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오페라 무대를 거리로 옮긴 성악가 노희섭 단장
[인터뷰] 오페라 무대를 거리로 옮긴 성악가 노희섭 단장
  • 김두호
  • 승인 2018.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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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대중화에 발 벗고 나선 오페라의 주역
-"클래식 음악인도 대중과 소통해야 산다"
'거리의 성악가' 인씨엠예술단의 노희섭 단장. 노 단장은 클래식 저변 확대와 대중들과의 소통을 위해 화려한 무대에서 내려와 거리 공연에 나섰다. 명동의 한복판과 이태원, 신촌 등지에서 그가 펼친 클래식 독창 공연은 500회가 넘는다. /사진=인터뷰365

[인터뷰365 김두호 인터뷰어] 버스킹(busking) 또는 스트리트 퍼포먼스(street performance)로 일컫는 거리 공연은 주로 악기 연주자나 대중음악인들이 버스커(busker)들이다.

인파가 붐비는 거리에서 오페라 아리아가 울려 나오고 성악가가 클래식 노래를 열창하는 광경은 세계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다.

지난 4월 21일까지 서울을 비롯한 도심지 거리에서 클래식 독창 공연을 507회째 해온 '거리의 성악가'가 시선을 모으고 있다. 클래식 공연단체인 인씨엠(Insiem)예술단의 노희섭(1970∼ 숭실대학교 겸임교수) 단장이다.

서울 명동의 한복판인 명동예술극장 앞,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이태원이나 신촌 등지의 길가에 즉석 간이 무대를 만들어 자신이 세종문화회관 오페라 공연무대 주인공으로 부른 <리골레토><라트라비아타>등의 노래와 가곡, 팝페라까지 평균 한 장소에서 90분 단위로 공연을 하고 있다.

국내 공연장을 대표하는 최고의 화려한 무대에서 내려와 거리로 뛰쳐나온 노 단장은 이탈리아 유학시절 세계적인 테너 움베르토 보르소를 통해 발성기법을 배워 테너와 바리톤을 아우르는 역량 있는 음악인이다. 서울시 오페라단에서 활동하고 2006년 클래식 음악의 토털 공연단체인 '인씨엠예술단'을 창단해 공연활동을 해 왔다.

가장 궁금한 것은 오페라 가수로 쌓아온 명성과 권위를 버리고 거리의 음악인으로 활동무대를 바꾼 놀랍고 엉뚱한 진로 선택의 동기와 별난 인생관이다.

왜 그는 고고(孤高)하고 고상하고 품격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클래식 음악인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무시해 버리고 관람료를 주든 안주든 거리에서 아무에게나 노래를 불러주는 음악인으로 변신한 것인지 <인터뷰365>가 그 내력을 들었다.

신촌 연세로에서 열린 클래식 콘서트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는 성악가 노희섭 단장

◆거리에는 클래식 좋아하는 청중이 넘친다

-성악가인 저명한 음악인이 거리 공연을 하게 된 동기부터 의문이다.

클래식이든 대중음악이든 다 같이 청중과 관중을 위해 유지되고 존재한다. 그러나 대중음악은 누구나 친숙하게 즐기지만 클래식 공연은 접하는 관객이 따로 있다. 클래식 공연은 더욱 소문난 유명 음악인이 무대에 오르지 않으면 객석을 채우기 어렵다. 국내의 특급 공연장에서 오페라 공연을 할 경우 제작진행비가 10억여 원 필요하다. 비싼 입장료를 받지만 입장료 판매 수입은 5000만 원을 넘어서기가 어렵다.

클래식 음악인도 살려면 대중과 통해야 한다. 소통하려면 찾아오게만 하지 말고 찾아서 다가가는 길도 열어야 한다. 듣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은 클래식이 고전적인 음악성이나 전문 음악성의 특별한 분야로 인식되어 대중화를 시도하지 못한 데 이유가 있다.

나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시오페라단 단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공연활동과 함께 작품의 기획, 진행 등 행사를 주관하면서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의 선호도가 낮은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그게 나를 거리로 불러냈다.

거리공연을 통해 클래식 저변 확대에 나선 '거리의 성악가' 인씨엠예술단의 노희섭 단장./사진=인터뷰365

-클래식 음악 대중화와 관객운동의 전도사를 자청한 것인데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는가?

12년 전인 2006년 혈기왕성할 때에 '인씨엠(Insiem) 예술단'을 사단법인체로 창립했다. '인씨엠'은 이탈리아 고어(古語)로 '함께'라는 의미다. 클래식 음악단체로 시도하기 어려운 큰 규모로 상근 직원 14명을 포함해 64명의 전속 공연팀을 구성해 1년에 100회 이상 공연을 하는 클래식 연주 활동을 시작했다. 반응이 좋아 기업 후원으로 운영 재정도 튼튼해져 무료공연으로 이어가다가 결국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해 공연을 계속할 수 없었다.

-주로 어떤 내용의 공연이었나?

인씨엠예술단을 모체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오페라단, 합창단, 무용단, 극단(연극), 소년소녀합창단, 챔버 오케스트라 뮤지컬 공연단까지 분야별로 특색 있는 공연시스템을 가동했다. 인씨엠예술단은 말그대로 클래식의 대중화를 열정적으로 시도했다. 부수적이지만 일정한 수입과 정착지가 없는 클래식 음악인들의 일자리 창출에도 일익을 한 셈이 됐다. 기능을 잃지 않고 분야별로 저마다 역할을 유지한 기간은 1년 쯤 된다.

-인씨엠예술단이 제대로 활동하지 못한 것이 거리로 나서게 한 직접적인 동기 같다.

클래식도 대중화 되어야 클래식이 발전한다는 확신은 오래된 생각이지만 거리공연은 막다른 길에서 떠오른 실험성 시도로 시작됐다. 좌절감을 극복하기 위한 돌파구를 찾다가 내 스스로 맨 몸으로 대중 속에 뛰어 들어가 보겠다는 용기가 불쑥 나를 거리 무대에 서게 했다. 돈 한 푼 들지 않고도 맘껏 노래를 불러주고 박수를 받을 수 있는 곳이 거리공연 아닌가.

성악가 노희섭 단장이 거리 한복판에서 공연하고 있는 모습(사진 위)/ 모교 영남대학교에서 클래식 콘서트 무대에 오른 노 단장(사진 아래)/사진=노희섭 제공

-성악을 전공한 음악인으로 누구보다 화려한 길을 걸어온 분이 길거리에서 오페라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유례가 없는 사례다.

어느 나라에서도 구경할 수 없다. 나는 국내에서 거리 공연을 시작한 후 용기도 생기고 좀 쉬면서 충전 기회를 갖기 위해 국내 공연 300회를 기록하고 내가 유학생활을 하던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등지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길에도 그냥 쉴 수 없다는 충동과 자각이 왔다. 거리 공연의 단련된 습성으로 로마, 아말피, 소렌토, 피렌체, 밀라노, 베니스를 비롯해 잘츠부르크와 독일 등지의 도시를 순회하면서 거리 공연을 이어갔다. 유럽인은 오페라와 친숙해 거리에서 처음 듣는 오페라 음악을 신기하고 반갑게 반응해 청중이 순식간에 운집하는 반응을 맛보았다.

'거리의 성악가' 인씨엠예술단의 노희섭 단장은 국내외 거리 공연을 활발히 펼쳐왔다./사진=노희섭 제공

-국내 거리 공연은 언제부터 시작해 주로 어디서 해 왔는가?

2013년 7월 19일 명동에서 출발해 관광객과 젊은이들이 많은 이태원과 신촌지역을 비롯한 서울과 전국 도시를 고루 옮겨 다녔다. 부산, 대구 등 대도시에서 강릉, 속초, 영덕, 포항 등 동해안 도시에서 순천, 목포와 신안군 도서지역까지 수시로 이동 공연을 했다. 일주일에 4, 5일씩 직장 근무 활동하듯이 노래를 불렀다.

◆이혼 문턱의 여인에게 행복 찾아 준 버스커의 보람

-주로 어떤 노래를 부르는가? 그렇게 강행군을 하면 가수의 생명인 목의 피로감을 해소하기 어려울 텐데.

내가 세종문화회관 공연 때 주인공으로 출연한 <운명의 힘> <라트라비아타> <안드레아쉐니에> 등 오페라곡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우리 가곡과 포크송이나 팝송을 부르기도 하고 뮤지컬 노래, 때로는 팝과 오케스트라를 혼합한 팝페라도 부른다.

물론 실내가 아닌 옥외 무대라 소리의 강약을 느낄 수 없는 무방비 목청의 조절기능으로 목에 피로감이 나타날 경우도 있다. 다행히 나는 타고난 성대기능과 은사인 한국에서는 김신환교수와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테너 움베르토 보르소의 지도로 발성기법과리의 조율을 통한 자기관리를 제대로 익혀 문제가 생긴 적이 없다. 유럽의 음악교육은 어느 대학에 다니느냐 보다 누구에게 배웠느냐가 주요 이력사항이 된다.

거리공연을 통해  클래식 저변 확대에 나선 '거리의 성악가' 인씨엠예술단의 노희섭 단장./사진=인터뷰365

-많은 클래식 음악인들이 이탈리아에서 성악 공부를 하고 온 것으로 알고 있다. 유학시절로 이야기를 돌려보자.

나는 초중고교를 대구에서 다니고 대학도 영남대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가정환경으로 실기 레슨을 못해 3수를 하고 진학할 정도로 힘들게 성악도의 길을 걸었다. 음악을 전공하면서 내 꿈은 사실 지휘자였다. 목소리만 좋았지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지 못해 클래식 음악의 고향인 유럽 유학을 선택했다. 그 무렵이 국내에 IMF가 터져 유학생들이 유학중 귀국하는 혼란기였는데 나는 처음부터 고학을 각오하고 떠나 영향을 받을 것도 없었다.

이탈리아 산타체칠리아음악원에 입학한 뒤 학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조달하려고 음식점 일에서 막노동도 하고 동양인에게 특별대우를 해주는 영화와 드라마 엑스트라 배우로 알바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등교 일수를 채우지 못해 2년 뒤 학교를 옮겨야 하는 사태를 겪었다.

정신을 차려 2002년 씨에나국립음악원에서 수석 졸업을 하고 귀국해 2003년 2월 바로 서울시오페라단 상임단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노희섭 단장의 오페라 공연 당시 모습. 서울시 오페라단에서 활동했던 그는 2006년 클래식 음악 토털 공연단체인 '인씨엠예술단'을 창단해 공연활동을 해 왔다.

-알바시절 영화나 드라마 단역배우(엑스트라)로 동양인 특별 대우를 받았다는 데 동양인을 더 우대해주는 이유가 궁금하다.

아, 동양인 엑스트라의 희소가치를 인정받아 출연료를 곱으로 받았다. 때로는 한복차림으로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했다.

-테너가수인데 처음에는 바리톤 쪽의 성악가로 활동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원래 바리톤이다. 그러나 지금은 테너를 내세우지만 양쪽 모두 가능해 내 나름으로 두 장르를 합성해 테리톤 가수라고 말하기도 한다.

노희섭 단장의 오페라 공연 당시 모습

-거리 공연 500회를 넘기면서 그 동안 겪고 느꼈던 일화들이 쌓여있을 것이다.

많다. 영등포 역전에서 공연(초창기에는 1회에 4시간 공연)을 할 때 4시간을 한 번도 움직이지 않고, 내 노래를 듣고 난 초췌한 모습의 연로한 어른 한 분이 다가와 지폐 2000원을 손에 쥐어주며 너무 감동적으로 들었다며 극진하게 사례를 했다. 하루 종일 박스 수집해서 판 돈 전액이라고 말씀하셨다. 가슴이 찡했다. 돌려주는 배려심보다 그 거리에서 받은 귀한 보람의 가치를 간직하고 싶은 욕심이 앞서 감사 인사를 하고 내 주머니에 넣었다. 쓰지 않고 보관할 생각을 하면서.

이태원 거리에서는 어느 젊은 여인이 나에게 김동규가 부른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불러 줄 수 있느냐고 신청해 왔다. 그 여인의 쓸쓸하고 슬픈 표정을 바라보며 내 노래도 좀 구성지게 흘러나갔던지 그녀는 빗물 같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갔다. 그런데 한 참 뒤 가져간 내 명함을 보고 메일로 편지를 보내왔다. 거리에서 내 노래를 들을 때 남편과 이혼을 결심하고 있을 때인데 내 노래를 듣고 마음을 돌이켰다는 편지였다. 그 노래는 부푼 행복과 희망의 심경을 느끼게 했던 결혼식 축가였다고 밝혔다.

그밖에 내가 가는 신촌 거리의 스타광장 거리무대 가까운 점포 아주머니 한 분은 내 노래를 듣고 우울증 증세를 씻어냈다고 늘 고맙다고 인사를 해온다. 물론 불쾌감이나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주정꾼도 마주치고 측은한 눈빛을 남기고 떠나는 사람들도 만난다.

모든 것이 없던 문화를 개척하는 자가 맞이해야 하는 새로운 체험들이다. 인생 공부도 많이 한다. 내 인생의 실험무대라고 느낄 때도 있고 내 클래식 음악의 연습무대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

'인터뷰365'와 인터뷰 중인 '거리의 성악가' 인씨엠예술단의 노희섭 단장./사진=인터뷰365

◆대학 음악교육도 거리 공연 체험 학점제를

-적을 두고 있는 곳이 (사)인씨엠예술단과 함께 숭실대 겸임교수, (사)아리인 음악감독, 그밖에 정부 단체와 지자체의 홍보대사 등 다채롭다. 최선을 다해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사회 다방면에 기부하는 모습이다. 클래식 교육이나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대학의 클래식 분야 음악교육부터 시대의 패러다임에 맞게 진화하고 변화해야 한다. 전문성과 전통을 버리지 않고도 눈높이를 낮춰가며 문을 열어 대중 관객을 맞이할 수 있는 교육 쪽으로 눈을 돌리면 클래식 음악 공연이 활성화 될 것으로 본다. 또 클래식 음악인들도 공연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서나 자신의 음악을 보여 줄 수 있는 용기를 가지면 활동 폭이 넓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대학에서는 음대생은 필수교양 과목으로 거리공연 학점제를 운영하길 추천한다. 학창시절에 현장에 찾아가서 관객과 직접 소통하는 경험을 해보고 그 경험을 토대로 여러 가지 자기 적성에 맞는 진로 선택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시민들은 무한대의 거리로 나온 클래식 버스커들을 보며 더 이상 클래식이 음악이 아니라 대중음악속의 한 장르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97아시아태평양영화제 집행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대종상 및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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