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알코올중독 지옥에서 탈출해 금주운동가 된 웹툰작가 박원빈
[인터뷰] 알코올중독 지옥에서 탈출해 금주운동가 된 웹툰작가 박원빈
  • 김두호
  • 승인 2018.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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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된 알코올 중독에서 금주 성공까지의 처절한 전쟁
-알콜중독에 빠져있다 45세에 단주 결심...18년째 금주운동가로 활동해
-80년대 만화 전성시대 이끌어...현재 금주 캠페인 웹툰·만화책으로 '금주' 운동
-강연 활동 하며 청소년 알코올중독 예방운동에도 앞장
유전된 알코올 중독에서 금주에 성공해 현재 알코올 중독 예방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박원빈 화백. 이현세 만화가의 직계 후배로 다수의 작품을 발표하며 만화 전성시대에 활동했던 그지만, 45세까지 알콜중독에 빠져 지냈던 쓰라린 경험이 있다. 죽을 힘을 다해 술을 끊은 후 18년간 금주생활을 지켜오고 있는 그는 "즐거운 삶을 살고 있다"며 활짝 웃었다. /사진=인터뷰365

[인터뷰365 김두호 인터뷰어] 지금은 (만화)웹툰작가로 활동하는 박원빈 화백(1956∼ )은 이현세 만화가의 직계 후배로 1973년부터 만화를 그리기 시작해 1980년 창작만화 '돌풍의 그림자'를 펴내면서 '광풍도시' '공포의 스트라이커' 등 10권이 넘는 만화책과 신문잡지에 수많은 작품을 발표해온 중진 만화가다.

그는 영상미디어가 제대로 등장하지 않은 시절, 만화가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인기를 독점하던 만화 전성시대에 활동했지만 사생활에서는 구제 불능의 '알코올중독자'로 악명을 떨친 악몽의 과거가 있다. 45살에 단주(斷酒)를 단행하고 이순을 넘었으니 알코올의 지옥에서 탈출한 지 18년이 되었고, 그 햇수가 그의 금주운동 활동기간이기도 하다.

그는 반평생을 두고 알콜중독에 빠져 살았고, 죽을힘을 다해 술을 끊는데 성공해 건강하고 평온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인터뷰365'를 통한 그의 고백 인터뷰는 알코올중독이 인간의 심신을 망가뜨리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인생 자체를 지옥으로 밀어 넣는 '악의 전령'을 맞이하는 경고의 반복으로 이어진다.

그의 금주운동 주요 타깃은 인생을 살만큼 산 어른들보다 아직도 갈 길이 먼 청소년들이다. 또 알코올에 이미 중독된 사람의 치료나 대책보다 음주 습관이 위험하게 발전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데 계몽의 주안점을 두고 캠페인 웹툰을 올리거나 금주계몽 만화책을 펴내고 있다.

알코올에 빠져 버린 자신의 인생을 극적으로 반전시켜 희망과 사랑을 전도하는 금주운동가로 살아가는 박원빈 화백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에 본 알코올중독자 아버지의 무지막지한 모습, 만취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술을 더 받아오라면서 부엌칼을 방바닥에 내리 꽂는 기억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박원빈 화백은 강연활동과 체험기를 소재로한 계몽성 만화책을 펴내는 등 알코올중독 예방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사진=인터뷰365

-'나는 알코올중독자였다. <술잔 속의 올챙이>'라는 박 화백의 수기 형식의 계몽만화를 보았다. 술로 인해 겪은 성장기와 청년기의 삶이 처절했다.

지금 못다 밝힌 이야기를 해야겠다. 내가 어떻게 살아 왔는지는 그저 불행한 정도의 얘기가 아니라 처절한 사투(死鬪)였고 충격적인 사건의 연속이었다. 어릴 때 술에 취한 아버지는 귀신보다 무서웠다. 어머니에게 술을 더 가져오지 않는다고 욕설로 시작해 식칼을 방바닥에 내리 꽂으며 술잔에서 손을 떼지 못하시던 아버지는 어느 날 스스로 생목숨을 비극으로 마감하고 떠나셨다. 황폐한 일생이셨다.

-어머니가 그 고통을 어떻게 감내 하셨을지 상상이 미치지 않는다.

어머니도 결국 내가 8살 때 어린 자식들까지 버리고 가출해 돌아오지 않으셨다. 점점 심해진 아버지의 주벽 수발도 장남인 어린 내가 받아내게 되었다. 하루하루가 절망이었지만 사방을 둘러보아도 내가 도움을 받을 방법이나 길이 없었다.

박원빈 화백이 자신의 체험기를 소재로 한 수기 형식의 계몽만화 '술잔 속의 올챙이' 표지(사진 왼쪽). 만화의 첫 장은 그의 어린 시절 처절했던 성장기 이야기에서(사진 오른쪽) 시작된다./출처=린

-아버지가 병적인 음주벽을 가지게 된 원인이 있을 것이다.

알코올중독은 유전과 환경적인 요인이 크다. 실제 알코올 중독을 유전적, 환경적, 사회적 요인으로 동기를 나누기도 하는데 우리 가족은 대를 이은 알코올 중독자 집안이다. 아버지는 집안문제나 사업실패 등의 환경적인 요인도 있지만 할아버지도 일찍이 알코올중독이라는 것을 아버지에게 들었다.

아버지의 원적은 함경도 길주다. 옛날에는 양반들이 쫓겨 내려와 자포자기 하여 술이나 마시던 귀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아버지는 혈혈단신 월남해 힘들고 외롭게 살면서 알코올중독의 가족력을 다시 당신의 자식들에게 물려주었다.

-물려받은 자식들이라면?

위로 누님은 별세하셨지만 남편과 함께 알코올중독자였고, 불행하게도 두 여동생도 알코올중독자와 살고 있거나 헤어졌다. 집안의 사망자 다섯 명이 술로 인해 명을 단축했다.

-술도 절주(節酒)는 보약이라고 하지 않는가. 어느 정도 마셔야 중독인가?

자제가 안 되고 조절이 안 되는 상태가 중독이다. 중독에 이르면 절주나 조절이라는 것은 쓸모없는 말이다. 중독자에게는 살 길이 금주, 단주 뿐이다. 단 칼에 끊어야 산다. 끊지 못하면 마시다가 죽는 길 밖에 없다. 나보다 젊은 만화계 후배들 중에도 단주를 못해 먼저 간 사람들이 많다.

 박원빈 화백 /사진=인터뷰365

-터널을 빠져나오기 전, 중독자 일 때 어떤 일을 겪었나?

피를 토하면서까지 일주일 동안 쉬지 않고 마셔 댄 적도 있다. 최악의 사건은 친구와 아침부터 하루 종일 퍼마시다가 밤늦게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로 시비가 붙어 주먹싸움이 벌어졌다. 서로 비몽사몽으로 헛주먹질 헛발질하며 싸우다가 친구가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친구가 사망한 것이다. 이해관계나 악의가 없는 우발적인 사건이었고 동료 화가들의 진정서도 참작이 되어 집행유예로 풀려나긴 했지만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는 참회와 회한의 못을 내 가슴에 박은 사건이었다. 넝마주이를 하면서 살 때도 있었지만 한 번도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법을 어겨 본 적이 없었다.

-몇 살 때인가?

28살이었다.

-알코올중독은 스스로가 병적으로 인정을 않거나 자각을 못한다는 얘기도 있다.

나도 그랬었다. 죽기 살기로 마셔대는 술 때문에 몸과 정신이 황폐해 져서 강원도 홍천에 거처를 마련해 술을 끊으려고 했지만 끊을 수가 없었고 농약으로 자살을 시도하다가 미수에 그친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선배 되는 우호(본명 우상구) 화백을 만났고 그는 나에게 "너는 알코올중독증세가 심각하다"며 병원을 소개했다.

나는 그때 내가 알코올중독자라는 것을 처음으로 자각하고 내 발로 병원을 찾기로 결심했다. 아내가 정신이 멀쩡하고 심주가 강한 당신이 정신질환자들이 가는 병원을 왜 가느냐고 반대했다. 사실 알코올중독자는 가족들이 강제 입원을 시킬 때까지 알콜중독을 병으로 자각하지 않는 데서 문제가 생긴다.

-외부 출입이 통제되고 행동에 규제를 받는 곳이 알코올중독자 치료 병동인데 어떻게 견뎠는가?

어느 곳이든 다 사람이 사는 곳이다. 입원한지 한 달 만에 주치의에게 퇴원을 신청했다. 용케 단주생활을 버텨내는 것을 본 의사도 쾌히 받아들이고 재발하면 다시 오라면서 다음날 퇴원 수속을 밟으라고 했다.

그런데 그날 밤 내가 입원해 있던 서울 중곡동의 병원에서 대형 화재가 일어나 수용된 26명의 환자 중 8명이 질식사고로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다행히 위기를 모면한 나는 그 사고를 끝으로 병원을 떠났고 단주를 결행했다. 45살... 그때부터 나의 단주역사의 시작이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단 한방울의 술도 마신 적이 없다.

박원빈 화백 /사진=인터뷰365

-고생할 때 넝마주이도 했다는데 고생담을 좀 더 들려줄 수 있는가?

나는 초등학교시절에 교과서도 없이 학교에 다녔다. 광화문통에서 신문팔이, 구두닦이, 껌장사 등... 살기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바닥 생활을 했다. 넝마주이를 할 때 당주동의 뒷골목 쓰레기통을 뒤지다 그 곳에 한국만화가협회가 있는 걸 알게 됐을 때 그 때의 가슴 벅찬 희열은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때 이미 나는 만화가를 지망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그 절망의 생활을 견뎌냈던 동력은 오직 만화에의 열망과 열정 때문이었다.

만약, 조물주가 '나에게 다시 태어날 때는 세상의 모든 복락을 누리게 해 주겠다.' 하여도 나는 단호히 거부한다. 이것은 내가 살아오며 겪은 형언키 어려운 절망과 열패감의 후유증인데 선택할 수만 있다면 어떤 형태의 삶이든 두 번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 그저 이 또한 내가 살아온 삶의 대가로 생각한다.

-만화 그림솜씨를 일찍 남다른 재능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 운명을 바꾼 것 같다.

그렇다. 아버지 친구들이 어쩌다 동전 몇 닢 주면 그 돈으로 구멍가게 한쪽 켠에 빌려보는 만화방으로 달려갔다. 추동성의 '짱구박사', 이종진의 '철인', 왕현의 전쟁만화나 차형의 동물전쟁 만화 등 어린 소년에게 감동을 남긴 만화가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만화를 열심히 보면서 그림을 따라 그리다 보니 학교에서도 선생님과 친구들이 내 별명을 '만화가'로 지어줄 만큼 만화도 잘 그렸다.

박원빈 화백은 강연활동과 체험기를 소재로한 계몽성 만화책을 펴내는 등 알코올중독 예방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사진=인터뷰365

-만화가로도 많은 작품을 발표하고 꾸준히 활동해오지 않았는가.

술 마시는 만큼 일에도 미치도록 빠져 살았다. 1973년 만화가 하영조 화백 문하에 들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이듬해 이현세 화백 문하에서도 활동하고 1980년 ‘돌풍의 그림자’로 작품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공포의 보디체크', '제2의 킬러', '제10야드', '검은 돌풍', '곤륜산의 방랑권법', '광풍도시', '인생부도', '황토바람', '흙탕물', '공포의 스트라이커' 등 화제가 된 작품으로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다.

-지금은 청소년들의 알코올중독 예방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단주를 하면서부터 술의 해악에 대한 체험적 계몽활동을 꾸준히 해 왔다. 알코올중독이 인격장애, 우울증, 감정기복, 알코올성 치매, 가정파탄, 가족해체와 붕괴로 이어진다는 일종의 지옥 체험기를 들려주면서 강연활동도 해왔고 대학 사회복지학 분야 학과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나의 체험기를 소재로 계몽성 만화책도 내고 인터넷에 웹툰도 제작하고 있다. 올해 초 발간한 <술잔속의 올챙이>도 나의 체험기록을 토대로 전문가들의 임상체험과 치료방법, 치료중인 알코올중독자들이 부모와 가족에게 쓴 애잔한 그리움과 참회의 편지 등을 모아 만든 계몽 만화책이다.

-알코올중독의 사회적인 문제를 줄이거나 해소하는 방법으로 어디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가장 불행하고 위험한 사태는 우리 주변에서 많은 청소년들이 알코올중독 증세로 접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음주환경은 가히 세계최악이라 할 수 있는데 청소년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 어디서든 얼마든지 술을 구입하고 마실 수 있다. 그만큼 세상 어떤 나라들 보다 우리 청소년들이 알코올중독에 빠질 확률이 높은데 일단, 알코올중독으로 들어서면 사생결단의 각오나 모진 치료수단을 동원하지 않으면 고치기 어렵다. 중독이 오지 않도록 예방에 목표를 둔 계몽운동이나 대책, 관련 의료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단주 후 즐거운 인생을 보내고 있다는 박원빈 화백. 틈틈히 명산을 찾아 고산 트레킹을 하고 암벽타기를 즐긴다./사진제공=박원빈

-지금 그림도구가 든 배낭을 메고 거리를 활보하는 박 화백은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고 건강해 보인다. 금주 생활을 하는 덕분인가?

물론이다.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주 즐겁게 산다. 틈나면 러시아나 네팔 등지의 명산을 찾아 고산 트레킹을 하고 암벽타기를 즐긴다. 또 산악자전거 타기를 좋아해 해외로 떠날 때가 많다. 사실 술을 마시는 것보다 더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가면서 사는 것이 알코올중독을 예방하는 길이다.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97아시아태평양영화제 집행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대종상 및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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