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창동 감독 "'버닝'은 낯선 방식의 영화...'모호함' 그 자체 받아들였으면"
[인터뷰] 이창동 감독 "'버닝'은 낯선 방식의 영화...'모호함' 그 자체 받아들였으면"
  • 김리선 기자
  • 승인 2018.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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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영화제서 호평 일색에 '이게 뭔일인가' 싶어...본상 수상 불발은 아쉬워
-칸 영화제? 체질에 안맞아... 마치 '몸치'가 춤추는 기분
-"늘 변화하고 싶다...늘 변화하려고 부단히 노력"
이창동 감독/사진=CGV아트하우스

[인터뷰365 김리선 기자] 이창동 감독(1954~)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고교 국어교사에서 촉망받던 소설가로, 그리고 마흔이 넘어 영화 '초록물고기'(1997)를 통해 늦깎이 영화 감독 데뷔까지,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왔다. 한 때는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공직자 생활도 했고, 칸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늘 이 감독은 그리운 고향을 찾듯 다시 영화 현장으로 돌아왔다. 

영화 '버닝'은 이 감독이 영화 '시(2010)' 이후 8년만에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칸이 사랑한 거장'답게 이 감독은 '버닝'으로 한국 영화 중 유일하게 제 71회 칸 국제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며 화려한 복귀식을 알렸다. 높았던 기대만큼 본상 수상 불발은 큰 아쉬움을 남겼지만, 수상과 무관하게 이 영화는 칸 현지에서 가장 높은 평점을 받으며 그의 위상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버닝'은 작가지망생으로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유아인)가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전종서)를 만나고, 그녀에게 정체불명의 남자 벤(스티븐 연)을 소개 받으면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물로, 이 감독 특유의 섬세한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다.

"영화 그 자체가 미스터리"라는 이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미스터리함과 모호함이 전반에 깔려 있다. 각 자의 시각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오지만 정답은 없다. 상업 영화로서는 과감한 도전이기도 하다. 이 감독은 "이 방식이 낯설기도 하겠지만, 이런 '모호함' 그 자체를 받아들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난 25일 인터뷰차 만난 이창동 감독은 다소 피곤한 모습이었다. 이틀 전 프랑스 칸에서 귀국하자마자 영화 '버닝' 행사에 참여하는 등 눈코뜰새 없이 보내고 있다는 그는 "서서히 시차 적응 중"이라고 털털 웃어보였다. 

이창동 감독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는 오랜만이다.

거의 안했다. 언론에 노출 해야했던 직업도 잠시 가졌는데 불편하더라. 작업을 하려면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이야기도 하고 취재도 해야하는데 그게 잘 안되니 힘들었다. 가능하면 언론에 노출 빈도를 줄이려고 했다.

작품 이외의 이야기는 '일종의 오류다'고 배웠다. 작가나 감독은 작품으로 말해야하는데 나선다고 홍보에 효과가 있을까란 생각도 들더라. 주방장이 자장면만 잘 만들면 되지, 나와서 얘기한다 한들 더 맛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니까.

사실 이 영화는 설명보다 직접 느껴야 하는 영화다. 설명을 많이 해서는 안되는데, 인터뷰에서 말은 안할 수 없으니 이런 모순적인 상황을 이해해달라.(웃음)

-칸 영화제와 인연이 깊다. '버닝'으로 5번째 칸 국제영화제에 진출했다.  

이창동 감독은 영화 '버닝'으로 '밀양(2007)', '시(2010)'에 이어 3편 연속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영화 '밀양'은 2007년 제 60회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영화 '시'는 2010년 제 63회 칸 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했다. 이 감독은 칸 영화제와 꾸준히 인연을 이어왔다. '박하사탕'으로 2000년 제 35회 칸 영화제 감독 주간에 초청된 바 있으며, 2003에는 칸 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오아시스'가 소개되며 6편의 연출작 중 5편이 칸 영화제에 진출했다. 지난 2009년에는 칸 영화제 심사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이번 '버닝' 역시 본상 수상은 불발됐지만, 국제비평가연맹상과 벌칸상 등 2관왕에 이름을 올랐다.

사실 내 체질과 칸 영화제는 맞지 않다. 레드카펫이 싫다. 걸어가면서 손 흔들고 미소 짓는게 마치 '몸치'가 춤추는 기분이랄까. 그래도 칸의 레드카펫을 밟기 위해 가는 거니까. 칸의 레드카펫은 세상 모든 레드카펫의 모델이자 세계 최상급의 레드카펫 아닌가. 무엇보다 전세계 모든 매체가 다 모이는 곳이고 종합 평가를 받는데는 칸 영화제보다 더 효과적인 자리가 없다.

영화 '버닝'으로 제 71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이창동감독(사진 맨 오른쪽)과 배우들의 레드카펫 행사 참석 모습/사진=CGV아트하우스
제 71회 칸국제영화제 포토콜에서 이창동 감독/사진=CGV아트하우스

-영화 '버닝'이 프랑스 칸 현지 영화 전문지 역대 최고 평점을 경신하는 등 호평을 받았다. 

영화 '버닝'은 호불호가 분명한 영화다. 좋게 말하면 나름의 개성의 있다는 거다. 칸 경쟁부문에 진출하는 작품들은 대부분은 이런 영화들이다. 꼭 예술 영화만 오는게 아니라, 자기만의 개성을 가진 영화들이 모여 있다. 개성적인 영화라는 건 그만큼 호불호가 있다는 의미다. 모두가 좋다는 말하는 영화는 그런 평을 받기 힘들다.

'버닝' 역시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상하게 다 좋다고 하니 '이게 도대체 뭔일인가'싶었다. 이전의 제 다른 영화들의 경우 '영화를 보고 감동받았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이런 일은 없었으니까. 당시 칸에서 레드카펫 행사가 끝나고 차를 타고 가는데 감동스러웠다고 울면서 차로 달려오신 분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버닝'이 상을 받아야 한다"며 대놓고 이야기가 나오더라. 왜 그렇게 이 영화를 좋아할까 생각도 들었다.

-높은 평점에도 황금종려상 수상은 불발됐다. 아쉽지는 않았나.

기대도 했지만, 내심 불안했다. 좋게 평가를 받으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심사를 해봐서 아는데 구조적으로 매년 항상 좋은 작품 한 두개는 떨어지게 되어 있다.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심사위원들이 미루고 싶은 작품을 끝까지 남겨두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이상하게 개봉 전부터 칸 영화제 수상 여부에 모든 마케팅을 올인한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상을 못받으면서 판돈을 다 잃어버리는 듯한 분위기였다. 기대가 높으면 실망감도 커지지 않나. 영화를 만든 감독으로서 같이 하는 사람들에게도 미안하더라. 한국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으면 한국 영화계에 자극도 되고 활력도 얻는 계기가 됐을텐데, 많이 아쉽다.

영화와 관련 지어서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는 '종수'의 이야기인데, 종수와 칸 레드카펫은 다른 세계에 있다. 벤의 화려한 세계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하나. 수상 불발이 우리 영화의 운명인가 그런 생각도 들었다. 뭐, 나한테 좋은 일이 생기겠나 싶기도 했고. (웃음)

영화 '버닝' 해외 포스터

-영화에 대한 국내 관객 반응에 대한 느낌은.

칸 현지 반응과 국내 반응은 너무 다르더라. '이건 또 뭐지' 싶었다. 호불호가 있을 거란 예상은 했지만, 제가 예상했던 것과는 또 달랐다. 이 부분은 내가 오래 고민해야 할 숙제처럼 느껴진다.

-영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데.

해미는 왜 사라졌는지, 또 벤은 어떤 인물일까. 이 같은 단순한 미스터리를 따라가다 보면 그 뒤엔 여러 미스터리가 중첩 되어 있다. 그 중의 하나는 우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과 실제 있는 것, 이 차이는 뭘까란 질문이다. 이런 인식과 믿음의 문제가 미스터리와 연결되어 있다.

제 세대는 뭔가 세상에 답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계급의 문제든, 민주화의 문제든. 사회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답이 있다고 믿고 싶었던 거지. 그러나 지금은 없어졌다. 분명히 뭔가 잘못됐는데 뭔가 문제인지 알 수 없는거다. 그렇지만 세상은 더 편리해지고 세련돼 가고 있다. 한때 분노로 뭔가를 해결할 수 있을 것도 같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변한 건 별로 없다. 세상은 미스터리 같다. 어느 하나가 반드시 옳은 건 아닌 것 같다.

-어떤 것이 진실이고 허구인지 명확하지가 않다.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가령 보이지 않던 고양이의 존재나 해미가 언급한 우물 등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혼란스럽게 느껴지는건 오히려 괜찮을 것 같다. 영화는 '우리가 믿는 것이 다가 아니다'는 미스터리를 다룬다. 관객들에겐 낯설기도 하고 익숙하지 않는 영화다. 처음부터 영화적 관습에 많이 벗어나 있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이긴 힘들 것으로 생각했다.

영화 속 주인공 종수를 비롯한 해미와 벤은 각자 자기만의 서사가 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달까. 작가 지망생 종수는 세상의 분노와 무력감 속에서 의미있는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 눈으로 세상을 본다. 해미는 우물 이야기를 하고, 벤도 "언젠가 자기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며 말한다.

관객들은 각자 자기가 원하는 서사를 찾는 것 같다. 벤이 살인자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관습적으로 그렇게 믿는거지. 어떤 분은 '청년의 분노'를 왜 이렇게 밖에 해결할 수 없냐고 말하기도 하고, 벤에 대한 종수의 반응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분도 있더라. 그러나 그 어떤 서사라도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지 않거든. 완벽히 퍼즐이 맞춰지지 않으니 서사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난 이런 '모호함' 그 자체를 받아들였으면 했다. 

이런 방식이 낯설기도 할 것 같다. 그러나 이런 눈으로 바라보는 영화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영화를 통해 관객들이 이 시대의 서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서사를 원하는지 그런 질문을 해보고 싶었다. 메시지나 답을 찾는 건 관객의 몫이다. 

이창동 감독

-그런 점에서 보면 상업 영화로서는 모험일 수도 있지 않나.

영화 산업 전체를 위해서도 누군가는 계속 새롭고 낯선 영화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난 항상 상업영화를 만들었다. '버닝'도 그렇고 이전 5편의 영화 모두 다 상업영화다. 또 마케팅도 그렇게 했고. 늘 어려운 승부를 해야했다. 보통의 마케팅 방식으로는 소화하기 힘든 영화들이었으니까. 예고편을 보여주면 보여줄수록 관객들이 더 안찾더라.(웃음)

그래도 손해는 안 보고 영화를 해왔다. '버닝'도 상업영화로는 위험해 보일 수 있다. 대중적으로 받아들이기 쉬운 영화는 아니다. 그래도 해볼 만하다 싶었다. 대중하고 접점이 있을꺼라 생각했다. 

영화가 '핫'한 매체다보니 마케팅이나 분위기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이 영화가 칸 영화제 수상 결과에만 집중되다 보니 수상 불발이 국내 흥행에 영향을 미친 것도 없지 않은 것 같다.  

-할리우드 대작과 맞붙었는데.

본의 아니게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나 '데드풀2' 같은 슈퍼히어로물과 경쟁하게 됐다. 관객들은 슈퍼히어로가 나타나 세상을 구원한다는 서사에 만족감을 느끼고 즐거움을 찾는다. '버닝'처럼 우리에게 서사는 무엇이고, 우리가 뭘 원하는지 질문을 하는 영화는 재미없어 하시는 것 같다.(웃음) 

-결말이 인상적이다. 이 역시 실제인지, 상상인지 조차 모호하다.

마지막 종수의 이미지를 통해 영화적 느낌으로 받아 들여지기를 바랬다. 내 나름대로 열어놓은 결말이다. 종수가 갖고 있는 두려움, 슬픔 이런 복잡한 감정은 뭘까, 어떤 느낌일까를 던져놓고 싶었다. 어떻게 받아 들여질지는 관객들의 몫으로 남겨두고자 했다. 

-전작에 비해 스타일적으로 달라진 느낌이다.

나는 늘 변화하고 싶었다. 내 전작들을 '버닝'과 비교하면 비슷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난 늘 변화하려고 부단히 노력해왔다. 이번 변화는 좀 더 크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영화 '버닝' 촬영 현장/사진=CGV아트하우스

-배우 유아인과 한국계 할리우드 배우 스티븐 연의 캐스팅은 화제였다.

유아인씨는 촬영장에서 제가 요구하거나 원하는 것을 잘 따라줬다. 유아인씨가 맡은 종수 역은 표현하거나 감정 조차 드러내지 않는 역할이다. 배우 입장에서는 매우 어려운 캐릭터일 수 밖에 없다. 아무래도 연기자는 퍼포먼스를 해야한다는 강박이 있으니까. 그런데 종수란 역할은 그런 퍼포먼스가 없다. 굉장히 힘든 캐릭터였음에도, 그 역할을 잘 살려냈다.

스티븐 연이 맡은 벤이란 캐릭터는 모호함의 대상이기도 하고, 미스터리 그 자체다. 설명조차 하기 힘들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더라도 몸으로 느끼기엔 어렵다. 그런데 이 친구는 그걸 알더라. 관념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인물의 바닥에 있는 공허함을 잘 알고 있었다. 쉽게 그 인물 그 자체가 됐다. 무엇보다 한국어가 어렵지 않을까 했는데, 본인이 워낙 연습을 많이 해왔다. 어떤 뉘앙스인지를 감각적으로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한국 배우들보다 더 예민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미묘하면서도 뭔지 모르는 그 느낌은 스티븐 연이 아니었으면 만들어내긴 힘들었을 것 같다.

-차기작 계획이 있다면.

아직 잘 모르겠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다. 지난 8년 간 쉬지 않고 굉장히 많은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고민해왔거든. 그러나 아직은 '버닝'이 집중할 때고, 또 다시 영화를 해야겠다는 의욕을 되살리기까진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싶다. 내 나름대로 숙제도 풀어야 하고.

김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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