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50년만에 다시 '베르나르다'로 무대에 선 배우 이승옥
[인터뷰] 50년만에 다시 '베르나르다'로 무대에 선 배우 이승옥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18.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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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 여인극장 '알바의 집' 첫 무대 오른 지 50년만에 다시 베르나르다 역 맡아
-"20대 몰랐던 자식에 대한 사랑과 아픔, 이젠 이해"
-첫 무대에 선지 51년...여전한 현역 "생활 연극 확산에 제 여생 바치고파"
1968년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에서 베르나르다 역을 맡았던 배우 이승옥이 50년만에 다시 베르나르다 역으로 무대에 올랐다./사진=한국생활연극협회 제공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연극배우 이승옥은 현역에서 활동하는 원로에 속한다. 백성희 대배우와 윤소정 배우가 작고한 후 현역으로는 백수련·김금지·박정자·손숙 등과 함께 이승옥(75)이 꼽힌다.

1967년 극단 동인의 '악령'(도스토에프스키 원작, 알베르 카뮈 각색, 정일성 연출, 김인태 제작)에 최불암·오지명·백수련 등과 함께 첫 무대에 선지 올해로 51년. 그리고 1968년 7월 두 번째 작품인 극단 여인극장의 '알바의 집'(가르시아 로르카 작, 강유정 연출)에 비중이 큰 베르나르다 역을 맡아 국립극장(현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섰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흐른 2018년, 이승옥은 극단 시선의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로르카 작, 홍란주 연출)에 베르나르다 역을 다시 맡아 5월 30일부터 6월 3일까지 대학로 공간 아울 무대에 선다.

"처음 '알바의 집'에 출연할 때가 스물다섯이었죠. 결혼도 안한 처녀가 딸 다섯을 엄하게 키우는 어머니 역을 맡았으니 뭘 알았겠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맡지 말아야 할 역이었지만 당시만 해도 여배우가 적어 여인극장의 여성 연극에 참여하게 된 것이지요."

극단 여인극장은 1966년 10월 여성 연출가 강유정이 여성연극인들을 주축으로 창단한 동인제 극단이다. 창립 기념으로 안톤 체홉의 '갈매기'를 무대에 올린 여인극장은 네 번째 작품으로 스페인 극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가 1936년에 발표한 3막 비극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을 '알바의 집'이란 타이틀로 국립극장에서 공연했다.

"당시 여인극장의 강유정 선생님께서는 여자들만 출연하는 이 작품을 통해 여성들의 체통과 성적인 본능을 조명하고자 했어요. 저는 엄격한 어머니 베르나르다 역을 맡았는데 우리의 양반댁 마님 같은 체면과 억압으로 딸들을 일탙하지 못하도록 하는 연기를 한 것이지요. 강 선생님은 한 집안의 비극을 다룬 이 작품이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총통의 강압 통치를 빗대서 쓴 희곡임도 강조해 주셨어요. 남편의 죽음은 국가의 죽음을 상징하고 베르나르다가 마지막에 외치는 '내 딸은 처녀로 죽었다'는 대사는 결코 독재에 고개 숙이지 않았다는 점을 은유한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던 기억이 나네요."

연극을 향한 집념이 강했던 강유정 연출은 이승옥·이주실·김혜숙·남능미 등을 캐스팅하여 국립극장 무대에 올렸고 "육신의 상복뿐 아니라 정신적인 상복"을 부각시키고자 했다.

여장부로 불렸던 강유정은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 협찬으로 의상을 마련하는 등 여성 연극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그런 관점에서 연출된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이 2018년 극단 시선의 홍란주 연출로 재해석 되어 무대화됐고, 배우 이승옥이 50년 세월을 건너뛰어 적역을 맡게 된 것이다.

극단 시선의 연극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포스터

25세의 베르나르다가 아니라 삶의 연륜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무게감 있는 75세 베르나르다의 격정 연기를 보는 것이 이번 공연의 감상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이번 베르나르다 역은 운명처럼 찾아왔어요. 제가 사단법인 한국생활연극협회 부이사장을 맡고 있어 제가 했던 '알바의 집'을 아마추어 배우들과 낭독공연으로 하고 싶었어요. 제가 성우 출신이고 베르나르다 역 경험이 있어 연출할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작품 해석까지 하기엔 벅찼어요.

그래서 대학로에서 활동하는 홍란주 여성 연출가를 초빙했는데, 그가 대표로 있는 극단 시선의 정기 공연으로 이 작품을 올리게 되어 50년만에 다시 같은 역을 맡게 되었으니까요. 연출이 다르니 작품 해석도 다른데 홍란주 연출의 이번 상징주의 무대가 요즘 세태에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궁금해요."

로르카가 38세에 발표한 이 작품은 남성작가가 썼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여성의 심리와 갈등을 섬세하게 풀어냈다.

홍란주 연출은 일차로 1930년대 스페인의 정치적 상황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을 현대에 맞게 모던하게 각색했다고 밝혔다. 출연진을 6명으로 압축하고 작품을 억압과 자유의 관계로 해석했다는 것이다.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에 사는 여성들이 자아와 정체성을 찾기 위해 '집'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하는 이 작품을 홍란주 연출은 "여성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자유의지에 초첨을 맞춰 보편적 인간의 자유에 대한 열망을 '사랑'이라는 매개로 풀어내고자 했다"고 밝혔다.

"저는 알바의 천성적인 성격을 묵직하게 표현하고 싶어요. 자기가 태어난 환경과 가문의 전통을 이으면서 계율을 지키려는 상류층의 기질을 보여주자는 것이지요. 우리 전통사회의 양반집 마나님같은 캐릭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엄마와 딸들의 갈등관계, 특히 어느 사회에도 있는 여성의 성적인 욕망을 20~40대 농익은 여성들의 갈망으로 표출될 것입니다."

이번 무대에는 연극과 영화에서 활동해온 배우 김현이 알바의 집 유모인 폰치아 역으로 출연하며, 알바의 딸들은 박무영(앙구스티아스), 위희순(막달레나), 이서하(마르타리오), 김희애(아델라)가 맡는다.

"배우들과 연습을 하면서 25세 때는 보이지 않던 어머니의 캐릭터가 보이는 거예요. 자식에 대한 사랑과 아픔을 그때는 몰랐는데 이제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이 작품에서 알바는 딸들을 자기 기준에 맞춰 억압해서 키우려 하지만 큰딸 앙구스티아스와 로마노의 결혼을 계기로 막내딸 아델라와 그녀를 질투하는 넷째딸 마르트리오의 갈등이 빚어진다. 알바는 로마노를 총으로 쏘고 이런 어머니의 행동에 공포를 떨치지 못한 막내딸 아델라가 자살한다는 내용이다.

"한 집안의 비극을 그린 작품이지만 자유를 향한 열망의 몸부림이기도 하지요. 알바가 딸들에게 자기 말만 따르라고 강압하고, 결혼 적령기를 넘은 딸들에게 상복(喪服)을 입고 살라는 것은 억지스럽긴 하지만 한 가문을 지키려는 엄마의 꼬장꼬장한 인생을 제 색깔로 보여주고 싶어요."

배우 이승옥이 90년대 중반 국립극단 '노부인의 방문'에 출연 했을 당시 모습/사진=이승옥 제공 

1943년 충남 공주에서 출생한 이승옥은 대전 호수돈여고를 나와 동덕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21세 때인 1960년 광주 KBS 성우로 활동을 시작, 1961년 서울 KBS 성우로 일하다 성우 구민의 권유로 연극 '악령'에 데뷔했다.

당시 성우는 라디오 드라마 뿐 아니라 한국영화 후시 녹음으로 전성기를 누렸다.

고은정·정은숙·임옥영·천선녀 등과 한국영화 더빙에 참여했던 이승옥은 신필름의 '꿈'(이광수 원작, 김혜정 신영균 주연)에서 김혜정 대사를 더빙했고, '유정'과 최은희 감독의 '공주님의 짝사랑'에서 신예 남정임의 목소리를 후시 녹음하기도 했다.

김지수·김창숙이 주연한 '결혼교실', '소문난 여자들'의 목소리를 더빙하다가 이 영화를 연출한 정인엽 감독과 결혼했으나 지금은 이혼한 상태다.

배우 이승옥은 노경식 작 '탑'으로 1979년 제3회 대한민국 연극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사진=이승옥 제공

듬직한 체구와 위엄있는 목소리가 특징인 이승옥은 국립극단 배우로 명성을 날렸다. 신협과 여인극장에서 '탑', '알바의 집' 등에 출연한 그는 노경식 작 '탑'으로 제3회 대한민국 연극제에서 주연여우상을 받았다.

그의 출연작으로는 '페드라', '노부인의 방문', '검찰관', '산불', '태', '맹진사댁 경사', '파우스트' 그리고 '신의 아그네스' 등을 꼽을 수 있다.

"53세 때 맡았던 뒤렌마트의 '노부인의 방문'의 노부인, '검찰관'의 시장 부인, '홍동지는 살아있다'의 왕비, '태'의 여종 역이 가장 기억에 남는 캐릭터들이에요. '태'는 인도에서 열린 세계국립극장 페스티벌에 참가하기도 했어요."

국립극단 '맹진사댁 경사'에서 한씨부인 역을 맡았던 배우 이승옥/사진=이승옥 제공

70대 중반의 이승옥은 요즘도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2016년 원로연극제 참가작인 천승세의 '신궁'에 출연한 그는 올해 늘푸른연극제에 선정된 권성덕 배우와 함께 그의 대표작 '로물루스 대제'에 왕비 역으로 출연한다.

서울연극협회 산하 성동연극협회 회장인 그는 서울시민연극제 집행위원장을 맡았으며 성동청소년연극제의 집행위원장도 겸하고 있다.

"올해 가장 큰 보람은 성동구에 구립극단을 창단하게 된 것이에요. 서울 25개 구에 구립극단이 만들어지면 연극인들의 일자리나 무대 확보에 획기적인 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적은 규모지만 성동구에서 구립극단을 출범하게 된 것에 자부심을 느껴요. 프로연극과 함께 일반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생활연극 확산에 제 여생을 바치고자 합니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