를 찾아 다닌 적이 있다고 적었다. 그는 결국 고향인 대구에서 정치의 한을 풀었지만 정치적인 오점도 함께 남기고 정치와 결별했다.


잠시 여기서 엄앵란의 눈부신 젊은 시절로 돌아가 보자. 19살 때인 1956년 <단종애사>로 은막에 모습을 드러낸 후 부군이 된 신성일과 환상의 콤비스타로 1960년대 청춘영화의 인기를 풍미할 때 엄앵란은 청초하고 가련한 이미지의 연기자였다. 본명은 엄인기. 1936년 서울에서 출생했지만 아버지 엄재근은 함경북도 어대진의 부잣집 맏이였다. 아버지는 일본 도쿄 음악학교에서 클라리넷을 배우고 연주활동을 하다가 최승희 무용단의 무희였던 노재신을 만났다. 맏딸 엄앵란은 어머니가 배우로 활동할 때 음식을 챙겨다주는 효도를 하다가 전창근 감독의 눈에 띄어 단종의 어린 왕비로 발탁됐다.



엄앵란의 어린시절은 가난했다. 가정을 돌보지 않은 유랑 벽의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가 살림을 꾸렸지만 판자촌에서 간신히 허기를 면할 정도로 어렵게 살았다. 그런 때 대학을 다니며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 연기 의욕을 부채질 했다. 숙대 가정학과 3학년 때 겹치기 출연을 해가며 처음으로 내 집을 장만했을 때를 엄앵란은 평생 잊지 못할 기쁜 날로 기억한다. 첫 학사배우라는 별칭이 따라 붙기 시작한 1960년대 초 신상옥 감독의 <로맨스 빠빠>에서 신인배우 신성일을 만났다. 그 후 <아낌없이 주련다>가 청춘영화시대의 포문을 열면서 엄앵란, 신성일은 우리 영화사상 전무후무한 황금의 콤비스타로 가장 긴 톱스타 시대를 이끌어 냈다. 엄앵란은 신성일보다 한 살 연상이다. 그들은 드라마 속의 키스가 실제로 이어진 정진우 감독의 <배신>이란 영화에서 보트를 타고 사라지는 로 사랑을 나누기 시작해 어느 날 밤 호텔 옆방에 자던 신성일이 고층 홈통을 타고 남몰래 엄앵란의 방에 뛰어들면서 두 남녀는 부부의 연분을 확인한다.


‘엄앵란과 신성일만 출연하면 무조건 히트 한다’는 시대를 넘어설 무렵 워커힐에서 올린 두 사람의 결혼식은 역시 연예인 결혼사상 가장 많은 3천여 명의 하객을 불러 모아 시끄럽게 화제를 남겼다. 엄앵란은 결혼 후 아기 엄마가 되면서 은막을 떠났다. 1966년 <아네모네 마담>은 결혼 후의 출연 작품인데 그 영화까지 1백60여 편의 필름을 남겼다. 충무로에서 모습을 감춘 후 신성일의 아내이면서 두 딸과 아들 하나를 키우는 어머니로 들어앉았다. 그러나 조용하고 평탄하게 안주할 수 없는 생활환경의 변화도 따랐고 바람 잘날 없는 남자의 아내로 마음 고생도 많았지만 한 가정의 억측주부로 인고의 세월을 딛고 행복한 만년(晩年)을 맞이하고 있다. 꾸밈없이 솔직하게 쏟아내는 걸쭉한 그녀의 입담들은 아내와 엄마로써 겪은 다채로운 체험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살아오면서 참으로 견디기 힘든 때는 언제로 기억됩니까?

힘들고 어려울 때는 아주 어릴 때 대구 피난시절을 생각해요. 대구 방촌시장이라는 곳에서 어머니와 길가에서 떡장수를 했어요. 어린 마음이었지만 너무 힘들어 죽고 싶었어요. 그래서 고난을 겪어야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겨요. 그 때 무서운 가난이 평생 간직한 행복의 씨앗이 되었어요. 19살 때 배우가 되었지만 너무 힘든 일이 많아 도망가고 싶었지만 떡장수 할 때를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틈틈이 강연 강의활동도 하시지요? 주로 어떤 이야기를 하세요?

금자탑을 쌓는 길은 고생과 고난을 값있게 치루고 극복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특히 요즘 젊은 자녀들이 하루아침에 고생 안하고 쉽게 무엇을 얻고 성취하려고 해요. 그렇게 우습게 얻는 건 거품이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요. 인생은 농부의 삶에서 진리와 지혜를 배워야한다는 생각도 해요. 땀 흘린대로 거두는 게 농부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달라지고 잘살고 편리해져도 노력의 가치와 정성의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요즘 부부사회의 이기주의가 이혼의 불씨가 된다고 합니다. 오래도록 살아도 변함이 없는 부부의 진정한 미덕이나 지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부부도 변합니다. 솔직하게 터놓고 말해서 아무리 사랑하는 부부라도 신혼생활 6개월 지나면 식어요. 알거 다 알고 느낄 것 다 느끼고 신비감은 없어져요. 세상 모두가 다 변합니다. 태양도 식어가고 있고 지구도 기온이 변한다고 난리입니다. 그게 자연의 섭리고 우리 인생살이의 섭리 아닙니까? 연애 걸 때의 기분을 부부가 서로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불쾌하고 기분 안 좋은 일이 벌어져도 무리하게 대응하지 말고 순리대로 풀어나가야 사고가 안 생기고 가정도 안 깨어져요. 감정으로 살면 결국 자신부터 먼저 망가져요.




이제 남편 신성일에 대한 인물평을 솔직하게 털어놓아 보시지요.

불과 얼마 전에 우연히 <안개>라는 옛날 영화를 아주 감회 깊게 다시 보았어요. 그걸 보며 과연 신성일은 천하의 미남자구나, 정말 매력 있게 생겼구나 하는 걸 느끼며 감동했어요. 그러니 여자들이 저런 남자를 그냥 버려 둘리 없었겠지 하고 자문자답했어요. 내가 지금 남편한테 아부할 일도 없어요. 그러니 옥바라지까지 시켜도 예쁘다 생각하고 사는 거라오. 하하하.


자녀분들 근황도 좀 알려주시지요.

배우하던 아들 석현이는 40줄인데 아직 장가갈 시기가 아니라며 지금 TV드라마 <일지매>(황인뢰 PD)를 제작하고 있어요. 드라마 제작회사를 운영하며 사업을 해요. 부모 그늘서 벗어나고 싶다며 일체 간섭을 말라고 하네요. 두 딸은 자식 키우며 다 잘 살고 있어요. 미국인 착한 남자와 결혼한 큰 딸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어요.



엄앵란은 한 마디 대답하고 웃고 또 한마디 대답하고 파안대소 했다. 요즘 사는 게 그렇게 행복하고 즐거운 것 같았다. 그녀의 밝은 표정 위로 봄볕이 눈부시게 쏟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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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97아시아태평양영화제 집행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대종상 및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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